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이 게시판은 보다센터에서 초대한 각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소박하지만 통렬한 이야기와도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게시물 총 120 건
2년 동안의 코비드 상황을 겪으면서 대면 수업, 줌 수업이 병행되었지만 나름 상황을 잘 헤쳐나가며 적응을 했던 시간이 지나고 4학년이 되었다. 학교생활은 3년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나름대로 생활이나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적응은 많이 되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식사 후 자유시간에는 온유가 친구들에게 부탁을 해서 도서관도 가고 열린 공간(온유학교에 각층마다 있는 아이들의 쉼터 공간)을 산책하러 갈 만큼 많이 다양해졌다. 스스로 움직임에 어려움이 많아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며 이동이 불가능한데 스스로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도 생겨서 엄마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친구들도 흔쾌히 온유와 함께 잘 다녀 준다. 모둠 수업이 많아진 4학년 수업에서도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꾸며서 만든 파일과 코딩 수업을 한 파일, 메타버스 수업을 한 뒤 Padlet 게시판에 올려서 공유하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에는 과연 온유가 탭, 노트북을 활용한 수업이 가능할까? 친구들의 속도에 맞춰서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첫 게시물이 올라왔을 때 많은 감동이 있었다.온전히 혼자 만들었다는 것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평소 즐겨 쓰지 않았던 미디어를 활용한 수업을 이해하고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엄마인 내가 평소 생각했던 온유와는 많이 달랐다. 온유가 다니는 학교가 AI 중점학교, 메이커 실천 학교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1인 탭, 노트북이 제공되어서 온유에게는 좋은 기회와 효과가 있었다. 엄마보다 더 많은 지식이 생겼고 친구들과의 경쟁을 생각하며 더 잘하려고 하는 욕심도 생겼다. 선생님께서도 부탁할 일이 있으면 부탁도 하고 감사의 표현도 적절하게 하는 아이로 성장했고 자신에게 도움을 준 것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온유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걱정할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평소 온유를 많이 관찰하시고 잘 알고 계신 부분이 많아서 더 감사했다. 가끔 온유가 혼자 있을 때는 “얘들아, 온유 혼자 있으니 심심하잖아. 같이 놀아.”라고 이야기를 하시거나 온유 자리로 오셔서 온유와 이런 저건 대화를 많이 하시는 걸 온유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처음 1학년이 되었을 때는 학교만 잘 적응하기만을 바랬던 마음이 해가 갈수록 사회성, 학업, 담임 선생님에 대한 욕심이 생겼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온유와 함께 발맞춰 나가다 보니 어느덧 4학년 2학기가 되었고 분기별 성적표와 행동발달을 보면서 잘하고 있음을 더 깊이 공감했지만 유일하게 체육 성적만이 “보통”이라고 속상해하는 모습마저도 엄마를 뭉클하게 하고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다. 온유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매년 마다 행복함이 더해지는 것 같아서 우리 가족도 모두 행복하다. 중간 중간 시련과 좌절도 있었지만 좋았던 경험들이 더 많아서 좋았던 경험들로 인해 온유는 매일 성장 중이고 앞으로의 무한한 성장이 더 기다려진다.
게시일2022-10-04
이제 내게 화요일은 특별한 날이다.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오전과 오후에 발달장애를 가진 이의 가족,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전에는 화요집회를 하고 오후에는 청년들과 만나는 수업이 있다. 에너지를 상당히 쏟는 일이기도 하고 에너지를 받는 일이기도 하다. 하루 사이에 쏟아내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려니 마음노동이 여간이 아니다. 하루종일 골똘히 생각하는 게 많아서 화요일에는 종종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있곤 한다. - 긴 이야기의 시작, 화요집회 부모연대는 얼마 전부터 화요집회를 시작했다. 화요일마다 모여서 우리들의 이야기와 결의를 나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려고 했으나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한 주 쉬어갈 터이다. 다음 주에, 그 다음 주에 이어가면 되니까.(^^) 그렇게 거듭하다 보면 화요집회는 이 나라 발달장애 가족의 상징과도 같은 행사가 될 것이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며 발달장애를 가진 이와 그 가족의 죽음이 유난히 많은 차에, 우영우(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정은혜(우리들의 블루스)가 세상의 관심을 끌면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기자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궁금하시면 화요집회에 오세요. 우리들의 사연과 분노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기자뿐 아니라 누구라도 화요집회에 나오면 듣게 된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와 이 세상에서 만난 인연,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 엄마투사 아빠투사가 된 사연, 세상에 대한 꾸짖음, 내가 원하는 자녀의 일상, 아직 다 못한 내 삶의 과제까지 마이크를 잡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왕 시작을 했으니 앞으로 우리들의 집회가 더욱 풍성해졌으면 좋겠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본다. 이야기도 하고, 때론 노래도 공연도 춤도 추었으면 좋겠다. 짧은 교육도 듣고 누굴 불러다 궁금한 것도 묻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다 점점 더 커져서 어쩌다 한 번씩은 행진하면서 시내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깃발을 세운 텐트도 수십 채씩 치고 밤샘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지나가던 이가 가만히 뒷자리에 와 앉았기도 하고, 먼 데서 일부러 찾아와서 기타니 하모니카 연주 선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모델 수업을 받는다는 형제자매가 제 친구들과 함께 와서 근사한 패션쇼도 벌여줬으면 좋겠고, 시 짓기를 좋아한다는 이가 시를 읊조리고 갔으면 또 좋겠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이 와서 미국서 사는 누가 그랬던 것처럼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일갈해줬으면 좋겠고, 하루 일과를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어디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지도 살짝 들떠서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장애를 가진 이들의 형제자매들도 와서 일찍 철이 든 얘기며 아직 철이 안 든 얘기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든 우리들의 이야기가 그저 슬픔과 연민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당연한 분노와, 평등한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희망과, 삶의 결단과 의지를 다지는 뜨겁고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녀가 이제 일곱 살, 아홉 살이라는 이의 얘길 들으면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그려져서 탄식이 나온다. 청년이 되었다는 얘길 들으면 걸어온 험한 길이 단숨에 그려져서 또 탄식이다. 어느 하루 얘길 들으면 그의 나머지 364일이 눈에 보인다. 우리는 비슷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으며 오만가지 상념에 잠긴다. 두 아이가 모두 장애를 가진 이도 있고, 엄마가 또는 아빠가 암 투병 중인 경우도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도 많았고, 홀로 키우다시피 하는 이도 많다. 많이 지쳐 보이는 이도 있었고, 그럼에도 힘을 내겠다는 말을 하며 하얗게 웃는 이도 있다. 저 슬픔을 어찌하나, 저 바다와 같은 슬픔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저 입장이면 어땠을까. 듣는 이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저 이였으면 저렇게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저 이는 그 때의 나처럼 단지 비명을 지르지 않을 뿐, 모진 세월과 싸우느라 많이 지쳐있는 건 아닐까. 혹시 그 때의 나처럼 절벽 앞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당장 그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가 손목을 잡고 비탈길을 다시 내려와 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 ‘동지’가 먼저 우리 손을 잡는다. 나는 이렇게 버텨낼 테니 우리 함께 갑시다-. 대개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그러면 모두는 또 하나의 위안과 또 하나의 결의를 가슴에 담게 된다. 우리들의 이야기판은 슬픔과 위로에서 그치자고 연 게 아니다. 