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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초대칼럼 상단 이미지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이 게시판은 보다센터에서 초대한 각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소박하지만 통렬한 이야기와도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게시물 총 45

  • 1. 자랑질은 부끄럽다   자랑하는 일은 많이 부끄럽다. (안다, 이렇게 말하면, 나로부터 자랑질을 들어왔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쓰나미같은 반론, 태산같은 반증을 들이댈 사람들이 있는 것을. 하지만 뭐 어쨌든 자랑하는 일은 몹시 부끄럽다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래전부터 몸에 밴 정서인 것 같다. 또한 내가 나를 자랑하는 것을 부끄럽다는 말은, 남들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도 못마땅하다는 뜻이겠다. 생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내 머릿속 거울뉴런이 유난히 극성스러워서, 내가 나를 자랑할 때 남이 나를 부러워하거나, 속으로 욕하거나 할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으로(내가 그러하므로 남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므로), 이런 마음 속 병통이 생겼으리라. 자기의 장점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씩씩한 사람들을 보면 설핏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것이 더 건강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뭐 어쩌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뭔가 이런 정서적 태도가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고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것이라면, 자랑을 부끄러워하는 일을 자랑할 수도 있겠으나, 뭐 그렇게까지나~~.   어렸을 때(굉장히 오래 전 일이라는 뜻이다!) 학교에서는 온갖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정환경조사라든가 하는 게 있었다. 조사서에 자기 집의 사는 형편을 낱낱이 기록해 제출했는데, 이도 모자라 선생님을 이것들을 통계까지 냈었다. 일일이 조사서를 들춰가며 통계 내기 귀찮았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 항목씩 불러가며 손을 들라 했다. - 집이 자기 집인 사람 손들어봐. (집이 우리집이지 우리 집이 아닌 것도 있어요?) - 집주인이 엄마아빠가 아니고 다른 사람인 사람 손들어봐. (아, 그렇군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손들어봐. (으쓱~) - 집에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봐. (우와)- 집에 라디오 있는 사람, 아니 라디오 없는 사람 손들어봐. (!) -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손들어봐. (......)   모두 비슷비슷하게 가난했던 우리들은 손도 비슷비슷하게 들었고, 간혹 ‘~ 없는 사람 손들어봐’가 나올 때마다 유난히 주눅들어 하는 아이들 속에 자기가 포함될까봐 조마조마 했었다. 그러다보면 꼭 ‘~있는 사람’에 계속 손을 들고 있으려니까 팔이 아프다며 투정을 부리는 것들이 생긴다. 그것들의 자랑질이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나, 부잣집 아이야, 너희들은 이런 거 없지? 그러니 나를 무한히 부러워하고, 너희의 가난을 부끄러워하렴. .... 걔들의 도시락 반찬을 절대 힐긋거리지 않는다. 알록달록하고 폭신해서 절대 연필심이 부러지지 않는 걔들의 필통을 절대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절대 부럽지만 티를 내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절대 부자가 되어도 자랑하지 않겠다.   2. 칭찬과 자랑 사이 마음의 가시   이후로 티를 낼만큼 부자가 되지 못했으니, 절대 부자를 자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매우 쉽게 지켜졌다. 대신 그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풀긴 했다. 잘 달린다, 더 높이 뛴다, 아이들을 웃기게 해준다, 더 많이 읽었다...... 내가 자랑질하지 않고도 남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가장 윗길의 전략이었을 게다. 칭찬은 듣되 부러움(시기, 질투 포함)의 대상이 되지는 말자.   