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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18_조미영] 널 응원해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9-24 조회수1,754

인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중인 자폐성장애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어 같이 나갔다. 지인이 좀 늦는다는 연락에 혹시 아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소란을 피우면 어쩌나 살짝 불안했다. 예전처럼 수저를 번갈아 흔들거나 식탁을 치는 요란한 행동은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갑자기 보이는 돌발행동은 예측불허라 아들 표정을 살폈다. 불만을 표현하는 아들 특유의 표정이 나오려고 했다. 미간을 찡그리면서 혀를 조금 내밀어 깨무는 행동. 배가 고픈 것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먹고 있는데 우린 왜 계속 기다리기만 하느냐는 불만이 얼굴에 묻어 있다.

우리 오징어순대 먼저 주문해서 먹을까?”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 마침 샐러드가 나와서 아들은 그것을 먹으며 오징어순대도 맛있게 먹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식당에 들어선 지 30여분의 시간 동안 동요하지 않은 아들, 얼굴 붉히지 않고 별 일 없이 식사를 끝낸 아들이 나는 또 기특하다.

 

인과 한강변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 마음대로 자녀를 휘두르는 일, 이들의 미래를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과 연대해야 되는 것 등,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은 우리 뒤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반복하며 따라 왔다. 가끔 우리 앞으로 뛰어와 겅중겅중 걷는 모습이 우스워 대화가 끊어지곤 했다.

 

변의 넓은 잔디밭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들도 우리 옆의 바위에 앉는가 싶더니 이내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얘기를 계속 이어가던 중, 아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일어서서 아들을 불러 더 멀리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지인의 이야기가 귓등으로 들렸다. 아들의 직진 본능이 발동하여 먼 곳으로 뛰다가 우리 있는 곳을 모르면 어쩌나 불안했다. 아들을 믿어 보자고 엉덩이를 들지 않았다. 대화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아들이 내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엄마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길 바랐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꽤 길게 느껴졌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상체를 흔들며 돌아오는 모습에 나는 감격했다.

 

들은 밖에 나가면 무조건 뛰는 걸 즐겼다. 놀이터에서 그네나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을 나는 벤치에 앉아 흐뭇하게 웃으며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구석에서 혼자 풀이나 모래를 입에 넣고 뱉기를 반복했다. 늘 바로 옆에서 아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켜야만 했다.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아들은 달릴 수 있는 곳까지 무조건 달렸다.

아들과 둘이 외출할 때 예쁜 신발은 그림의 떡이었다. 항상 뛰기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몸집이 커가면서 아들의 가벼운 발걸음은 내가 전력 질주하는 것 보다 빨랐다. 더 멀리 가버리면 내가 힘이 드니까 가급적 아들을 불러 세웠다. 다행히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멈춰서 되돌아 와주면 그게 고맙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동안 나는 아들이 내 주위에서 놀다가 엄마 있는 곳으로 돌아오기만 해도 참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살았다. 점점 체력이 좋아지는 아들에 비해 노쇠해가는 나의 체력이 아들의 질주를 막는 건 불가능해지면서.

그러다보니 외출이 꺼려졌고 승용차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었다. 아들의 체력과 몸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내가 힘들다고 아들을 통제하며 살 수는 없었다.

아들과 둘 만의 뚜벅이 여행을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이동했고 한강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앞서 가던 아들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실종 신고를 해서 찾기도 하면서 아들과 나는 서로의 동선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길 엇갈림으로 고생을 하면서 아들은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도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에 이름을 불러 더 이상 먼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쩌면 그동안 아들은 충분히 본인 하고픈 걸 하고 내게 돌아 올 수도 있었다. 다만 내가 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불러들인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워낙 실종 사고가 많은 것에 대한 불안감이 아들을 믿지 못하게 했다고 변명해 본다. 성인 대접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한 건 가슴이 아닌 머리에서 나와 입으로만 한 거였다. 어떤 일이 닥쳐서 내가 의기소침해지더라도 아들을 믿고 세상을 더 활보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잊지 말아야겠다.

 

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우리에겐 고비가 많다. 그런 고비를 잘 넘어줄 때마다 아들이 고맙다. 당연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인한 긴장과 안도의 한숨은 우리 일상을 흔들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한다.

아들이 식당에서 잘 기다려 준 것도, 혼자 뛰어다니다 내게로 돌아와 준 것도 아들의 결정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결정 하도록 계속 기회를 줄 것이며 아들의 선택과 결정에 응원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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