우리들은 동지적 연민에서 힘을 얻어서 함께 견뎌내고 함께 밀어내며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 오후의 수다 화요일 오전에는 이렇게 가슴 저미는 사연을 듣고 울먹이다가, 우리가 이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다가 오후에는 마음이 훨훨 난다.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좋은 인연인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청년들은 특별히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그래서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참 즐겁다. 그들은 모든 대화에 무척 성의가 있다. 눈동자에 힘을 주고 자신의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남의 말이 끝나기 전에 끊어버리는 무례를 범하지도 않고, 남의 말을 비난하지도 않는다,(물론 몇몇은 수시로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데 열중한다) 이들 중 몇몇은 남의 말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딴청을 피우지만 다음 시간에 물어보면 남이 뭐라 했는지 잘 기억해내고, 몇몇은 자기가 했던 말도 안 한 것처럼 능청을 떨기도 한다. 자주, 그들이 하는 말에 마음이 뭉클하다. 즐거운 기억, 나빴던 기억, 치열한 생각, 곰곰 따져보는 고민이 모두 저마다 갖고 있는 큰 이야기보따리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다. 대체로 즐거웠던 기억을 얘기할 때면 저마다의 에너지가 합쳐져서 햇빛 속 새들처럼 명랑해진다. 반대로 속상했던 기억을 누군가 얘기하면 모두 다 자기 기억을 끄집어내며 침울해진다. 어떤 이는 좋은 기억과 앞으로의 희망을 얘기하다가도 되돌이표를 만난 듯 속상했던 기억으로 기어코 돌아가버리곤 한다. 모두는 그의 슬픔과 우울에 공감하고 저마다의 표정으로 깊이 위로해준다. 분노에 공감할 때에도 대체로 점잖게 위로한다. 나는 내 아들과 다하지 못한 대화를 이들과 나누기도 하고, 내 아들에게서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를 이들에게서 듣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들은 서로에게 무척 예의바르다. 상대를 존중하고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애쓴다. 결국 이해가 되지 않아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고치려고 들지 않고 낮은 소리로 “00님, 잠깐만 기다려주실래요?”라고 말한다. 극도로 절제된 이 태도는, 바로 그들이 남들에게서 받고 싶었던 대접, 보고 싶었던 태도이리라. 이들은 남이 내게 하는 행동 중에서 ‘서두르는 것, 재촉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들은 결코 동료들을 재촉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한 사람들 같다. 나는 화요일 오후마다 그들에게서 남을 대접하는 귀한 태도에 대해 배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피플퍼스트 동료활동가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추모식에 다녀왔다고들 했다. 한 사람이 “00 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이 다음에 만나게 될 때, 00님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면 거기서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할 수 있으니까요.” 라고 했다. 나는 얼결에 “이 다음에, 어디서요?”라고 물었다. 그는 손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만나고 싶은 마음, 만나서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의 세상 속에서는 인연이 버려지지 않고 늘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정말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다. 이들이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장애운동이다. 장애에 관해 많은 생각을 쌓아가고 있으며, 내가 아니라 상대가, 내가 아니라 세상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이미 잘 알거나 잘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좋은 이웃이 있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 하고 무언가 즐기며 살고 싶은 그들은 참 멋있는 장애운동 동지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 동지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염탐해낼 작정이다. - 그래서, 화요일은 참 좋은 요일이다.* 김종옥(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위원회)
게시일2022-09-27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화요집회가 시작된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556명이 삭발을 했고 단식도 했고 집회와 투쟁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더 홀대받는 복지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도 국민이라고 피 토하는 심정으로 부르짖어도 들으려는 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모이기에, 부모라서 포기할 수 없다.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화요집회를 하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회원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버스를 대절하고 새벽에 길을 나서서 긴 시간 차를 타고 서울로 온다. 투쟁가를 부르고 투쟁 구호를 외치면서 우리는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자녀 이야기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당사자의 고무된 발언을 들으며 손뼉을 치고 그의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25개 지회는 매주 2개 지회씩 당번을 정해서 화요집회에 참석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여의도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지방에서 오는 분들에 비하면 같은 서울이니 불평없이 나는 매주 집회에 참석하고자 애쓴다. 머릿수 하나 더하는 거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과 함께 같은 곳을 보고 가는 길에 우리가 함께 한다는 걸 확인함과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의 두려움을 덜어낸다. 아들 조기교실 다닐 때 수업 끝나길 기다리던 놀이터에서 한 엄마를 만난 적이 있었다. 모래를 가지고 노는 자기 아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보던 그 엄마가 부러웠다. 저렇게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얼마나 좋을까. 나의 부러움을 느꼈는지 그녀는 내게 말을 걸었다. “아까 아들 들여보내는 거 봤어요.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근데 걱정보다 신체 건강한 게 어디냐 생각하고 기운 내세요. 저는 독실한 기독교인인데요, 저 아이 임신하고 정기검진 받으러 갔더니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고 하대요. 남편은 인공유산을 하자했지만 저는 반대했어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제가 함부로 없앨 수는 없었죠. 아이 만날 날 기다리며 늘 기도했어요. 출산하고 보니 다운증후군이 아니었어요. 건강한 아이라는 기쁨에 의사 원망은 나중에 조금 했어요.” 그 상황이 그려져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도 모르게 ‘아, 정말 좋았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시절 아들의 다동과 울음 떼로 너무 힘들었기에 다운증후군인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얼마나 좋았을지 남의 일이 내 일처럼 기뻤던 일이 생각났다. 유이(가명)엄마의 자녀 이야기를 듣다보니 20년도 훨씬 지난 그 엄마가 떠올랐다. 병원에서 1년 남짓 살 거라는 다운증후군 딸이 20대 청년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유이엄마의 말에 놀이터에서 만났던 그 엄마 때보다 더 큰 안도와 기쁨이 밀려왔다. 돈이 없어 퇴원해야 했는데 온갖 약물과 의료기기에 의존하던 병원보다 집에 와서 더 좋아졌다는 말에 우리 몸을 살리려는 약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또 느꼈다. 잘 써야 약이지 독이 될 줄 모르고 남용, 오용하는 경우가 있다. 학령기 아들에게 아빌리파이와 토파맥스를 먹인 적이 있었다. 산만함과 감정기복이 심해서 아빌리파이를 먹였고 식탐이 과해서 토파맥스를 먹였다. 토파맥스는 뇌전증 약인데 부작용으로 식욕저하가 있어 그것을 기대했다. 효과가 전혀 없진 않았지만 약으로 식욕까지 조절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고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일 때쯤 1년여 먹다 그만뒀다. 자폐인들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아빌리파이는 7년 정도 먹었는데 학령기 이후 아들의 변화에 약이 도움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들의 일상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 통제를 멈추고 허용 분위기로 환경을 바꿨더니 아들이 변하는 걸 느꼈다. 약의 용량을 줄이면서 결국 끊었을 때 몇 달 동안 불안했다. 감사하게도 예전의 천방지축 아들로 되돌아가지 않았고 누구나 보이는 가끔의 행동(불면, 산만함 등)은 눈감아 주었다. 내 곁의 멘토들이 함께 고민하고 관찰해 준 덕분이었다. 화요집회에서 아들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동안 워낙 많이 노출했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매주 화요집회에 참여한다. 그 참여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하루빨리 구축하는 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더 간절하다. 우리의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큰 울림으로 퍼져 나가고 그것이 우리 자녀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밝은 미래에 주춧돌 역할을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게시일2022-09-26