그런데 차츰 느끼는 것은,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인정욕구라는 것 역시 자랑질과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류의 괴물이지 않은가. 하는 사실이다. 내가 뭔가를 공들여 하거나 우연히 잘 하게 된 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못할까 안달이 나서 드러내고 과시하려 한다면, 그것이 자랑질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족이 아닌 타인에 대해 부러움 없는 칭찬이 가능할까. 나도 힘든데, 남들에게 부러움 없는 칭찬을 듣겠다는 욕심이 가당키나 한 걸까.   그러니 자랑질을 미워하는 것은, 남들의 자랑질에 동요되는 얄팍한 내 정서를 가리기 위해 이도저도 모두 포기하자는 비겁한 태도가 아니었던가, 하는 지적질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또 어쩌랴. 어쨌든 자랑질이든, 칭찬받기 구걸이든, 남을 심사를 괴롭히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결단은 칭찬받을 만한 태도가 아닌가. 다만 극복해야 하는 병통은, 내가 이러할진대 너는 대체 왜 그러냐, 내가 이렇게 자랑질 하지 않으려 하는데, 너는 대체 왜 자랑질이냐, 하는 마음의 가시를 다스리는 일이다.(물론 이놈의 가시는 거대하고 끈질기다!)   3. 엄마의 자랑질 우리 엄마는 사람은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투철하신 분이다. 편식을 한다는 것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을 잊어먹은 자들의 교만이고, 음식을 해준 사람에 대한 무례이고, 나아가 외면당하는 콩과 고등어, 고기와 미꾸라지, 우거지와, 당근, 오이에 대해 매우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그러면서 고기를 한참 거르면 어지럼증이 생긴다고 하신다.) 그렇기에 자식들에게도 편식을 몹시 나무라셨는데, 막내동생은 대체로 엄마의 뜻에 따라 편식하지 않고 두루 잘 먹지만 오빠와 나의 고집스런 편식과는 지금까지도 평생 싸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내가 하필 싫어하는 음식을 기어코 먹이려는 엄마와 맞선 싸움이 참 싫었기에, 우리 식구들의 편식은 절대 허용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식구들은 희한하게도 누가 좋아하면 누군가는 싫어하고, 누가 싫어하면 누군가는 좋아하는 이상 식욕들이 강화되었다. 물냉과 비냉을 함께 차려야 하고, 콩국수와 볶음국수를 함께 차려야 하고, 고기와 생선을 각기 차려야 한다. 내가 자초한 것이니 불만은 없다. 좀 불편할 뿐이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엄마의 편식무시의 원칙이 참 싫었는데, 이것 말고 또 하나 내가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이러고보니 참 고약한 딸이다. 엄마 흉을 보기 위해 이것저것 들이민다는 말이니.)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할머니들이겠으나, 내가 우리 엄마를 할머니라고 하지 않으니 엄마의 동료들도 할머니라고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나서, 가끔 내게 그 말들을 전하는데, 그 속에 꼭 남들이 했던 자랑들이 어김없이 들어있다. 누구 아들이 진급을 해서 뭐가 됐다더라, 하던 자랑들은 그 아들들이 은퇴하는 나이가 넘어서고 보니 사그라들었다. 그 자리를 이젠 취직 잘한 손주들이 차지했다.   - 누구 손주가 취직했다고 인사를 왔다더라, 유명한 회사인데 월급을 많이 준다더라. - 누구 손주며느리가 어디 다니느라 바쁜데, 할머니 선물을 사왔다더라. - 누구 손주가 생일이라고 할머니 모시고 나가 근사한 곳에서 밥을 샀다더라. - 누구 손주가 할머니랑 자고 싶다고 가방 싸들고 와서 일주일 있다 갔다더라.   이 중에서 많은 부분이 과장되어 있거나, 가상의 희망이 섞인 픽션으로 윤색된 것이리라. 그리고 이런 많은 자랑들을 듣고 있을 때 시새움이 없을 리 없는 우리 엄마라고 가만 있었겠나. 엄마도 똑같았겠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아주머니들의 자랑들에는 과장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모를 리 없다. 한 번 온 것은 세 번 온 것이 되고, 한 번 밥 먹은 것은 세 번 밥 먹은 것이 되는 것을 누가 모르랴. 그러니 이 아주머니들은 뭔가 자식 손주들이 자신들이 나가서 자랑을 할 만한 거리들을 만들어주기만을 바라고 또 바란다. 그분들과 다르지 않아, 뭔가 자랑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호시탐탐 탐색을 하는 우리 엄마와 나의 대화도 늘상 이렇다. - 누구 손주가 뭐 어쨌다더라. - ....... - 누구 손주가 결혼을 한다더라. - ...... - 누구 손주가 초밥을 사왔다더라. - ......- 00이는 인턴 사원으로 잘 다니고 있니? - 격주로 다녀. - 하루 네 시간 근무면 월급은 얼마나 나오니? - 근무한 만큼 나오지.- ...... - 짜증 안 부리고 잘 다녀. - ...... 