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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초대칼럼 상단 이미지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이 게시판은 보다센터에서 초대한 각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소박하지만 통렬한 이야기와도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게시물 총 116

  •  팬더믹 상황으로 인해 길었던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었다.  새학기만 되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 면담에서 하셨던 이야기 중 일부분이 항상 귓가에 맴돈다. “온유같은 아이는 더 이상 좋아지는게 없잖아요”라는 이야기다.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엄마인 나는 좋은 쪽으로의 생각보다는 “왜 이렇게 이야기 하시지? 우리 아이를 얼마나 아신다고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얼마나 많이 노력하는데......이렇게 섣부른 판단으로 아이를 평가하시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두려움과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고 첫 등교를 했다.  3월의 첫 등교 후 하교 시간에 온유를 맞이하려는데 저 멀리서 보이는 온유의 모습에서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고 온유에게 조금은 덜 걱정 스런 태도로 대할 수 있었다. “엄마! 우리 선생님은 ○○○선생님이신데 너무 예쁘시고 잘 웃으셔서 좋아. 친구들도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도 있고 새로운 친구들도 있는데 ○○○는 나랑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같은 반이라서 좋아. 너무 기대가 돼.”라고 이야기하며 연신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과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첫날이니까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3학년이 되면서 엄마와의 독립도 자연스러워졌고 스스로 잘할 거라고 믿어 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이 지난 후에도 온유는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학교생활에 만족하며 다녔고 자주 괴롭히는 친구에게는 언어적 표현으로 단호하게 표현할 만큼 성장했다. 매일 학교생활을 즐거워했고 잘 다니고 있었지만 학년도 높아졌고 아이도 3학년이 되었으니 온유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평소처럼 자주 대화도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마음속으로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엄마: 온유가 혼자 있는 시간은 없어? 온유: 있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운동장에 나가거나 복도에서 놀면 혼자 있을 때도 있어. 엄마: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그러면 뭐하고 있어?온유: 그때는 교실에 있는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고 친구들 뭐하는지 관찰도 하고 다음 시간 교과서를 보기도 해.엄마: 그럼 외롭거나 슬프지 않아?온유: 가끔은 그런데 많이 그렇지는 않아. 다른 때는 친구들이 잘 놀아주거든. 괜찮아   이렇게 대화를 끝내고 온유가 있었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많이 외로웠겠구나, 슬펐겠구나, 속상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온유도 나름 자신의 장애를 잘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리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모둠 수업이 많았던 교과 학습 시간에서도 또래와 같은 수준으로 잘 적응하며 자신만의 필살기와 노력으로 급성장을 했다.  신체적 어려움 때문에 엄마한테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도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이였지만 학교라는 곳에서는 엄마의 개입 없이 잘 다녀 준 것에 너무 고맙고 매년 고민이고 걱정이었던 또래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놓아도 될 정도가 된 것 같았다.  4학년이 되는 것도 이젠 두렵지 않았고 겨울방학에는 미리 4학년을 준비하는 예습까지 하는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6년 중에 가장 좋은 꽃같은 학년이 3학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온유도 꽃처럼 예쁘고 밝고 환하게 활짝 핀 꽃처럼 잘 다닌 3학년이었다.4학년도 꽃길이길 기대하며 기다려졌다.  

    게시일2022-09-05

  •  “그렇게 길게 말하지 말고 자기가 들어가서 씻는 걸 보여 줘.”  “어허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고마 저리 가라!”  남편의 퉁명스런 말에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빠져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자조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샤워하겠다고 들어간 아들에게 욕실 문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말로 지시하는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가 봉변당했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아들에 대한 교육 방법을 그렇게 평가절하하는 남편이 무지해 보였다. 그리고 여태 내가 해 온 교육과 훈련 방식이 쓸데없는 걸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화도 났고 암담했다.    아들이 열 살 되던 해 남편은 직장인에서 자영업자가 되었다. 사업 준비 차 한 달여간 집에 있으면서 아들의 일상을 보고 경악했단다. 저렇게 힘든 아들을 10년간 엄마 혼자 건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 스스로에게 다짐했단다. 아들의 뒷바라지는 이제부터 남편인 자신이 하겠노라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은 주로 내가 했지만 집안에서의 신변 처리나 저지레에 대해서 남편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해주었다. 특히 씻는 것에 대해 늘 자신이 몽땅 다 해주면서 그것이 최선인 듯 생각했다. 혼자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가르치라고 해도 귓등으로 들었다. 깔끔하게 못한다는 이유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아들을 씻기고 챙겼다.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이 달라졌다. 말로 아들을 가르친다.   “옴마가 니 혼자 하게 하란다, 아부지가 갈쳐 줄테니까 스스로 해바라.”   욕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래라카이, 저래라카이.’ 하면서 언성도 높아졌다. 아들은 ‘으으으!’소리내며 반항했다. 그냥 하던대로 씻겨주면 되지 왜 이러냐는 반응처럼 느껴졌다. 샤워가 끝나면 늘 중얼거리는 남편.   “아이고,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내가 가긋다!”  아들의 자립을 생각하고 행동이 바뀐 남편이 대견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직접 다 해 주면 몸이 좀 고달퍼도 어렵지 않다. 아들도 힘 안들이고 사는 게 편할 수 있지만 부모가 영원히 같이 살 순 없으니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져야 타인의 지원을 덜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날들을 이어가던 중 남편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을 내가 했던 것. 그런데 돌아온 남편의 반응에 나는 절망했다. 아들 곁에서 갖은 노력하며 살았던 나의 노력을 폄하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날 저녁 서로 더 이상 말 한마디 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화가 났다. 평소의 남편답지 않은 모습에 어쩌면 그게 진심이라서 훅 튀어 나온 말 같았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자식 교육에 쓸데없는 말 하는 부모가 있을까? 여태 아들에게 내가 하는 것들이 다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고요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평소와 달리 아침 인사는 생략되었고 아들의 무의미한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아침밥을 먹고 과일과 차를 마신 후 설거지를 하려고 씽크대 앞에 섰다.   “하진아, 우리 씻자. 여기 서서 아부지가 하는 거 잘 보레이.”  깜짝 놀랐다. 어제 내가 한 말을 단박에 자르더니 남편도 밤새 고민했나 보다. 남편의 말에 내 표정은 순식간에 펴져서 욕실 앞으로 달려갔다.“옷 입은 채로 서 있으라면 얘가 도망가니까 자기랑 같이 벗고 들어가서 우선 머리감는 것부터 보여 줘봐. 말은 가급적 적게 하고.”어제와 달리 남편도 밝아진 표정으로 ‘알았다’ 말하고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 감는 걸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이 신통했다. ‘따아!’라는 싫다는 의미의 말 한마디 뱉고는 바로 뛰쳐나올 것 같았는데 머리를 꼬며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설거지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같이 집을 나서며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요즘 내가 자기한테 짜증이 좀 심해진 것 같아 어젯밤에 반성했다.”   남편의 말에,   “그래? 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서로 익숙해지니까 그런 건지 곰곰이 생각하니까 자기한테 미안하더라.”  “연애하고 결혼한 기간이 40년 넘었으면 익숙한 게 자연스럽지 않나?”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생각해 보니까 하진이가 우리 하는 걸 따라하는 게 많았더라. 칼국수 먹을 때 숟가락에 얹어서 먹는 걸 어설프게 따라 했던 거 하며 가전제품 작동하는 것도 말로 가르쳐서 하는 것보다 우리가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게 많았더라. 그래서 자기 말대로 해 볼라고.”   운전대 잡은 손을 놓고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두 말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어. 명령하듯 이렇게 하라고 한 건 내 잘못이지. 그래도 아침에 하는 거 보니까 자긴 진짜 사람이 괜찮더라. 우리 서로 말 안하고 며칠 갈 것 같았는데 완전 기분 좋았어. 그렇지 하진아, 아빠 멋있지?”  활짝 웃으며 ‘네!’하는 아들의 표정도 밝았다.   요즘 좁은 욕실에서 부자가 아침저녁으로 샤워하는 모습이 뿌듯하다. 저러다 아빠들의 로망이라는 아들과 목욕탕 가서 등 밀어주는 것까지 할 수도 있겠다. 아들의 변화는 기쁘고 남편이 달라지는 모습은 흐뭇하다. 냉각기로 접어들 것 같았던 그 날의 일이 서로에게 성찰의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게시일2022-08-26