이제는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 ‘천형’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는가. 장애아를 낳아 양육하는 삶 자체를 하늘에서 내린 무거운 형벌쯤으로만 여기던 시절, 장애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장벽이라 말하지도 못했던 시절, 장애를 가진 개개인 당사자와 가족·주변인들이 세상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들을 다 떠안고 살아가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시절조차도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당사자와 가족들, 뜻이 있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문제로 정의되어 오던 우리들이 다시금, 대체 어떤 것이 문제인가를 묻고 문제 자체를 재정의하자고 외쳤다. 이는 장애 운동의 핵심적 의제이기도 하다. 그러한 권리 운동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은 여전히 죽음과 가까이 있다. 한국의 발달장애인 평균 기대수명을 조사한 결과 지적 장애인은 56.3세, 자폐성 장애인은 23.8세로 장애인들 중 가장 낮았다. 특히 ‘참사’라 호명되는 발달장애인 존속살해는 끔찍하고도 불행하게 지속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살해한 가족들이 자기마저 죽거나 죽음에 실패하여 법정에 간다 하더라도 가벼이 처벌된 사례는 그간 부지기수였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과 돌봄은 사적 영역으로만 남겨두고서 이들을 죽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죽임의 형태, 이 잔인한 모순을 그간 사회는 용인해왔다. 개인이 저지른 살해이긴 하지만, 근저에는 통상 사회 제도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상기해 보면 (발달)장애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 이상이 아닌 것이다. 물론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지원과 네트워크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이 져야 할 부담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당사자와 물질적·정서적 환경, 주변인들, 이를 바라보는 나의 상태까지 끝없이 살피고 관리하는 삼중 사중의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건들이 날 때마다 추모만 하지 말고 심리적·사회적 부검을 하자고 말한다. 타당한 지적인데, 대체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에 대한 공통된 진단을 내리기에 사건들의 맥락은 제각각이다. 그간 기록된 존속 살해 사건들 중에서 장애라는 진단만으로 사람을 죽였을지, 장애에 대한 배제와 소외, 여러 돌봄 노동에 지치고 소진돼 자신도 죽음을 선택했을지, 산 자가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는 몫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속성에 불과한 발달장애라는 것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공포스럽고 절망적인 것인가 하는 것. 힘듦, 불가능, 고통, 죽음 이런 서사들 말고 발달장애인들은 다른 삶의 서사들을 써 내려갈 수는 없는가라는 간절한 질문. 최근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를 발견한 연령은 평균 7세, 등록된 연령은 평균 17세라고 한다. 장애를 등록하기까지 통상 10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무엇을 방증하는가. 장애에 대한 낙인은 개개인마다 다른 수준과 형태로 내재화되었을지 모르지만, 이를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는 사실 사회적·구조적 낙인과 배제다. 장애인들은 사회를 유지하는 거의 모든 구조와 제도 등에서 배제되어 있다. 노동력을 팔아 자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를 노동력 손실로 보는 관점은, 자연히 장애를 가진 노동자를 현장에서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국가의 생활 보조나 지원도 극히 미미한 상태다. 장애와 가난은 불가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후 위기에 따라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때, 폭우의 강수량을 견딜 수 없는 집에서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해야 할 정도로. 체제가 낳은 기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죽는 사회적 소수자, 그들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은 가장 먼저 호명된다. 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발달장애인의 사건을 두고도 ‘참사’라는 단어 말고 다른 말들이 들리지 않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나조차 발달장애 당사자의 가족으로서 숱하게 절망하고 죽음에 가까운 절망감들을 여전히 한 편에서는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서사들만 알려지는 것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은폐하며, 편견만 강화하는데 일조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예컨대 가정폭력으로 죽은 여성들을 생각해보면 남성 생계부양 모델이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그 모델 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가장으로 대표되는 남성 하나에 의존해 무능력하게 살아야 하고, 부양되어야 하는 존재로 그려졌던 것처럼. 그렇기에 한때 가장의 폭력은 쉽게 묵인되거나 정당화되었다. 양육자나 형제자매 등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발달장애인들의 현실이 과연 이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신경 발달의 차이로 인한 다른 삶의 양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은 발전, 정상성, 속도만을 중시하는 사회다. 발달장애인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환경들을 구성하고 조직해 내는 것은 전체 사회의 몫이지만 지금까지는 개별 가정에게만 맡겨 왔다. 노력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이들은 당연히 가까이 있는 가족들일 테지만, 이 가족들이 할 수 없는 것들까지 끝없이 요구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방치되어 있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은 대체로 우리 스스로만 노력해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발달장애를 이해하고 발달장애를 가진 구성원들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들을 역으로, 사회에 국가에 요구하자. 실제 장애관련 단체들에서는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의 확산을 위해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며, 교육권,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등 삶에서 누려야 할 각종 기본권과 24시간 지원을 요구하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부모 단체를 비롯한 여러 장애인 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에서 요구하고 싸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 꺼풀 벗겨보면 장애는 그 자체로 총체적인 삶의 형태다. 산다는 것 자체를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특정한 의미로 정의할 수 없듯이 장애와 함께하는 삶은 마냥 힘들고 외롭고 고립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깊은 파고를 건너야만 하는 운명이라도 서로의 삶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분명히 있다는 것만큼은 어쭙잖은 양육자에 불과한 나도 전할 수 있다. SNS를 하지 않는 양육자들이 있다면 해보고, 발달장애 관련 여러 이슈들을 팔로우업 해보시라, 발달장애에 대해 연구하거나 조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도처에 있다. 네트워크를 맺을 수 있고, 심리·정서적 임파워링도 얻을 수 있다. 지역의 장애인 부모 조직을 찾아가 상담도 지원받고 활동도 해보시라. 