기특하구나. - 00이가 우리 집에서 제일 착해. - ...... 그렇겠지. 걔가 뭐 악한 마음을 갖겠냐. - @#$%^&*&^%$#~! (이건 속으로 쏴올린 속사포다)   4. 자랑스러워 하기   자랑은 나쁘다. 그건 염치없고 유치한 짓거리일 때가 많다. 나보다 많이 가진 상대 앞에서 내 것을 자랑하는 것은, 열등해 보이지 않으려는 서글픈 몸짓이며 나를 과장하고 포장하려는 거짓이다. 듣고 있는 상대가 내가 가진 것만큼 못 가졌을 때 자랑하는 것은 상대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이고, 상대가 나를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즐기려는 못된 취미이다. 사실 내가 가진 것만큼 그가 못 가졌다는 건, 그에게 참 미안한 일이 아닌가. 그가 못 누리는 것을 내가 누린다는 것은 참 미안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불쑥불쑥 자랑질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내 마음이 참 밉고 싫으며, 누군가 내가 하는 수법이랑 비슷하게 안 그런 척 하면서 자랑질을 할 때 온 마음을 다 해서 그가 밉다. 제일 윗길은, 역시 내가 내 입으로 자랑하지 않는 거다.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말이다.   자랑질은 하지 않되, 자랑스럽기만 하면 된다. 자랑스러워 하기에는 참 많은 조건이 붙는다. 남들이 보기에도 좋아야 하고,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만 해야 한다. 남들이 못 갖는 행운을 눈치 빠르게 얻어낸 것이 아니어야 하고, 자기가 하지 않고 남의 덕에 얻은 성취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니 나는 내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남을 넘어서려는 마음이 없고, 남을 괴롭히려는 마음도 없다. 스스로 조금씩 자가발전을 해가며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늘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의 범위도 넓혀간다. 정확히 얘기해주면 그만큼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편식은 하지만 반 점은 먹어달라 하면 먹어주고, 제 방문을 고집스레 닫아놓긴 하지만 밤새 닫아두진 말고 새벽에는 열어놓으라 하면 무거운 책을 받쳐놓고 십센티쯤은 열어준다. 요컨대 남의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말이다. 아빠와 여동생이 서로 의견차이로 대립하면 ‘누구나 일리는 있다’는 말로 점잖게 중재를 선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이가 열 명이 채 안 되어도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약속이었기에 상관 없다고 하면서(!).   내 주변에는 자식자랑질을 하지 않는 이들이 참 많다. 나도 그렇거니와 그들은 대체로 자랑질은 하지 않고, 다만 자랑스러워 한다.   이뻐서, 이쁘게 웃어서, 착해서, 잘 먹어서, 좋은 습관이 있어서, 어제 못했던 것을 오늘은 할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내 옆에 있어서.   나는 이런 이들이 참 좋다. 미안해서 자랑하지 못하는 병통이 있는 이들이.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게시일2021-08-02

  • “엄마 친구들 만나는데 동생이 같이 가서 뭐 하게? 그냥 집에서 나랑 같이 있을 테니 엄마만 다녀오세요.”월1회 ‘문화나눔’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보거나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들의 모임이 있다. 몹쓸 코로나로 인해 1년 넘게 만나질 못했다. 여주에 세컨하우스를 마련한 지인이 있어 겨우 날을 잡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자폐성아들이 다니는 평생교육센터는 코로나 때문에 인원 조정을 하느라 주2회만 나가고 있는데 하필 쉬는 날이었다. 아들 등원하는 날로 내 편의대로만 날짜를 잡을 순 없었기에 나는 아들과 동행하려고 했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 여주를 돌아보고 남한강변을 걷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남편과 딸은 말렸다. 20대 청년이 50대 아줌마들 사이에서 뭘 하겠냐는 것이다. 아들에게 묻기로 했다.“하진아, 엄마 친구들 만나는데 같이 여주 갈래?”아들의 표정이 밝아지면서 ‘네!’라며 좋아했다.“하진아, 누나랑 집에 있을래?”“따아!!!”함께 가겠다는 아들의 단호함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생활 속 언어는 거의 다 알아듣지만 말로 의사 표현이 잘 되지 않는 아들이다. 