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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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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이 게시판은 보다센터에서 초대한 각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소박하지만 통렬한 이야기와도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게시물 총 38

  • 스트레스 해소, 여행 자유 향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목적장애인 관광권 보장하는 실효적 방안 필요해는 바야흐로 2021년을 맞았고, 그것도 4월 말을 향하고 있는 시점이다. 코로나 시국을 맞은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건강한 세포까지 공격하는 자가면역성 바이러스인 코로나 종식을 위해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앞다퉈 백신을 개발했거나 현재 개발 중이다. 이 바이러스도 변이가 일어나기에, 개발한 백신이 변이된 바이러스를 얼마나 잡을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백신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면 언제 이 시국이 종식되지 하는 불안감도 든다. 게다가 올해가 시작했을 때 필자가 거주하는 집 근처에 확진자가 나와, 다음 날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코로나 감염 여부를 검사했다. 다행히 음성으로 판정되었지만, 감염병엔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 건강식품을 섭취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근엔 9,9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아무쪼록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 잘 챙기며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도 열심히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올해 1월, 페이스북에서 한 지체장애인이 올린 유럽여행 사진들을 봤다. 필자는 코로나 시국 동안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이 사진들을 보면 그게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단 말을 했다. 그분도 같은 마음이라며 코로나가 종식되길 필자와 함께 희망했다. 사실 필자도 여행을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밖에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해외여행 몇 차례를 다녀왔다. 여행 겸 월드컵 관람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어떨 때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국가심의 참관하러 제네바에 갔다 온 적도 있었다. 그때는 여행이라기보단, 일하러 간 거였지만. 모스크바 성바실리 대성당 ⓒ이원무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같이 해외여행을 해야만 했지만, 15년 전 독일월드컵 때부터 혼자서 여행하고 돌아오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여러 여행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러시아월드컵 관람 겸 유럽여행을 했을 때였다. 2017년 12월경에 폐에 혈전이 올라와 숨을 가쁘게 쉬어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고, 거기서 나중에 알고 봤더니 폐색전증이었다. 한발 늦었으면 저세상 갔을 뻔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이후 몸이 힘들다 보니 마음도 힘들었다. 그때 어느 지인의 소개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운동과 병행하면서 몸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체지방, 몸무게가 빠지면서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다이어트 하는 도중 러시아월드컵 티켓 판매소식이 있었다. 현장에 가서 축구를 보고 싶은 마음에 티켓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전 세계에서 사이트 접속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 티켓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다행히 대한민국 대 독일전, 16강 전 2경기 표를 구했다. 숙박은 유스호스텔 닷컴이나 호텔스닷컴 등을 통해 가장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한 숙박 시설을 택해 예약했고, 비행기 표는 투어 2000을 이용해 예약‧지불했다. 25일 동안 여행하면서, 추억들 다 소중하지만, 특히 독일을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이긴 카잔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러시아월드컵을 전패해서 축구협회 개혁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렇게 이겨버리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러다 축구협회 개혁이 물 건너가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러시아월드컵 독일 전 종료 후 팬들과 함께 한컷 ⓒ이민수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백야 경험은 물론, 러시아 정교회 건물들을 비롯해 곳곳에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고, 러시아의 역사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곳도 방문하여, 나름대로 음미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카잔에선 카잔 크레믈린과 바우만 거리를 중심으로 볼만한 곳이 의외로 많았던 것도 아울러 기억에 남는다. 모스크바에서는 교회 형제들을 만나면서, 나와 나이가 같은 사람도 만나 반가웠고, 가끔 연락을 했다, 코로나 이후로 연락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연락하고 싶다.   폴란드의 그다인스크, 포즈난을 방문하고 독일 베를린을 3박 4일 동안 잠시 들렀다가, 마지막에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귀국하기 하루 전날,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각물을 감상하며, 열심히 돌아다녔다. 공원을 나오기 전, 활발하게 돌아다니게 된 나의 몸을 생각하며, 여행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었다. 정말 기뻤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여행에 비해 기억에 더욱 많이 남는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3년 전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여행했던 곳이. 지금은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 여행 가기 어렵다. 갔다 돌아오면 자가격리 2주간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에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까지 더해 그렇다.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에서 ⓒ이원무그래서 코로나가 종식되기까지 일단은 돈을 모은 다음, 종식되면 유럽이든 어디든 해외여행을 다시 가고 싶다. 코로나 때 쌓인 스트레스는 물론 해외의 여러 사람들을 새로 또는 다시 만나면서 관계도 쌓고 싶다. 종식되기 전까지는 코로나 상황을 보며, 기회 될 때 국내에서 여행할 만한 곳을 조심스럽게 찾아 여행 다닐 생각이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게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는 장애인들이 요즘에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특히 지체장애인의 경우엔, 전동휠체어가 생기고 나서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돌아다니는 자유 만끽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는 다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 가는 게 지금은 어렵지만 종식되면 이를 감행할 장애인들이 많아질 거다.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저임금 보장을 통해 여행자금 모으고, 물리적‧심리적 접근성과 웹 접근성 향상 등으로 숙박 시설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가가 장애인 관광권을 보장하는 실효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게시일2021-04-27