이해받을 수 있고 함께 일궈가는 공동체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희망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무엇이든 낙관할 수 있고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상호작용해야만 삶이 온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무수한 절망들을 반복하는 것, 그러나 반복되는 절망 안에 갇히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닥쳐 있는 문제들은 절대적이지만 동시에 충분히 상대화할 수 있는 힘 역시 우리에게 있다는 것. 우리 삶을 견딜 수 있을만한 것으로 만들고 또 여러 우여곡절들을 거쳐 익숙해지는 과정 역시나 소중한 삶의 부분이라는 것. 고통 한가운데에서 무너질 때마다 내게 반복해서 외는 주문이다.부디 글을 읽는 양육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게시일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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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더믹 상황으로 인해 길었던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었다. 새학기만 되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학부모 면담에서 하셨던 이야기 중 일부분이 항상 귓가에 맴돈다. “온유같은 아이는 더 이상 좋아지는게 없잖아요”라는 이야기다.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엄마인 나는 좋은 쪽으로의 생각보다는 “왜 이렇게 이야기 하시지? 우리 아이를 얼마나 아신다고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얼마나 많이 노력하는데......이렇게 섣부른 판단으로 아이를 평가하시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두려움과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고 첫 등교를 했다. 3월의 첫 등교 후 하교 시간에 온유를 맞이하려는데 저 멀리서 보이는 온유의 모습에서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고 온유에게 조금은 덜 걱정 스런 태도로 대할 수 있었다. “엄마! 우리 선생님은 ○○○선생님이신데 너무 예쁘시고 잘 웃으셔서 좋아. 친구들도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도 있고 새로운 친구들도 있는데 ○○○는 나랑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같은 반이라서 좋아. 너무 기대가 돼.”라고 이야기하며 연신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과 입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첫날이니까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3학년이 되면서 엄마와의 독립도 자연스러워졌고 스스로 잘할 거라고 믿어 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이 지난 후에도 온유는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학교생활에 만족하며 다녔고 자주 괴롭히는 친구에게는 언어적 표현으로 단호하게 표현할 만큼 성장했다. 매일 학교생활을 즐거워했고 잘 다니고 있었지만 학년도 높아졌고 아이도 3학년이 되었으니 온유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평소처럼 자주 대화도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마음속으로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엄마: 온유가 혼자 있는 시간은 없어? 온유: 있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운동장에 나가거나 복도에서 놀면 혼자 있을 때도 있어. 엄마: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그러면 뭐하고 있어?온유: 그때는 교실에 있는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고 친구들 뭐하는지 관찰도 하고 다음 시간 교과서를 보기도 해.엄마: 그럼 외롭거나 슬프지 않아?온유: 가끔은 그런데 많이 그렇지는 않아. 다른 때는 친구들이 잘 놀아주거든. 괜찮아 이렇게 대화를 끝내고 온유가 있었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많이 외로웠겠구나, 슬펐겠구나, 속상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온유도 나름 자신의 장애를 잘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리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모둠 수업이 많았던 교과 학습 시간에서도 또래와 같은 수준으로 잘 적응하며 자신만의 필살기와 노력으로 급성장을 했다. 신체적 어려움 때문에 엄마한테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도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이였지만 학교라는 곳에서는 엄마의 개입 없이 잘 다녀 준 것에 너무 고맙고 매년 고민이고 걱정이었던 또래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놓아도 될 정도가 된 것 같았다. 4학년이 되는 것도 이젠 두렵지 않았고 겨울방학에는 미리 4학년을 준비하는 예습까지 하는 아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6년 중에 가장 좋은 꽃같은 학년이 3학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온유도 꽃처럼 예쁘고 밝고 환하게 활짝 핀 꽃처럼 잘 다닌 3학년이었다.4학년도 꽃길이길 기대하며 기다려졌다.
게시일2022-09-05
“그렇게 길게 말하지 말고 자기가 들어가서 씻는 걸 보여 줘.” “어허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고마 저리 가라!” 남편의 퉁명스런 말에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빠져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자조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샤워하겠다고 들어간 아들에게 욕실 문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말로 지시하는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가 봉변당했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아들에 대한 교육 방법을 그렇게 평가절하하는 남편이 무지해 보였다. 그리고 여태 내가 해 온 교육과 훈련 방식이 쓸데없는 걸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화도 났고 암담했다. 아들이 열 살 되던 해 남편은 직장인에서 자영업자가 되었다. 사업 준비 차 한 달여간 집에 있으면서 아들의 일상을 보고 경악했단다. 저렇게 힘든 아들을 10년간 엄마 혼자 건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 스스로에게 다짐했단다. 아들의 뒷바라지는 이제부터 남편인 자신이 하겠노라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은 주로 내가 했지만 집안에서의 신변 처리나 저지레에 대해서 남편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해주었다. 특히 씻는 것에 대해 늘 자신이 몽땅 다 해주면서 그것이 최선인 듯 생각했다. 혼자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가르치라고 해도 귓등으로 들었다. 깔끔하게 못한다는 이유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아들을 씻기고 챙겼다.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이 달라졌다. 말로 아들을 가르친다. “옴마가 니 혼자 하게 하란다, 아부지가 갈쳐 줄테니까 스스로 해바라.” 욕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래라카이, 저래라카이.’ 하면서 언성도 높아졌다. 아들은 ‘으으으!’소리내며 반항했다. 그냥 하던대로 씻겨주면 되지 왜 이러냐는 반응처럼 느껴졌다. 샤워가 끝나면 늘 중얼거리는 남편. “아이고,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내가 가긋다!” 아들의 자립을 생각하고 행동이 바뀐 남편이 대견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직접 다 해 주면 몸이 좀 고달퍼도 어렵지 않다. 아들도 힘 안들이고 사는 게 편할 수 있지만 부모가 영원히 같이 살 순 없으니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져야 타인의 지원을 덜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날들을 이어가던 중 남편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을 내가 했던 것. 그런데 돌아온 남편의 반응에 나는 절망했다. 아들 곁에서 갖은 노력하며 살았던 나의 노력을 폄하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날 저녁 서로 더 이상 말 한마디 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화가 났다. 평소의 남편답지 않은 모습에 어쩌면 그게 진심이라서 훅 튀어 나온 말 같았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자식 교육에 쓸데없는 말 하는 부모가 있을까? 여태 아들에게 내가 하는 것들이 다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고요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평소와 달리 아침 인사는 생략되었고 아들의 무의미한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아침밥을 먹고 과일과 차를 마신 후 설거지를 하려고 씽크대 앞에 섰다. “하진아, 우리 씻자. 여기 서서 아부지가 하는 거 잘 보레이.” 깜짝 놀랐다. 어제 내가 한 말을 단박에 자르더니 남편도 밤새 고민했나 보다. 남편의 말에 내 표정은 순식간에 펴져서 욕실 앞으로 달려갔다.“옷 입은 채로 서 있으라면 얘가 도망가니까 자기랑 같이 벗고 들어가서 우선 머리감는 것부터 보여 줘봐. 말은 가급적 적게 하고.”어제와 달리 남편도 밝아진 표정으로 ‘알았다’ 말하고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 감는 걸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이 신통했다. ‘따아!’