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사는 딸이 집에 와서 네 식구가 외식을 했다. 남한산성 입구에 새로 생긴 넓은 식당은 맨 안쪽 테이블 하나에만 손님이 있었다. 조용하니까 우린 좋지만 주인으로선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자릴 잡고 앉았다. 갈비를 구워 젓가락을 서로 부딪치며 맛있게 먹고 냉면을 나눠 먹으며 지금이 코로나 시대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남편의 한 마디에 긴장했다. ‘혹시...’하는 눈빛이 재빠르게 오고갔다. 한기가 든다며 무릎담요를 뒤집어쓰는 남편, 다행히 열은 없었다.
본인 집으로 간 딸에게 연락했더니 역시나 목이 좀 아프다고 했다. 다들 자가키트검사를 했지만 빨간 줄은 모두 하나였다. 하지만 모두의 몸은 양성임을 말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남편은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동네 병원으로 갔는데 역시나 양성이 나왔다. 선별진료서에서 PCR까지 한 결과 확진자가 되었다.
나도 증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신속항원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었다. 음성이면 뭐하나, 목이 아프고 잔기침이 나는 등 증상이 딱 오미크론인데...
나도 확진자가 되었다. 딸도 확진자로 일주일간 휴가를 받았다. 아픈 딸아이가 혼자 뭐라도 챙겨 먹을까 생각할 겨를 없이 자폐성장애인 아들이 걱정되었다. 외부에 나가 검사 받기를 거부하여 자가키트로 할 수밖에 없는데 음성으로 나오고 별다른 증상도 없어 보이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 아빠가 집안에서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끼고는 밥도 혼자 먹게 하는 등 여태껏 보지 못했던 낯선 상황들로 아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한 표정이었다. 흔들리는 눈빛과 얼어붙은 손동작은 불안에 떨고 있는 작은 새였다.
어떻게 살았는지 일주일이 지나갔다. 힘들어 하던 딸은 출근했다가 기침이 너무 심해서 다시 이틀을 더 쉬었다. 남편 역시 목이 아프긴 해도 거래처와 통화하며 생업에 매진했다. 아들도 평생교육센터에 나가고 없으니 고요한 집이 썰렁하기까지 했다. 창문을 열자마자 건물 벽에 부딪쳐 갈 곳 잃은 봄바람이 무리지어 들어왔다. 아직은 몸이 시원찮아 자꾸 눕고 싶은 마음이지만 사르르 내 몸을 감싸는 바람의 부드러움이 엄마 숨결 같았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상들을 불평하고 거부하는 것보다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는 당연한 이치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인구 3명 중 1명이 감염된 세상이다. 3차까지 접종하면 역병을 밀어내는 힘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나마 더 힘들게 감염 상태를 보낸 게 아니었음을 위안삼아야 하는 것인가. 1차 감염은 그런대로 넘길 수 있지만 2차 감염은 거의 죽음이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표현언어 없는 아들이 걱정이다.
삼시 세 끼 밥하는 하루가 자유로운 외식으로 여유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요식업자와 자영업자들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은 세상, 봄꽃 보는 즐거움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오늘도 무사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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