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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20_조미영] 안될 듯하면서도 되는 것들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11-23 조회수1,708
장실 바닥을 수놓은 핏자국에 깜짝 놀랐다. 휴지로 엉성하게 닦은 걸 보니 누구 소행인지 짐작이 갔다. 대체 어디서 난건지 왜 났는지 짐작이 안 가 얼른 아들 방으로 달려갔다. 이불도 피 칠갑이 되어 있었다. 입술에서는 연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또 시작이구나...”

 

달장애 아들은 피부 어딘가가 가려우면 딱지가 앉을 때까지 계속 긁는다. 환절기마다 거치는 통과의례다. 딱지가 생기면 그걸 못 참고 긁어서 떼어낸다. 그러면 또 피가 나는 상황이 반복된다. 심할 때는 학교도 결석했고 특수교육 치료실의 수업도 다 빼먹었다.

약이라도 발라 주면 몸에 묻은 이질감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닦아낸다. 상처 부위를 긁거나 닦는 사이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날 수밖에 없다. 피범벅 된 옷소매는 두꺼워지고 뻣뻣해진다. 그 어떤 처치가 허락되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뭔가 묻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자폐적 성향이 경구용 약은 가능해도 연고나 주사는 강하게 거부했다. 손 댈 수 없는 상황으로 피투성이 아들을 일주일 이상 바라보며 십 수 년을 살았다. 그저 자연 치유만을 바랄 뿐 속수무책이었다. 다른 것은 다 봐주고 모른 척 외면할 수 있었지만 피를 보는 것만은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더니 이번에는 입 주위를 긁어 피부가 약한 입술에서 계속 피가 났다. 예전처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요즘 조금씩 나아지는 아들의 변화를 볼 때 적극적으로 뭔가를 시도하면 들어 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계속 흘러내리는 걸 놔두면 그걸 닦느라 밤새 잠도 못 잘 것 같았다.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너 계속 입술 비비고 닦으면 피가 안 멈춰. 내가 수건으로 꼭 눌러 줄게. 우리 하나에서 열까지 열 번 세어 보자. 그러면 피가 멈출거야.”
 

들은 눈을 껌벅이며 자신의 입술을 누르고 있는 커다란 수건을 바라보았다.

수건을 밀어내지 않을까 긴장했다. 본인도 자꾸 흐르는 피가 겁이 났는지 밀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열까지 세고 수건을 살짝 뗐다가 깨끗한 부분을 다시 입술에 갖다 댔다. 한 번 더 하자며 백 번까지 두 번을 셌다. 멈출 듯하면서도 계속 흐르는 핏방울이 야속했다.

어쩌지? 자꾸 나네, 숫자 세는 거 좀 더 해보자.”


렇게 백을 몇 번이나 세는 동안 아들은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

한 시간 반 동안 그러고 나니 피는 멎었고 눈에 새록새록 잠이 담긴 걸 보고 방을 나왔다. 내일 아침 어떤 몰골로 나올지 염려되었지만 입술을 건들지 않고 그냥 잘 자기만을 바랐다.

다음 날 아침, 말간 얼굴로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이게 기적이란 생각에 울컥했다. 피가 멎고 상처도 더 이상 커지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거엔 작은 상처가 번져 일주일 이상 얼굴 전체가 벌건 걸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단 하루 만에 말끔해 지다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피부 빛이 좀 거무스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니 잘 아문 상처가 정말 다행이었다.

 

해 아들에게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 늘었다. 말로 소통하면 좋겠지만 아들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말을 하려고 입모양을 만드는 걸 보면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말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말을 못하니 온 몸으로 소통하려고 애쓴다. 그것을 보고 잘 알아차리려고 나도 노력한다. 가급적 스스로 뭔가를 요구하려고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 아들은 본인이 원하는 걸 표현하기보다 눈에 띄면 보거나 만지고 먹었다. 하고 싶지 않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랬던 아들이 어느 순간부터 뭔가 하려는 게 보였다. 지시나 부탁에 의해 겨우 움직이더니 내가 혼잣말 하는 것도 잘 알아들었다. ‘어두운데 거실 불 좀 켜야겠다라든지 소파에 있는 책 정리 좀 하지등 작은 소리로 웅얼거려도 신기할 정도로 잘 알아듣고 반응했다. 뭐든 하길 바라고 채근했던 그간의 내 욕심을 내려놓으니 아들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망설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소한 것을 해 낼 때마다 예전처럼 요란스럽게 칭찬하지 않았다. 가볍게 칭찬해도 잘 알아차리고 표정이 밝았다.

 

휴지를 조금만 썼네, 잘했다.”

즘 가장 많이 하는 칭찬이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휴지 풀어 헤치는 걸 즐겼는데 내가 밖에서 조금씩 떼어주며 이만큼만 쓰라고 가르쳤다. 두세 달 동안 하면서 본인도 짜증을 내고 나도 성가셨지만 꼭 해야 할 일이기에 멈추지 않았다. 뭔가를 시도해서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동안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기에 최근에 보여주는 소소한 행동이 무척이나 고맙다.

 

안될 것 같더니 이게 되는구나...’

은 변화에 기뻐하고 감동하는 순간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훗날 엄마!’라고 부르는 아들에게 ? ?’ 하고 대답하는 나를 상상해 본다.

아울러 피범벅 된 아들의 모습은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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