그럼에도 긴 시간 함께 살면서 아들의 여러 가지 반응과 표정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혹시 노래를 통해 말이 튀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동요를 함께 부르다 보니 불분명하지만 입모양이 잡히고 작은 소리도 나오는 걸 보며 언젠간 말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영원히 말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지금 이 정도로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다. 아플 때 표현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외곽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뒷좌석 아들을 보니 창 밖 경치에 표정이 밝아 보였다. 엄마 노래 부른다며 동요 ‘내 동생’을 불렀다. 박자를 맞춰 열심히 따라 부르는 아들이 달라보였다. 발음이 아직도 정확하진 않지만 제법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 전까지와 다른 모습이었다. 몇 가지 노래를 더 부르며 아들보다 내가 더 신이 났다. 어느 순간 단어 하나가 툭 튀어나와 나를 까무러치게 할 것 같았다.아들은 평소 집에서는 아이돌의 댄스곡을 즐겨 듣는다. 음량을 크게, 작게 조절하며 때로는 겅중겅중 뛰면서 춤까지 춘다. 빠른 템포의 노래 가사를 흉내는 못 내고 ‘으으으...’ 소리를 내며 나름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그게 안쓰럽고 안타까웠는데 그런 마음을 접은 지는 오래 전이다. 살아보니 스트레스 잔뜩 받으며 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은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현명한 삶의 태도였다. 나름의 즐기기 방법으로 ‘집콕’ 생활을 하며 큰 소란 없이 지내주는 아들이 고마울 뿐이다.   평일 고속도로는 한산해서 좋았다. 적당한 속도감을 느끼며 한 시간여 달리다 보니 낯익은 시골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좁은 외길을 따라 비슷한 모양의 집들을 보면서 목적지에 닿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아들을 직접 본 지인들의 표정은 모두 밝았다. 잘 생겼다, 배우 누구 닮았다, 의젓하다 등...좋은 말을 쏟아내니 아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들은 자신이 정한 의자에 앉아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간간이 미소를 띠기도 했다. 심심하거나 뭔가 맘에 안 들으면 머리카락을 꼰다든가 손을 입에 대고 후후 부는 행동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장소가, 거기 모인 사람들이 자신을 편하게 해 주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낯선 것을 싫어하는 아들은 특히 움직이는 놀이기구 타는 걸 겁내는 편인데 해먹에 앉아 보라니 처음엔 거부하다가 바로 걸터앉았다. 모두가 자신을 주시하며 재밌겠다, 한 번 앉아 봐 등으로 관심을 보였더니 바로 앉아 주었다. 누워 보라고 하니 또 엉그적거리며 눕기도 했다. 뭐든 처음 할 때의 저항이 심한 아들은 우리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알아차린 듯 잘 응해 주었다.  아들이 해먹에 누워있는 사이 우리는 장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경계선급 장애인 경우 혼자 잘 할 수 있는 게 많다보니 여러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들을 이용해서 금전적 이득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함께 하는 건 그를 구속하는 게 되니 방법이 아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제도적 장치가 물론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의 인성이 더 중요함에 우리는 입을 모았다. 어렸을 때부터 통합을 하면서 장애인과 늘 함께 해 온 아이들은 커서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낯설어서 거부하고 자신과 달라서 배제하는 일은 어려서부터 몸으로 배우지 못해서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서로 부대껴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귀한 존재임을 몸으로 알고 배우는 교육이 중요하다. 말로만 하는 장애인식교육은 허울이다.아들을 통해 지인들이 생각하는 장애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음이 참 좋았다. 오늘도 우리 모자는 함께 사는 세상에 작은 깃발 하나를 꽂은 기분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장애를 알고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예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은 날이었다.   부녀가 모자의 동행을 끝까지 반대하지 않은 건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다. 호불호를 우리가 잘 알아차릴 수만 있어도 아들의 삶은 불행하진 않을 것 같다.​  

