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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13_김종옥] 2022년 4월의 특별한 투쟁기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05-06 조회수866

망언으로 시작한 봄

 

20224월 투쟁은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코로나19의 끄트머리에, 지난 정권의 끄트머리에, 새 정권을 기대 없이 바라봐야 하는 출발지에서, 장애투쟁을 시민을 볼모로 한 비문명적 행동이라고 하는, 장애해방투쟁사에 길이 남을 망언을 뱉은 무모하고 무례한 젊은 당대표의 이름을 함께 기억하면서 말이다.

 

해마다 4월은, 세상을 향한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외침과 드러내기의 한바탕 운동판이 펼쳐지는 때였으나, 올해는 유난스레 혼탁하고 힘겹다. 우리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419일 거룩한 투쟁의 날에 발달장애인 가족과 당사자, 활동가, 지원인 등 556명이 삭발을 하고 투쟁결의대회를 했다.

 

삭발이 별거냐, 머리카락이야 곧 자란다고 하지만 그건 삭발의 부담을 떨치려고 애써 하는 말이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민머리가 되는 것은 몇 달 동안의 낯선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편치 않은 일이다.

더구나 엄마들의 삭발은 더 큰 용기와 결기가 필요한 일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은 물론이고,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도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도 엄마의 삭발이 주는 마음의 부담은 상당히 무겁다. 소리로 들리지 않아도 수시로 도처에서 주먹 쥐고 투쟁!’을 외치는 셈이다.

때문에 누군가 삭발을 했다면, 더구나 엄마들이 삭발을 했다면 그 마음에 대해 누구나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른 소리가 섞여들려 왔다. 물론 예전에도 못마땅해 하는 소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보수정권 탄생에 따른 우려의 마음이 있다 보니 더욱 예민하게 들렸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뭔가 기세등등한 다른 소리가 크게 들린 것은 사실이다.

556명이 삭발을 하고 인수위 근처로 행진을 시작했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리의 행렬을 향해 멈춰서있던 차량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누군가를 향해 응원과 지지의 뜻으로 경적을 울려주는 몇몇 남의 나라 매너가 그새 수입됐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그렇다면 그건 일종의 짜증, 욕설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어쩌다 경적을 울리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저 한 둘, 성질 급한(이라고 쓰고 성질 더러운이라고 읽는다) 이에 그쳤었는데, 이번에는 마치 빵빠레를 울리듯이 여럿이 신경질적으로 눌러댔다. 당신들 사정은 됐고! 왜 무고한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하는가!” 이런 소리였을 게다.

 

556명의 삭발식 사진이 실린 언론보도에 달린 댓글도 마찬가지. 응원하는 글도 있었지만, 대충 흘깃 봐도 대놓고 하는 욕설이 주르르 달렸다. 하기야 댓글이 무슨 의미가 있어 억장 무너지자고 일부러 찾아가며 볼 일인가. 다만 이번에는 무슨 말들을 하나 어디 좀 보자 하는 심정으로 훑어봤는데, 역시나 흡입과 배설강이 한몸인 동물들의 토출을 보는 듯 했다. 삭발한다고 다 들어주나, 왜 국가가 발달장애인들을 24시간 책임져야 하나, 당신들만 힘들게 사나, 국가에 도움이 안 되면 조용히 입 닫고 살아라, 발달장애가 벼슬이냐, 24시간 놀고먹겠단다......

 

신음을 한다는 건 들어달라는 뜻이다. 사람뿐 아니라 세상 모든 숨 붙은 생명은 다 그렇다. 소리를 못 내는 생명은 몸부림을 쳐서 신음을 한다. 누군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생명은 신음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못 듣는 신음은, 누군가는 들어야겠기에 신이 듣고 관세음보살이 듣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고통의 신음을 듣는 것은 전지구적 생명의 기본 매너다. 남이 신음하는데, 그걸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입으로 배설하는 놀이를 신이 나서 할 일인가.

 

그러던 차에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 차린 전장연의 농성장 컨테이너 앞을 다른 컨테이너 두 개가 가로막고 설치되는 일이 있었다. 한 개는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이름으로 장애인인식개선에 먹칠을 한 전장연은 과연 누구를 위한 단체인가. 각성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또다른 한 개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름으로 계영배 하우스’(차면 넘치는 잔이라는 한자 작명의 치졸 유치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장애인단체가 스스로 나서서 장애투쟁을 폄훼하고 가로막는 참담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염치없는 훼방은, 세월호 때 피자치킨잔치 이후로 처음 봤다.

 

이준석 효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556명 삭발식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 근처 지하철 경복궁역 지하에 천막을 치고 윤종술대표와 수도권 지부장 등 4인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인수위의 면담과, 발달장애인 정책을 국정과제에 넣을 것을 요구하면서 매일 오전에 결의대회를 함께하고 있다.(이 글을 쓰는 51일까지도 단식은 열흘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하철 역사에 자리잡은 농성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무심하다. 더러는 주장이 적힌 피켓을 슬쩍 쳐다보며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뭐라 중얼거리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거나, 대놓고 욕을 하며 지나는 이들 또한 있다. 그런데 그들의 욕지거리에서 뭔가 당당함이 읽힐 때가 많다.

 

이걸 이준석 효과라고 한다면 왜 그러냐고, 정확한 근거자료, 통계가 있냐고, 따져 물을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상당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에게 불편을 주는 투쟁에 대해서는 불평을 해도, 욕을 해도 괜찮으니 마음껏 욕하시라, 라고 분명히 부추겼으니까. 그리고 대체로 투쟁은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호소하는 것이니, 결국 그는 모든 투쟁에 대해 욕해도 된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예전에는 불평하기는 해도 대체로는 참아주는 게 매너인 줄은 알고들 있었다. 그런데 한창 젊은 사람이, 그것도 외국의 유수한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이 대놓고 비문명적 방식이라고 지적질을 해대니, 이제는 마음놓고 염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니, 아예 장애인, 사회적 약자의 고달픈 투쟁을 참아주는 예의염치 따위는 애초부터 없는 거다.

 

그걸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 즉 협조적인 편과 비협조적인 편을 갈라서 협조적인 편으로 하여금 비협조적인 편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고약한 방식의 길들이기로 투쟁성을 왜곡시키고, 사회적 공감을 약화시키는 야비한 공작. 가장 저열한 공작을, 정당 대표가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가 대표로 있는 당의 구성원들은 그것을 굳이 막지 않는다. 몰염치는 승리한 자들의 배짱인가보다.

 

무례하라고 선동한 죄, 2022년 봄, 그들의 죄가 작지 않다.

우리는 무례한 그들과 우뚝하게 맞서 나갈 터이다. 우리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좋은 사람들이고 싶으니.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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