  • 산책로인 줄 잘 못 알고 들어선 등산로가 걷기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데크길이 있었지만, 흙길은 폭신해서 좋은 반면 돌을 박아서 더 울퉁불퉁한 길에선 자주 발목을 삐끗했다. 무장애 길(걷기 쉬운 길)은 휠체어나 유아차만 편리한 게 아니다. 발이 불편한 모두에게 좋은 길이다.코로나19로 사람들의 나들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평일 등산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가다 서서 가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즐겼다. 힘차게 내려가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레 올라가던 중 뒤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상의가 같은 오렌지색의 옷을 입은 남녀가 저만치서 올라오고 있었다. 먼저 지나가라고 우리 가족은 한쪽으로 비껴섰다. 중년 여인과 청년이었고 모자관계로 보였다. 곁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청년에게서 아들의 향기가 느껴졌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유심히 보던 우리 가족의 상상력이 날개를 달았다.  “청년이 발달장애인 거 같은데.”  “어허이! 당신은 아무한테나 장애인이라고 하면 안 돼!”  “엄마와 성인 아들이 같은 옷을 입고 등산하는 거 낯설지 않아?”내가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빠! 나나 되니까 가족여행에 잘 따라다니지, 다른 성인 자녀들은 같이 안 다니거든!”딸아이는 발끈했다.  “등산 즐기는 거래도 가족끼리 사회적 거리두기 하는 건 좀 어색해 보이구만.”아무래도 내 눈에 보이는 두 사람은 마치 나와 내 아들의 모습 같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우리 앞을 지나간 두 사람을 두고, 남의 말을 함부로 한 게 미안하다며 화제를 돌렸다.예정된 목적지까지 올라가니 그들은 내려오고 있었다. 여전히 조용한 그들, 여성은 우리를 보고는 먼저 올라가라는 듯 좁은 길 한쪽으로 몸을 돌려 섰다.“감사합니다.”내가 말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삶의 고단함이 내게로 와 닿았다. 청년은 다시 한번 나를 힐끗 보더니 팔을 앞으로 저으며 여성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나의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청년을 다시 본 가족들도 이내 수긍하는 눈치였다.자폐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집중력에 좋다는 등산을 많이 했다. 험한 길을 올라가려면 땅을 잘 보고 가야 하니 그럴 것 같았다. 등산 자체가 돈 안 드는 좋은 운동이기도 했다. 아들 치료와 교육비로 거금을 할애하던 시기인지라 나만 부지런하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물불 가리지 않고 남들이 좋다면 무조건 해보는 것들이 많았다. 말을 못 하는 건 혀가 굳어서 그렇다며 혀에 침을 놓기도 했다. 몸에 수은이 많아 그런 거라며 한약을 먹기도 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당사자인 아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등산은 쉽지 않았다. 날다람쥐 아들은 오르막 산길을 날아다녔다. 불러도 못 들은 척 직진 본능만 발휘하는 아들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이러다 필경 아들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쯤 결국 등산을 포기했다. 아들에게 아무리 좋은 치료교육이라도 최악의 경우가 예상되는 건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남편과 셋이 다시 등산했다. 잘 다니던 길도 아들은 오르막길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힘든 걸 경험했기에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었다.   “힘들구나, 그럼, 저기 저 나무까지만 갔다 오자.”싫은 티 내면서도 아들은 그런대로 잘 따라 주었다. 일주일 내내 아들과 씨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아들만 데리고 등산을 했다. 둘만의 등산은 시간이 더 빨라졌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들어오는 똑같이 생긴 ‘아빠와 아들’을 보면 흐뭇했다.가족여행 중에 만난 엄마와 아들을 보며 장애 자녀를 오롯이 엄마만 책임지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남편이 직장을 다닐 때는 혼자의 몫이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 부부’도 했었다.남편은 아들에 대해 잘 몰랐다. 일주일에 하루 보는 아들이 고집을 피우고 힘들게 하면 화를 내며 아들을 채근했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집에 사무실 공간을 마련한 후로는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남편은 아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엄마인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알아주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들은 26세의 청년이 되었다. 화장실에서 장난치다가 막힌 변기를 뚫어보겠다고 용쓰는 걸 보면 다시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잊고 웃음이 나온다. 때로는 화를 내면서도 어릴 때의 모습 생각하면 지금은 양반이라고 봐주는 아량이 가족 모두에게 생겼다.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사는 발달장애인들이 존재를 인정받고 지역사회 안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늙어가는 엄마가 성인 장애 자녀에게 매달려 사는 고된 일상은 멈춰야 한다. 그러려면 보다 촘촘한 복지 체계가 필요하다. 의미 있는 낮 활동 시간이 더 늘어나고 개인에게 맞는 복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서 평일의 등산이 엄마 뒤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조력자의 지원 아래 이뤄져야 한다. 다른 자조 모임 활동이 활성화되어야 발달장애인의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가족이 없더라도 존중받으며 한 인간으로 사는 삶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부모는 그것이 소원이다.     

