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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페3_김종옥] 일을 한다는 것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년 08월 31일 조회수1,268

 

나를 제외한 우리 식구들은 거의 여덟 달째 칩거 중이다. 남편과 딸은 학교 수업이 비대면이라 밖에 나갈 일이 드물고, 직업 없는 아들 역시 나갈 일이 없다. 

할 일 없는 신발들은 먼지가 쌓인 채 현관에서 이리저리 채이다가 계절이 바뀔 때 신발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제 구실을 해내지 못한 신발들을 보면 안쓰러워 잘 닦아주는데, 그 안쓰러움은 나만의 것인지, 신발들도 애석할지는 알 수 없다.

 

식구들은 자기 방에서(정확히는 자기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다가 끼니를 때울 때만 식탁에 잠시 모인다. 나는 거실을 온통 내가 혼자 차지하는 것이 민망해서 텔레비전에서 때로 근사하거나 재밌는 장면이 나올 때면 빨리 나와보라고 애타게 소리지르며 애걸복걸 하지만, 남편은 들은체만체 하고 아이들은 으레 그 기막힌 장면이 끝난 뒤에야 마지못해 어슬렁거리며 나오기 일쑤다.

어딜 가자고 해도 뜨뜻미지근하고, 어쩌다 용케 나들이 날짜를 잡을라치면 하필 그 날 한달에 한 번 있는 약속이 있단다. 나는 산도 물도 보고싶어 답답해 죽겠는데, 그래서 식구들 놔두고 면도날 같은 틈에 바람을 쐬기도 했는데, 식구들은 워낙 은둔성품인지라, 타고난 코로나시대 방콕족속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에 균열이 갈 일이 생겼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집에서 졸업후휴식’(이 단어의 의미심장함을, 험한 학창시절을 겪은 모든 통합학교 출신 아들딸과 그 어미들은 알리라. 아들은 그 시달림의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 자기는 결단코 집에서 많이 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했다)의 세월을 보낸 아들이 드디어 일을 하게 될 모양이다.

 

- 생각을 바꾸다

 

얼마전에 나는 내 생각을 수정했다. (나이 오십이 넘고나서 나는 내 생각을 잘 수정하는 편이다. - 물론 이 말을 들으면 우리 엄마는 코웃음을 칠 테고, 예전의 내 친구들은 기함하고 쓰러질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이, 그가 가진 성품으로 해서 타인을 만나는 것이 고통스럽고, 그가 적응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 속에서 그가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 것이라 짐작해서, 굳이 일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랬다.

- 77억 인구 중에 그냥 억지로 일 하지 않고 사는 사람 몇 쯤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아들은 특별히 고급식도락 취미도 없고, 옷 욕심은 더더구나 없으며(순면티셔츠 몇 장을 헤지고 닳아 구멍이 날 때까지 입으니), 현관 문밖에 나가는 걸 번지점프대 앞에 서는 것처럼 싫어하니, 돈 쓸 일이라고는 좋아하는 게임을 즐길만한 컴퓨터와 그것을 가능케 할 환경만 있으면 된다. 요컨대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내 품에서 같이 살 때 얘기다. 나는 그 녀석을 위해 식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니까...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결코 사랑하는 내 아들이 그 자신과 엇박자인 세상에 어거지로 적응하는 체 하기 위해 힘겨운 노오오오력을 해야 하는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고, 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의미로운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친소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얼굴,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와 은유로 가득한 사람들의 말, 그러면서 상대의 수준을 끊임없이 살피는 사람들의 태도, 12년 학교생활 속에서 겪었던 고통의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수년동안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토실토실 살까지 쪘다.

 

그 시간을 중단할 만큼 의미있는, 딱 맞는 일자리를 찾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일 게 틀림없어서 굳이 일자리를 찾으려고도,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순간 딱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있다면 모를까.

 

그랬는데 작년부터 치열한 투쟁의 선봉에 서서 마이크를 잡다보니, 그게 다가 아니라는 깨우침이 문득 들었다.(세상일은 다 그렇다. 언제나 그게 다가 아니다!)

장애인 고용지원을 확대하라, 중증장애인에게 공공일자리를 내놓으라, 라고 외치려다 보니, 누구나에게 일자리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 그 답은 너무나 쉽게 얻어졌다. 모름지기 진리는 쉽고 간결한 법이다.

 

- 일이란 무엇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이든 마지못해 하는 일이든,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엄한 행위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위해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봉양하기 위해서건,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건, 심지어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닌 어떤 일이라도, 일이란 건 세상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동참하는 일이며, 세상에 참여하는 일이다. 노동이란 그래서 신성하다. 노동은 그래서 신성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그런 자리에 놓여야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뜻이고, 내가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은 그를 스스로 존엄하게 만든다. 나는 이것을 놓치고 있었다.

 

문득 아들에게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뜨악했다. 바쁘단다. 일을 하기에 본인은 너무 바쁘시단다. 게임도 해야 하고, 블로그에 글도 써야 하고, 작곡도 해야하고 해서 몹시 피곤하단다. 물론, 이제까지 너에게 꼭맞는 의미있는 일 아니면 절대 일 하지 않게 하겠다고 외치시던 엄마가 갑자기 왜?... 라는 항거의 뜻도 들어있는 말투였다. 나의 약점을 콕 집어내다니 녀석, 많이 컸다.

그럼 일주일에 이삼일이나, 하루 반나절은 어때, 라고 물으니, 그건 생각해보죠, 라고 천연덕스레 대꾸한다.

며칠 뒤에 녀석이 문득 물었다. 그 일은 뭔데요? 라고.

요컨대,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크게 감격했다. 일주일에 절반은 현관 밖 번지점프대를 뛰어내려서 뭔가 일을 해보겠다는 뜻이 아닌가.

- 왜 일을 하려고 해?(기대만발)

- 뭐 살 게 있어서요.(심드렁)

- 뭔데?(기대만발 2)

- 게임 장비요.

좋아. 할머니가 용돈을 주면 그 돈이 자기 방 여기저기 먼지를 뒤집어쓰고 굴러다니게 하던 녀석이 이제 돈을 모아서 뭔가를 사겠다는 것이 아닌가. 아들은 스물하고도 여덟 나이에 목하 노동의 가치, 재화의 역할에 대해 눈 떠가고 있는 중이다.

 

바로 서울커리어플러스센터에 데리고 가서 취업희망서를 썼다. 얼마 가지않아 반나절 일자리 면접이 있었다.

- 너한테 크게 흥미있는 일은 아냐. 그냥, 일이야. 게임회사도, 음악 관련 일도 아닌데, 그냥 어려운 일은 아니래.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뜻밖에 아들은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직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들은 분명히 뭔가 일을 해보고 싶고, 그것을 하겠다고 작심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아들은 면접을 봤고, 머지않아 일을 하게 될 터이다.

나는 아직도 즐기면서 하는 일을 찾아주지 못한 아쉬움에 마음이 짠하긴 하다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다, 이제 시작이니. 아들은 뭔가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엄마보다 용감하게.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면 모두 일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크든 작든 저마다의 일터에서 저마다 적합한 시간의 노동의 하고, 그 노동의 존엄한 의미만큼의 정당한 보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를 통해 스스로를 봉양하고, 세상과 그 자신을 위해 쓰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게 맞는 것이므로 이 길로 결국엔 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갈 것이고, 아직 그리 되지 않는다면 그리 될 때까지 밀고나갈 것이므로, 투쟁!


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

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

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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