  •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사법처리할 것” 마치 흉악범 잡는다는 포스터라도 내건 것 같다. 선량한 시민들을 볼모로 투쟁한다며 절박하게 싸워야 하는 사람의 상황은 1도 모를 법한 여당 대표,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치기하면서 공정한 법 처리를 요구하던 그의 언사에 숱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져도 이 사회를 운영하는 권력은 그런 이들의 손을 들어준다. 김광호 신임 서울경찰청장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사회적 장치의 부재라는 선명한 현실보다는, 권력을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며 “전장연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사법처리하겠다”는 망언만 일삼고 있다. 전철 하나 타기 위해 숱한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고, 활동지원사가 없는 밤에 불 타 죽어야 하는, 장애인들에게 닥친 사건 사고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안타까운 사연일 뿐이다. 돈 따내기 위해 싸운다는 비아냥마저 손쉽게 들린다. 그러나 예산 없이 제도를 운영할 수 없고, 그 예산을 향한 파이 경쟁으로 먼저 내몰았던 건 정부다. 충분한 복지 예산보다 부자 감세에 초점이 맞춰진 윤석열 정부 하에서 장애인들의 권리는 아랑곳없다. 그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였으니 엄벌한다"는 기조만 있을 뿐.   경찰서부터 법 위반-엄벌의 대상은 누구인가?결국 전장연의 활동가 28명이 36개의 사건으로 입건돼 경찰 출석 요구를 받고있는 상황이다. 전장연은 경찰 조사에 친절히 응했으나 문제는 경찰서 내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안 돼 있단다. 세상에 이렇게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있는가. 장애인들을 이동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꼬집는데, 바로 그 구조적인 야만들을 본인들이 행하고 있다는 것. 이는 저들이 그렇게도 외쳐대는 법치에도 반하는 일이다.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동권, 장애계 일부의 의제가 아니고 모두의 의제전장연의 투쟁은 2022년 장애인권리예산 쟁취가 주 요구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는 투쟁이기 때문에 이동권 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권,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라는 보편적 권리, 이는 발달장애인들의 의제가 될 수 없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 대한항공에서 자폐인의 탑승을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나 논란 중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몇몇 개인의 경험만 들어봐도 비일비재하게 있어 온 것들이다. 내 경우에도, 아이와 휴가철에 놀러 간 곳에서 배를 타려고 할 때에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낯설고 변화된 환경에 큰 소리로 울자 내리라는 선장의 명령을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어떠했는가. 발달장애인은 마스크를 써야만 공공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사실 발달장애인의 이동권은 훨씬 더 열악한 수준인데, 명문화되어 있진 않아도 이동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부터 실생활에서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왔을 때, 쓰기 힘들고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의 조건 자체를 제기하면서 예외 규범을 만들기는 했으나 교통 수단 이용까지 확대되지는 못 했다. 발달장애인은 예외라는 안내 방송은 하지 않아서 마스크 쓰기 힘든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들은 아예 외출을 제한하거나 자차가 있는 경우에만 이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동 수단에 대한 접근권 자체가 제한되는 배경은 결국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은 공공의 위험을 자극한다는 논리에 있고, 이는 발달장애인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는 낙인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동 수단만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 자체에서 수용되지 못하는 결과를 번번이 낳아왔다. 사실 전장연 투쟁 초기에 일부의 시선들은 전장연이 신체 장애인 중심이라며 문제 제기도 있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전장연의 투쟁은 신체장애인 중심의 투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의제의 확장을 제기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그 의제들을 더욱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당사자나 가족, 연구자 활동가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발달장애인에게 이동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내부의 공론화, “발달장애인이 공공교통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인식과 규범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의식을 사회에 던지고, 그에 기초한 캠페인들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저항과 투쟁이라는 행동들을 통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의 의제가 협소하다는 제기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요구의 연결점들을 찾고, 확장시켜내고 함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방안들을 고안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지구 끝까지 쫓아와 범죄를 묻겠다는 경찰청장에 맞서 지구 끝까지 찾아가 우리의 권리를 찾겠다는 각오를 보인 전장연,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일하며 살 권리, 존재 자체를 존중받을 권리를 위해 수많은 장애인 동지들과 활동가들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가열 차게 싸우고 있다. 현재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겐 징역 6개월의 구형이 내려진 상태다. 자신의 버스 탑승을 거부하는 버스 기사에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외치며 15분간 출발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마저 구조적으로 침해당해온 현실은 비단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만 향해 있지 않다. 나를 거부하는 공간, 내가 이용할 수 없는 공공시설, 발달장애인들도 억울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의 과거를 복기해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누군가는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한가롭게 배나 타며 여행이나 다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화를 내며 내리라고 말한 선장에게 몇 마디 던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여행할 권리가 있고 즐길 권리가 있다고”. 물론 박 대표 만큼의 일장 연설에는 자신이 없지만.    

