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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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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이 게시판은 보다센터에서 초대한 각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소박하지만 통렬한 이야기와도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게시물 총 35

  • 부디 좋은 해 맞으소서   1. 영화를 보는 가장 행복한 때   예전에 어떤 강의를 듣는데 강사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나는 그 때 근사하게 대답하려고(그리고 진심도 어느 정도 담아서) ‘삶의 모든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강사는 멋있는 대답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고 나서 곧 후회했다. 행복한 순간과 덜 행복한 순간을 뭉뚱그려서 한 몫에 대답을 해버렸으니, 특별히 호명되지 못한 진짜 행복한 순간들은 얼마나 섭섭했으랴,   그래서 그 때 진짜로 나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는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홀로 오전에 조조영화를 볼 때라는 걸 알았다. 우리집 근처엔 빌딩 12층에 근사한 작은 극장이 하나 있고, 거기 상영관이 두 개(0관과 1관) 있는데, 이른바 예술영화니 저예산영화니 하는 영화들을 튼다. 무엇보다 야외로 트인 넓은 베란다에 나서면(처음엔 완전 야외라 바람이 휘몰아쳤는데 지금은 유리온실처럼 유리벽을 만들었다) 관악산이 한 스크린에 담긴 듯 보였다. 스크린 위쪽은 멀리 산이 가득 차 있고, 스크린 아래쪽은 도시의 불빛이 뿌려져 있는 기막힌 전망을 가진 이 베란다에는, 세월호 리본으로 겹겹이 치장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이는가 하면 작은 영화행사 같은 것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0관은, 영화가 끝나면 한쪽 벽면 전체를 덮고 있던 커튼이 웅~, 하고 올라가면서 전면 유리벽이 드러나는데, 그쪽으로는 그 영화관 건물만큼 높은 빌딩들이 엎어서 멀리 언덕 위의 아파트에게까지 이어지는 너른 벌판처럼 보이는 풍광이 참 근사하다. 무엇보다도 그 유리벽은 서쪽을 향해 트여 있어서 오전에는 경사진 빛이 뿌옇게 도달해서 몽환적이고, 혹시라도 저녁때쯤 끝나는 영화를 볼라치면 영화의 여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서쪽 스크린에 펼쳐지는 기가막힌 도시의 노을에 압도당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그대로 앉아서 도시의 풍경을 또하나의 스크린으로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은 아마도 그 영화관뿐일 게다. 때론 말도못하게 이상하게 사무치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또 멀리 보이는 관악산을 조망하며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는 비로소 먼지 낀 세상 속으로 내려가는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전까지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다음에 또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바깥 풍경이 좋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는 두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바로 대답해줄 것이다. 수십, 수백명의 스텝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영화를 아름다운 공간에서 편안히 누리는 이 호사는, 행복이라고 말하기에도 넘친다.   2. ‘멜랑꼴리아’의 깊은 우울   앞수다가 길어졌다. 그 곳에서 봤던 한 영화 얘기로 시작하려다 사랑하는 공간과 거기서 보낸 시간을 길게 떠올렸다. 올해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한 아쉬움이 컸나보다.(뭐든 미련이 남으면 쓸데없이 말만 길어지는 법이다.)   몇 년 전에 ‘멜랑꼴리아’라는 영화를 봤다. 2012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무거운, 깊은, 우울한, 깊숙이 가라앉는, 우울이 사무치는 영화다. 우울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모두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권한다. 나도 그 때 제법, 상당히 우울했으므로 이 영화를 봤고, 그리고 그 때 알았다. 우울은 ‘연민’과 닿아있고, 인류는 그 연민의 연대,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멀리서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데,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인류는 그저 한 달 뒤쯤으로 계산된 그 시각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된다. 그걸 앞두고 벌어지는 세상의 혼란 속에서 오직 평소 깊은 우울에 빠져있던 주인공만이 처연하게 침착하다. 모든 우울은 시간의 상실과, 존재의 고독과,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차서 바야흐로 침잠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니, 본질적으로 그러한 종말에 처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달리 호들갑을 떨거나 생떼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나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찌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상황을 반전시킬 무엇이 없을 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어찌 할 것인가는 쉽게 답이 나왔다. 그런데 남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초기 혼란이 빨리 수습되고, 인류가 품위있게 종말을 맞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왕 벗어날 수 없는 파국이라면, 이 우주 안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지라도, 좀 품위있게 인류의 역사를 마치자, 이런 생각을 했다.   3. 새로운 것의 시작일까   오래 묵은 영화까지 들먹인 이유는, 2020년을 덮친 코로나19 때문이다. 꼬박 일년을 코로나19 뉴스를 보면서 살았다. 이것이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이렇게 길게 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았을테고, 우리는 미증유의 사태에 그야말로 일년 내내 휘둘렸다.   바이러스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허점을 드러내고, 인류란 게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스스로 드러내게 했다. 생물분류학상 단일종인 인간은, 한 인간에게 치명적인 어떤 것은 바로 77억 모두에게 치명적이라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존재다. 분명히 한 개의 변종 바이러스로 시작되었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지구적 재앙이 되어 인류를 위협했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나온다고 하니, 어떻게든 이 겨울을 무사히 넘겨서 내년 봄과 여름을 맞아야 할텐데, 우리들에게 다가와 있는 거대한 우울한 질문은 그 다음이다. 백신이 나오면 끝이 날까. 백신도 듣지 않는 변종이 나오면 어찌 될까. 우리는 살면서 이 난리를 얼마나 자주 겪게 될까. 결국 우리는 소행성이 닥쳐오기 전에, 핵으로 서로를 폭파시키기 전에, 마이크로 수준의 이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멸종할까. 요컨대 올해의 이 난리가 그저 힘겹게 넘어가는 고비일지,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 어두운 것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전에 철학과 관련된 책을 쓰고는 이곳저곳 그것과 관련한 강의를 다닌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인류의 종말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류가 파국을 맞을 몇 가지 상황을 들어보곤 했는데, 그 때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위협으로 지목된 것이 바이러스의 위협이었다. 그러면 그 다음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정확히는 어떻게 종말을 맞을 것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강의를 통해 알았다. 처음엔 혼란스럽겠지만 곧 받아들이고 침착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거나, 조용히 홀로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남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일년 내내 코로나19 상황이 만든 우울 속에 있으면서, 이 거대한 우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했을까. 나는 영화 ‘멜랑꼴리아’를 보고나서 얻은 결론, 인류는 생명에 대한 연민, 그 연민의 연대, 오직 그것뿐 다른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한번뿐이고, 그나마 유한한 삶을 살다가 소멸하는 모든 생명 존재는 그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연민해야 한다. 그 안에서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고 대접하고, 누구나 누리는 것이 엇비슷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나이 먹고 늙어갈 때는 누구나 엇비슷한 수준의 삶을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사는 데 힘들었던 조건이었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그런 대접이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것을 맘껏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그래, 맞다. 평등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누구나 자신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더 불리하게 살지 않는 사회, 그러한 평등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본질적인 연민과 연대의식으로 이뤄내려는 사회이니까.   코로나19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는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바로 사회적 환경, 공공의 시간, 공공의 공간이 필요한 이들이었음이 이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공공의 시간과 장소가 부족해진 발달장애인이 겪은 어려움이란 호소는 일년 내내 외친 주제였다. 더불어 그동안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어떠한 공적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었던가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되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올 한 해가 어땠는지 꼼꼼히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엄마, 어떤 가족, 어떤 이웃이 될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이 되고 싶어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소멸하게 되는 시점에서는 서로의 몸뚱이를 부둥켜 끌어안고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테니까 말이다, 그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소리이다. * 덧붙이는 흰소리... 2020년을 그냥 없었던 해로 치고, 올해 12월 31일 자정을 넘기면서 다시 2020을 시작하면 안 될까. 나이도 한 살 되돌리기 하고. 인류 모두가 한 살 묵혀서 다시 시작. 그냥 2020년은 연습삼아 살았던 해로 치고, 다시 시작, 이건 안 될까. 한 해를 이렇게 보냈다는 게 못내 억울해서 하는 말이다. 이만 총총. 모두 좋은 해, 맞으소서~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게시일2020-12-28

