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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8_김종옥] 자랑질에 대하여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8-02 조회수1,859

1. 자랑질은 부끄럽다

 

자랑하는 일은 많이 부끄럽다. (안다, 이렇게 말하면, 나로부터 자랑질을 들어왔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쓰나미같은 반론, 태산같은 반증을 들이댈 사람들이 있는 것을. 하지만 뭐 어쨌든 자랑하는 일은 몹시 부끄럽다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래전부터 몸에 밴 정서인 것 같다. 또한 내가 나를 자랑하는 것을 부끄럽다는 말은, 남들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도 못마땅하다는 뜻이겠다.

생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내 머릿속 거울뉴런이 유난히 극성스러워서, 내가 나를 자랑할 때 남이 나를 부러워하거나, 속으로 욕하거나 할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으로(내가 그러하므로 남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므로), 이런 마음 속 병통이 생겼으리라.

자기의 장점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씩씩한 사람들을 보면 설핏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것이 더 건강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뭐 어쩌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뭔가 이런 정서적 태도가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고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것이라면, 자랑을 부끄러워하는 일을 자랑할 수도 있겠으나, 뭐 그렇게까지나~~.

 

어렸을 때(굉장히 오래 전 일이라는 뜻이다!) 학교에서는 온갖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정환경조사라든가 하는 게 있었다. 조사서에 자기 집의 사는 형편을 낱낱이 기록해 제출했는데, 이도 모자라 선생님을 이것들을 통계까지 냈었다. 일일이 조사서를 들춰가며 통계 내기 귀찮았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 항목씩 불러가며 손을 들라 했다.

- 집이 자기 집인 사람 손들어봐.

(집이 우리집이지 우리 집이 아닌 것도 있어요?)

- 집주인이 엄마아빠가 아니고 다른 사람인 사람 손들어봐.

(, 그렇군요~)

-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손들어봐.

(으쓱~)

- 집에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봐.

(우와)

- 집에 라디오 있는 사람, 아니 라디오 없는 사람 손들어봐.

(!)

-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손들어봐.

(......)

 

모두 비슷비슷하게 가난했던 우리들은 손도 비슷비슷하게 들었고, 간혹 ‘~ 없는 사람 손들어봐가 나올 때마다 유난히 주눅들어 하는 아이들 속에 자기가 포함될까봐 조마조마 했었다. 그러다보면 꼭 ‘~있는 사람에 계속 손을 들고 있으려니까 팔이 아프다며 투정을 부리는 것들이 생긴다. 그것들의 자랑질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 부잣집 아이야, 너희들은 이런 거 없지? 그러니 나를 무한히 부러워하고, 너희의 가난을 부끄러워하렴.

.... 걔들의 도시락 반찬을 절대 힐긋거리지 않는다. 알록달록하고 폭신해서 절대 연필심이 부러지지 않는 걔들의 필통을 절대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절대 부럽지만 티를 내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절대 부자가 되어도 자랑하지 않겠다.

 

2. 칭찬과 자랑 사이 마음의 가시

 

이후로 티를 낼만큼 부자가 되지 못했으니, 절대 부자를 자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매우 쉽게 지켜졌다. 대신 그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풀긴 했다. 잘 달린다, 더 높이 뛴다, 아이들을 웃기게 해준다, 더 많이 읽었다...... 내가 자랑질하지 않고도 남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가장 윗길의 전략이었을 게다. 칭찬은 듣되 부러움(시기, 질투 포함)의 대상이 되지는 말자.

 

그런데 차츰 느끼는 것은,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인정욕구라는 것 역시 자랑질과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류의 괴물이지 않은가. 하는 사실이다. 내가 뭔가를 공들여 하거나 우연히 잘 하게 된 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못할까 안달이 나서 드러내고 과시하려 한다면, 그것이 자랑질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족이 아닌 타인에 대해 부러움 없는 칭찬이 가능할까. 나도 힘든데, 남들에게 부러움 없는 칭찬을 듣겠다는 욕심이 가당키나 한 걸까.

 

그러니 자랑질을 미워하는 것은, 남들의 자랑질에 동요되는 얄팍한 내 정서를 가리기 위해 이도저도 모두 포기하자는 비겁한 태도가 아니었던가, 하는 지적질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또 어쩌랴. 어쨌든 자랑질이든, 칭찬받기 구걸이든, 남을 심사를 괴롭히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결단은 칭찬받을 만한 태도가 아닌가. 다만 극복해야 하는 병통은, 내가 이러할진대 너는 대체 왜 그러냐, 내가 이렇게 자랑질 하지 않으려 하는데, 너는 대체 왜 자랑질이냐, 하는 마음의 가시를 다스리는 일이다.(물론 이놈의 가시는 거대하고 끈질기다!)

 

3. 엄마의 자랑질

우리 엄마는 사람은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투철하신 분이다. 편식을 한다는 것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을 잊어먹은 자들의 교만이고, 음식을 해준 사람에 대한 무례이고, 나아가 외면당하는 콩과 고등어, 고기와 미꾸라지, 우거지와, 당근, 오이에 대해 매우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그러면서 고기를 한참 거르면 어지럼증이 생긴다고 하신다.) 그렇기에 자식들에게도 편식을 몹시 나무라셨는데, 막내동생은 대체로 엄마의 뜻에 따라 편식하지 않고 두루 잘 먹지만 오빠와 나의 고집스런 편식과는 지금까지도 평생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내가 하필 싫어하는 음식을 기어코 먹이려는 엄마와 맞선 싸움이 참 싫었기에, 우리 식구들의 편식은 절대 허용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식구들은 희한하게도 누가 좋아하면 누군가는 싫어하고, 누가 싫어하면 누군가는 좋아하는 이상 식욕들이 강화되었다. 물냉과 비냉을 함께 차려야 하고, 콩국수와 볶음국수를 함께 차려야 하고, 고기와 생선을 각기 차려야 한다. 내가 자초한 것이니 불만은 없다. 좀 불편할 뿐이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엄마의 편식무시의 원칙이 참 싫었는데, 이것 말고 또 하나 내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이러고보니 참 고약한 딸이다. 엄마 흉을 보기 위해 이것저것 들이민다는 말이니.)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할머니들이겠으나, 내가 우리 엄마를 할머니라고 하지 않으니 엄마의 동료들도 할머니라고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나서, 가끔 내게 그 말들을 전하는데, 그 속에 꼭 남들이 했던 자랑들이 어김없이 들어있다.