    게시일2022-08-04

  • 코로나 상황에도 2학년이 되었었어요 1학년 겨울 방학 2주 전 온유의 옆 반에서는 독감으로 반 이상 결석이 있었다. 감염 속도가 빨라서 속수무책이었지만 온유반은 5명의 친구만 독감이어서 다행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학년들에서도 감염이 계속되다 보니 조기 방학을 하느냐 마느냐로 어수선한 가운데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그런 와중 겨울 방학이 되었고 방학 동안 2학년 준비하며 지내는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이 시작되었고 모든 일상은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학교에서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학사 운영에 대한 변화가 시작되었고 온라인 수업과 탄력적 대면 수업이라는 새로운 매뉴얼의 학교 운영이 시작되면서 온유는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많았지만 서로 마스크를 쓰고 가림막을 하며 거리 두기가 되다 보니 친구들을 알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변화된 부분이 친구들과 선생님을 3인칭의 시점으로 관찰하는 아이로 변화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있어도 학교 운영은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중에 통합반(특수반)에서의 수업에 대한 여부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담임선생님께 온유의 학습과 사회성에 대해서 여쭤보았더니 코로나로 인해 온유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 한 달을 지낸 뒤 협의를 하기로 했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온유는 학교 가는 날을 아주 즐거워했고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며 학교생활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ex) OO는 무엇을 했고 OO는 어떤 말을 했고 OO는 어떤 행동을 했어. 한 달 뒤 온유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졌고 일반 학급에서만 수업하기로 했다. 일반 아이들과 하루종일 수업을 하는 게 온유에게는 좋은 부분도 많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엄마의 마음은 혹시나 아이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그런데 규정상 통합반에서 수업하지 않고 일반학급에서만 수업하게 되면 학급 재배치가 되어야 하고 통합반에서의 학적 처리는 없게 된다는 것을 학년이 마무리되고 새 학년이 될 때 알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온유는 공부도 잘 따라갔고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냈고 엄마와의 독립도 조금씩 되어 2학년을 다녔다. 1학년 때 가졌던 긴장했던 마음이 2학년이 되면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학년이 마무리되어 아쉬웠지만, 3학년을 조금 더 기대하게 되었다.​

    게시일2022-08-02

  • 인기 드라마에 아는 여성이 나왔다. 캐리커쳐 작가 은혜씨였다.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로 출연한 그녀의 연기에 많은 이들이 칭찬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듯 했다. 작가 노희경이 은혜씨를 잘 이해하고 대사를 암기해서 연기하도록 했다기보다 은혜씨의 일상을 관찰하여 평소의 말투와 행동을 드라마에 녹인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발달장애인은 꾸밈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에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은혜씨의 드라마 출연은 대역이 아닌 당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장애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짚어 보자면, 은혜씨와 한지민이 김우빈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옆 테이블의 아이가 은혜씨를 자꾸 바라보며 놀리자 한지민이 꼬마의 부모에게 아이를 말려달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장애인을 놀리면 안된다’고 말한다. 장애인 앞에서 계속 장애인 언급하는 게 유쾌할 리 없다. 아이의 아빠가 밥맛 떨어진다며 화를 내고 그로 인해 양쪽 테이블 모두가 기분이 상해 있다. 엄마의 꾸지람에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던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화장실 다녀오던 은혜씨를 보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은혜씨는 아이에게 어른을, 장애인을 놀리면 안 되는 거라 말하며 넘어진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아이가 은혜씨의 손을 잡지 않고 도망가는 장면을 생각했던 나는 울컥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훈훈함을 보여주는데 현실은 그렇게 금방 바뀌지 않는 걸 잘 아는 터라 그 장면이 뭉클했다. 나는 과거 아들과의 외식을 떠올렸다. 아들은 밥이 조금 늦게 나오거나 더 먹겠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이 울음이나 큰 소리로 나타나 주위의 시선을 모으곤 했다. 누구 하나 드라마처럼 대놓고 불쾌감을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우리 가족 모두가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으니 어서 나가라는 신호로 느껴졌다. 그게 싫어서 외식을 한동안 접었지만 성인이 된 아들은 이제 티 내지 않고 외식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눈총은 따갑다. 덩치가 크고 혼자 웃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가 아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기도 하고 온 몸으로 감싸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도 뭐라고 대꾸할 말은 없다. 그저 속으로 ‘잡아먹지 않아요’를 말하며 쓴 미소를 짓는 수밖에... 그 마저도 지금은 그러려니가 되어 버렸다.   드라마 장면처럼 사람들이 티 나게 그러지 않고 은근히 불쾌감을 표출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녀가 휠체어를 타거나 다운증후군일 경우는 아직도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며 혀를 차고 안됐다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본단다.내가 당한 것과 다른 방법으로 여전히 사람들은 다름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으로 외출의 불편함을 겪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인기 드라마의 은혜씨 출연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니 그녀의 출연은 세상을 바꾸는 커다란 변화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한지민을 통해 비장애자녀의 존재도 알려 주었다. 장애형제로 인한 비장애형제의 마음앓이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눈물을 쏟았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함이 있었음에도 은혜씨가 그곳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 그려지지 않고 시설로 돌아가는 점은 아쉬웠다. 탈시설을 주장하지만 한켠에선 여전히 시설을 옹호하는 현실이 드라마에서도 그려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은혜씨의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는 ‘니얼굴’은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은혜씨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 먼저 사진을 찍고 특징을 잘 찾아 쓱쓱 그리는 은혜씨의 도톰한 손이 보배스럽다. 다른 셀러들과의 자연스런 교류는 우리가 바라는 통합사회의 모습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은혜씨도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우리 아들도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자식의 인간다운 기본 삶을 보장해 달라고 단식이며 삭발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성숙한 사회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세상의 모든 은혜씨와 가족들이 차별과 배제의 늪을 벗어나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는 날을 위해 부모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게시일2022-07-27