  • ‘변신’과 ‘아무튼 아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자신의 몸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다?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다 보면 허무맹랑한 픽션이 아니라 벌레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배척하고 폭행하고 언어폭력을 일삼는 비정한 사회를 엿보게 된다.벌레로 외모가 바뀌었지만 남자는 가족들과 소통하고자 안간힘을 쓰는데도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에 그가 사라져 주기만을 바랄 뿐 남자에게 아무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어느 날 내게 닥친 불행을 가족조차 감싸주지 않는데 사회에 소리쳐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겠지만 이제는 소리 내야 한다. 장애의 책임은 가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하기 때문에 있는 힘껏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영화 ‘아무튼 아담’을 보면서 나는 소설 ‘변신’을 떠올렸다.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더 실감나면서도 아담을 둘러싼 인적 자원들의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100여 년 전에 쓰여 진 것이지만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여전히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무시와 배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아담은 자신의 승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술을 마신 채 호기롭게 호수로 뛰어 들어가던 중에 목뼈 부상으로 사지마비 장애를 입는다. 그 앞 장면에서 담 위에 올라가 승진을 발표하며 들떠 있던 아담이 아래로 떨어질 때의 복선은 아찔하다. 삶을 포기하려고 그 호숫가로 가지만 아담은 새로운 다짐으로 일상에 복귀한다. 그를 지원하는 치료사와 경제적으로 궁핍함에도 항상 미소 띤 표정의 형, 무조건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어떤 도움을 줄지 살피는 부모님은 그의 커다란 인적 자원이었다. 자립을 말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립과 독립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포함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그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발달장애국가책임제를 선언했지만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요즘의 코로나19 사태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자가격리로 외출이 단절된 상황에서 활동량 많은 자폐인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마스크를 끼지 못해 집에서만 있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모가 집에서만 있으면서 마스크를 끼게 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이 분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해야 가정에서의 교육도 이루어질 수 있다.나 역시 자폐성장애인 성인 아들이 집에만 있을 때 6개월 동안 마스크 끼는 걸 시도도 못했다. 거부부터 해버리니 강제로 하게 할 순 없었는데 센터에 나가면서 1분씩 끼면서 시간을 늘려나갔더니 지금은 목에 걸고 다니며 수시로 하는 걸 그리 힘들어 하지 않는다. 모든 기관들이 이 난국에 비대면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주면 좋겠다.   영화 보는 동안 산발적인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실물 사진으로 그의 아내와 딸을 보니 내가 느낀 안타까움마저 미안할 지경이었다. 누가 누굴 함부로 안쓰러워하고 동정할 일은 절대 아닌 것이다. ‘변신’의 주인공처럼 더 이상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아무튼 아담’처럼 이 세상의 많은 아담들이 용기를 가지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할 것 이다.    