누구 아들이 진급을 해서 뭐가 됐다더라, 하던 자랑들은 그 아들들이 은퇴하는 나이가 넘어서고 보니 사그라들었다. 그 자리를 이젠 취직 잘한 손주들이 차지했다.

 

- 누구 손주가 취직했다고 인사를 왔다더라, 유명한 회사인데 월급을 많이 준다더라.

- 누구 손주며느리가 어디 다니느라 바쁜데, 할머니 선물을 사왔다더라.

- 누구 손주가 생일이라고 할머니 모시고 나가 근사한 곳에서 밥을 샀다더라.

- 누구 손주가 할머니랑 자고 싶다고 가방 싸들고 와서 일주일 있다 갔다더라.

 

이 중에서 많은 부분이 과장되어 있거나, 가상의 희망이 섞인 픽션으로 윤색된 것이리라. 그리고 이런 많은 자랑들을 듣고 있을 때 시새움이 없을 리 없는 우리 엄마라고 가만 있었겠나. 엄마도 똑같았겠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아주머니들의 자랑들에는 과장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모를 리 없다. 한 번 온 것은 세 번 온 것이 되고, 한 번 밥 먹은 것은 세 번 밥 먹은 것이 되는 것을 누가 모르랴. 그러니 이 아주머니들은 뭔가 자식 손주들이 자신들이 나가서 자랑을 할 만한 거리들을 만들어주기만을 바라고 또 바란다. 그분들과 다르지 않아, 뭔가 자랑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호시탐탐 탐색을 하는 우리 엄마와 나의 대화도 늘상 이렇다.

- 누구 손주가 뭐 어쨌다더라.

- .......

- 누구 손주가 결혼을 한다더라.

- ......

- 누구 손주가 초밥을 사왔다더라.

- ......

- 00이는 인턴 사원으로 잘 다니고 있니?

- 격주로 다녀.

- 하루 네 시간 근무면 월급은 얼마나 나오니?

- 근무한 만큼 나오지.

- ......

- 짜증 안 부리고 잘 다녀.

- ...... 기특하구나.

- 00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착해.

- ...... 그렇겠지. 걔가 뭐 악한 마음을 갖겠냐.

- @#$%^&*&^%$#~! (이건 속으로 쏴올린 속사포다)

 

4. 자랑스러워 하기

 

자랑은 나쁘다. 그건 염치없고 유치한 짓거리일 때가 많다. 나보다 많이 가진 상대 앞에서 내 것을 자랑하는 것은, 열등해 보이지 않으려는 서글픈 몸짓이며 나를 과장하고 포장하려는 거짓이다.

듣고 있는 상대가 내가 가진 것만큼 못 가졌을 때 자랑하는 것은 상대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이고, 상대가 나를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즐기려는 못된 취미이다. 사실 내가 가진 것만큼 그가 못 가졌다는 건, 그에게 참 미안한 일이 아닌가. 그가 못 누리는 것을 내가 누린다는 것은 참 미안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불쑥불쑥 자랑질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내 마음이 참 밉고 싫으며, 누군가 내가 하는 수법이랑 비슷하게 안 그런 척 하면서 자랑질을 할 때 온 마음을 다 해서 그가 밉다. 제일 윗길은, 역시 내가 내 입으로 자랑하지 않는 거다.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말이다.

 

자랑질은 하지 않되, 자랑스럽기만 하면 된다. 자랑스러워 하기에는 참 많은 조건이 붙는다. 남들이 보기에도 좋아야 하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만 해야 한다. 남들이 못 갖는 행운을 눈치 빠르게 얻어낸 것이 아니어야 하고, 자기가 하지 않고 남의 덕에 얻은 성취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니 나는 내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남을 넘어서려는 마음이 없고, 남을 괴롭히려는 마음도 없다. 스스로 조금씩 자가발전을 해가며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늘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의 범위도 넓혀간다. 정확히 얘기해주면 그만큼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편식은 하지만 반 점은 먹어달라 하면 먹어주고, 제 방문을 고집스레 닫아놓긴 하지만 밤새 닫아두진 말고 새벽에는 열어놓으라 하면 무거운 책을 받쳐놓고 십센티쯤은 열어준다. 요컨대 남의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말이다. 아빠와 여동생이 서로 의견차이로 대립하면 누구나 일리는 있다는 말로 점잖게 중재를 선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가 열 명이 채 안 되어도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약속이었기에 상관 없다고 하면서(!).

 

내 주변에는 자식자랑질을 하지 않는 이들이 참 많다.

나도 그렇거니와 그들은 대체로 자랑질은 하지 않고, 다만 자랑스러워 한다.

 

이뻐서, 이쁘게 웃어서, 착해서, 잘 먹어서, 좋은 습관이 있어서, 어제 못했던 것을 오늘은 할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내 옆에 있어서.

 

나는 이런 이들이 참 좋다. 미안해서 자랑하지 못하는 병통이 있는 이들이.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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