  • 2019년 3월 8세의 나이로 온유는 일반 초등 학교에 입학을 했다. 처음 초등학교를 선정하기 전 집 주변의 일반 학교 4곳과 특수학교 정한 뒤 우선 전화 상담을 하고 온유와 직접 방문상담을 했다. 5곳 중 한 곳은 아동수가 작아 교육실무원이 없다고 하셔서 지체 장애 아동은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셨고 또 다른 두 곳은 특수학급이 두 학급이지만 학생 수가 많아서 지체 장애 아동이더라도 교육 실무원의 도움을 많이 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특수학교를 권유하셨다. 일반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하도록 교육청에서는 제도적 마련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고 준비가 안되어 있는 선생님들도 계셔서 엄마인 제가 먼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두 곳 특수학교와 일반학교에 상담을 드렸더니 특수학교에서는 온유의 인지 발달을 들으시곤 일반학교를 권유하셔서 마지막 남은 학교에 문의를 드리게 되었다. 그 학교에서는 온유를 직접 보기를 원하셔서 함께 방문상담을 했다. 이곳은 학교 주변 주거지역이 재정비되면서 학생 유입수로 인해 근방의 다른 부지에 학교를 새롭게 짓고 있었다. 새 학교이다보니 교실이나 복도, 엘리베이터 시설, 장애인 화장실 등 물리적 환경은 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상담 당시 특수교육대상자가 많지 않은 장점들이 있었다. 우선 배치 대상이라서 1순위에 적고 배치가 되기를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선정이 되었고 그때부터 학교를 가기 위한 준비를 조금씩 시작했다. 학교내에서의 이동과 공부를 할 수 있는 틸팅체어와 랩보드를 책상 크기에 맞춰 준비를 했다. 그 다음은 학습을 위한 준비로 자음, 모음부터 시작하여 한글을 읽고 쓰며 국어를 익혔고 1,2,3,4.....를 시작하여 가르기, 모으기, 한자리 수 연산을 하면서 수학 공부를 했다. 입학 전 온유는 병설유치원 통합반에 다녀서 개별화 교육도 가능했지만 통합반 아이들의 장애 유형과 수준이 모두 다르다 보니 개별화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에서 학습에 대한 도움과 보충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생각하고 여러 가지 쓰기 도구, 그리기 도구를 사용하여 글씨도 쓰고 그리기도 해보았고 숟가락, 포크를 사용하여 스스로 밥 먹기도 연습하며 학교에 입학을 했다. 유치원에서 3년 동안 통합수업을 경험했고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또래와는 잘 지낼 수 있었지만 학습은 또래들의 선행학습으로 인한 학습격차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언어 발달이나 인지 발달은 또래 수준이었지만 조금씩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학습에 대한 부담을 스스로 느꼈고 수행속도에서도 늦은 온유는 속상해하거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1학기를 보내고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온유와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를 나누고 학습적인 부분도 온유와 고민을 하며 방학을 보냈더니 2학기가 되어서 담임 선생님이 “온유한테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많이 자라서 왔어요”라고 이야기 하셨고 학교 생활을 1학기와는 다른 마음으로 조금은 편안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다.(온유는 통합학급에서 수업을 하지 않고 일반 학급에서만 수업을 함) 친구들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공부도 잘 따라가며 1학년을 마무리했다. 1학년을 마무리 하기 전 겨울 방학 때 온유는 2학년 공부를 스스로 했고 알고자 하는 의지와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많아져서 2학년을 준비하는 온유로 성장하였다. 1년 동안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겪으면서 온유도 엄마인 나도 많은 성장이 있었다. 2학년이 기대된다는 온유로 인해 엄마와 온유는 “화이팅”을 외치며 1학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게시일2022-07-19

  • 꼭 배우려고 했는데 배우지 못했던 것이 있다. 수영, 숨을 꼭 참고 물 속에 들어가는 일이 여간 생경한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깊은 물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에 물 속에 얼굴을 담그는 게 전혀 안 됐었다. 물 밖에서와 비교했을 때 현격히 달라지는 몸짓, 눈코입귀 모든 곳을 열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 공황장애라는 게 이런 걸까 싶기도 했다. 호흡을 배우면, 물 속에서의 몸 동작을 익혀 가면 그만큼 상쾌한 느낌을 주는 운동도 없거늘, 두려움을 안고 수영장으로 향한지 몇 달째지만 아직도 나는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근원적 공포감 같은 게 맴돈다. 숨 쉬고 내뱉는 건 기본인 건데, 이 기본조차도 힘들어하는 일종의 자기 열등감, 이게 수영을 배우는 데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사는 어린이가 세상에 대해 갖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증의 지적장애라는 진단,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수단들이 발달되지 않은 것, 무엇이든 ‘기본’으로 불리어왔던 것들이 하기 어려운 것이 되는 것. 10년을 함께 살았지만 아이가 행하는 반응들의 한켠에는 늘 당혹스러움이 있다. 고도로 발달된 인간들의 사회에서‘만’ 살아왔던 나는 마치 깊은 물 속에서 아이를 끌고 가는 사람처럼 무력해져 있었다. 나는 ‘장애’ 하면 이동권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동권도 4월 20일 같은 어떤 날들만 기념해 외쳐지는 것, 내가 일상에서 겪는 것은 아니니까. 장애는 불편이라는 키워드로 고정돼 있었고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니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 정도 이상의 간절함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발달한다고 하는데, 그 발달에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양육하며 살아가는 일은 일시적 경험들을 넘어 평생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책에서 배운 어떤 논리적 정합성에 있지 않은, 내가 내 삶에서 겪고 부딪히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억압이고 이를 바꿔나가야 할 책무가 꽤 무겁게 생긴 셈이다. 장애가 사회가 만드는 장벽이라면 장애라 규정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장애를 부딪히고 겪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이 ‘장애’로 환원되는 것, 나 역시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두고 매번 고민하며 살아간다. 언젠가부터 발달장애인을 다루는 대중 매체들의 서사는 보지 않게 되는데, 어차피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는 잘 묘사해봤자 인간의 단면만 보여줄 수 있을 뿐, 발달장애의 낯설거나 비규범적인 모습들을 특징 삼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한 매체들은 사실 어떻게 그릴지가 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오는 장애인들은 단 하나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걸치고 있다. 어쩌다 한번씩 그려지는 자폐 장애인들도 어떤 면에서는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고발하는 측면에서는 꽤 긍정적인 코멘트들이 오고 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장애와 능력을 구분하여 드라마가 우영우의 장애보다 능력을 더 보여주고 있어 뛰어나다고 일갈한 어떤 법조인의 드라마 비평에서는 멈칫하게 된다. 대체 장애와 능력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아이의 장애를 알고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이 장차현실 씨의 그림책이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은혜 씨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하여, 차별을 인지하지만 담담하게 그리고 재치 있게 그려지는 일상들, 나도 아이에게 저런 그림을 그려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했었다. 어느덧 화가로 성장한 은혜 씨가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와서 그리는 얼굴들을 보고, 참 저 능력도 타고나나보다 싶더라. 장애도, 능력도 다 타고나는 것이라면 대체 어느 지점에서 분리가 될까. 장애인이 그린 그림이라 특별한 것인가? 장애인이 변호사라 특별한 것인가? 사람이 가진 특성들에 위계를 두었다면, 대체 그 위계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도, 어떤 자료들을 보고 해석하고 공부해서 그런 것들을 토대로 누군가를 대변하는 ‘상당히 복합적으로 보이는’ 능력도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특성 중 하나다. 내게는 사실 다운증후군이나 자폐 장애를 가진 이들도 고유의 능력들이 많이 보인다. 다운증후군은 모습이 다르다. 자폐 성향 장애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들 중 어떤 것들은 상당히 뛰어나다. 이것이 ‘장애’라 불려왔던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다른 모습들과 어떻게 다른가. 같은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여러 모습들일 뿐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능력을 중심에 둔 이 사회는 둘 사이에 위계를 둔다. 장애와 구분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져야 하기에, 그래야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이라는 서사에 더 부합하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하려는 정상성에 균열을 내는 듯 하지만, 다시금 그 정상성은 더 공고해진다. 장애는 대단한 결점으로 이와 대조되는 능력은 엄청난 장점으로, 양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인간성을 정의하는 데에 늘 장애는 그런 식이었다. 운동 영역에 진출한 발달장애인들 중에 특히 수영선수들이 많다고 들었다. 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곳에서 어떻게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능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규범에 젖은 우리들은 장애를 사고할 때 늘 ‘불가능성’에 부딪힌다. 숨 쉴 수 없는 물 속에서 모든 저항을 뚫고 나가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외려 적응했을 때 그 공간들을 더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장애를 사고할 때에도 그런 발상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존재의 차이가 별다른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을 크게 만드는 어떤 기제들이 있을 뿐이라는 것. 때로 장애는 사회의 요구에 조응하기도 한다는 것 말이다. 사람들과 규범에 따라 소통하기 힘들고, 자극의 강도를 다르게 느끼고,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상성들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다를’뿐이라는 인식, 이러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데에는 생각의 전환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다르게 살아나갈 수 있는 나름의 방식, 방안, 대책들을 강구하는 건 몸으로 부딪혀서 오는 경험이다. 뼈아프다. 현현한 고통들을 동반한다. 그러한 고통들을 함께 견뎌내는 것 또한 사회의 몫이라는 것, 극도의 배제 속에서 차별받아 온 집단들에게, 결국 그 차별들을 일소해나갈 수 있는 힘도 사회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내게 우연히 온 아이의 장애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한 편으로 사회를 주체적으로 해석해내는, 다르게 보고 다른 대안들을 강구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장애가 단지 치명적인 약점이나 결점만이 아니라 그러한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게시일2022-07-14