라는 싫다는 의미의 말 한마디 뱉고는 바로 뛰쳐나올 것 같았는데 머리를 꼬며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설거지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같이 집을 나서며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요즘 내가 자기한테 짜증이 좀 심해진 것 같아 어젯밤에 반성했다.” 남편의 말에, “그래? 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서로 익숙해지니까 그런 건지 곰곰이 생각하니까 자기한테 미안하더라.” “연애하고 결혼한 기간이 40년 넘었으면 익숙한 게 자연스럽지 않나?”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생각해 보니까 하진이가 우리 하는 걸 따라하는 게 많았더라. 칼국수 먹을 때 숟가락에 얹어서 먹는 걸 어설프게 따라 했던 거 하며 가전제품 작동하는 것도 말로 가르쳐서 하는 것보다 우리가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게 많았더라. 그래서 자기 말대로 해 볼라고.” 운전대 잡은 손을 놓고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두 말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어. 명령하듯 이렇게 하라고 한 건 내 잘못이지. 그래도 아침에 하는 거 보니까 자긴 진짜 사람이 괜찮더라. 우리 서로 말 안하고 며칠 갈 것 같았는데 완전 기분 좋았어. 그렇지 하진아, 아빠 멋있지?” 활짝 웃으며 ‘네!’하는 아들의 표정도 밝았다. 요즘 좁은 욕실에서 부자가 아침저녁으로 샤워하는 모습이 뿌듯하다. 저러다 아빠들의 로망이라는 아들과 목욕탕 가서 등 밀어주는 것까지 할 수도 있겠다. 아들의 변화는 기쁘고 남편이 달라지는 모습은 흐뭇하다. 냉각기로 접어들 것 같았던 그 날의 일이 서로에게 성찰의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게시일2022-08-26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사법처리할 것” 마치 흉악범 잡는다는 포스터라도 내건 것 같다. 선량한 시민들을 볼모로 투쟁한다며 절박하게 싸워야 하는 사람의 상황은 1도 모를 법한 여당 대표,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치기하면서 공정한 법 처리를 요구하던 그의 언사에 숱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져도 이 사회를 운영하는 권력은 그런 이들의 손을 들어준다. 김광호 신임 서울경찰청장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사회적 장치의 부재라는 선명한 현실보다는, 권력을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며 “전장연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사법처리하겠다”는 망언만 일삼고 있다. 전철 하나 타기 위해 숱한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고, 활동지원사가 없는 밤에 불 타 죽어야 하는, 장애인들에게 닥친 사건 사고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안타까운 사연일 뿐이다. 돈 따내기 위해 싸운다는 비아냥마저 손쉽게 들린다. 그러나 예산 없이 제도를 운영할 수 없고, 그 예산을 향한 파이 경쟁으로 먼저 내몰았던 건 정부다. 충분한 복지 예산보다 부자 감세에 초점이 맞춰진 윤석열 정부 하에서 장애인들의 권리는 아랑곳없다. 그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였으니 엄벌한다"는 기조만 있을 뿐. 경찰서부터 법 위반-엄벌의 대상은 누구인가?결국 전장연의 활동가 28명이 36개의 사건으로 입건돼 경찰 출석 요구를 받고있는 상황이다. 전장연은 경찰 조사에 친절히 응했으나 문제는 경찰서 내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안 돼 있단다. 세상에 이렇게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있는가. 장애인들을 이동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꼬집는데, 바로 그 구조적인 야만들을 본인들이 행하고 있다는 것. 이는 저들이 그렇게도 외쳐대는 법치에도 반하는 일이다.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동권, 장애계 일부의 의제가 아니고 모두의 의제전장연의 투쟁은 2022년 장애인권리예산 쟁취가 주 요구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는 투쟁이기 때문에 이동권 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권,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라는 보편적 권리, 이는 발달장애인들의 의제가 될 수 없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 대한항공에서 자폐인의 탑승을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나 논란 중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몇몇 개인의 경험만 들어봐도 비일비재하게 있어 온 것들이다. 내 경우에도, 아이와 휴가철에 놀러 간 곳에서 배를 타려고 할 때에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낯설고 변화된 환경에 큰 소리로 울자 내리라는 선장의 명령을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어떠했는가. 발달장애인은 마스크를 써야만 공공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사실 발달장애인의 이동권은 훨씬 더 열악한 수준인데, 명문화되어 있진 않아도 이동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부터 실생활에서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왔을 때, 쓰기 힘들고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의 조건 자체를 제기하면서 예외 규범을 만들기는 했으나 교통 수단 이용까지 확대되지는 못 했다. 발달장애인은 예외라는 안내 방송은 하지 않아서 마스크 쓰기 힘든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들은 아예 외출을 제한하거나 자차가 있는 경우에만 이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동 수단에 대한 접근권 자체가 제한되는 배경은 결국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은 공공의 위험을 자극한다는 논리에 있고, 이는 발달장애인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는 낙인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동 수단만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 자체에서 수용되지 못하는 결과를 번번이 낳아왔다. 사실 전장연 투쟁 초기에 일부의 시선들은 전장연이 신체 장애인 중심이라며 문제 제기도 있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전장연의 투쟁은 신체장애인 중심의 투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의제의 확장을 제기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그 의제들을 더욱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당사자나 가족, 연구자 활동가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발달장애인에게 이동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내부의 공론화, “발달장애인이 공공교통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인식과 규범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의식을 사회에 던지고, 그에 기초한 캠페인들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저항과 투쟁이라는 행동들을 통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의 의제가 협소하다는 제기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요구의 연결점들을 찾고, 확장시켜내고 함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방안들을 고안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지구 끝까지 쫓아와 범죄를 묻겠다는 경찰청장에 맞서 지구 끝까지 찾아가 우리의 권리를 찾겠다는 각오를 보인 전장연,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일하며 살 권리, 존재 자체를 존중받을 권리를 위해 수많은 장애인 동지들과 활동가들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가열 차게 싸우고 있다. 현재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겐 징역 6개월의 구형이 내려진 상태다. 자신의 버스 탑승을 거부하는 버스 기사에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외치며 15분간 출발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마저 구조적으로 침해당해온 현실은 비단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만 향해 있지 않다. 나를 거부하는 공간, 내가 이용할 수 없는 공공시설, 발달장애인들도 억울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의 과거를 복기해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누군가는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한가롭게 배나 타며 여행이나 다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화를 내며 내리라고 말한 선장에게 몇 마디 던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여행할 권리가 있고 즐길 권리가 있다고”. 물론 박 대표 만큼의 일장 연설에는 자신이 없지만.
