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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16_조미영] 엄마 친구들 틈에서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7-28 조회수2,221

마 친구들 만나는데 동생이 같이 가서 뭐 하게? 그냥 집에서 나랑 같이 있을 테니 엄마만 다녀오세요.”

1문화나눔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보거나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들의 모임이 있다. 몹쓸 코로나로 인해 1년 넘게 만나질 못했다. 여주에 세컨하우스를 마련한 지인이 있어 겨우 날을 잡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폐성아들이 다니는 평생교육센터는 코로나 때문에 인원 조정을 하느라 주2회만 나가고 있는데 하필 쉬는 날이었다. 아들 등원하는 날로 내 편의대로만 날짜를 잡을 순 없었기에 나는 아들과 동행하려고 했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 여주를 돌아보고 남한강변을 걷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남편과 딸은 말렸다. 20대 청년이 50대 아줌마들 사이에서 뭘 하겠냐는 것이다. 아들에게 묻기로 했다.

하진아, 엄마 친구들 만나는데 같이 여주 갈래?”

아들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라며 좋아했다.

하진아, 누나랑 집에 있을래?”

따아!!!”

함께 가겠다는 아들의 단호함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생활 속 언어는 거의 다 알아듣지만 말로 의사 표현이 잘 되지 않는 아들이다. 그럼에도 긴 시간 함께 살면서 아들의 여러 가지 반응과 표정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혹시 노래를 통해 말이 튀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동요를 함께 부르다 보니 불분명하지만 입모양이 잡히고 작은 소리도 나오는 걸 보며 언젠간 말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영원히 말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지금 이 정도로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다. 아플 때 표현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곽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뒷좌석 아들을 보니 창 밖 경치에 표정이 밝아 보였다. 엄마 노래 부른다며 동요 내 동생을 불렀다. 박자를 맞춰 열심히 따라 부르는 아들이 달라보였다. 발음이 아직도 정확하진 않지만 제법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 전까지와 다른 모습이었다. 몇 가지 노래를 더 부르며 아들보다 내가 더 신이 났다. 어느 순간 단어 하나가 툭 튀어나와 나를 까무러치게 할 것 같았다.

아들은 평소 집에서는 아이돌의 댄스곡을 즐겨 듣는다. 음량을 크게, 작게 조절하며 때로는 겅중겅중 뛰면서 춤까지 춘다. 빠른 템포의 노래 가사를 흉내는 못 내고 으으으...’ 소리를 내며 나름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그게 안쓰럽고 안타까웠는데 그런 마음을 접은 지는 오래 전이다. 살아보니 스트레스 잔뜩 받으며 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은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현명한 삶의 태도였다. 나름의 즐기기 방법으로 집콕생활을 하며 큰 소란 없이 지내주는 아들이 고마울 뿐이다.

 

일 고속도로는 한산해서 좋았다. 적당한 속도감을 느끼며 한 시간여 달리다 보니 낯익은 시골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좁은 외길을 따라 비슷한 모양의 집들을 보면서 목적지에 닿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아들을 직접 본 지인들의 표정은 모두 밝았다. 잘 생겼다, 배우 누구 닮았다, 의젓하다 등...좋은 말을 쏟아내니 아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들은 자신이 정한 의자에 앉아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간간이 미소를 띠기도 했다. 심심하거나 뭔가 맘에 안 들으면 머리카락을 꼰다든가 손을 입에 대고 후후 부는 행동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장소가, 거기 모인 사람들이 자신을 편하게 해 주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낯선 것을 싫어하는 아들은 특히 움직이는 놀이기구 타는 걸 겁내는 편인데 해먹에 앉아 보라니 처음엔 거부하다가 바로 걸터앉았다. 모두가 자신을 주시하며 재밌겠다, 한 번 앉아 봐 등으로 관심을 보였더니 바로 앉아 주었다. 누워 보라고 하니 또 엉그적거리며 눕기도 했다. 뭐든 처음 할 때의 저항이 심한 아들은 우리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알아차린 듯 잘 응해 주었다.
 

들이 해먹에 누워있는 사이 우리는 장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경계선급 장애인 경우 혼자 잘 할 수 있는 게 많다보니 여러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들을 이용해서 금전적 이득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함께 하는 건 그를 구속하는 게 되니 방법이 아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제도적 장치가 물론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의 인성이 더 중요함에 우리는 입을 모았다. 어렸을 때부터 통합을 하면서 장애인과 늘 함께 해 온 아이들은 커서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낯설어서 거부하고 자신과 달라서 배제하는 일은 어려서부터 몸으로 배우지 못해서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서로 부대껴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귀한 존재임을 몸으로 알고 배우는 교육이 중요하다. 말로만 하는 장애인식교육은 허울이다.

아들을 통해 지인들이 생각하는 장애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음이 참 좋았다.

오늘도 우리 모자는 함께 사는 세상에 작은 깃발 하나를 꽂은 기분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장애를 알고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예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은 날이었다.

 

녀가 모자의 동행을 끝까지 반대하지 않은 건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다.

호불호를 우리가 잘 알아차릴 수만 있어도 아들의 삶은 불행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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