    게시일2021-04-19

  • 1. 그러라 그래   얼마 전에 양희은이 나온 한 TV 프로그램을 봤다. 까마득한 신인가수들과 함께 앉은 양희은은 노래에 얽힌 얘기도 하고 후배들이 부르는 자신의 노래도 듣고, 또 자신의 노래도 들려주었다. 젊은 시절,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른 나와 같은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요즘 사람들이 ‘원로가수’ 양희은을 듣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노래보다는 ‘네 이름이 뭐니’라는 그 유명한 문장이 노래보다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엔 ‘그러라 그래’라는 말이 그를 대표하는 수사가 되었다. 그 제목의 책까지 낸 것을 보면 ‘그러라 그래’라는 말로 그 자신이 대표되는 것이 썩 괜찮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러라 그래’라는 말이 갖는 뜻이 담백해서 참 좋다. 상대가 하는 짓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며, 나는 그것에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다. 그는 그럴 권리가 있으니 그걸 낵 어쩌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가 누구의 행동을 말리거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누가 무슨 헛짓을 하든 나는 영향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누가 다른 누군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나에게 일러바칠 때, 또는 누가 다른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공연히 속을 끓일 때에도, 다른 누군가 때문에 네 속을 너무 후벼파거나 공연한 헛염불 들이지 말라는 충고가 된다. 다정히 어깨를 쓰다듬는 위로의 충고가 아니라, 등짝을 한 대 툭 치면서 내뱉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너의 그 번잡한 속이 실은 네 스스로 엉켜놓은 그물 같은 것이니,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그냥 툭, 툭 잘라버리고 나오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고 싶어’서 그러고, ‘그러기 싫어’서 그러지 않는다. 비극은,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고, ‘그렇게 해주기 싫어’서 고집을 부릴 때 생겨나는데, 우리는 수시로 이 비극을 스스로 짓는다.(굳이 떠올라서 덧붙이자면, 친정 엄마들은 대체로 이 ‘그러라 그래’가 절대 안 되는 분들이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그러라 그래’가 아니다. 실은 내가 양희은의 담백을 이해하기까지는 세월이 좀 걸렸다는 고백을 해놓고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서두가 길어진 것이다. (이것도 내 병통의 하나이지만,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굳이 고칠 게 무에 있겄나, 그냥 그러라 그러지, 뭐.)   어린 시절, 나는 양희은이 너무 담백하게 노래를 부르는 게 못마땅했다. 아침이슬 같이 처절한 노래를 너무나 맑은 목소리로, 한숨 하나 섞지 않고 매끈하게 부르는 게 어색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서 벌어진 그 끔직한 비극을 전하는 노래가 마치 ‘졸졸졸졸 흐르는 요르레히디요’ 하는 요들송처럼 청량하게 들리는 게 이상했다. 내가 듣기에 운동권가요가 건전가요처럼 들렸다는 얘기다. 그러다 ‘한계령’과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으면서 내 오랜 착각에서 벗어났다.   무언가를 보태지 않아도 될 때는 보태지 않는 게 좋다. 노래에도, 연기에도, 글에도, 말에도, 그리고 마음에도-. 보태지 않아야 오직 그 안에 있는 고갱이,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쌓인 내공이 없고 다져놓은 내면이 얕으면 담백하지 않게 된다. 허세를 부리거나 질척거리는 때가 이런 때다.   그런데 양희은의 담백을 알고나서 또 새로운 병통이 생겼으니, 그것은 내 생각에 담백하게 불러야 좋은 노래를, 누군가 담백하지 않게 감정을 너무 넣어서 간지럽거나 토하듯이 부르면 그만 몹시 화가 난다는 것이다. 조미료를 많이 친 음식, 과하게 장식한 옷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언짢아지고 마는데, 그걸 못참고 내색을 하면서 욕을 한바가지 퍼붓는 때가 생겼다. 딸이 그런 나를 보면서 한마디 내뱉는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 그게 그 사람 스타일인 걸 어쩌라고, 그냥 그러라 그래~. 나는 졸지에 꼰대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이야기의 주제가 ‘그러라 그래’도 아니고 ‘담백’도 아니라고 했으니, 이제 본론이다. 양희은이 그 담백함을 갖고서 부른 ‘4월’을 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 ‘4월’의 가사를 쓰려다 몇 해를 넘기면서 결국 못 쓰고 다른 이가 썼다고 했다. 내가 본 프로그램에서는 이 노래를 후배가수가 불렀는데, 그가 부른 ‘4월’도 좋았지만, 양희은의 목소리로 다시 듣고 싶어져서 다시 찾아 들었다. 2. 4월의 노래   꽃잎이 난다 사월이 간다 / 너도 날아간다 / 산 그림자 짙은 이곳에 / 나는 떨고 있는데 / 봄비 내린다 꽃잎 눕는다 / 나도 젖는구나 / 녹아내리는 시절 / 기억들은 사람이었구나다 보냈다 생각했는데 / 잊은 줄 알았었는데 / 숨쉬고 숨을 쉬고 / 또 숨 쉬어봐도 남는다 / 모자란다 니가 / 내 몸이 녹아 내린다 / 네게로 스며들었다 / 꽃잎은 날고 봄비 내리면 / 나를 보낸다 / 꽃잎이 난다 / 사월이 간다 / 나도 날아간다   우리에게 4월이란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겨울을 지내고 온 천지사방에 화사한 꽃들이 여기저기서 일제히 올라온다. 봄꽃은 피고지고 하는 여름꽃들이나 계절 내내 피어있는 가을꽃들과 달리 달려들 듯 피었다가 꿈인 듯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이 봄꽃들을 보면서 그렇게 찬란하게 왔다가 홀연 사라진 이들을 생각한다.   봄꽃이 필 때면 수유리 419 공원에 가서 꽃을 보며 ‘젠장, 더럽게 곱네~’라고 비장한 인사를 건네는 때도 있었다. 그러다 아예 7년전부터는 봄이 봄이 아니다. 세월호 엄마들이 봄꽃이 피어날 때마다 아프다 했으니, 그분들에게 봄꽃은 살을 후벼파고 찢으며 올라오는 꽃들이다.   처음엔 철철 흐르는 눈물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없이 바다를, 봄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눈물과 너의 눈물이 그물이 되어 세상을 덮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쩔쩔 매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는 슬픔이 담백해진 것을 알겠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고, 여전히 분노하지만, 날것으로 퍼덕이덕 슬픔은 이제 단정히 접혀서 7년의 두께만큼 마음 한켠에 놓였다. 그리고 담백한 것이 담고있는 무게와 힘을 느낀다.   이번 4월16일에는 새로 조성된 안산의 기억교실에 갔었다. 기억교실이 있는 건물 앞 광장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노래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무치는 사람의 이름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다. 단원고 2학년을 그대로 옮겨놓은 교실에는 책상마다 아이들 사진과 꽃과 공책 등이 놓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몇 반 몇 번이었더라, 기억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가 앉아보았다. 세월호 아이들은 살았으면 올해 스물다섯 살이란다.   그 나이쯤 되어보이는 한 청년이 어떤 책상 앞에 서서 그저 물끄러미 공책이며 메모며를 내려다 보고 있더니, 또 다른 책상 앞에 가서도 한참을 그러고 섰다. 내가 윗층 교실을 다 돌고나서 내려와 보니 그 때까지도 그렇게 어떤 책상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그에게도 4월은 한숨을 아무리 쉬어봐도 사라지지 않는 눈물이며 한숨일 것이며, 이 세상은 노랫말처럼, 누군가로 채워지지 않아 모자란 곳이 있다. 그가 그저 우두커니 서서 말없이 삼키고 있는 담백한 슬픔을 보았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일은 삶의 일이다. 살다보니 그런 그리움을 담고 살 일이 있는 것이다. 그게 봄이라, 하냥 피었다가 매정하게 일제히 꽃비가 되어 떨어지는 봄이라, 아련하고 강렬한 그리움이 더 깊어가는 것이다. 기억교실을 나와 전철 타는 곳으로 걸어가는 내 등 뒤로 아이들을 호명하는 노래가 따라온다. 그 노래는 마치 나비처럼 나폴나폴 날며 따라온다. 노래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곳에 와서 길을 건너려고 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널 지키는지 네가 날 지키는지   나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그리움으로 지키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도 나의 삶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그뿐이랴, 그 아이들이 세상도 지켜주고 있다. 우리가 아직 연민과 연대의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봄꽃같은 그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꽃같은 연민과 연대의 상징으로 그 아이들이 또한 있기 때문이다. 3. 슬프고 찬란한 봄의 힘  세상은 무심하여, 올해의 봄은 미안마의 처참한 고통과 함께 왔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4월 한복판, 20일이다. 세상은 이 봄에, 무심함으로, 차별과 배제로, 무례함으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을 떠올리며 참회해야 한다. 그 바탕에는 연민이 깔려 있고, 그 표출은 연대의 힘으로 나온다. (‘그러라 그래’식의 무심함은 이럴 때 쓰는 건 아니다.)   봄꽃같은 사람들이 겨울을 이긴 기쁨으로 축복으로 피었다가, 다시 반짝이는 새싹으로 솟아올라야 하고, 깊고 푸른 잎새로 무성해야 한다. 그게 봄의 힘이다. 4월은 그래서 슬프고 찬란한가 보다. 그래서 나의 봄은, 담백하기도 하고 여전히 담백하지 않기도 하다.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게시일2021-04-19