게시일2022-08-04
코로나 상황에도 2학년이 되었었어요 1학년 겨울 방학 2주 전 온유의 옆 반에서는 독감으로 반 이상 결석이 있었다. 감염 속도가 빨라서 속수무책이었지만 온유반은 5명의 친구만 독감이어서 다행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른 학년들에서도 감염이 계속되다 보니 조기 방학을 하느냐 마느냐로 어수선한 가운데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그런 와중 겨울 방학이 되었고 방학 동안 2학년 준비하며 지내는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이 시작되었고 모든 일상은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학교에서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학사 운영에 대한 변화가 시작되었고 온라인 수업과 탄력적 대면 수업이라는 새로운 매뉴얼의 학교 운영이 시작되면서 온유는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많았지만 서로 마스크를 쓰고 가림막을 하며 거리 두기가 되다 보니 친구들을 알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변화된 부분이 친구들과 선생님을 3인칭의 시점으로 관찰하는 아이로 변화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있어도 학교 운영은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중에 통합반(특수반)에서의 수업에 대한 여부를 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담임선생님께 온유의 학습과 사회성에 대해서 여쭤보았더니 코로나로 인해 온유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 한 달을 지낸 뒤 협의를 하기로 했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온유는 학교 가는 날을 아주 즐거워했고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며 학교생활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ex) OO는 무엇을 했고 OO는 어떤 말을 했고 OO는 어떤 행동을 했어. 한 달 뒤 온유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졌고 일반 학급에서만 수업하기로 했다. 일반 아이들과 하루종일 수업을 하는 게 온유에게는 좋은 부분도 많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엄마의 마음은 혹시나 아이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그런데 규정상 통합반에서 수업하지 않고 일반학급에서만 수업하게 되면 학급 재배치가 되어야 하고 통합반에서의 학적 처리는 없게 된다는 것을 학년이 마무리되고 새 학년이 될 때 알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온유는 공부도 잘 따라갔고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냈고 엄마와의 독립도 조금씩 되어 2학년을 다녔다. 1학년 때 가졌던 긴장했던 마음이 2학년이 되면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학년이 마무리되어 아쉬웠지만, 3학년을 조금 더 기대하게 되었다.
게시일2022-08-02
인기 드라마에 아는 여성이 나왔다. 캐리커쳐 작가 은혜씨였다.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로 출연한 그녀의 연기에 많은 이들이 칭찬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듯 했다. 작가 노희경이 은혜씨를 잘 이해하고 대사를 암기해서 연기하도록 했다기보다 은혜씨의 일상을 관찰하여 평소의 말투와 행동을 드라마에 녹인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발달장애인은 꾸밈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에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은혜씨의 드라마 출연은 대역이 아닌 당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장애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짚어 보자면, 은혜씨와 한지민이 김우빈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옆 테이블의 아이가 은혜씨를 자꾸 바라보며 놀리자 한지민이 꼬마의 부모에게 아이를 말려달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장애인을 놀리면 안된다’고 말한다. 장애인 앞에서 계속 장애인 언급하는 게 유쾌할 리 없다. 아이의 아빠가 밥맛 떨어진다며 화를 내고 그로 인해 양쪽 테이블 모두가 기분이 상해 있다. 엄마의 꾸지람에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던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화장실 다녀오던 은혜씨를 보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은혜씨는 아이에게 어른을, 장애인을 놀리면 안 되는 거라 말하며 넘어진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아이가 은혜씨의 손을 잡지 않고 도망가는 장면을 생각했던 나는 울컥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서는 훈훈함을 보여주는데 현실은 그렇게 금방 바뀌지 않는 걸 잘 아는 터라 그 장면이 뭉클했다. 나는 과거 아들과의 외식을 떠올렸다. 아들은 밥이 조금 늦게 나오거나 더 먹겠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이 울음이나 큰 소리로 나타나 주위의 시선을 모으곤 했다. 누구 하나 드라마처럼 대놓고 불쾌감을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우리 가족 모두가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으니 어서 나가라는 신호로 느껴졌다. 그게 싫어서 외식을 한동안 접었지만 성인이 된 아들은 이제 티 내지 않고 외식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눈총은 따갑다. 덩치가 크고 혼자 웃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가 아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기도 하고 온 몸으로 감싸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도 뭐라고 대꾸할 말은 없다. 그저 속으로 ‘잡아먹지 않아요’를 말하며 쓴 미소를 짓는 수밖에... 그 마저도 지금은 그러려니가 되어 버렸다. 드라마 장면처럼 사람들이 티 나게 그러지 않고 은근히 불쾌감을 표출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녀가 휠체어를 타거나 다운증후군일 경우는 아직도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며 혀를 차고 안됐다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본단다.내가 당한 것과 다른 방법으로 여전히 사람들은 다름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으로 외출의 불편함을 겪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인기 드라마의 은혜씨 출연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니 그녀의 출연은 세상을 바꾸는 커다란 변화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한지민을 통해 비장애자녀의 존재도 알려 주었다. 장애형제로 인한 비장애형제의 마음앓이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눈물을 쏟았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함이 있었음에도 은혜씨가 그곳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 그려지지 않고 시설로 돌아가는 점은 아쉬웠다. 탈시설을 주장하지만 한켠에선 여전히 시설을 옹호하는 현실이 드라마에서도 그려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은혜씨의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는 ‘니얼굴’은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은혜씨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 먼저 사진을 찍고 특징을 잘 찾아 쓱쓱 그리는 은혜씨의 도톰한 손이 보배스럽다. 다른 셀러들과의 자연스런 교류는 우리가 바라는 통합사회의 모습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은혜씨도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우리 아들도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자식의 인간다운 기본 삶을 보장해 달라고 단식이며 삭발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성숙한 사회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세상의 모든 은혜씨와 가족들이 차별과 배제의 늪을 벗어나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는 날을 위해 부모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게시일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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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8세의 나이로 온유는 일반 초등 학교에 입학을 했다. 