    게시일2021-07-28

  • 1. 오래된 시장이 있는 동네에 산다   우리 집은 꽤 나이 먹은 아파트인데, 나는 이사 오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이 집의 낡음을 타박하며 쭈욱 살고 있다. 어떤 물건을 대할 때 그것의 표정이 보이는 이상한 병통이 있는지라, 내가 타박할 때마다 이 집이 듣고서 상심하거나 심통을 부릴까 슬며시 걱정스럽다. 사는 집은 이렇게 투덜대면서 사는 동네만큼은 유치하게 자랑질 만발이다. 우리 동네엔 오래된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쓰고보니 희한하다. 왜 오래된 시장은 자랑하면서 오래된 집은 구박일까...)   우리 집과 전철역 사이에 크고 긴 시장길이 있는데, 여길 오가는 재미가 참 각별하다. 수십 년째 그대로인 가게가 있는가 하면 자꾸만 바뀌는 가게도 있다. 점포도 없이 길가에 푸성귀 몇 가지 놓고 좌판을 열었던 분이 한참 뒤에 작은 가게를 장만해서 산뜻하게 장사를 시작하기도 하고, 장사도 별로 안 되는 것 같은데 매번 근사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개업했다가 정리하고 바로 근처에 또 개업하고 또 정리하고 또 개업하고를 반복하는 집도 있다.   이 곳이 최근 몇 년 새에는 나도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더 유명해져서 코로나19에도 서로의 어깨를 스치지 않고는 걷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어주부가 과일과 채소를 사면서 매번 남성시장에서 샀다 자랑하고(심지어 이 시장에서는 아보카도가 한 개 5백원 하는 것도 있다며), 이정현이 끌수레를 끌고 와서 호떡을 먹고, 이영자가 신기하다며 떡집 앞에서 떡을 사서 돌리기도 하는 그 시장이 바로 우리 동네 시장이니, 자랑질을 할밖에—. 시사주간지에 난 어묵집도 있고, 숨은 맛집 고수들이 찾아낸 메밀국수 집도 있고, 비빔국수와 물국수 딱 두 가지만 파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행복한 국숫집도 있다.(이 두 집은 절대 안 가르쳐 줄란다. 지금도 땡볕에 이십 분씩 줄을 섰다 먹는데, 더 알려지면 정말 큰일이다!)   2. 선을 넘는 가게들   그런데 이 시장길을 오가는 것이 대체로는 매우 각별한 즐거움이지만 또한 동시에 고질적인 고통이기도 하다. 이른 점심때부터 매일 고주망태가 되어서는 시장 어귀에 서서 오가며 눈을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욕을 퍼붓는 할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이미 그 할아버지는 늘 그러한 풍경 속의 정물이 되어서 누구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잰걸음만 떼면 그뿐이니까. 오히려 건강을 잃고 한참 출근하지 못하셨을 때 동네사람들이 얼마나 은근 걱정들을 했었는지. 그렇다고 또 거의 날마다 시장길 초입(고주망태 할아버지와 대략 이삼십 미터 거리를 두고)에서 상품권 다발을 내밀며 여러 일간지 구독을 권하는(심지어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함께) 아저씨의 한결같은 속삭임(“신문보세요, 신문”)이 부담스러워서도 아니다. 내게 고통을 주는 건 선을 지키지 않는 가게들이다.   시장의 가게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 잇따라 있기에 길을 표시하는 선이 쭉 그어져 있다. 가게의 영역은 딱 거기까지라는 표시이다. 칼같이 이 금을 지키는 오래된 뚝심의 가게도 있지만, 많은 가게들이 슬금슬금 그 선을 침범하고 물건들을 내놓는다. 많이 내놓은 곳도 있고 소심하게 조금 선을 밟는 정도로 내놓는 곳도 있다. 나란히 있는 어떤 집들은 서로 눈치를 보아가며 물건 내놓기 경쟁을 하기도 한다. 제일 고약한 집은, 물건을 내어놓는 것만도 모자라 물건을 실은 오토바이를 턱하니 가게 앞에 대놓는다. 마치 물건을 싣고 나르기 위한 것인 양 짐짓 끈도 내려놓고 위장했지만,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게 길 가는 사람들을 가로막고 자기 가게로 억지로 들이기 위한 꼼수라는 것을 다 안다. 심지어 길가에 과일과 채소 상자를 잔뜩 내어놓은 어떤 집은, 정작 가게 안 진열대는 휑하니 비어 있는 때도 많다.   가끔가다 어쩐 일인지 일제히 금 안으로 물건들을 들여놓을 때도 있는데, 아마도 민원으로 단속을 하거나 상인회에서 자체결의를 하거나 했겠지만, 얼마 가지 않아 가게의 영역은 고무줄처럼 또 늘어난다. 조금 내놓는 집은 조금 얄밉고 많이 내놓은 집은 많이 밉다.   3. 시장의 반칙   나는 날마다 시장길을 따라 오가며 양 옆의 가게를 살핀다. 오늘은 이 가게가 더 내밀었군, 오늘은 저 가게가 더 들이밀었군, 하고 ‘속으로’ 화를 내며 걷는다. 아마도, ‘속으로’가 아닐 것이다. 