  • 부디 좋은 해 맞으소서   1. 영화를 보는 가장 행복한 때   예전에 어떤 강의를 듣는데 강사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나는 그 때 근사하게 대답하려고(그리고 진심도 어느 정도 담아서) ‘삶의 모든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강사는 멋있는 대답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고 나서 곧 후회했다. 행복한 순간과 덜 행복한 순간을 뭉뚱그려서 한 몫에 대답을 해버렸으니, 특별히 호명되지 못한 진짜 행복한 순간들은 얼마나 섭섭했으랴,   그래서 그 때 진짜로 나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는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홀로 오전에 조조영화를 볼 때라는 걸 알았다. 우리집 근처엔 빌딩 12층에 근사한 작은 극장이 하나 있고, 거기 상영관이 두 개(0관과 1관) 있는데, 이른바 예술영화니 저예산영화니 하는 영화들을 튼다. 무엇보다 야외로 트인 넓은 베란다에 나서면(처음엔 완전 야외라 바람이 휘몰아쳤는데 지금은 유리온실처럼 유리벽을 만들었다) 관악산이 한 스크린에 담긴 듯 보였다. 스크린 위쪽은 멀리 산이 가득 차 있고, 스크린 아래쪽은 도시의 불빛이 뿌려져 있는 기막힌 전망을 가진 이 베란다에는, 세월호 리본으로 겹겹이 치장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이는가 하면 작은 영화행사 같은 것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0관은, 영화가 끝나면 한쪽 벽면 전체를 덮고 있던 커튼이 웅~, 하고 올라가면서 전면 유리벽이 드러나는데, 그쪽으로는 그 영화관 건물만큼 높은 빌딩들이 엎어서 멀리 언덕 위의 아파트에게까지 이어지는 너른 벌판처럼 보이는 풍광이 참 근사하다. 무엇보다도 그 유리벽은 서쪽을 향해 트여 있어서 오전에는 경사진 빛이 뿌옇게 도달해서 몽환적이고, 혹시라도 저녁때쯤 끝나는 영화를 볼라치면 영화의 여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서쪽 스크린에 펼쳐지는 기가막힌 도시의 노을에 압도당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그대로 앉아서 도시의 풍경을 또하나의 스크린으로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은 아마도 그 영화관뿐일 게다. 때론 말도못하게 이상하게 사무치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또 멀리 보이는 관악산을 조망하며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는 비로소 먼지 낀 세상 속으로 내려가는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전까지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다음에 또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바깥 풍경이 좋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는 두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바로 대답해줄 것이다. 수십, 수백명의 스텝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영화를 아름다운 공간에서 편안히 누리는 이 호사는, 행복이라고 말하기에도 넘친다.   2. ‘멜랑꼴리아’의 깊은 우울   앞수다가 길어졌다. 그 곳에서 봤던 한 영화 얘기로 시작하려다 사랑하는 공간과 거기서 보낸 시간을 길게 떠올렸다. 올해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한 아쉬움이 컸나보다.(뭐든 미련이 남으면 쓸데없이 말만 길어지는 법이다.)   몇 년 전에 ‘멜랑꼴리아’라는 영화를 봤다. 2012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무거운, 깊은, 우울한, 깊숙이 가라앉는, 우울이 사무치는 영화다. 우울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모두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권한다. 나도 그 때 제법, 상당히 우울했으므로 이 영화를 봤고, 그리고 그 때 알았다. 우울은 ‘연민’과 닿아있고, 인류는 그 연민의 연대,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멀리서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데,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인류는 그저 한 달 뒤쯤으로 계산된 그 시각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된다. 그걸 앞두고 벌어지는 세상의 혼란 속에서 오직 평소 깊은 우울에 빠져있던 주인공만이 처연하게 침착하다. 모든 우울은 시간의 상실과, 존재의 고독과,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차서 바야흐로 침잠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니, 본질적으로 그러한 종말에 처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달리 호들갑을 떨거나 생떼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나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찌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상황을 반전시킬 무엇이 없을 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어찌 할 것인가는 쉽게 답이 나왔다. 그런데 남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초기 혼란이 빨리 수습되고, 인류가 품위있게 종말을 맞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왕 벗어날 수 없는 파국이라면, 이 우주 안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지라도, 좀 품위있게 인류의 역사를 마치자, 이런 생각을 했다.   3. 새로운 것의 시작일까   오래 묵은 영화까지 들먹인 이유는, 2020년을 덮친 코로나19 때문이다. 꼬박 일년을 코로나19 뉴스를 보면서 살았다. 이것이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이렇게 길게 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았을테고, 우리는 미증유의 사태에 그야말로 일년 내내 휘둘렸다.   바이러스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허점을 드러내고, 인류란 게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스스로 드러내게 했다. 생물분류학상 단일종인 인간은, 한 인간에게 치명적인 어떤 것은 바로 77억 모두에게 치명적이라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존재다. 분명히 한 개의 변종 바이러스로 시작되었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지구적 재앙이 되어 인류를 위협했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나온다고 하니, 어떻게든 이 겨울을 무사히 넘겨서 내년 봄과 여름을 맞아야 할텐데, 우리들에게 다가와 있는 거대한 우울한 질문은 그 다음이다. 백신이 나오면 끝이 날까. 백신도 듣지 않는 변종이 나오면 어찌 될까. 우리는 살면서 이 난리를 얼마나 자주 겪게 될까. 결국 우리는 소행성이 닥쳐오기 전에, 핵으로 서로를 폭파시키기 전에, 마이크로 수준의 이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멸종할까. 요컨대 올해의 이 난리가 그저 힘겹게 넘어가는 고비일지,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 어두운 것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전에 철학과 관련된 책을 쓰고는 이곳저곳 그것과 관련한 강의를 다닌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인류의 종말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류가 파국을 맞을 몇 가지 상황을 들어보곤 했는데, 그 때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위협으로 지목된 것이 바이러스의 위협이었다. 그러면 그 다음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정확히는 어떻게 종말을 맞을 것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강의를 통해 알았다. 처음엔 혼란스럽겠지만 곧 받아들이고 침착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거나, 조용히 홀로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남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일년 내내 코로나19 상황이 만든 우울 속에 있으면서, 이 거대한 우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했을까. 나는 영화 ‘멜랑꼴리아’를 보고나서 얻은 결론, 인류는 생명에 대한 연민, 그 연민의 연대, 오직 그것뿐 다른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한번뿐이고, 그나마 유한한 삶을 살다가 소멸하는 모든 생명 존재는 그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연민해야 한다. 그 안에서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고 대접하고, 누구나 누리는 것이 엇비슷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나이 먹고 늙어갈 때는 누구나 엇비슷한 수준의 삶을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사는 데 힘들었던 조건이었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그런 대접이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것을 맘껏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그래, 맞다. 평등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누구나 자신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더 불리하게 살지 않는 사회, 그러한 평등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본질적인 연민과 연대의식으로 이뤄내려는 사회이니까.   코로나19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는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바로 사회적 환경, 공공의 시간, 공공의 공간이 필요한 이들이었음이 이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공공의 시간과 장소가 부족해진 발달장애인이 겪은 어려움이란 호소는 일년 내내 외친 주제였다. 더불어 그동안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어떠한 공적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었던가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되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올 한 해가 어땠는지 꼼꼼히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엄마, 어떤 가족, 어떤 이웃이 될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이 되고 싶어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소멸하게 되는 시점에서는 서로의 몸뚱이를 부둥켜 끌어안고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테니까 말이다, 그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소리이다. * 덧붙이는 흰소리... 2020년을 그냥 없었던 해로 치고, 올해 12월 31일 자정을 넘기면서 다시 2020을 시작하면 안 될까. 나이도 한 살 되돌리기 하고. 인류 모두가 한 살 묵혀서 다시 시작. 그냥 2020년은 연습삼아 살았던 해로 치고, 다시 시작, 이건 안 될까. 한 해를 이렇게 보냈다는 게 못내 억울해서 하는 말이다. 이만 총총. 모두 좋은 해, 맞으소서~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게시일2020-12-28