    게시일2020-12-24

  • 숙식 제공, 장애인 인권침해 면죄부여선 안돼!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 8회 시청 소회 ‘오! 삼광빌라!’의 한 장면으로 우재희(우측, 이장우 분)가 아버지 우정후(좌측, 정보석 분)에게 어머니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모습 ⓒKBS드라마 캡처   필자가 요즘 ‘오! 삼광빌라!’라는 주말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다. 서로 남이었던 이들이 이순정(전인화 분)의 집밥을 통해 마음을 열면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는 신개념 왁자지껄 드라마라고 한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 일일드라마나 저녁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 들어있어 약간은 식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정후(정보석 분)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눈을 띨 수 없게 만들며, 주말드라마에 재미를 주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 필자가 언급하고 싶은 장면이 8회에 있었는데, 이 장면을 보다가 문득 눈여겨보게 되는 말이 있어, 한번 이야기해보겠다.   그 전에, 우정후라는 등장인물부터 말하겠다. 그는 대기업 회장으로 기업인수의 메시라고 불리는 캐릭터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자라면서 가족 생계를 먹여 살리다시피했고, 그 여파 때문인지 근검절약하는 정신이 몸에 베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지나친 나머지, 슈퍼꼰대 짠돌이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불통꾼이고, 아내인 정민재(진경 분)와 아들 우재희(이장우 분)에게 근검절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극강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꼰대 캐릭터다. 심지어 아내 민재에겐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기보단 피고용인으로 생각하며, 하녀 부리듯이 막 대했다.   이런 우정후 성격에 어머니를 살갑게 대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아들과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했고. 이런 아버지가 싫어 아들은 집을 뛰쳐나갔다. 게다가 아내도 아들이 사준 마카롱을 몰래 먹다 우정후에게 들킨 끝에 경기를 일으키며 응급실로 실려 간다. 이 때문에 아내는 남편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고 느끼고 이혼을 결심하며 우정후에게 이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배경에서 필자가 말하려는 장면이 시작된다. 재희는 이혼을 결심한 민재에게 사과하라고 우정후에게 요구한다. 우정후는 집안일을 안 맡으려는 정민재가 직무유기라며, 그녀가 사과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민재가 주부와 아내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말했다고 재희는 얘기했다.   우정후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겠다며 주부 그만 두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사람이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지!’라고 재희의 신경을 자극한다. 재희는 ‘먹여주고 입혀주고?’라는 물음표를 던지며 엄마를 가정부로 들이면서 덤으로 자신까지 낳았냐고 아버지에게 따진다. 이런 그를 우정후는 화내며 못마땅해 한다.   곧바로 재희는 다혈질이며 고집불통인 아버지랑 살면서 엄마는 아버지와 똑같은 성격의 시부모님을 모시며 모진 시집살이 다 견디고, 우정후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하면서 결혼까지 시키고 집안 대소사 다 챙기는 등 온갖 궂은 일을 했지만, 매번 트집 잡는 아버지 때문에 응급실까지 실려갔다고 말했다.   재희의 말에 우정후는 정민재에게 결혼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알고서도 그녀가 결혼생활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이 말에 재희는 아버지를 좋아할 수 없다며 엄마에게 뻔뻔하면서 반성도 없으시냐고 아버지를 몰아붙인다. 그러자 우정후는 결혼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자 재희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것이고 자신을 자식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지 않냐고 아버지에게 다시 따진다. 이 말을 들은 우정후는 재희를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라며, 재희에게 많은 돈으로 정성을 쏟아부었고, 현재 사업하다 말아먹은 재희가 결국엔 우정후에게 돈 달라고 빌빌거릴 것이라며 재희의 신경을 또 건드린다.   결국 재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해할 거란 생각이 잘못됐음을 느끼고, 아버지 우정후에게 유산포기각서를 썼다. 다시는 아버지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며 아버지와의 연을 끊는다. 재희는 아버지 집을 나가고 이후 우정후는 각서를 찢으며 화를 낸다.3년 전 10월, 염전노예사건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후 항소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대책위 모습 ⓒ에이블뉴스DB   이 장면을 보며, 우정후가 자신의 일엔 열심이지만, 아내 정민재와 아들 우재희에게 가부장적으로, 권위주의적으로 차갑게 대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사람 앞에선 아무리 사랑이 많아도 인간인 이상 결국 이혼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본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이 장면에서 필자가 눈여겨보게 되는 말이 있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사람이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지!’   이 말은 숙식만 제공하면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등의 인권이 침해되어도, 그냥 군소리 말고 가만히 집에서 일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장애인 인권침해 관련 사법부의 판결과도 연관된다.   특히 염전노예와 같이 지적장애를 악용한 현대판 노예사건에서 사법부는 가해자들이 지적장애인 등의 피해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음을 참작해 돌봐주는 관계지, 근로관계로 보지 않으며, 집행유예나 징역 1년 등의 약한 솜방망이 처벌로 대신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염전 등에서 일한 장애인은 숙식을 제공받았지만, 노동력을 주었는데도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구타와 폭력을 당하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탈출하고 싶어도, 주민들과 경찰들은 피해자들을 다시 염전 등으로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염전 등에서 일한 시간 동안 장애인들은 물질적,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받았고, 인권은 유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숙식을 제공했다고 피해자에게 가한 죄에 대해 집행유예로 선고하는 사법부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면죄부를 주기에, 축사노예나 농장노예 등의 현대판 노예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사법부가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무지하며, 설령 권리교육을 받아도 일회성에 그치는 것에 한 요인이 있다고 본다. 사법부에서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하도 아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사법부 내에 장애인권리협약과 장차법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이를 실제 사례와 연결시켜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에 피드백 받는 방식으로 장기적으로 시스템이 가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 학대는 범죄라는 인식을 사법부에 장기적으로 깊게 심어주어야 하며, 사법부는 권위주의적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을 침해했지만, 숙식 제공했다고 면죄부 주는 이런 행태가 다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지적장애인 등의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인권침해에 강력히 대응하는 힘을 키우도록 장애인의 권리와 자기옹호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정부와 지자체에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고 본다.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지적장애인 등의 장애인의 경험과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숙식제공을 했다고 인권침해의 면죄부를 주는 것에 대한민국 사회가 ‘No’라고 외치며, 가해자들에게 마땅한 일벌백계를 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인격의 주체로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이뤄가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길.   