인상도 잔뜩 쓰고 걷는다.(요새는 마스크 속에서 소리내어 구시렁거리기까지 한다.) 이 아저씨는 안 그러셨는데 왜 반칙 대열에 합류하셨나, 아니 저 아주머니는 언제 그릇 하나를 더 내놓으셨나—. 나는 참으로 별스럽게도 이십 년도 더되는 세월을 날마다 오가는 길에 어느 가게 물건이 튀어나와 있는가를 꼬나보고 화를 내며 다닌다. 그러면서 금을 넘어 상품을 내어놓는 가게 물건은 절대로 사지 않는다는 소심하고도 단호한 응징을 한다. 이게 나의 공정(公正)이다, 이러면서. 어쩌다 시장길에 동행하는 딸은, 내가 언제나 같은 소리로 투덜거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단다. 그렇지만 나는 도대체 너무나 한결같이 화가 나는 거다. 이 화는 지치지도 않는다.   그들의 반칙이 너무 싫다. 한 집에서 반칙을 쓰면, 그것은 곧 전염이 된다. 점점 더 많은 물건을 앞으로 내밀어 놓게 되고, 급기야는 오토바이를 가게 앞에 세우게 된다. 선을 지키던 사람들은 갈등하게 되고 이윽고 반칙을 경쟁하게 된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걷어차 버리는 고약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야외에서 무언가를 볼 때 모두가 앉으면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군가 더 잘 보겠다고 일어서버리면 제일 앞에 있거나 제일 키 큰 사람 빼고는 누구도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모두를 망치는 경쟁이다. 굳이 경쟁에서 룰을 지키지 않는 것만이 반칙이 아니다. 어떤 경쟁은 경쟁 자체가 반칙이다! 내가 아껴 자랑해 마지않는 이 시장길에서, 반칙하는 가게들 때문에 나는 날마다 또한 괴롭다. 괴롭기는 하되 그럭저럭 어떤 행동을 하지 않고 견뎌온 것을 보면, 이 못된 경쟁을 미워하는 마음이 나를 말려죽일 정도는 아니었던가 보다. 그래도 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이 째려보고 욕하면서 오갔으니 참 엔간히도 밉고 싫은 마음이 고집스레 쌓였다. 날마다 더케로 쌓이는 미움이다. 4. 어떤 경쟁은 그 자체로 반칙이다   예전에 가족오락관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도 즐겨 봤는데, 내가 재밌어 한 부분은 바로 그 프로그램의 게임에는 반칙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의 의지였는지 모르지만 그 게임들에는 반칙이 용납되지 않았다. 어차피 오락이고 웃자고 하는 게임인데도 누군가 슬쩍 반칙을 쓰면 여지없이 점수가 인정되지 않았다. 떼를 써도 소용없고 속이고 넘어가려 해도 반드시 적발이 되었다. 보는 내내 얼마나 마음이 편하든지—.   그러고보니 이 병통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듯싶다. 경쟁하는 놀이가 참 싫었다. 일테면 의자뺏기, 모둠짓기 놀이들이 그랬다. 누군가 낙오시켜야 하는 놀이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약빠르게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의자를 놓치고 낙오된 아이들을 볼라치면 그 눈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때 그 낭패, 허망함, 약오름이 마치 한 동이 물을 뒤집어 쓰는 듯 그대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 경쟁이 반칙을 동반해서 결과가 바뀌었을 때, 마음 속에 가시뭉텅이가 콱 박혀서는 두고두고 분했다. 그러다 그러다 어느 때인가부터 어떤 경쟁들은 그 자체로 반칙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많은 경쟁이 불평등한 출발을 하고, 공평하지 않은 조건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출발선이 반듯하면 공정하다 하고, 같은 도구를 주면 공평하다 한다. 그 출발선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불평등하고 누구나 세워놓는 그 반듯한 출발선이 불공정할 수 있는데도 그것이 공정하다고 말한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출발로 경쟁하고, 그 결과 차지한 것이 천지 차이가 나는데도 그것은 공정한 경쟁의 산물이라고 착각한다.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누리고 사는데도 그것이 경쟁의 산물이면 공정하다고 우긴다.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살아오면서 스스로 불평등한 욕망의 괴물들이 되어버린 걸까. “네가 일한 만큼만 처먹고 살아!”라는 영화 대사를 들으며 속이 후련했던 것은, 대개는 일한 것보다 더 부풀린 댓가를 바라고 일하며, 그런 일은 대체로 경쟁이라는 속성을 갖는다는 이유에서였을 게다.   경쟁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한 겨룸이고 보면, 그것은 누군가 무언가를 획득한 것에 대해 정당한 획득으로 승인을 해주는 과정일 수 있다. 경쟁했니? 아, 경쟁하느라 노력했겠구나, 그럼 네가 차지한 것은 공정한 승리의 전리품이다, 땅,땅,땅. 