  • 얼마 전 방영되었던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 난다.영옥과 해녀 삼촌의 대화 중 “내 손지도 좀 경해, 다들 말을 안해 그렇지 너영 나영 마냥 아니고 그런 집 서너 집 걸러 하나라 그 별거 아니라” 라는 대화가 나온다. 영옥의 동생이 다운중후군이라는 장애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제 아이(온유)를 키우면서 매번 경험했던 상황이라 많은 공감을 하면 보게 되었다.  지금 현재 11살 남자아이이고 지체 장애인이다. 현재 일반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고 일반학급으로 배치되어 생활하고 있다.태어날 때 뇌손상이나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만삭아로 정상분만을 했다. 6개월까지 정상 발달을 했지만 이후부터 발달이 더디고 18개월까지 보행이 되지 않아서 발달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발달지연으로 재활 치료를 시작했고 치료를 하면서도 변화가 발달지연보다는 “장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9개월부터 “재활”이라는 치료를 시작하면서 생활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알지 못했던 부분들은 검색도 하고 상담도 하며 치료실 학부모님들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19개월부터 시작한 재활치료는 다른 아이들이 시작한 것에 비해서 늦은 부분이 있다고 느껴 매일 2~3개의 치료실을 다니면서 영아기의 시기를 보냈다.그러다 24개월부터 시작한 언어치료가 1년 6개월만에 정상 범주 안에 들어왔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가정순회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청에 특수교육대상자로 신청을 하고 검사와 면담을 통해 선정이 되어 순회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아이가 어리고 언어로 전달이 잘 되지 않아서 제 아이지만 어느 정도의 인지 수준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순회 선생님이 처음 평가를 하신 뒤 이야기를 나누는데 생각보다 제 아이는 인지도 괜찮았고 집중을 잘하는 아이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후 바로 순회교육을 주 2회 2시간씩 수업을 했는데 그동안 치료실만 다니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만지면서 오감 자극을 많이 하다 보니 아이가 많이 즐거워했고 선생님과 헤어지면서 울기까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재활치료실을 다니던 스케쥴을 모두 수정하고 아이에게도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재활치료도 병행했다.영아기를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지내다 보니 또래와의 사회성과 상호작용도 부족한 것 같아서 고민을 하던 때 순회교육 선생님이 5세가 되면 병설유치원 통합반(특수반)으로 입학을 권유하셔서 주변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알아보고 지원하여 다니게 될 수 있었다. 첫 사회 생활이었고 엄마와 처음 떨어지는 시간이어서 걱정도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이는 잘 적응하였고 또래와의 어울림으로 인해 래와의 상호작용, 외부환경 자극, 선생님의 언어 자극, 다양한 활동으로 신체를 제외한 다른 부분들은 많이 발달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거나 의견을 나누는 부분,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부분들이 발달 되면서 재활치료에서도 더디게만 가던 시간들이 조금씩 달라졌다.영아기때는 치료에 집중을 했지만 유아기부터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치료의 양보다 질에 좀 더 집중을 했더니 움직임도 많아지고 다양하게 움직이는 아이로 변화되었다.하지만 선생님들이 장애에 유형은 알고 계셨지만 유형별 특징과 아이들의 개별화 교육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아이가 유아기를 지나 학령전기에 들어가면서 경험해야 할 부분도 해나가야 할 부분이 유치원에서 채워지지 않은 것은 가정에서 채워나가면서 3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면서 많이 낙담하고 방법을 몰라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주 양육자가 아이의 발달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했고 시기에 맞게 적절한 치료와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어려움도 많이 있지만 하나씩 상황에 맞게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 