    게시일2020-12-24

  • 겁 많은 아들   성인이 된 아들의 손발톱을 아직도 엄마가 깎아 준다. 어쩌면 평생 누군가가 해줘야 할지도 모를 일인데 내가 없으면 누가 이걸 해주나 생각하면 암울하다. 살갗을 자를까봐 엄청 긴장하지만 아들은 손과 발을 엄마한테 맡기고 편안하게 있는 걸 보면 엄마에 대한 신뢰가 높긴 한가보다.   그런 아들 발톱을 깎다가 오늘은 실수로 살갗을 잘랐다. 아들이 깜짝 놀라며 발을 뺐고 순간 빨간 피가 불쑥 올라오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미안하다며 밴드를 붙여주니 몸에 뭐라도 붙이는 걸 또 견디지 못하는 아들은 바로 떼서는 꼬깃꼬깃 해버려서 계속 피가 났다. 겨우 진정해서 피를 멎게 한 후 나머지를 마저 깎으려고 발을 잡으니 세상에나~ 얼마나 긴장했는지 발에 땀이 나서 미끌거렸다. 너무 미안해서 발을 주물러 주다가 조금 후에 마무리를 하고 보니 잔뜩 겁에 질린 아들 표정이 좀 풀어졌다.   아들은 겁이 많다. 펄쩍펄쩍 뛰는 걸 즐기면서도 자신의 안전에 신경을 쓰는 게 보인다. 어찌 보면 다행이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겁나서 하지 못하는 일이 많으니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 등은 안하고도 살 수 있지만 병원을 무서워하니 어딘가 아플 때 정말 난감하다. 운동하다가 발을 다쳐 엑스레이를 찍으려고 병원에 갔으나 결국 찍지 못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꼼짝을 않으니 그 큰 덩치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설사 기계 앞으로 데려간들 움직이지 않아야 촬영이 가능한데 그건 불가능하니... 결국 부어오른 발은 약을 바르고 압박붕대로 싸고 집에서 지내면서 나았다.내성발톱 때문에 살점이 발톱위로 자라났지만 그것을 수술하는 건 불가능했다. 의사선생님이 도로변에까지 나와 아들 발톱을 진찰하셨고 결국 항생제를 먹고 소독을 하면서 한 달여간 집에서 치료했다. 발톱위의 살갗이 까맣게 변해서 떨어져 나가는 걸 보고 이런 게 나는 작은 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싫은 건 끝까지 싫으니 앞으로 더 큰 일이 발생하면 걱정이 태산이긴 하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쓰기도 정말 힘들었다. 마스크를 목에 걸고 썼다 벗었다 반복하며 겨우 지내고 있지만 불안하다. 혹여 코로나19 접촉자로 검사라도 받게 되는 날이 오면 어쩌나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다 보면 하늘이 노랗다. 검사조차 받을 수 없는 겁 많은 아들에게 검사하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아들은 아마 공포 그 자체일 것 같다.아들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무섭고 험하다. 겁 많은 아들이 겁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라는 건 무리지만 그럼에도 우선은 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좋겠다. 마스크라도 안하고 살 수 있게 된다면 아들을 포함한 마스크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 그런 세상 되기 위해서는 지금 개인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겠다.아들과의 외출은 가급적 인적 드문 곳으로 가는 걸로 그나마 위안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걱정이다. 평소에도 재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사람들의 삶이 더 많은 관심으로 삶이 더 침울해지지 않도록 국가적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길 바란다. 

    게시일2020-12-01

  • 수목원 나들이   남편 출장길을 아들과 함께 동행 했다. 거래처에서 남편이 업무 보는 사이 나와 아들은 수목원 여기저기를 무작정 걸었다. 저 앞에서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건장한 청년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서 아들의 향기가 풍겼기 때문에 그가 눈치 채지 않게 바라보니 역시 그는 나의 시선쯤은 무시하고 땅을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청년 뒤로 커브 길을 돌아오는 두 남녀가 청년의 부모인 듯 보였다.근처로 이사를 왔는지 그들의 집에서 15분 정도의 거리니 이곳을 자주 와야 겠다며 수목원이 참 좋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와 거리를 두고 오는 우리 아들에게서 그들도 자기 아들과 같은 향기를 느꼈는지 힐끗 보더니 그냥 지나쳐 내려갔다.   수목원은 군데군데 습지가 많고 데크길이 잘 되어 있어 산책하기 참 좋았다.지나치게 인위적이지도 않고 산책로가 유난히 많아서, 그다지 많지는 않았던 방문객들이 겹치지 않아 좋았다. 긴 시간 걷다보니 걸은 곳을 또 걷게 되어도 참 좋았고, 곳곳에 마련된 쉼터가 먹거리를 준비해 오면 좋겠단 생각을 가지게 했다. 흰 구름 두둥실 떠다니는 높고 푸른 가을하늘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배가 시켰고 어미 따라 쪼르르 뒤를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들의 행진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거닐다가 다른 길로 돌아 나오면서 다시 대면한 아까의 그 청년.여전히 패트병이 손에 쥐어져 있었고, 우리 아들도 점심 식사 후 내가 마신 커피 캔과 자신이 마신 패트병을 들고 손장난을 하며 걷고 있었다.눈이 커지면서 아들을 계속 바라보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귓속말로 뭐라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바로 그 여자도 우리 아들을 뚫어져라 바라 보았다. 먼 발치서 본 그 모습들이 나는 너무 우스웠지만 불쾌하진 않았다.장애자녀와 함께 사는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서 그런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우선 반갑다. 임신 중일 때는 배부른 여성을 보면 반가웠고, 아기를 안고 다닐 땐 아기 안은 엄마를 보면 반가웠듯이 지금은 장애인, 그것도 자폐인을 보면 먼저 반가움이 앞선다.'아이고~ 아저씨~~우리 아들 얼굴 뚫어지긋다요, 고만 보이소~‘나는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들도 우리 아들이 반가웠나 보았다. 신기해서 힐끗거리거나 기분 나쁘게 아래위 훑어볼 때는 사실 언짢을 수 있는데 서로를 아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이런 행동이 반갑기까지 하다. 이것이 동병상련인가?3시간 넘는 시간을 아들과 함께 사진으로 풍경을 담고 벤치에 앉아 하늘과 습지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즐긴 하루였다. 불평 한마디 없이 엄마를 잘 호위해 준 아들이 고맙다. 어디론가 뛰어갔다가 혼자 시간을 잠시 즐기고 왔던 아들이 이제 제법 든든하다. 어딜 가든 남의 시선 강탈하는 행동 없이 우리만의 시간을 즐길 줄 하는 아들과의 동행이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싶다. 