  • ‘변신’과 ‘아무튼 아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자신의 몸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다?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다 보면 허무맹랑한 픽션이 아니라 벌레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배척하고 폭행하고 언어폭력을 일삼는 비정한 사회를 엿보게 된다.벌레로 외모가 바뀌었지만 남자는 가족들과 소통하고자 안간힘을 쓰는데도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에 그가 사라져 주기만을 바랄 뿐 남자에게 아무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어느 날 내게 닥친 불행을 가족조차 감싸주지 않는데 사회에 소리쳐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겠지만 이제는 소리 내야 한다. 장애의 책임은 가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하기 때문에 있는 힘껏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영화 ‘아무튼 아담’을 보면서 나는 소설 ‘변신’을 떠올렸다.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더 실감나면서도 아담을 둘러싼 인적 자원들의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100여 년 전에 쓰여 진 것이지만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여전히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무시와 배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아담은 자신의 승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술을 마신 채 호기롭게 호수로 뛰어 들어가던 중에 목뼈 부상으로 사지마비 장애를 입는다. 그 앞 장면에서 담 위에 올라가 승진을 발표하며 들떠 있던 아담이 아래로 떨어질 때의 복선은 아찔하다. 삶을 포기하려고 그 호숫가로 가지만 아담은 새로운 다짐으로 일상에 복귀한다. 그를 지원하는 치료사와 경제적으로 궁핍함에도 항상 미소 띤 표정의 형, 무조건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어떤 도움을 줄지 살피는 부모님은 그의 커다란 인적 자원이었다. 자립을 말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립과 독립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포함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그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발달장애국가책임제를 선언했지만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요즘의 코로나19 사태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자가격리로 외출이 단절된 상황에서 활동량 많은 자폐인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마스크를 끼지 못해 집에서만 있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모가 집에서만 있으면서 마스크를 끼게 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이 분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해야 가정에서의 교육도 이루어질 수 있다.나 역시 자폐성장애인 성인 아들이 집에만 있을 때 6개월 동안 마스크 끼는 걸 시도도 못했다. 거부부터 해버리니 강제로 하게 할 순 없었는데 센터에 나가면서 1분씩 끼면서 시간을 늘려나갔더니 지금은 목에 걸고 다니며 수시로 하는 걸 그리 힘들어 하지 않는다. 모든 기관들이 이 난국에 비대면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주면 좋겠다.   영화 보는 동안 산발적인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실물 사진으로 그의 아내와 딸을 보니 내가 느낀 안타까움마저 미안할 지경이었다. 누가 누굴 함부로 안쓰러워하고 동정할 일은 절대 아닌 것이다. ‘변신’의 주인공처럼 더 이상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아무튼 아담’처럼 이 세상의 많은 아담들이 용기를 가지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할 것 이다.    

    게시일2020-12-24

  • 숙식 제공, 장애인 인권침해 면죄부여선 안돼!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 8회 시청 소회 ‘오! 삼광빌라!’의 한 장면으로 우재희(우측, 이장우 분)가 아버지 우정후(좌측, 정보석 분)에게 어머니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모습 ⓒKBS드라마 캡처   필자가 요즘 ‘오! 삼광빌라!’라는 주말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다. 서로 남이었던 이들이 이순정(전인화 분)의 집밥을 통해 마음을 열면서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는 신개념 왁자지껄 드라마라고 한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등 일일드라마나 저녁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 들어있어 약간은 식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정후(정보석 분)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눈을 띨 수 없게 만들며, 주말드라마에 재미를 주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 필자가 언급하고 싶은 장면이 8회에 있었는데, 이 장면을 보다가 문득 눈여겨보게 되는 말이 있어, 한번 이야기해보겠다.   그 전에, 우정후라는 등장인물부터 말하겠다. 그는 대기업 회장으로 기업인수의 메시라고 불리는 캐릭터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자라면서 가족 생계를 먹여 살리다시피했고, 그 여파 때문인지 근검절약하는 정신이 몸에 베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지나친 나머지, 슈퍼꼰대 짠돌이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불통꾼이고, 아내인 정민재(진경 분)와 아들 우재희(이장우 분)에게 근검절약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극강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꼰대 캐릭터다. 심지어 아내 민재에겐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기보단 피고용인으로 생각하며, 하녀 부리듯이 막 대했다.   이런 우정후 성격에 어머니를 살갑게 대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아들과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했고. 이런 아버지가 싫어 아들은 집을 뛰쳐나갔다. 게다가 아내도 아들이 사준 마카롱을 몰래 먹다 우정후에게 들킨 끝에 경기를 일으키며 응급실로 실려 간다. 이 때문에 아내는 남편과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고 느끼고 이혼을 결심하며 우정후에게 이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배경에서 필자가 말하려는 장면이 시작된다. 재희는 이혼을 결심한 민재에게 사과하라고 우정후에게 요구한다. 우정후는 집안일을 안 맡으려는 정민재가 직무유기라며, 그녀가 사과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민재가 주부와 아내의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말했다고 재희는 얘기했다.   우정후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겠다며 주부 그만 두겠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사람이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지!’라고 재희의 신경을 자극한다. 재희는 ‘먹여주고 입혀주고?’라는 물음표를 던지며 엄마를 가정부로 들이면서 덤으로 자신까지 낳았냐고 아버지에게 따진다. 이런 그를 우정후는 화내며 못마땅해 한다.   곧바로 재희는 다혈질이며 고집불통인 아버지랑 살면서 엄마는 아버지와 똑같은 성격의 시부모님을 모시며 모진 시집살이 다 견디고, 우정후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하면서 결혼까지 시키고 집안 대소사 다 챙기는 등 온갖 궂은 일을 했지만, 매번 트집 잡는 아버지 때문에 응급실까지 실려갔다고 말했다.   재희의 말에 우정후는 정민재에게 결혼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알고서도 그녀가 결혼생활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이 말에 재희는 아버지를 좋아할 수 없다며 엄마에게 뻔뻔하면서 반성도 없으시냐고 아버지를 몰아붙인다. 그러자 우정후는 결혼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자 재희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것이고 자신을 자식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지 않냐고 아버지에게 다시 따진다. 이 말을 들은 우정후는 재희를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라며, 재희에게 많은 돈으로 정성을 쏟아부었고, 현재 사업하다 말아먹은 재희가 결국엔 우정후에게 돈 달라고 빌빌거릴 것이라며 재희의 신경을 또 건드린다.   결국 재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화해할 거란 생각이 잘못됐음을 느끼고, 아버지 우정후에게 유산포기각서를 썼다. 다시는 아버지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며 아버지와의 연을 끊는다. 재희는 아버지 집을 나가고 이후 우정후는 각서를 찢으며 화를 낸다.3년 전 10월, 염전노예사건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후 항소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대책위 모습 ⓒ에이블뉴스DB   이 장면을 보며, 우정후가 자신의 일엔 열심이지만, 아내 정민재와 아들 우재희에게 가부장적으로, 권위주의적으로 차갑게 대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사람 앞에선 아무리 사랑이 많아도 인간인 이상 결국 이혼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본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이 장면에서 필자가 눈여겨보게 되는 말이 있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사람이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지!’   이 말은 숙식만 제공하면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등의 인권이 침해되어도, 그냥 군소리 말고 가만히 집에서 일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장애인 인권침해 관련 사법부의 판결과도 연관된다.   특히 염전노예와 같이 지적장애를 악용한 현대판 노예사건에서 사법부는 가해자들이 지적장애인 등의 피해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음을 참작해 돌봐주는 관계지, 근로관계로 보지 않으며, 집행유예나 징역 1년 등의 약한 솜방망이 처벌로 대신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염전 등에서 일한 장애인은 숙식을 제공받았지만, 노동력을 주었는데도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구타와 폭력을 당하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탈출하고 싶어도, 주민들과 경찰들은 피해자들을 다시 염전 등으로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염전 등에서 일한 시간 동안 장애인들은 물질적,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받았고, 인권은 유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숙식을 제공했다고 피해자에게 가한 죄에 대해 집행유예로 선고하는 사법부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면죄부를 주기에, 축사노예나 농장노예 등의 현대판 노예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사법부가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무지하며, 설령 권리교육을 받아도 일회성에 그치는 것에 한 요인이 있다고 본다. 사법부에서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하도 아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사법부 내에 장애인권리협약과 장차법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이를 실제 사례와 연결시켜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에 피드백 받는 방식으로 장기적으로 시스템이 가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 학대는 범죄라는 인식을 사법부에 장기적으로 깊게 심어주어야 하며, 사법부는 권위주의적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을 침해했지만, 숙식 제공했다고 면죄부 주는 이런 행태가 다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지적장애인 등의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인권침해에 강력히 대응하는 힘을 키우도록 장애인의 권리와 자기옹호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정부와 지자체에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고 본다.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지적장애인 등의 장애인의 경험과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숙식제공을 했다고 인권침해의 면죄부를 주는 것에 대한민국 사회가 ‘No’라고 외치며, 가해자들에게 마땅한 일벌백계를 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인격의 주체로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이뤄가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길.   

