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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14_조미영] 상처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5-17 11:41:00 조회수237

들 입술에서 피가 난다. 환절기만 되면 건조한 입 주위를 비비는 아들. 얇은 피부는 금세 빨개지고 급기야 피가 보인다. 딱지가 생겨 이제 나으려나 보다 생각하면 그걸 떼 내고 다시 비비기를 반복하니 상처 부위가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연고나 크림을 발라주면, 살갗에 뭐라도 묻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아들은 그게 없어질 때까지 더 세게 닦아댄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관심을 끊고 아들 스스로 참아서 끝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상처 주위를 소매로 쓰윽 닦을 때마다 내 몸에 전류가 흐른다. 아들보다 내가 더 아프다. 해마다 이삼월에 그러더니 최근 몇 년간은 잘 넘어갔다. 이제 그 참혹한 모습은 졸업했구나 싶었는데 다시 보게 되니 더 암울했다.

 

420장애인차별 철폐의 날’,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전국 집중 결의대회가 있었다. 나는 장애인 부모라서 우리 자녀들의 권리를 위한 기자회견이나 집회는 대부분 참석한다.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지자체에서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중계한다고 보라는 문자가 왔다. 기차 안에서 복지 시설의 이용자들이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작은 화면을 통해 보니 오늘이 장애인 고문의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행사들, 누가 무엇을 기념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 관심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다.

 

부 청사 도로변에는 오늘 대규모 집회가 있으니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적혀 있었다. 순간, 실종 사건이 잦은 발달장애인 소식을 이렇게 발빠르게 전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절차로 골든타임을 놓쳐 버리는 일이 좀 많은가.

전국에서 장애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 장애 자녀들의 부모 단체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회원들이 복지부 옆 도로를 메웠다. 발달장애인의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이 서글펐다. 우리들의 간절함이 허공으로 분해되는 느낌이라 안타깝다가 나중엔 화가 났다. 듣지 않으려 하고 모른 척 외면하는 건 국회나 정부 부처나 다르지 않으니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연대하여 외치는 방법 말고 달리 할 게 없는 현실이다.

집회는 민중가수들과 프랑스 레미제라블오리지널팀, 발달장애 청년들의 공연으로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나는 부모라서, 당사자는 본인 일이라서 온몸으로 투쟁한다지만 장애 운동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감사하다. 내 일을 우리 일로 여기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그들의 일상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침에 보니 아들 입 주변에 딱지와 피가 엉겨서 마스크를 쓰면 더 따가울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일주일에 겨우 두 번 나가는 평생센터인데 아쉽지만 결석했다. 아들이 집에 있으면 우리 가족의 개인 삶이 없다. 집이 사무실인 남편의 서재에 아들은 거침없이 들어가 업무를 방해한다. 누나 방에 들어가 끌리는 책을 빼서 모퉁이를 찢어 놓는가 하면 서랍을 뒤져 헝클어 놓기도 한다.

작은 상처 때문에 두문불출해야 하는 일은 아들 인생에 적지 않았다. 그러면 가족 누군가도 집콕하면서 아들과 함께 있어야만 한다. 집에서 일을 하는 남편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누나인 딸 찬스도 많이 쓰고 있다.

장애인 가족은 국가의 테두리 밖에서 가족의 돌려막기로 살아가고 있다. 가족 없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나는 세종시 집회를 취소하지 않고 참석해야만 했다. 평소에는 아들을 집에 두고 혼자 외출할 때 나는 아들의 존재를 잊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아들 생각이 났다.

입가 상처가 더 번지지 않았을까?’

속이 불편한 것 같았는데 괜찮아졌나?’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애써 지워도 계속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과 마음이 서로 다른 곳에서 방황했지만, 일정을 끝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아이돌 공연을 보며 허밍을 하고 있었고 딸은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외출 중이었다. 오전엔 딸아이가 서점을 다녀왔단다. 남편과 딸이 교대로 집에 있어서 그나마 각자의 볼 일은 볼 수 있었다. 우린 이렇게 아들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아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아들 곁에 있어줘야 한다. 급하게 외출이 약속된 날은 취소하거나 다른 가족이 내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산만한 아들은 집에 있으면서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 못 하고 부산스럽다. 그래도 왔다갔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게 낫다. 힘없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걸 보는 건 짠하다.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한 걸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니 그걸 잘 알아차려야만 한다.

 

범벅 된 입 주위 상처로 마스크를 할 수 없어 열흘 정도 집에만 있던 아들이 드디어 센터를 나갔다. 간만의 여유를 즐겨볼까 하다가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와대 앞 세월호엄마들의 피켓팅을 연대하고 왔다.

드러나서 잘 보이는 아들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삶이 황망해진 부모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는 어쩌란 말인가. 사라지지 않을 상처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진다면 이웃의 삶이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분명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 약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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