    게시일2020-12-01

  • 장애인권리협약 1차 국가보고서 심의 전 민간단체에서 장애인 권리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사이드이벤트 장면 ⓒ유엔인권정책센터   보고서의 맡은 부분 작성을 6년 전에 마치고, NGO보고서연대 민간대표 일원으로 제네바에서 열린 장애인권리협약 제1차 국가심의에 참석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권리협약 국가보고관인 몬티안 분탄과 에다 마이너 위원에게 지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부재 및 부양의무제 폐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로비했던 기억이 난다.   연대 구성원들이 로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줬고, 이후 함께 이슈를 말하면서 서로의 관심사를 알아가게 되었다. 국가의 답변에 함께 대처하며, 밤새기도 했고, 그런 와중에 끈끈한 정이 조금씩 생겨났다. 제네바에서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연대란 이런 것임을 몸소 느꼈다.   2014년 10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권고가 나왔다. 장애인 방송권과 접근 가능한 정보 제공 기준에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점과 사실상의 부양의무제 폐지에 관한 권고를 얻어낸 점은 나름대로 보람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필자가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관심사가 한정되어서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 인권침해 관련 권고는 나오지 않았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그때의 아쉬움을 이번에 활동하는 권리협약 NGO연대에서 풀고 싶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인권침해 관련 권고는 반드시 나오도록 보고서 활동을 하겠다고 말이다.   연대 활동 하면서, 제네바 민간대표단으로 참여하면서, 필자는 장애계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활동가들과 인사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필자와 함께 소통하며 정들게 된 사람이 몇몇 생겼고, 특히 제네바에서 만났던 한 활동가와는 지금까지 카톡을 서로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 활동가와는 지금도 NGO연대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 도움 덕에 보고서 작성과 연대 활동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장애인 건강권에 대한 현실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건 물론, 이외에 연대 내의 다른 단체들과의 소통을 통해 노동, 인권, 사법권 현실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함께 소통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장애인 인권 현실을 알게 되어 인권증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이 나로선 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 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이었다. 그런 소득을 얻기까지의 경험이 지금 NGO연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게 되는 동기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앞으로는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권리의 주체로 다른 사람들과 당당히 어울려 살아가는 게 현실로 다가오는 그 날을 위해서 말이다. 

    게시일2020-10-23

  • 권리협약 NGO보고서 연대활동을 회상하며소통 관계 형성, 장애인권 증진에 대한 고민 계기 가져 2013년 5월, 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의 효과적 작성을 위한 워크숍 당시의 모습 ⓒ유엔인권정책센터   필자가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라는 직장에 다닐 때였다.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작업을 하던 와중에, 민간단체에서 장애인권리협약 민간보고서 작성과 관련한 교육을 한다는 보도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었다. 권리협약 각 조항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아는 것은 물론, 알기 쉬운 권리협약 제작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소장님과 논의한 끝에 이 교육을 직원들 몇 명과 같이 듣기로 했다.   들으면서 어려운 내용도 있긴 했지만, 하나하나씩 알아가며 권리협약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시간은 흘러 2013년 4월 초, 권리협약 NGO보고서 작성을 위한 연대를 구성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연대 참여를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다. 과거에 좋은 논문 쓰겠다고 야심 찬 마음으로 대학원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교수와 동료와의 갈등, 나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대학원 생활이 어려웠다. 이후 논문 작성 도움을 받으며, 졸업 논문을 쓰고 졸업하긴 했지만, 좋은 논문은 아니었다. 나로선 상당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보고서 잘못 작성하면 어떡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연대활동을 통해 장애인권리협약을 기본적으로 알자는 소장님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생각 끝에,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팀장을 포함해 몇 명의 직원과 같이 연대활동에 뛰어들었다.   6개의 워킹그룹으로 나뉘어졌고, 나는 노동과 소득보장, 건강 등의 사회권 분야와 자립생활 조항과 관련된 워킹그룹에 가서 연대 활동을 했다. 그룹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을 공부하며 민간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처음이었고, 구성원들과의 관계도 어색해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다. 그나마 팀장과 같이 해서 다행이긴 했다.   보고서 작성 관련 통계와 자료들을 찾고, 구성원들과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의견이 다를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관계를 쌓아갔고, 권리협약 조항에 관련된 대한민국 장애인의 권리 현실을 통계나 기사 등을 통해 알아가며, 배우는 맛도 있었다.   필자는 건강권에 관심이 있어, 소속된 워킹그룹에서 제25조 건강 파트에 대한 보고서 1차 안을 쓰기로 구성원들과 소통했다. 그래서 1차 안을 7월 말까지 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국제장애연맹에서 회신이 왔다. 필자가 나름대로 작성한 장애인 건강권 관련 이슈가 실은 28조 소득보장 쪽과 관련된 이슈라는 회신이 온 거다.   필자의 머리가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조문의 뜻에 맞으면서, 객관적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한 건강권 이슈 관련 보고서 작성에 대해 소장님과 연대에 계신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더욱 정확한 최신 통계자료, 권리 현실을 말해주는 기사들을 찾아서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대한민국 장애인의 건강권 현실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게시일2020-10-23

  • 우리 삶은 소나기가 아니야.   “1998년 6월 21일 날씨 맑음.28개월 된 아들과의 삶이 너무 힘들다. 남들이 자폐성향 많은 아이라고 했지만 내가 많이 노력하면 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1년 이상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한 아들과 나의 삶은 너무 피폐하다. 한줄기 소나기가 더위를 데리고 간 덕분에 시원한 밤이다. 지금 아들과의 삶이, 우산 없이 맞은 소나기처럼 일시적인 불편함이면 참 좋겠다.”   유난히 까탈스런 아들을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사방팔방 검사 받으러 다니던 시절의 일기를 보았다.장애 판정을 받기 전, 여기저기 다니며 그저 아이에게 장애가 없고 단지 늦되는 아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무던히도 병원과 치료실을 뛰어 다녔다.아이의 기분에 따라 어느 곳에서는 이상이 없다 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심한 자폐증상이 보인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막막한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검사보다 적절한 교육과 치료에 집중했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여 아이를 양육해야 했던 그 시절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다음 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아들은 결국 발달장애(자폐)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걸 해줘야 할지 몰라 오로지 사설 치료실을 전전하며 긴 세월동안 거금을 들여 치료와 교육에 매진했지만 크게 변화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 너무 과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들을 위한 게 아니라 스트레스만 가중된다는 걸 알았다. 아울러 엄마인 나는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감만 컸을 뿐 그 많은 개별 교육을 어린 아들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인지 교육보다 생활 교육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아들에게 변화가 보였다. 아들이 뭔가를 못해서 속상하고 화가 났던 과거와 달리, 작은 것 하나라도 하는 것에 기뻐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일상이 그리 힘들진 않았다. 엄마가 힘들지 않으니 아들도 편해 보이고 표정도 밝아졌다. 여전히 힘든 부분이 없진 않지만 아들의 교육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을 당시 보다는 점점 살만한 날들이 찾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사는 삶이 그저 한바탕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는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소나기는 피하면 되지만 아들과의 삶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죽을 만큼 힘들어도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한 번씩 웃음주고 기쁨 주는 행동으로 그 힘듦을 상쇄시켜 주는 아들과 소나기보다 더 험한 폭풍과 폭우를 만나더라도 살아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힘들어도 헤쳐 나가야 했다. 시간이 우리의 힘듦을 해결해 주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아들은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지만, 강요에 의한 일상이 아니라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서 자기결정권을 늘려나가는 삶을 즐기고 있다.작은 변화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오늘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해본다.    