    게시일2022-06-23

  •     제목부터 희망적이다. 안 된다고 미리 포기하고 나는 못한다, 내 아이는 할 수 없다 손사래 치며 지나온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통합학급반에 있었던 아들을 생각하며 읽었다. 교실엄마에 복도엄마를 거쳐 운동장엄마에서 집엄마가 되기까지 매우 험난했던 초등 2년 반의 세월. 십 수 년이 지나고 보니 마음의 동요는 없다.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 담임에 대한 서러움보다 장애가 무슨 죄인양 교사 앞에서 늘 전전긍긍하고 쪼그라들었던 내 자신의 부족함만 여전히 안타까울 뿐. 해맑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아직도 선하다. 자신들의 도움으로 하진이가 오늘은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다며 신나게 얘기해 주던 예쁜 모습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초저학년까지 좀 길게는 초등6년을 통합학교에 다니다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많이 했다. 전쟁 같았던 초등 시절보다는 좀 나은 중학교 통합은 그럼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그 어려움을 학생들과 교사들이 힘을 모아 줄여 나가는 과정이 저자 이수현의 책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속에 보물처럼 담겨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두 남매의 엄마 이수현은 중학교 영어교사다. 그녀의 SNS에는 웃음과 눈물과 감동이 있다. 교사로서의 완벽함이 돋보이지만 엄마로서의 힘듦을 넋두리 하듯 쏟아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하며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 이수현은 자녀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삶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 같다. 어쩌면 자녀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진정한 통합의 의미를 모른 체 영민한 영어교사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배움의 나눔을 실천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니 그녀로선 힘든 삶이 우리로선 고마운 일이 되었다.  1부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에는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해 학생들이 학급회의를 하면서 그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 있다.등교를 힘들어 하는 민주를 돕기 위해 반 친구들이 함께 등교하는 방법으로 성공하는걸 보면서 나는 울컥했다. 비록 어른들의 이기심과 그것을 인정하는 교감의 만류로 중도에 접었지만 이런 종류의 통합 방법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영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직접 교재를 만들어 제공하는 모습은 교사 이상의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란 걸 느끼게 했다. 쉽지 않은 걸 참 쉽게 접근하는 선생님의 교직 생활에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김민진은 중학교 특수학급에 근무하는 특수교사다. 특수학교와 달리 일반학교의 특수교사는 설 자리가 없다고 한다. 부모와 원반학급의 담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그 어려움이 매우 크다고 들었다. 2부 "이게 뭐 별거라고요!"에는 김민진선생님이 특수학급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통합의 방식들이 제시되어 있다. 동아리 모임으로 모자뜨기, 텃밭가꾸기 등을 통해 특수교육 대상자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도록 지도한다. "장애이해교육"보다 "다양성 존중교육"이란 명칭으로 활동하는 선생님의 노력이 눈부시게 감사하다. 학급회의를 통한 규칙 정하기, 버츄 프로젝트(미덕 발견하기) 등의 구체적인 방법들은 가정교육으로도 훌륭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10여 년 전 중고등학교에서 ‘장애인식전환교육’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강의를 하던 때가 있었다. 똘똘한 장애학생이 수업 후 한 시간 내내 ‘장애’라는 단어만 허공에 떠다니는 그런 수업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충격 받았다. 그 후로 장애보다는 다름과 차이를 강조하며 수업 내용을 바꾸었더니 학생들의 소감문이 많이 달랐다. 이런 내용도 김민진선생님의 글 2부, ‘장애를 더 도드라지게 하는 장애이해 교육’편에 잘 담겨져 있어 반가웠다.   이 책이 교사들의 필독서로 선정되면 좋겠다. 교사 연수 때 교재로 활용하면 좋겠다. 학부모라면 이 책을 통해 자녀가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 담임이나 교과 선생님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자녀를 이끌어 주면 좋을 지 생각하고 의논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두 분의 선생님과 같은 교사가 많아진다면 물리적 통합이 아닌 진정한 통합의 의미가 잘 정착될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다.    “안 해봐서 두렵다, 해 보지 않아서 어렵다는 생각 대신 해 보자. 해 보고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으로 해 보는 걸 멈추지 말자.” 이 책이 말하는 요지다.현장에서 학생들과 오늘도 머리 맞대고 좋은 통합 환경을 만들고자 애쓰는 두 분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 

    게시일2022-06-20

  •  “어머니, 하진씨 오늘 결석하나요? 평소 9시 40분 전후에 들어오는데 아직 안 왔어요.”   10시 1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여의도에 일이 있어 나왔고 남편이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심각한줄 모르는 남편이 전화를 받으며 장난스럽게 ‘왜 그려?’하는 말투에 아들이 센터에 갔다는 확신이 섰다.   “하진이 몇 시에 데려다 줬어? 아직 안 왔다고 연락 왔는데...”   “9시 반에 1층에 내려주고 건물 안으로 드가는 거 보고 나는 천안 가는 길인데?”   선생님께 전화해서 1층 로비에 가봐 달랬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 1층에 계셔서 같이 올라왔어요. 밖으로 안 나가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들은 30여분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뛰기도 하고 에어컨 아래서 바람 쐬며 서 있기도 하고 그랬단다.    가족대화방에서 오늘의 작은 해프닝에 대해 말했다. 나는 1층 안내대에 직원이 있는데 오랜 시간 혼자 있는 청년에게 왜 말 한마디 안 붙였을까 그것이 아쉽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멀쩡해 보였나 보지 뭐. 소리라도 지르고 뭔가 이상한 행동 했으면 누구라도 도움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누굴 기다리나 보다 하고 그냥 보고만 있었나 보네. 우리 동생 멋지다!”  평소 동생 행동에 대해 냉정한 딸의 반응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추측컨대 혼자 로비에서 뛰어다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가 어디? 계단이 안보이네’ 하면서 한쪽 귀퉁이에 서서 누군가 오길 기다린 것 같다.양쪽 출입문은 보이지만 계단실은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구조라 방향 감각을 잃고 멍한 상태이지 않았을까 싶다.    3년 전 다른 센터에 다닐 때 외부로 나가서 식겁한 적이 있었다. 건물 입구에 내려 주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는 도중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반대편 도로변에서 낯익은 청년의 실루엣이 보였다. 두 팔을 들고 흔들며 제자리 뛰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작은 눈이 저절로 커지며 다시 보니 아들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 유턴을 하고 올라 올 때까지 자신의 행동에 심취해 엄마 차가 옆에 서도 아랑 곳 하지 않았다. 창문을 내려서 아들을 불렀다. 화들짝 놀라며 ‘아니, 엄마 가는 걸 분명히 봤는데!’하는 표정이 내가 아들을 발견했을 때와 완전 똑같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 있다 갈 거야? 그럼 지각인데 그만 들어가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센터를 향해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했다면 아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그 후로도 몇 번 건물 주위를 배회하다가 내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가슴 쓸어내리는 일까지는 가지 않았다.   코로나로 센터를 띄엄띄엄 다니다가 올해 주5일 다니게 되었다. 3년여 동안 아들은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 바로 계단으로 4층까지 혼자 올라갔다. 딱 한 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려 서성대는 걸 지나던 선생님이 4층으로 보내 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해프닝은 근 4년 만에 생긴 일이었다. 평소 엄마가 내려 주는 곳은 지하 주차장인데 아빠가 내려 준 1층 로비는 볼 것이 많았나 보다. 카페, 테라스, 휴게실, 물품판매대 등 볼거리가 제법 많으니 아들은 일탈을 꿈꿨던 걸까? 30여분 동안 아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신났을까?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디로 갈지 몰라 불안했을까?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아들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순 없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 보니 건물 밖으로 나기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아들과 잠실 전철역에서 지나가는 할머니 짐을 들어 주느라 앞서가던 아들을 놓쳐 2시간 넘게 헤맨 일이 떠올랐다. 지하상가에서 아들 혼자 서성대니까 상점 주인이 관리실에 연락하여 경비아저씨가 노숙자인 줄 알고 외부로 쫓아냈던 일, 아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 어두운 잠실 사거리를 헤매다 경찰들이 발견했던 그 악몽 같았던 날. 나중에 아들이 남들 눈에 노숙인과 장애인 중 어떻게 보인 게 더 나은 걸까 농담하며 웃었던 그 날.    한강 둔치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다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맸던 일도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이제는 아들과의 숨바꼭질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멀리 가지 않고 주위에 머물러 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감사함마저 들었다. 아들도 밖으로 나가봤자 엄마 만나는 일이 길어만 지고 불안한 마음이 생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의 간섭과 통제 없이 혼자 세상을 돌아본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들이 겁먹지 않고 알아 가면 좋겠다. 함께 살면서 따로 사는 즐거움이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들의 미래이길 바란다.    아들아, 네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아도 돼! 