하지만 우리는 안다. 링에 오를 수 있고없고부터도 이미 경쟁을 치룬 결과이고, 그 때의 경쟁은 그런 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며, 그로써 얻어지는 것은 많은 이들의 욕망이 덧씌워진 도박판의 판돈이 올라간 과장된 전리품이라는 것을. 우리의 불평등한 욕망은, 혹시라도 내가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음흉하게도 그 판돈을 올려놓은 채로 그냥 놔둔다는 것을.   평평하지도 않은 땅바닥에다, 보이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입구를 가진 운동장에서 승자를 위한 룰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공정한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지는 무수한 우연과 행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운동장이 평평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건 거짓이다. 그 사기에 동참하면 안 되며, 스스로에게 그 욕망을 허용하면 안 된다. 결단해야 하고 스스로를 꾸짖어야 한다.   5. 결단   그래서 나는 시장에서 가게자리의 선을 넘어서 물건을 내어놓는 얍삽한 마음이 참 싫다. 못된 경쟁에 애먼 사람들까지 가담하게 만들고는, 마치 그것이 누구나 갖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욕망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이 너무 싫다. 그런 욕망에 솔직한 것이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고 그것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눙치는 게 너무 싫다. 느닷없이 능력있는 자가 많이 차지하고 살면서 그렇지 못한 자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공정한 세상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었다. 내 아들하고 나이차가 많이도 나지 않는 그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나훈아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내 아이가 그가 등판하는 운동장에 서기 어려워 휘청거리거나 그늘에 앉아있을 게 분명해서 그의 말이 싫은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공정이, 숱한 반칙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기 십상이라 그렇다. 운동장에 서기 전에 자신을 포함하여 그 운동장에 설 사람들의 삶에 대해 성찰해야 하며, 그 운동장에서 겨뤄서 차지할 것들이 공정한 댓가인지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그 때 비추어볼 세상에는 자신의 욕망은 제외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야 공정할 수 있다. 자신의 욕망을 제외한 세상에 비추어 살펴보고, 공정하지 않다면 그 운동장에 들어서지 않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 자기 결단을 할 자신이 없는 자가 운동장에 들어서는 것을, ‘위험하다’ 말한다.  .... 아, 경쟁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에게, 위험한 세상의 목록이 도대체 줄지를 않는다, 날마다 내미는 점포의 물건들처럼—.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게시일2021-06-30

  • 당당한 사회구성원이자 권리 주체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자폐 긍지 깃발 ⓒWikipedia    매년 4월 2일이면 어김없이 유엔이 정한 ‘자폐인의 날’을 맞는다. 올해는 코로나 영향으로 인해 인터넷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2년 전과 4년 전 행사 갔을 때 별로 마음은 좋지 않았다. ‘자폐인의 날’이라면 자폐인이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자폐인을 키운 부모님들과 고위 관계자들이 그날의 주인공이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들의 노고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자폐인들은 들러리 역할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자폐 인식만 되어 있지, 이해‧수용은 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자폐성 장애인들은 이런 소식들을 종종 접한다. 자폐인에게 폭력을 가했지만, 훈육의 목적이기에 죄를 감경했다든지, 자폐인과 관련한 취업 알선은 거의 드물다든지, 자폐인, 정신장애인 등은 교육대학 입학에서 제외된다든지 하는 것 등등 말이다. 