    게시일2020-10-14

  • 감염병 시국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들강력한 연대‧탈시설의 필요성, 일상의 소중함 등을 느껴 2.5단계로 격상된 감염병 시국 여파로 낮에 동네 커피 전문점이 공석이 된 모습 ⓒ이원무   올해 2월부터 대한민국은 코로나 시국을 맞고 있다. 최근에는 8월 15일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 19 확산이 다시 대한민국 전역에 증가하고 있는 바람에,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2.5단계로 격상해 시민들에게 최대한 집에 있으라고 하는 등,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게 줄어드는 대신, 교육, 강의, 세미나, 회의, 예배 등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필자도 그저께 온라인 예배를 보았고, 피부나 건강 강의도 줌(Zoom)을 통해 듣고 있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는 카톡을 하며, 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라는 심정을 서로 주고받은 적도 있다.   같은 장애를 겪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조모임도 요즘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모임 외에 일상적인 이야기들은 카톡으로 하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자조모임 회원들도 코로나가 종식되어 오프라인상에서 직접 만나 소통하길 바라고 있다.   필자와 자조모임 회원들 외에 지적‧자폐성 장애를 겪는 자녀들과 그 가족들도 코로나 시국이 하루빨리 종식되길 바라는 건 마찬가지일 거다. 복지관, 학교 등을 왔다 갔다 하다, 코로나 시국을 기점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니 우울감에 스트레스는 쌓여만 가고, 가족들은 자녀의 스트레스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구조이니 말이다.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몇 가지를 느끼게 된다. 직접 만나는 것이 과거에는 당연시되었지만, 이 시국을 겪으면서 만남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그러다 보니 서로가 그만큼 소중하고 관계의 소중함까지 새삼스레 다시금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렸던 것들조차 소중하고 감사한 것임도 아울러 보게 된다.   코로나 방역대책과 관련해서는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 중심으로 되어 있어, 장애인들은 감염병 시국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고 있는 현실임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장애와 관련된 조항이 없고, 이와 관련한 장애인지정책이 미비한 것도, 이런 현상에 한 몫을 차지한다.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며, 남은 가족을 위해 장애를 겪는 자녀와 자신이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의 사례가 지금 시국에 나오는 것도 이에 대한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코로나 등의 감염병은 언제든지 올 수 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이 차별을 겪지 않도록 장애계와 장애인 당사자들, 관계자들 간 연대를 장애 유형에 상관없이 지금부터라도 강력하게 구축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연대를 통해 한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해 실효적인 장애인지정책 마련 방향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탈시설-탈원화의 필요성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시설을 벗어나 평소에 건강을 관리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었다면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에서의 코로나 집단 감염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장애인 차별은 더욱 드러나고, 일상은 거의 멈춤 상태에, 가정의 생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효과 있는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코로나 진행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주시해야 할 것 같다.   현재로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하게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서로 연대하는 움직임이 전보다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정부가 장애인을 포함한 실효적인 코로나 방역대책도 장애계와 장애인의 의견을 들어 하루빨리 구체적으로 마련했으면 한다.   아무쪼록 코로나가 종식되어, 모든 이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일상을 누리는 모습을 하루빨리 볼 수 있기를. 

    게시일2020-09-01

  • <기차여행>   언제부턴가 친정아버지 기일은 나홀로 부산 다녀오는 연중행사였는데 이번엔 아들과 동행했다. 가족들은 서로 힘들고 같은 객실 승객들도 불편하다고 엄마 혼자 다녀오라고 말렸지만, 작년과 올해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들과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기차 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고 1분여 남겨두고 차에 올랐다.엄마와 가까이 앉으면 잔소리 들을 걸 아는 아들은 객실에 오르자마자 혼자 앉으려고 옆의 엄마를 밀어냈다. 오늘은 요기가 엄마자리라고 했더니 그나마 포기가 빠른 아들.산만하고 소리자극을 하는 아들을 위해 유아동반 차량의 좌석을 예약, 그것도 맨 끝 1번 A와B에 앉았다.중간쯤 좌석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왔다.어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참 분명하다.엄마에게 뭔가 질문하고 같이 놀자고 요구하는 게 일방적이지 않다.일방적이지 않고 상호 교류가 보이는 모습은 언제나 부러운 모습이다.아들은 혼자 책을 보며 간헐적으로 후후 불기도 하고 책장 넘기는 소리도 좀 크게 났지만 아이들의 소리에 묻혀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이제 겨우 30분 왔구나.2시간동안 이 상태로만 잘 가주길 바라며 나는 한 숨 자려고 눈을 감았다.객실 통로측에 앉아 있는 나를 잠시 후 내 옆의 옆 창가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건넸다.저기요~ 책 좀 조용히 보게 주의 좀 주세요.아네~ 아들이 자폐성 장애가 있어 요고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니 이해부탁드려요...아 네네~활짝 웃으며 본인 핸드폰에 집중하는 승객.장애 빼고 말할걸...약간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뱉은 말, 그렇다고 딱히 준비할 멘트도 없다.뭐가 좋을까? 혼자 되뇌인다.요 정도면 저 앞 애들 소리에 비하면 조용한 거 아닌가? 하는 서운한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이해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세상 사람들을 다 이해시키며 살 순 없으니 그때그때 잘 적응하고 대처하며 살아야지 용빼는 재주 있겠는가 생각한 아들과의 기차여행이었다. 