    게시일2022-05-31

  • 망언으로 시작한 봄   2022년 4월 투쟁은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코로나19의 끄트머리에, 지난 정권의 끄트머리에, 새 정권을 기대 없이 바라봐야 하는 출발지에서, 장애투쟁을 시민을 볼모로 한 비문명적 행동이라고 하는, 장애해방투쟁사에 길이 남을 망언을 뱉은 무모하고 무례한 젊은 당대표의 이름을 함께 기억하면서 말이다.   해마다 4월은, 세상을 향한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외침과 드러내기의 한바탕 운동판이 펼쳐지는 때였으나, 올해는 유난스레 혼탁하고 힘겹다. 우리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4월19일 거룩한 투쟁의 날에 발달장애인 가족과 당사자, 활동가, 지원인 등 556명이 삭발을 하고 투쟁결의대회를 했다.   삭발이 별거냐, 머리카락이야 곧 자란다고 하지만 그건 삭발의 부담을 떨치려고 애써 하는 말이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민머리가 되는 것은 몇 달 동안의 낯선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편치 않은 일이다. 더구나 엄마들의 삭발은 더 큰 용기와 결기가 필요한 일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은 물론이고,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도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도 엄마의 삭발이 주는 마음의 부담은 상당히 무겁다. 소리로 들리지 않아도 수시로 도처에서 주먹 쥐고 ‘투쟁!’을 외치는 셈이다. 때문에 누군가 삭발을 했다면, 더구나 엄마들이 삭발을 했다면 그 마음에 대해 누구나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른 소리가 섞여들려 왔다. 물론 예전에도 못마땅해 하는 소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보수정권 탄생에 따른 우려의 마음이 있다 보니 더욱 예민하게 들렸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뭔가 기세등등한 다른 소리가 크게 들린 것은 사실이다. 556명이 삭발을 하고 인수위 근처로 행진을 시작했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리의 행렬을 향해 멈춰서있던 차량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누군가를 향해 응원과 지지의 뜻으로 경적을 울려주는 몇몇 남의 나라 매너가 그새 수입됐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그렇다면 그건 일종의 짜증, 욕설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어쩌다 경적을 울리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저 한 둘, 성질 급한(이라고 쓰고 ‘성질 더러운’이라고 읽는다) 이에 그쳤었는데, 이번에는 마치 빵빠레를 울리듯이 여럿이 신경질적으로 눌러댔다. “당신들 사정은 됐고! 왜 무고한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는가!” 이런 소리였을 게다.   556명의 삭발식 사진이 실린 언론보도에 달린 댓글도 마찬가지. 응원하는 글도 있었지만, 대충 흘깃 봐도 대놓고 하는 욕설이 주르르 달렸다. 하기야 댓글이 무슨 의미가 있어 억장 무너지자고 일부러 찾아가며 볼 일인가. 다만 이번에는 무슨 말들을 하나 어디 좀 보자 하는 심정으로 훑어봤는데, 역시나 흡입과 배설강이 한몸인 동물들의 토출을 보는 듯 했다. 삭발한다고 다 들어주나, 왜 국가가 발달장애인들을 24시간 책임져야 하나, 당신들만 힘들게 사나, 국가에 도움이 안 되면 조용히 입 닫고 살아라, 발달장애가 벼슬이냐, 24시간 놀고먹겠단다......   신음을 한다는 건 들어달라는 뜻이다. 사람뿐 아니라 세상 모든 숨 붙은 생명은 다 그렇다. 소리를 못 내는 생명은 몸부림을 쳐서 신음을 한다. 누군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생명은 신음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못 듣는 신음은, 누군가는 들어야겠기에 신이 듣고 관세음보살이 듣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고통의 신음을 듣는 것은 전지구적 생명의 기본 매너다. 남이 신음하는데, 그걸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입으로 배설하는 놀이를 신이 나서 할 일인가.   그러던 차에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 차린 전장연의 농성장 컨테이너 앞을 다른 컨테이너 두 개가 가로막고 설치되는 일이 있었다. 한 개는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이름으로 ‘장애인인식개선에 먹칠을 한 전장연은 과연 누구를 위한 단체인가. 각성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또다른 한 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름으로 ‘계영배 하우스’(차면 넘치는 잔이라는 한자 작명의 치졸 유치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장애인단체가 스스로 나서서 장애투쟁을 폄훼하고 가로막는 참담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염치없는 훼방은, 세월호 때 피자치킨잔치 이후로 처음 봤다.   이준석 효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556명 삭발식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 근처 지하철 경복궁역 지하에 천막을 치고 윤종술대표와 수도권 지부장 등 4인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인수위의 면담과, 발달장애인 정책을 국정과제에 넣을 것을 요구하면서 매일 오전에 결의대회를 함께하고 있다.(이 글을 쓰는 5월1일까지도 단식은 열흘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하철 역사에 자리잡은 농성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무심하다. 더러는 주장이 적힌 피켓을 슬쩍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뭐라 중얼거리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거나, 대놓고 욕을 하며 지나는 이들 또한 있다. 그런데 그들의 욕지거리에서 뭔가 당당함이 읽힐 때가 많다.   이걸 이준석 효과라고 한다면 왜 그러냐고, 정확한 근거자료, 통계가 있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상당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에게 불편을 주는 투쟁에 대해서는 불평을 해도, 욕을 해도 괜찮으니 마음껏 욕하시라, 라고 분명히 부추겼으니까. 그리고 대체로 투쟁은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호소하는 것이니, 결국 그는 모든 투쟁에 대해 욕해도 된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예전에는 불평하기는 해도 대체로는 참아주는 게 매너인 줄은 알고들 있었다. 그런데 한창 젊은 사람이, 그것도 외국의 유수한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이 대놓고 비문명적 방식이라고 지적질을 해대니, 이제는 마음놓고 염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니, 아예 장애인, 사회적 약자의 고달픈 투쟁을 참아주는 예의염치 따위는 애초부터 없는 거다.   그걸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 즉 협조적인 편과 비협조적인 편을 갈라서 협조적인 편으로 하여금 비협조적인 편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고약한 방식의 길들이기로 투쟁성을 왜곡시키고, 사회적 공감을 약화시키는 야비한 공작. 가장 저열한 공작을, 정당 대표가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가 대표로 있는 당의 구성원들은 그것을 굳이 막지 않는다. 몰염치는 승리한 자들의 배짱인가보다.   무례하라고 선동한 죄, 2022년 봄, 그들의 죄가 작지 않다. 우리는 무례한 그들과 우뚝하게 맞서 나갈 터이다. 우리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좋은 사람들이고 싶으니.   2022. 5. 1. 