처음 초등학교를 선정하기 전 집 주변의 일반 학교 4곳과 특수학교 정한 뒤 우선 전화 상담을 하고 온유와 직접 방문상담을 했다. 5곳 중 한 곳은 아동수가 작아 교육실무원이 없다고 하셔서 지체 장애 아동은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셨고 또 다른 두 곳은 특수학급이 두 학급이지만 학생 수가 많아서 지체 장애 아동이더라도 교육 실무원의 도움을 많이 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특수학교를 권유하셨다. 일반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하도록 교육청에서는 제도적 마련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고 준비가 안되어 있는 선생님들도 계셔서 엄마인 제가 먼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두 곳 특수학교와 일반학교에 상담을 드렸더니 특수학교에서는 온유의 인지 발달을 들으시곤 일반학교를 권유하셔서 마지막 남은 학교에 문의를 드리게 되었다. 그 학교에서는 온유를 직접 보기를 원하셔서 함께 방문상담을 했다. 이곳은 학교 주변 주거지역이 재정비되면서 학생 유입수로 인해 근방의 다른 부지에 학교를 새롭게 짓고 있었다. 새 학교이다보니 교실이나 복도, 엘리베이터 시설, 장애인 화장실 등 물리적 환경은 잘 준비가 되어 있었고 상담 당시 특수교육대상자가 많지 않은 장점들이 있었다. 우선 배치 대상이라서 1순위에 적고 배치가 되기를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선정이 되었고 그때부터 학교를 가기 위한 준비를 조금씩 시작했다. 학교내에서의 이동과 공부를 할 수 있는 틸팅체어와 랩보드를 책상 크기에 맞춰 준비를 했다. 그 다음은 학습을 위한 준비로 자음, 모음부터 시작하여 한글을 읽고 쓰며 국어를 익혔고 1,2,3,4.....를 시작하여 가르기, 모으기, 한자리 수 연산을 하면서 수학 공부를 했다. 입학 전 온유는 병설유치원 통합반에 다녀서 개별화 교육도 가능했지만 통합반 아이들의 장애 유형과 수준이 모두 다르다 보니 개별화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에서 학습에 대한 도움과 보충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생각하고 여러 가지 쓰기 도구, 그리기 도구를 사용하여 글씨도 쓰고 그리기도 해보았고 숟가락, 포크를 사용하여 스스로 밥 먹기도 연습하며 학교에 입학을 했다. 유치원에서 3년 동안 통합수업을 경험했고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또래와는 잘 지낼 수 있었지만 학습은 또래들의 선행학습으로 인한 학습격차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언어 발달이나 인지 발달은 또래 수준이었지만 조금씩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학습에 대한 부담을 스스로 느꼈고 수행속도에서도 늦은 온유는 속상해하거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1학기를 보내고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온유와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를 나누고 학습적인 부분도 온유와 고민을 하며 방학을 보냈더니 2학기가 되어서 담임 선생님이 “온유한테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많이 자라서 왔어요”라고 이야기 하셨고 학교 생활을 1학기와는 다른 마음으로 조금은 편안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다.(온유는 통합학급에서 수업을 하지 않고 일반 학급에서만 수업을 함) 친구들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공부도 잘 따라가며 1학년을 마무리했다. 1학년을 마무리 하기 전 겨울 방학 때 온유는 2학년 공부를 스스로 했고 알고자 하는 의지와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많아져서 2학년을 준비하는 온유로 성장하였다. 1년 동안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겪으면서 온유도 엄마인 나도 많은 성장이 있었다. 2학년이 기대된다는 온유로 인해 엄마와 온유는 “화이팅”을 외치며 1학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게시일2022-07-19
꼭 배우려고 했는데 배우지 못했던 것이 있다. 수영, 숨을 꼭 참고 물 속에 들어가는 일이 여간 생경한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깊은 물에 대한 공포가 있었기에 물 속에 얼굴을 담그는 게 전혀 안 됐었다. 물 밖에서와 비교했을 때 현격히 달라지는 몸짓, 눈코입귀 모든 곳을 열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 공황장애라는 게 이런 걸까 싶기도 했다. 호흡을 배우면, 물 속에서의 몸 동작을 익혀 가면 그만큼 상쾌한 느낌을 주는 운동도 없거늘, 두려움을 안고 수영장으로 향한지 몇 달째지만 아직도 나는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근원적 공포감 같은 게 맴돈다. 숨 쉬고 내뱉는 건 기본인 건데, 이 기본조차도 힘들어하는 일종의 자기 열등감, 이게 수영을 배우는 데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나와 함께 사는 어린이가 세상에 대해 갖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증의 지적장애라는 진단,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수단들이 발달되지 않은 것, 무엇이든 ‘기본’으로 불리어왔던 것들이 하기 어려운 것이 되는 것. 10년을 함께 살았지만 아이가 행하는 반응들의 한켠에는 늘 당혹스러움이 있다. 고도로 발달된 인간들의 사회에서‘만’ 살아왔던 나는 마치 깊은 물 속에서 아이를 끌고 가는 사람처럼 무력해져 있었다. 나는 ‘장애’ 하면 이동권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동권도 4월 20일 같은 어떤 날들만 기념해 외쳐지는 것, 내가 일상에서 겪는 것은 아니니까. 장애는 불편이라는 키워드로 고정돼 있었고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니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이 정도 이상의 간절함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발달한다고 하는데, 그 발달에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양육하며 살아가는 일은 일시적 경험들을 넘어 평생의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책에서 배운 어떤 논리적 정합성에 있지 않은, 내가 내 삶에서 겪고 부딪히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억압이고 이를 바꿔나가야 할 책무가 꽤 무겁게 생긴 셈이다. 장애가 사회가 만드는 장벽이라면 장애라 규정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장애를 부딪히고 겪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이 ‘장애’로 환원되는 것, 나 역시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두고 매번 고민하며 살아간다. 언젠가부터 발달장애인을 다루는 대중 매체들의 서사는 보지 않게 되는데, 어차피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는 잘 묘사해봤자 인간의 단면만 보여줄 수 있을 뿐, 발달장애의 낯설거나 비규범적인 모습들을 특징 삼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한 매체들은 사실 어떻게 그릴지가 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오는 장애인들은 단 하나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걸치고 있다. 어쩌다 한번씩 그려지는 자폐 장애인들도 어떤 면에서는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고발하는 측면에서는 꽤 긍정적인 코멘트들이 오고 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장애와 능력을 구분하여 드라마가 우영우의 장애보다 능력을 더 보여주고 있어 뛰어나다고 일갈한 어떤 법조인의 드라마 비평에서는 멈칫하게 된다. 대체 장애와 능력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아이의 장애를 알고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이 장차현실 씨의 그림책이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은혜 씨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하여, 차별을 인지하지만 담담하게 그리고 재치 있게 그려지는 일상들, 나도 아이에게 저런 그림을 그려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했었다. 어느덧 화가로 성장한 은혜 씨가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와서 그리는 얼굴들을 보고, 참 저 능력도 타고나나보다 싶더라. 장애도, 능력도 다 타고나는 것이라면 대체 어느 지점에서 분리가 될까. 장애인이 그린 그림이라 특별한 것인가? 