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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챠녀, 뉴욕에서 컴플렉스를 벗어 던지다
분류에이블뉴스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22-05-19 조회수177
나는 어깨가 넓고 팔 힘이 센 편이다. 골격이 아빠를 닮아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다치고 난 뒤, 팔로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니 팔 힘이 더 세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깨도 넓고 팔뚝이 굵다 보니, 여름에 민소매 옷을 입을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언제나 날씬한 우리 엄마와 내 동생을 보면서 늘 비교도 되었다. 나에게 여성스럽고 몸이 드러나는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해왔다.

어느 여름 날, 너무 덥기도 하고 집이니까 정말 용기를 내서 민소매 옷을 입었다. 그걸 보신 우리 엄마가 '얘, 레슬링 선수 같다 야~'라고 무심코 말을 하셨다. 아마도 엄마는 기억조차 못하실 거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다.

트레이닝복을 사러 엄마와 간 적이 있었다. 트레이닝복은 신축성이 있으니 엄마랑 내가 똑같은 사이즈를 입어도 된다고 가게 점원이 옷을 권해주었다. 그러자 엄마는 '어머, 어떻게 얘랑 나랑 같은 사이즈를 입어요?'라며 말을 하셨다. 그 말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그 뒤로는 팔뚝을 드러내거나 몸이 드러나는 옷을 아예 입지 않았다.

몸이 드러나는 옷을 거의 입지 않았던 나였다. (c)박혜정그런데 내가 이런 컴플렉스를 완전히 깨버릴 수 있었던 건, 미국에 가게 되면서 부터이다. 미국 뉴욕이라는 곳에 처음 가서 숙소를 구하기 위해 한 2주 정도 임시로 있었던 YMCA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이다.

YMCA 숙소에서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쓸 때였는데,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되어 있지만, 샤워실은 한 명씩 남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샤워를 하러 갔는데 앞에 누가 샤워를 하고 있어서 밖에서 기다렸다. 조금 뒤, 안에서 샤워를 마치고 어떤 남자가 나왔다. 그 남자는 딱 중요 부분만 가리고 홀딱 벗고 나왔다. 처음 겪는 일이라 눈을 어디 둬야 될지도 모르겠고 너무 당황했다. 세상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그 남자는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이 남자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복도에 많이 벗고 다녔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중요 부분이야 가리지만 세상에 할 정도로 거의 벗고 나왔다. 복도에서 위에 티셔츠만 입고, 팬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여자애도 꽤 있었다. 처음엔 너무 놀랐지만, 갈수록 적응은 되었다.

2주정도 임시로 있었던 YMCA 숙소. (c)박혜정
뿐만 아니라 미국은 성적으로 너무 개방적인 사회였다. 동생이랑 함께 숙소를 구하기 위해 버스를 탔을 때였다. 내가 버스에 타면 휠체어 석이 따로 있고, 운전기사가 와서 올려주고 휠체어 고정 벨트를 매어 준다. 승객들도 얌전하게 다 기다리고 있는 문화 의식이 참 멋지게 느꼈었다.

휠체어 석에 내가 있고 동생은 바로 옆의 좌석에 앉았다. 동생 옆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 둘을 보고 닮았다며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냐, 뭐 하러 이곳에 왔냐, 누가 동생이냐 등등' 여러가지 질문에 답하며 웃으며 대화하며 왔다.

내릴 때가 되어서 내가 'Have a good day!' 하자, 뭐라고 하더니 내 목덜미에 끈적한 키스를 했다. 순간 너무 놀라서 움찔 했는데, 내려서 동생에게 물어보니 행운의 키스를 해주겠다고 했단다. 동생이 뒤에서 보니 내가 너무 놀래서 경기하는 듯 보였단다.

버스에 타는 모습. (c)박혜정
영어 공부를 위해 숙소로 오면 거의 TV를 켜 놓고 있었다. FOX5라는 채널을 고정으로 보는 편인데, 거기서 하는 프로그램 중 보다 보면 가끔 너무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심슨이라는 만화, 한국에서도 본 적이 있고 꽤 유명한 만화이다.

금요일 오후 쯤에 봤던 것 같다. 심슨 가족은 4명이고, 그 중 엄마가 가슴이 갑자기 커졌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 모두 그녀의 가슴에 집중하고, 그녀가 유명해졌다. 한 행사에서 엄마를 초대해서 공연 비슷한 걸 하게 되었다. 공연을 하고 있던 도중, 그녀의 남편(아빠)과 아이들 둘이 행사장에 있던 코끼리에게 잡혀 먹혔다.

심슨네 가족들 애니메이션. (c) stefangrage, 출처 Unsplash
무대에 있던 그녀가 남편과 아이들이 코끼리에게 먹힌 걸 보고 놀라 코끼리 앞에 왔다. 코끼리에게 경찰들은 총을 쏘려 하고 있고, 다들 무서움에 질려 있는 찰나였다. 그녀가 윗옷을 벗어 젖히며 가슴을 보여 주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코끼리도 놀라 입에 넣었던 남편과 아이들을 뱉어냈다.

헉! 만화가 어린 애들 보는 건데 이런 스토리와 장면을 방송한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토요일 저녁에 하는 시트콤이나 오락 프로는 성인 방송에서나 할 법한 장면이 수도 없이 나왔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라 영어가 다 이해되지 않아서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히 몰랐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문화의 충격을 많이 느꼈다.

문화적 충격을 많이 느낀 애니메이션. (c)PxHere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어학원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도 옷이 점점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뉴욕이니까, 정말 길거리에는 패션 모델 같은 사람도 심심치 않게 많이 보였다. 여자들의 옷차림은 감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과감했다.

나도 뉴욕에 왔으니까, 뉴요커니까... 멋진 옷도, 과감한 옷도 입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좀 사려고 쇼핑몰에 갔다. 그런데! 난 여기서 스몰 아니면 엑스트라스몰 사이즈였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스몰 사이즈를 입어본 적 없었고, 엑스트라스몰은 더욱이 만져보지도 않았던 사이즈다.

점원이야 옷을 팔아야 되니 나한테 날씬하다고 말했겠지만, 주변에 조금 친하게 된 유럽 여자애들이나 남미 여자애들도 나보고 너무 날씬하다고 한다. 실제로 뉴욕에는 모델 같은 사람들도 엉덩이는 컸고, 거의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훨씬 크고 뚱뚱했다. 대부분 배와 엉덩이에 튜브 몇 개씩은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자신감을 점점 되찾았고, 나의 옷차림도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컴플렉스 벗어 던지고, 여행에서는 과감하게 입는다. (c)박혜정
컴플렉스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참 별거 아닌 게 될 수도 있는데,
컴플렉스에 쌓여 있을 때는 그게 너무 싫고 왜 용기가 안 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한동안은 미국에서의 자신감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한해 여름은 민소매도 입고, 끈나시도 입어보고, 과감한 옷들을 입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고, 오지라퍼들이 많아서인지 입을 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또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너무 느껴졌다.

내가 내 몸에 맘대로 옷 입는데 왜 이리 불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그냥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뒤 2년 차부터는 다시 그 예전처럼 옷을 입는다. 지금은 해외 여행을 갈 때만, 옷장 깊숙히 있는 과감한 옷들을 꺼내 캐리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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