    게시일2020-08-31

  • 나를 제외한 우리 식구들은 거의 여덟 달째 칩거 중이다. 남편과 딸은 학교 수업이 비대면이라 밖에 나갈 일이 드물고, 직업 없는 아들 역시 나갈 일이 없다. 할 일 없는 신발들은 먼지가 쌓인 채 현관에서 이리저리 채이다가 계절이 바뀔 때 신발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제 구실을 해내지 못한 신발들을 보면 안쓰러워 잘 닦아주는데, 그 안쓰러움은 나만의 것인지, 신발들도 애석할지는 알 수 없다.   식구들은 자기 방에서(정확히는 자기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다가 끼니를 때울 때만 식탁에 잠시 모인다. 나는 거실을 온통 내가 혼자 차지하는 것이 민망해서 텔레비전에서 때로 근사하거나 재밌는 장면이 나올 때면 빨리 나와보라고 애타게 소리지르며 애걸복걸 하지만, 남편은 들은체만체 하고 아이들은 으레 그 기막힌 장면이 끝난 뒤에야 마지못해 어슬렁거리며 나오기 일쑤다. 어딜 가자고 해도 뜨뜻미지근하고, 어쩌다 용케 나들이 날짜를 잡을라치면 하필 그 날 한달에 한 번 있는 약속이 있단다. 나는 산도 물도 보고싶어 답답해 죽겠는데, 그래서 식구들 놔두고 면도날 같은 틈에 바람을 쐬기도 했는데, 식구들은 워낙 은둔성품인지라, 타고난 코로나시대 방콕족속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에 균열이 갈 일이 생겼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내 집에서 ‘졸업후휴식’(이 단어의 의미심장함을, 험한 학창시절을 겪은 모든 통합학교 출신 아들딸과 그 어미들은 알리라. 아들은 그 시달림의 시간을 보상하기 위해 자기는 결단코 집에서 많이 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했다)의 세월을 보낸 아들이 드디어 일을 하게 될 모양이다.   - 생각을 바꾸다   얼마전에 나는 내 생각을 수정했다. (나이 오십이 넘고나서 나는 내 생각을 잘 수정하는 편이다. - 물론 이 말을 들으면 우리 엄마는 코웃음을 칠 테고, 예전의 내 친구들은 기함하고 쓰러질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이, 그가 가진 성품으로 해서 타인을 만나는 것이 고통스럽고, 그가 적응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 속에서 그가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 것이라 짐작해서, 굳이 일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랬다. - 77억 인구 중에 그냥 억지로 일 하지 않고 사는 사람 몇 쯤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아들은 특별히 고급식도락 취미도 없고, 옷 욕심은 더더구나 없으며(순면티셔츠 몇 장을 헤지고 닳아 구멍이 날 때까지 입으니), 현관 문밖에 나가는 걸 번지점프대 앞에 서는 것처럼 싫어하니, 돈 쓸 일이라고는 좋아하는 게임을 즐길만한 컴퓨터와 그것을 가능케 할 환경만 있으면 된다. 요컨대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내 품에서 같이 살 때 얘기다. 나는 그 녀석을 위해 식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니까...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결코 사랑하는 내 아들이 그 자신과 엇박자인 세상에 어거지로 적응하는 체 하기 위해 힘겨운 노오오오력을 해야 하는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이고, 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의미로운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친소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얼굴,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와 은유로 가득한 사람들의 말, 그러면서 상대의 수준을 끊임없이 살피는 사람들의 태도, 12년 학교생활 속에서 겪었던 고통의 시간 속으로 다시 들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수년동안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토실토실 살까지 쪘다.   그 시간을 중단할 만큼 의미있는, 딱 맞는 일자리를 찾는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일 게 틀림없어서 굳이 일자리를 찾으려고도, 그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순간 딱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있다면 모를까.   그랬는데 작년부터 치열한 투쟁의 선봉에 서서 마이크를 잡다보니, 그게 다가 아니라는 깨우침이 문득 들었다.(세상일은 다 그렇다. 언제나 그게 다가 아니다!) 장애인 고용지원을 확대하라, 중증장애인에게 공공일자리를 내놓으라, 라고 외치려다 보니, 누구나에게 일자리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 그 답은 너무나 쉽게 얻어졌다. 모름지기 진리는 쉽고 간결한 법이다.   - 일이란 무엇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이든 마지못해 하는 일이든,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엄한 행위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위해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봉양하기 위해서건,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건, 심지어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닌 어떤 일이라도, 일이란 건 세상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동참하는 일이며, 세상에 참여하는 일이다. 노동이란 그래서 신성하다. 노동은 그래서 신성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그런 자리에 놓여야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뜻이고, 내가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은 그를 스스로 존엄하게 만든다. 나는 이것을 놓치고 있었다.   문득 아들에게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뜨악했다. 바쁘단다. 일을 하기에 본인은 너무 바쁘시단다. 게임도 해야 하고, 블로그에 글도 써야 하고, 작곡도 해야하고 해서 몹시 피곤하단다. 물론, 이제까지 너에게 꼭맞는 의미있는 일 아니면 절대 일 하지 않게 하겠다고 외치시던 엄마가 갑자기 왜?... 라는 항거의 뜻도 들어있는 말투였다. 나의 약점을 콕 집어내다니 녀석, 많이 컸다.그럼 일주일에 이삼일이나, 하루 반나절은 어때, 라고 물으니, 그건 생각해보죠, 라고 천연덕스레 대꾸한다. 며칠 뒤에 녀석이 문득 물었다. 그 일은 뭔데요? 라고. 요컨대,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크게 감격했다. 일주일에 절반은 현관 밖 번지점프대를 뛰어내려서 뭔가 일을 해보겠다는 뜻이 아닌가. - 왜 일을 하려고 해?(기대만발)- 뭐 살 게 있어서요.(심드렁) - 뭔데?(기대만발 2) - 게임 장비요. 좋아. 할머니가 용돈을 주면 그 돈이 자기 방 여기저기 먼지를 뒤집어쓰고 굴러다니게 하던 녀석이 이제 돈을 모아서 뭔가를 사겠다는 것이 아닌가. 아들은 스물하고도 여덟 나이에 목하 노동의 가치, 재화의 역할에 대해 눈 떠가고 있는 중이다.   바로 서울커리어플러스센터에 데리고 가서 취업희망서를 썼다. 얼마 가지않아 반나절 일자리 면접이 있었다. - 너한테 크게 흥미있는 일은 아냐. 그냥, 일이야. 게임회사도, 음악 관련 일도 아닌데, 그냥 어려운 일은 아니래.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뜻밖에 아들은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직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들은 분명히 뭔가 일을 해보고 싶고, 그것을 하겠다고 작심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아들은 면접을 봤고, 머지않아 일을 하게 될 터이다.나는 아직도 즐기면서 하는 일을 찾아주지 못한 아쉬움에 마음이 짠하긴 하다만,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다, 이제 시작이니. 아들은 뭔가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엄마보다 용감하게.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면 모두 일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크든 작든 저마다의 일터에서 저마다 적합한 시간의 노동의 하고, 그 노동의 존엄한 의미만큼의 정당한 보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를 통해 스스로를 봉양하고, 세상과 그 자신을 위해 ‘쓰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게 맞는 것이므로 이 길로 결국엔 가게 될 것이다.우리가 그렇게 만들어갈 것이고, 아직 그리 되지 않는다면 그리 될 때까지 밀고나갈 것이므로, 투쟁! 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게시일2020-08-31