    게시일2020-12-24

  • 겁 많은 아들   성인이 된 아들의 손발톱을 아직도 엄마가 깎아 준다. 어쩌면 평생 누군가가 해줘야 할지도 모를 일인데 내가 없으면 누가 이걸 해주나 생각하면 암울하다. 살갗을 자를까봐 엄청 긴장하지만 아들은 손과 발을 엄마한테 맡기고 편안하게 있는 걸 보면 엄마에 대한 신뢰가 높긴 한가보다.   그런 아들 발톱을 깎다가 오늘은 실수로 살갗을 잘랐다. 아들이 깜짝 놀라며 발을 뺐고 순간 빨간 피가 불쑥 올라오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미안하다며 밴드를 붙여주니 몸에 뭐라도 붙이는 걸 또 견디지 못하는 아들은 바로 떼서는 꼬깃꼬깃 해버려서 계속 피가 났다. 겨우 진정해서 피를 멎게 한 후 나머지를 마저 깎으려고 발을 잡으니 세상에나~ 얼마나 긴장했는지 발에 땀이 나서 미끌거렸다. 너무 미안해서 발을 주물러 주다가 조금 후에 마무리를 하고 보니 잔뜩 겁에 질린 아들 표정이 좀 풀어졌다.   아들은 겁이 많다. 펄쩍펄쩍 뛰는 걸 즐기면서도 자신의 안전에 신경을 쓰는 게 보인다. 어찌 보면 다행이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겁나서 하지 못하는 일이 많으니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 등은 안하고도 살 수 있지만 병원을 무서워하니 어딘가 아플 때 정말 난감하다. 운동하다가 발을 다쳐 엑스레이를 찍으려고 병원에 갔으나 결국 찍지 못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꼼짝을 않으니 그 큰 덩치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설사 기계 앞으로 데려간들 움직이지 않아야 촬영이 가능한데 그건 불가능하니... 결국 부어오른 발은 약을 바르고 압박붕대로 싸고 집에서 지내면서 나았다.내성발톱 때문에 살점이 발톱위로 자라났지만 그것을 수술하는 건 불가능했다. 의사선생님이 도로변에까지 나와 아들 발톱을 진찰하셨고 결국 항생제를 먹고 소독을 하면서 한 달여간 집에서 치료했다. 발톱위의 살갗이 까맣게 변해서 떨어져 나가는 걸 보고 이런 게 나는 작은 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싫은 건 끝까지 싫으니 앞으로 더 큰 일이 발생하면 걱정이 태산이긴 하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쓰기도 정말 힘들었다. 마스크를 목에 걸고 썼다 벗었다 반복하며 겨우 지내고 있지만 불안하다. 혹여 코로나19 접촉자로 검사라도 받게 되는 날이 오면 어쩌나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다 보면 하늘이 노랗다. 검사조차 받을 수 없는 겁 많은 아들에게 검사하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아들은 아마 공포 그 자체일 것 같다.아들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무섭고 험하다. 겁 많은 아들이 겁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라는 건 무리지만 그럼에도 우선은 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좋겠다. 마스크라도 안하고 살 수 있게 된다면 아들을 포함한 마스크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 그런 세상 되기 위해서는 지금 개인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겠다.아들과의 외출은 가급적 인적 드문 곳으로 가는 걸로 그나마 위안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걱정이다. 평소에도 재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사람들의 삶이 더 많은 관심으로 삶이 더 침울해지지 않도록 국가적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길 바란다. 