장애인이 변호사라 특별한 것인가? 사람이 가진 특성들에 위계를 두었다면, 대체 그 위계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도, 어떤 자료들을 보고 해석하고 공부해서 그런 것들을 토대로 누군가를 대변하는 ‘상당히 복합적으로 보이는’ 능력도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특성 중 하나다. 내게는 사실 다운증후군이나 자폐 장애를 가진 이들도 고유의 능력들이 많이 보인다. 다운증후군은 모습이 다르다. 자폐 성향 장애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들 중 어떤 것들은 상당히 뛰어나다. 이것이 ‘장애’라 불려왔던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다른 모습들과 어떻게 다른가. 같은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여러 모습들일 뿐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능력을 중심에 둔 이 사회는 둘 사이에 위계를 둔다. 장애와 구분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져야 하기에, 그래야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이라는 서사에 더 부합하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하려는 정상성에 균열을 내는 듯 하지만, 다시금 그 정상성은 더 공고해진다. 장애는 대단한 결점으로 이와 대조되는 능력은 엄청난 장점으로, 양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인간성을 정의하는 데에 늘 장애는 그런 식이었다. 운동 영역에 진출한 발달장애인들 중에 특히 수영선수들이 많다고 들었다. 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곳에서 어떻게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능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규범에 젖은 우리들은 장애를 사고할 때 늘 ‘불가능성’에 부딪힌다. 숨 쉴 수 없는 물 속에서 모든 저항을 뚫고 나가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외려 적응했을 때 그 공간들을 더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장애를 사고할 때에도 그런 발상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존재의 차이가 별다른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을 크게 만드는 어떤 기제들이 있을 뿐이라는 것. 때로 장애는 사회의 요구에 조응하기도 한다는 것 말이다. 사람들과 규범에 따라 소통하기 힘들고, 자극의 강도를 다르게 느끼고,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상성들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다를’뿐이라는 인식, 이러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데에는 생각의 전환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다르게 살아나갈 수 있는 나름의 방식, 방안, 대책들을 강구하는 건 몸으로 부딪혀서 오는 경험이다. 뼈아프다. 현현한 고통들을 동반한다. 그러한 고통들을 함께 견뎌내는 것 또한 사회의 몫이라는 것, 극도의 배제 속에서 차별받아 온 집단들에게, 결국 그 차별들을 일소해나갈 수 있는 힘도 사회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내게 우연히 온 아이의 장애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한 편으로 사회를 주체적으로 해석해내는, 다르게 보고 다른 대안들을 강구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되고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장애가 단지 치명적인 약점이나 결점만이 아니라 그러한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게시일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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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영되었던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 난다.영옥과 해녀 삼촌의 대화 중 “내 손지도 좀 경해, 다들 말을 안해 그렇지 너영 나영 마냥 아니고 그런 집 서너 집 걸러 하나라 그 별거 아니라” 라는 대화가 나온다. 영옥의 동생이 다운중후군이라는 장애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제 아이(온유)를 키우면서 매번 경험했던 상황이라 많은 공감을 하면 보게 되었다. 지금 현재 11살 남자아이이고 지체 장애인이다. 현재 일반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고 일반학급으로 배치되어 생활하고 있다.태어날 때 뇌손상이나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만삭아로 정상분만을 했다. 6개월까지 정상 발달을 했지만 이후부터 발달이 더디고 18개월까지 보행이 되지 않아서 발달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발달지연으로 재활 치료를 시작했고 치료를 하면서도 변화가 발달지연보다는 “장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9개월부터 “재활”이라는 치료를 시작하면서 생활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알지 못했던 부분들은 검색도 하고 상담도 하며 치료실 학부모님들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19개월부터 시작한 재활치료는 다른 아이들이 시작한 것에 비해서 늦은 부분이 있다고 느껴 매일 2~3개의 치료실을 다니면서 영아기의 시기를 보냈다.그러다 24개월부터 시작한 언어치료가 1년 6개월만에 정상 범주 안에 들어왔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가정순회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청에 특수교육대상자로 신청을 하고 검사와 면담을 통해 선정이 되어 순회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아이가 어리고 언어로 전달이 잘 되지 않아서 제 아이지만 어느 정도의 인지 수준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순회 선생님이 처음 평가를 하신 뒤 이야기를 나누는데 생각보다 제 아이는 인지도 괜찮았고 집중을 잘하는 아이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후 바로 순회교육을 주 2회 2시간씩 수업을 했는데 그동안 치료실만 다니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만지면서 오감 자극을 많이 하다 보니 아이가 많이 즐거워했고 선생님과 헤어지면서 울기까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일 재활치료실을 다니던 스케쥴을 모두 수정하고 아이에게도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재활치료도 병행했다.영아기를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은 다르게 지내다 보니 또래와의 사회성과 상호작용도 부족한 것 같아서 고민을 하던 때 순회교육 선생님이 5세가 되면 병설유치원 통합반(특수반)으로 입학을 권유하셔서 주변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알아보고 지원하여 다니게 될 수 있었다. 첫 사회 생활이었고 엄마와 처음 떨어지는 시간이어서 걱정도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이는 잘 적응하였고 또래와의 어울림으로 인해 래와의 상호작용, 외부환경 자극, 선생님의 언어 자극, 다양한 활동으로 신체를 제외한 다른 부분들은 많이 발달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거나 의견을 나누는 부분,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부분들이 발달 되면서 재활치료에서도 더디게만 가던 시간들이 조금씩 달라졌다.영아기때는 치료에 집중을 했지만 유아기부터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치료의 양보다 질에 좀 더 집중을 했더니 움직임도 많아지고 다양하게 움직이는 아이로 변화되었다.하지만 선생님들이 장애에 유형은 알고 계셨지만 유형별 특징과 아이들의 개별화 교육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아이가 유아기를 지나 학령전기에 들어가면서 경험해야 할 부분도 해나가야 할 부분이 유치원에서 채워지지 않은 것은 가정에서 채워나가면서 3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되면서 많이 낙담하고 방법을 몰라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주 양육자가 아이의 발달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했고 시기에 맞게 적절한 치료와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어려움도 많이 있지만 하나씩 상황에 맞게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게시일2022-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