    게시일2022-05-06

  • 따로 사는 딸이 집에 와서 네 식구가 외식을 했다. 남한산성 입구에 새로 생긴 넓은 식당은 맨 안쪽 테이블 하나에만 손님이 있었다. 조용하니까 우린 좋지만 주인으로선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자릴 잡고 앉았다. 갈비를 구워 젓가락을 서로 부딪치며 맛있게 먹고 냉면을 나눠 먹으며 지금이 코로나 시대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이상하다, 목이 칼칼하고 아프네...” 남편의 한 마디에 긴장했다. ‘혹시...’하는 눈빛이 재빠르게 오고갔다. 한기가 든다며 무릎담요를 뒤집어쓰는 남편, 다행히 열은 없었다. 본인 집으로 간 딸에게 연락했더니 역시나 목이 좀 아프다고 했다. 다들 자가키트검사를 했지만 빨간 줄은 모두 하나였다. 하지만 모두의 몸은 양성임을 말하고 있었다.다음 날 남편은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동네 병원으로 갔는데 역시나 양성이 나왔다. 선별진료서에서 PCR까지 한 결과 확진자가 되었다. 나도 증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신속항원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었다. 음성이면 뭐하나, 목이 아프고 잔기침이 나는 등 증상이 딱 오미크론인데...   나도 확진자가 되었다. 딸도 확진자로 일주일간 휴가를 받았다. 아픈 딸아이가 혼자 뭐라도 챙겨 먹을까 생각할 겨를 없이 자폐성장애인 아들이 걱정되었다. 외부에 나가 검사 받기를 거부하여 자가키트로 할 수밖에 없는데 음성으로 나오고 별다른 증상도 없어 보이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 아빠가 집안에서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끼고는 밥도 혼자 먹게 하는 등 여태껏 보지 못했던 낯선 상황들로 아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한 표정이었다. 흔들리는 눈빛과 얼어붙은 손동작은 불안에 떨고 있는 작은 새였다.  ‘제발, 너는 감염되지 말아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나의 간절한 기도는 헛되지 않았다. 각자 다르게 나타나는 감염 증상으로 나는 계속 잠을 잤고 남편은 목을 컥컥거리며 힘들어 했다. 그런 속에서 아들은 점잖게 자기 방에서 책을 보거나 푸쉬팝(누르면 뽁뽁 소리나는 장난감)에 열중했다. 나와 다른 가족이 아픈 건 뒷전이고 증상 없는 아들에게 집중하며 혹시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는지 살폈다. 생각해 보니 처음 증상이 있던 그 즈음, 잠을 많이 자고 먹는 것이 시원찮은 이삼일동안 아들은 약하게 감염 증세를 보였던 것 같다. 어디가 아프다고 표현을 못하니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아들은 크게 나타나는 증상 없이 잘 넘기고 있음을 알아차리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자신의 상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애처롭고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많이 아프다.   목이 잠겨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딸과 통화할 때는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자가격리 중에 나갈 수도 없거니와 쏟아지는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잘 먹어야 된다고들 하지만 몸이 아프니 음식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배달해서 먹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떻게 살았는지 일주일이 지나갔다. 힘들어 하던 딸은 출근했다가 기침이 너무 심해서 다시 이틀을 더 쉬었다. 남편 역시 목이 아프긴 해도 거래처와 통화하며 생업에 매진했다. 아들도 평생교육센터에 나가고 없으니 고요한 집이 썰렁하기까지 했다. 창문을 열자마자 건물 벽에 부딪쳐 갈 곳 잃은 봄바람이 무리지어 들어왔다. 아직은 몸이 시원찮아 자꾸 눕고 싶은 마음이지만 사르르 내 몸을 감싸는 바람의 부드러움이 엄마 숨결 같았다.    남들은 지겹다고 말하던 집 안에서의 일주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어 시간을 의식하지 못해서 그런 탓도 있지만 아들이 점잖게 잘 있어준 덕분에 힘들지 않았다. 아들의 성장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상들을 불평하고 거부하는 것보다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는 당연한 이치를 확인한 시간이었다.인구 3명 중 1명이 감염된 세상이다. 3차까지 접종하면 역병을 밀어내는 힘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나마 더 힘들게 감염 상태를 보낸 게 아니었음을 위안삼아야 하는 것인가. 1차 감염은 그런대로 넘길 수 있지만 2차 감염은 거의 죽음이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표현언어 없는 아들이 걱정이다.    마스크를 제외하고 곧 일상이 다 풀린다고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웅크리고만 있을 순 없으니 조금 더 기운을 차려야겠다.  삼시 세 끼 밥하는 하루가 자유로운 외식으로 여유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요식업자와 자영업자들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은 세상, 봄꽃 보는 즐거움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오늘도 무사하길 간절히 바란다. 

    게시일2022-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