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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형3_류승연] 인권 감수성이 높아 외로운 비장애 형제자매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년 02월 19일 조회수709

 

인권감수성이 높아 외로운 비장애 형제자매



 


비장애인인 딸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덕에 또래보다 높은 인권 감수성을 지니게 됐고 그로 인해 친구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인 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딸 반에 ADHD 아이가 전학가게 됐다. 학폭위가 열렸고 강제전학이 결정 나면서 어쩔 수 없이 쫓기듯 가게 된 전학이다

담임이 ADHD 친구의 전학 사실을 알리는 순간 교실 안 친구들이 우와~”하며 박수치고 환호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부한다. 아이들에게 뭐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ADHD 아이의 완전통합이 학폭위라는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 건 이 아이를 둘러싼 모든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이들에게서 박수가 나오게 만든 건 모두 어른인 우리의 잘못이다)


그 소식을 전하며 딸이 말한다.

엄마. 난 작은 소리로 ~’ 한번 한 다음에 관심 없는 척, 그림 그리는 척 했어


딸은 친구의 전학이 마음 아프다

ADHD도 넓은 범주의 발달장애로 이해하고 있는 덕이다. 친구의 모습과 동생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탓이다.

그렇게 친구의 전학이 가슴 아프지만 딸 역시 작은 목소리로 ~’라는 액션을 보였다고 한다. 친구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은따(은근한 왕따)가 될까 그랬다고 한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중한 11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은따가 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타협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양심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한 번만 짧게 ~’라고 외친 다음 그림 그리는 척을 했다고, 관심 없는 척을 했다고. 그랬어야만 하는 딸의 심정이 온전히 느껴지며 가슴 한쪽이 찌릿해진다.

  

엄마로서 난 말해야 했다. 사실을 알리고 상황을 이해시켜야 했다

4학년이니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모르고 당하는 것보단 알고서 미리 각오하고 대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너는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동생 덕에 네가 보는 세상이 친구들이 보는 세상과 다르기 때문인데, 앞으로도 다른 너는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외로움을 느끼는 일이 있을 거라고 했다.


딸이 보는 세상은 마냥 즐겁고 천진난만한 친구들의 세상과는 조금 다르다. 장애인 혐오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혐오에 분노할 줄도 알며, 그로 인한 인권 감수성도 발달해 있는 상태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도록 딸의 유년 시절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장애인 가정의 특수성이 비장애 형제자매를 빨리 철들게 하는 현실에 화도 난다.

하지만 딸에게 다른 너로 인해 혼자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에는 발달장애인 수만큼 많은 비장애 형제자매가 있다고 했다. ‘다른 너는 혼자가 아니라 아주 많다고 했다.

 

이미 성인이 된 언니 오빠들은 나는이라는 비장애 형제자매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에 가입해도 되고 네가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필요 없다고. 비장애 형제자매로서 느끼는 슬픔이나 외로움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서로 위로하고 나누면 된다고

그러니까 네가 지금 할 일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너만의 세계를 잘 가꾸는 것이라 했다.

 

, 그럼 나중에 길동이(가명) 오빠랑 의선이(가명)랑 나도 모임을 만들면 되겠다

아빠모임 덕에 장애인 가족들이 함께 놀러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오빠와 친구 이름을 말한다.

그러라고 했다. 무엇이든 너희들 하고픈 대로 다 하라고 했다

그렇게 비장애 형제자매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게 너희들 자존감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주저 말고 하라고 했다.

캠페인을 해도 좋고, 국회의원을 만나러 가도 좋고, 그냥 모여서 수다 떨고 놀러 다녀도 좋다고 했다. 무엇이든 너희들 하고 싶은 거 다 해.

 

장혜영 감독의 이야기도 했다. 비장애 형제자매 중엔 이런 활동을 하는 언니도 있다고. 요즘엔 정치도 시작했다고 하니 딸이 대박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유튜브에 가면 그 언니를 볼 수 있냐며 재차 이름도 확인한다.

대박, 대박, 진짜 짱이다. 근데 그래도 난 내가 동환이 데리고 살기는 싫어라고 한다.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래. 엄마도 네가 동환이 데리고 사는 거 싫어

대신 가족으로서 잘 챙겨 줄 거야

그래. 그래


비장애 형제자매이기에 갖는 특수성이 있다. 분명 슬픔도 있고 어쩔 땐 외로움도 있다

단지 형제자매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남과 다른 요소를 어릴 때부터 갖게 되는 현실이 부당하게 느껴지지만 아직까진 어쩔 수 없다. 사회가 변화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1명의 장애인만 있는 게 아니듯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장애 형제자매는 장애인 수만큼이나 많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위안을 준다. 그리고 같은 생각과 같은 슬픔과 같은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게 되면 그땐 더 이상 슬픔이 슬픔이 아니고 외로움도 외로움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든든한 힘이 된다. 서로의 지원군이 된다. 그 사실을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단순했던 딸의 세계가 복잡하게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의 딸은 내가 아들을 낳은 후 겪었던 많은 일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딸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과 타협할 부분은 타협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정면 대결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딸의 선택을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것뿐이다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장애 형제자매이기에 더더욱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장애인 자식을 둔 엄마의 큰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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