    게시일2020-12-01

  • 수목원 나들이   남편 출장길을 아들과 함께 동행 했다. 거래처에서 남편이 업무 보는 사이 나와 아들은 수목원 여기저기를 무작정 걸었다. 저 앞에서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건장한 청년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서 아들의 향기가 풍겼기 때문에 그가 눈치 채지 않게 바라보니 역시 그는 나의 시선쯤은 무시하고 땅을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청년 뒤로 커브 길을 돌아오는 두 남녀가 청년의 부모인 듯 보였다.근처로 이사를 왔는지 그들의 집에서 15분 정도의 거리니 이곳을 자주 와야 겠다며 수목원이 참 좋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와 거리를 두고 오는 우리 아들에게서 그들도 자기 아들과 같은 향기를 느꼈는지 힐끗 보더니 그냥 지나쳐 내려갔다.   수목원은 군데군데 습지가 많고 데크길이 잘 되어 있어 산책하기 참 좋았다.지나치게 인위적이지도 않고 산책로가 유난히 많아서, 그다지 많지는 않았던 방문객들이 겹치지 않아 좋았다. 긴 시간 걷다보니 걸은 곳을 또 걷게 되어도 참 좋았고, 곳곳에 마련된 쉼터가 먹거리를 준비해 오면 좋겠단 생각을 가지게 했다. 흰 구름 두둥실 떠다니는 높고 푸른 가을하늘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배가 시켰고 어미 따라 쪼르르 뒤를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들의 행진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거닐다가 다른 길로 돌아 나오면서 다시 대면한 아까의 그 청년.여전히 패트병이 손에 쥐어져 있었고, 우리 아들도 점심 식사 후 내가 마신 커피 캔과 자신이 마신 패트병을 들고 손장난을 하며 걷고 있었다.눈이 커지면서 아들을 계속 바라보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귓속말로 뭐라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바로 그 여자도 우리 아들을 뚫어져라 바라 보았다. 먼 발치서 본 그 모습들이 나는 너무 우스웠지만 불쾌하진 않았다.장애자녀와 함께 사는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서 그런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우선 반갑다. 임신 중일 때는 배부른 여성을 보면 반가웠고, 아기를 안고 다닐 땐 아기 안은 엄마를 보면 반가웠듯이 지금은 장애인, 그것도 자폐인을 보면 먼저 반가움이 앞선다.'아이고~ 아저씨~~우리 아들 얼굴 뚫어지긋다요, 고만 보이소~‘나는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들도 우리 아들이 반가웠나 보았다. 신기해서 힐끗거리거나 기분 나쁘게 아래위 훑어볼 때는 사실 언짢을 수 있는데 서로를 아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이런 행동이 반갑기까지 하다. 이것이 동병상련인가?3시간 넘는 시간을 아들과 함께 사진으로 풍경을 담고 벤치에 앉아 하늘과 습지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즐긴 하루였다. 불평 한마디 없이 엄마를 잘 호위해 준 아들이 고맙다. 어디론가 뛰어갔다가 혼자 시간을 잠시 즐기고 왔던 아들이 이제 제법 든든하다. 어딜 가든 남의 시선 강탈하는 행동 없이 우리만의 시간을 즐길 줄 하는 아들과의 동행이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싶다. 

    게시일2020-12-01

  • 장애인권리협약 1차 국가보고서 심의 전 민간단체에서 장애인 권리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사이드이벤트 장면 ⓒ유엔인권정책센터   보고서의 맡은 부분 작성을 6년 전에 마치고, NGO보고서연대 민간대표 일원으로 제네바에서 열린 장애인권리협약 제1차 국가심의에 참석했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권리협약 국가보고관인 몬티안 분탄과 에다 마이너 위원에게 지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부재 및 부양의무제 폐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로비했던 기억이 난다.   연대 구성원들이 로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줬고, 이후 함께 이슈를 말하면서 서로의 관심사를 알아가게 되었다. 국가의 답변에 함께 대처하며, 밤새기도 했고, 그런 와중에 끈끈한 정이 조금씩 생겨났다. 제네바에서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연대란 이런 것임을 몸소 느꼈다.   2014년 10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권고가 나왔다. 장애인 방송권과 접근 가능한 정보 제공 기준에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점과 사실상의 부양의무제 폐지에 관한 권고를 얻어낸 점은 나름대로 보람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필자가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관심사가 한정되어서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 인권침해 관련 권고는 나오지 않았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그때의 아쉬움을 이번에 활동하는 권리협약 NGO연대에서 풀고 싶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인권침해 관련 권고는 반드시 나오도록 보고서 활동을 하겠다고 말이다.   연대 활동 하면서, 제네바 민간대표단으로 참여하면서, 필자는 장애계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활동가들과 인사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필자와 함께 소통하며 정들게 된 사람이 몇몇 생겼고, 특히 제네바에서 만났던 한 활동가와는 지금까지 카톡을 서로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 활동가와는 지금도 NGO연대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 도움 덕에 보고서 작성과 연대 활동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장애인 건강권에 대한 현실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건 물론, 이외에 연대 내의 다른 단체들과의 소통을 통해 노동, 인권, 사법권 현실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함께 소통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장애인 인권 현실을 알게 되어 인권증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된 것이 나로선 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 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이었다. 그런 소득을 얻기까지의 경험이 지금 NGO연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게 되는 동기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앞으로는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권리의 주체로 다른 사람들과 당당히 어울려 살아가는 게 현실로 다가오는 그 날을 위해서 말이다. 

    게시일2020-10-23

  • 권리협약 NGO보고서 연대활동을 회상하며소통 관계 형성, 장애인권 증진에 대한 고민 계기 가져 2013년 5월, 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의 효과적 작성을 위한 워크숍 당시의 모습 ⓒ유엔인권정책센터   필자가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라는 직장에 다닐 때였다.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작업을 하던 와중에, 민간단체에서 장애인권리협약 민간보고서 작성과 관련한 교육을 한다는 보도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었다. 권리협약 각 조항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아는 것은 물론, 알기 쉬운 권리협약 제작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소장님과 논의한 끝에 이 교육을 직원들 몇 명과 같이 듣기로 했다.   들으면서 어려운 내용도 있긴 했지만, 하나하나씩 알아가며 권리협약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시간은 흘러 2013년 4월 초, 권리협약 NGO보고서 작성을 위한 연대를 구성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연대 참여를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다. 과거에 좋은 논문 쓰겠다고 야심 찬 마음으로 대학원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교수와 동료와의 갈등, 나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대학원 생활이 어려웠다. 이후 논문 작성 도움을 받으며, 졸업 논문을 쓰고 졸업하긴 했지만, 좋은 논문은 아니었다. 나로선 상당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보고서 잘못 작성하면 어떡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연대활동을 통해 장애인권리협약을 기본적으로 알자는 소장님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생각 끝에,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팀장을 포함해 몇 명의 직원과 같이 연대활동에 뛰어들었다.   6개의 워킹그룹으로 나뉘어졌고, 나는 노동과 소득보장, 건강 등의 사회권 분야와 자립생활 조항과 관련된 워킹그룹에 가서 연대 활동을 했다. 그룹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을 공부하며 민간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처음이었고, 구성원들과의 관계도 어색해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다. 그나마 팀장과 같이 해서 다행이긴 했다.   보고서 작성 관련 통계와 자료들을 찾고, 구성원들과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의견이 다를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관계를 쌓아갔고, 권리협약 조항에 관련된 대한민국 장애인의 권리 현실을 통계나 기사 등을 통해 알아가며, 배우는 맛도 있었다.   필자는 건강권에 관심이 있어, 소속된 워킹그룹에서 제25조 건강 파트에 대한 보고서 1차 안을 쓰기로 구성원들과 소통했다. 그래서 1차 안을 7월 말까지 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국제장애연맹에서 회신이 왔다. 필자가 나름대로 작성한 장애인 건강권 관련 이슈가 실은 28조 소득보장 쪽과 관련된 이슈라는 회신이 온 거다.   필자의 머리가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조문의 뜻에 맞으면서, 객관적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한 건강권 이슈 관련 보고서 작성에 대해 소장님과 연대에 계신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더욱 정확한 최신 통계자료, 권리 현실을 말해주는 기사들을 찾아서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대한민국 장애인의 건강권 현실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게시일2020-10-23