  • 나도 자기옹호가 필요해요!지역사회 발달장애인 자기옹호 일상화되길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당신은 아름답다는 문구 ⓒPixabay   얼마 전 한 자매가 카톡으로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블루베리 롤케이크를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보니, 함께 먹으면 좋겠다 싶어 생각한 끝에, 일본어를 함께 수강하고 계신 분들과 같이 나누어 먹기로 내 마음속에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이번 주 화요일에 파리바게트 매장에서, 직원에게 선물 바코드를 보여주고, 직원이 바코드 체크를 한 다음, 나는 롤케이크를 선물로 받아갔다.   일본어 회화를 공부하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함께 먹고 싶은 마음에 롤케이크를 조각조각 자르고 한 사람씩 주려고 하는 사이에 어느 한 여성 수강생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손으로 만진 케이크 주지 마세요! 저 이런 것 민감해요.”   순간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손으로 만진 게 생각나며 멈칫했다. 그래서 그 수강생에게 그럴 마음은 아니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바로 일본어 강사님은 플라스틱 칼로 잘라 수강생 각각이 손으로 떼서 먹게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다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여성 수강생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불편한 느낌이 다가왔다. 하루 전, 누나네 식구들 건강 체크를 하러 누나 집에 갔을 때 누나에게서 ‘너는 섬세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건강 체크를 할 때 사람 머리나 주머니 등에 금속 등의 물질이 있으면 건강과 관련한 데이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데이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건은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누나가 묶고 있는 머리핀을 풀라고 하고, 그 핀을 내가 건강 체크하는 동안 가졌다. 그런데 누나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거다.   “여자들은 남이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해. 그런 행동은 인센시티브(섬세하지 못하다)한 거야.”   그 당시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과거에도 여성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특성, 특징을 잘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섬세하지 못한 부분들 때문에 여러 번 다른 이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계속 들었던 것이 머릿속에 동시에 떠올랐다. 관계 단절 및 절교까지 이어진 경험도 또한 떠올랐다.   나의 섬세하지 못한 부분들로 싫은 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고마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번이 아닌 두 번 이상이다 보니 기운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성에 대해 섬세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나를 보면서 잠시 자폐성 장애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애가 어디 없어지던가?   그러다 잠깐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격려 주는 게 자존감을 높이는 거라는 어느 카톡방에서 보낸 링크 내용이 떠올랐다.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스트레스로 볶지 말고,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강식품을 먹은 다음, 대모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땀 쭉 흘리고, 내려가는 길에 근육운동을 하는 기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 운동했다. 근육운동을 하고 나서는, 나 자신에게 ‘수고하고 잘했어!’라고 속으로 토닥이며 단백질 보충제를 먹고 집으로 향했다. 스트레스가 조금씩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을 살아갈 에너지가 조금 생겼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픈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래서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하며, 나의 힘든 마음을 알아달라고 조르면 시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의 힘든 마음을 100% 공감하지는 못한다. 그 마음은 오로지 나 자신만이 100% 느끼며 알 수 있으니까.   인정받으려 노력하다 받지 못하면 스트레스만 잔뜩 쌓일 거다. 내일을 살 힘이 줄어들 것이고. 나 자신도 그런 경험 한 적이 적지 않으니.   그러니 차라리 나 자신에게 격려 주며 자신을 옹호하자고 말이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이다. 조언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거 같다. 더군다나 남에게 평가, 지적질을 많이 받는 현대사회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격려 주고 자신을 옹호해야 내일을 살 수 있는 희망의 자양분이 생김을 본다. 자신을 성찰할 힘도 조금씩 생길 터이고. 자기옹호야말로 나에게 정말 필요하고, 이것 또한 배워야 함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현대사회를 살아간다. 그런데 장애, 능력 없음, 위험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사람들은 이들에게 지적질을 심하게 하며, 혐오하고 차별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지적․자폐성 장애인 개인도 일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사회 환경 속에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우울증에 걸릴 환경에 노출되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며 마음에 격려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 자신이 자신을 격려․옹호하며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주지 않는 한 당당해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아름다우니까.   그러기에 자신이 힘든 가운데서도 살 힘을 주어 당당할 수 있도록 지적․자폐성 장애인 자신이 자신을 격려․옹호하는 자기옹호를 지원자가 지원하는 모습이 지역사회에 전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자기옹호에도 전문가나 지원자만의 의견이 아닌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를 통해 지적․자폐성 장애인 자기옹호가 지역사회에서 일상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을 옹호하며 당당해지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길. 

    게시일202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