  • 우리 삶은 소나기가 아니야.   “1998년 6월 21일 날씨 맑음.28개월 된 아들과의 삶이 너무 힘들다. 남들이 자폐성향 많은 아이라고 했지만 내가 많이 노력하면 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1년 이상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한 아들과 나의 삶은 너무 피폐하다. 한줄기 소나기가 더위를 데리고 간 덕분에 시원한 밤이다. 지금 아들과의 삶이, 우산 없이 맞은 소나기처럼 일시적인 불편함이면 참 좋겠다.”   유난히 까탈스런 아들을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사방팔방 검사 받으러 다니던 시절의 일기를 보았다.장애 판정을 받기 전, 여기저기 다니며 그저 아이에게 장애가 없고 단지 늦되는 아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무던히도 병원과 치료실을 뛰어 다녔다.아이의 기분에 따라 어느 곳에서는 이상이 없다 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심한 자폐증상이 보인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막막한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검사보다 적절한 교육과 치료에 집중했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여 아이를 양육해야 했던 그 시절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다음 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아들은 결국 발달장애(자폐)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걸 해줘야 할지 몰라 오로지 사설 치료실을 전전하며 긴 세월동안 거금을 들여 치료와 교육에 매진했지만 크게 변화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 너무 과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들을 위한 게 아니라 스트레스만 가중된다는 걸 알았다. 아울러 엄마인 나는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감만 컸을 뿐 그 많은 개별 교육을 어린 아들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인지 교육보다 생활 교육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아들에게 변화가 보였다. 아들이 뭔가를 못해서 속상하고 화가 났던 과거와 달리, 작은 것 하나라도 하는 것에 기뻐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일상이 그리 힘들진 않았다. 엄마가 힘들지 않으니 아들도 편해 보이고 표정도 밝아졌다. 여전히 힘든 부분이 없진 않지만 아들의 교육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을 당시 보다는 점점 살만한 날들이 찾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사는 삶이 그저 한바탕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는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소나기는 피하면 되지만 아들과의 삶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죽을 만큼 힘들어도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한 번씩 웃음주고 기쁨 주는 행동으로 그 힘듦을 상쇄시켜 주는 아들과 소나기보다 더 험한 폭풍과 폭우를 만나더라도 살아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힘들어도 헤쳐 나가야 했다. 시간이 우리의 힘듦을 해결해 주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아들은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지만, 강요에 의한 일상이 아니라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서 자기결정권을 늘려나가는 삶을 즐기고 있다.작은 변화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오늘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해본다.    

    게시일2020-10-14

  • 감염병 시국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들강력한 연대‧탈시설의 필요성, 일상의 소중함 등을 느껴 2.5단계로 격상된 감염병 시국 여파로 낮에 동네 커피 전문점이 공석이 된 모습 ⓒ이원무   올해 2월부터 대한민국은 코로나 시국을 맞고 있다. 최근에는 8월 15일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 19 확산이 다시 대한민국 전역에 증가하고 있는 바람에,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2.5단계로 격상해 시민들에게 최대한 집에 있으라고 하는 등,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게 줄어드는 대신, 교육, 강의, 세미나, 회의, 예배 등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있다. 필자도 그저께 온라인 예배를 보았고, 피부나 건강 강의도 줌(Zoom)을 통해 듣고 있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는 카톡을 하며, 코로나가 종식되길 바라는 심정을 서로 주고받은 적도 있다.   같은 장애를 겪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조모임도 요즘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모임 외에 일상적인 이야기들은 카톡으로 하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자조모임 회원들도 코로나가 종식되어 오프라인상에서 직접 만나 소통하길 바라고 있다.   필자와 자조모임 회원들 외에 지적‧자폐성 장애를 겪는 자녀들과 그 가족들도 코로나 시국이 하루빨리 종식되길 바라는 건 마찬가지일 거다. 복지관, 학교 등을 왔다 갔다 하다, 코로나 시국을 기점으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니 우울감에 스트레스는 쌓여만 가고, 가족들은 자녀의 스트레스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구조이니 말이다.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몇 가지를 느끼게 된다. 직접 만나는 것이 과거에는 당연시되었지만, 이 시국을 겪으면서 만남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그러다 보니 서로가 그만큼 소중하고 관계의 소중함까지 새삼스레 다시금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렸던 것들조차 소중하고 감사한 것임도 아울러 보게 된다.   코로나 방역대책과 관련해서는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 중심으로 되어 있어, 장애인들은 감염병 시국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고 있는 현실임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장애와 관련된 조항이 없고, 이와 관련한 장애인지정책이 미비한 것도, 이런 현상에 한 몫을 차지한다.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며, 남은 가족을 위해 장애를 겪는 자녀와 자신이 같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의 사례가 지금 시국에 나오는 것도 이에 대한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코로나 등의 감염병은 언제든지 올 수 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이 차별을 겪지 않도록 장애계와 장애인 당사자들, 관계자들 간 연대를 장애 유형에 상관없이 지금부터라도 강력하게 구축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연대를 통해 한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해 실효적인 장애인지정책 마련 방향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탈시설-탈원화의 필요성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시설을 벗어나 평소에 건강을 관리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었다면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에서의 코로나 집단 감염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장애인 차별은 더욱 드러나고, 일상은 거의 멈춤 상태에, 가정의 생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효과 있는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코로나 진행 상황을 앞으로도 계속 주시해야 할 것 같다.   현재로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하게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서로 연대하는 움직임이 전보다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정부가 장애인을 포함한 실효적인 코로나 방역대책도 장애계와 장애인의 의견을 들어 하루빨리 구체적으로 마련했으면 한다.   아무쪼록 코로나가 종식되어, 모든 이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일상을 누리는 모습을 하루빨리 볼 수 있기를. 

    게시일202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