우리나라의 자폐인은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라는 것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자폐(이 말 자체도 부정적이라 나중에 바꿔야 할 필요는 있지만)라는 정체성은 폭력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으로 낙인찍는 것 또한, 우리나라 현실이다. 하지만 특성이자, 신경 다양성의 일종이 자폐며, 자폐인들도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권리 주체다.   또한, 한 번 꽂힌 것이 있으면 지루해하지 않고 집중하면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자폐인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기후문제에 전문적인 식견을 소유하며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동물의 이동 경로에 가장 적합한 가축 시설을 설계한 미국의 탬플 그랜딘(Temple Grandin) 등...   이렇게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자폐인의 역할을 상기함은 물론, 자폐인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폐인 정체성을 긍정하기 위한 날이 바로 자폐인 긍지의 날(Autistic Pride Day)로 전 세계적으로 매년 6월 18일을 기념일로 한다.   이날은 보통 가족들과 함께 산책, 피크닉을 하거나 자폐인들이 몸짓하는 것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는다고 한다. 호주, 영국 등지에서는 자폐인 당사자의 입장을 존중하는 이 날을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   자폐인 긍지의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폐 당사자들 시각엔, 신경 다양성이 있는 자폐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대부분 자폐성 장애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이들에 대한 지원 및 합리적 조정(우리나라의 경우 정당한 편의)이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경우도, 자폐성 장애를 질병으로 바라보는 태도, 장차법에 자폐인과 관련된 합리적 조정이 없는 등 자폐인을 대상화하고 차별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권리 주체로 보는 정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거의 드물 정도다. 그런 사회에서 사는 자폐인들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내려갈 게 뻔하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폐 정체성을 긍정하고 자폐인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자폐인을 권리의 객체가 아닌 진정한 주체로 보기 때문이리라. 이를 통해 나도 사회에서 소중한 존재요, 당당한 사회구성원임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겠지.   사실 올해 내가 소속된 모임에서 나를 포함한 자폐인들이 6월 18일 공식행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5인 이상 모임 제한 때문에 올해는 한국 자폐인의 현실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는 식으로 ‘자폐인 긍지의 날’ 행사를 대신했다,   3일 후엔 클럽하우스란 공간에서 ‘자폐인 긍지의 날’에 대한 부모, 전문가, 자폐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지인의 초대로 듣게 되었는데, 나는 자폐인과 그 가족 관련 정책이 욕구와 권리에 기반한 정책이어야 한다고 그 공간에서 말했다. 자폐인과 그 가족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바람에서 말이다.   자폐인들끼리 소소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나누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와 리더십을 키우는 자조모임을 만들면, 그런 모임에 함께 싶은 자폐인들은 점점 많아져 단결해 가겠지. 자폐에 대한 정의를 자폐인 당사자들이 내리고, 전문가와 의사가 아니라 자폐인들이 헤게모니를 쥘 때, 자폐인의 인간다운 삶이 현실이 다가오겠지. 물론 기득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겠지만 말이다.    자폐성 장애 정체성을 긍정하는 ‘자폐인 긍지의 날’을 생각하며, 작지만 하루하루를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이자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을 용기 내어 다짐해본다. 이런 다짐이 그날만이 아닌 1년 365일 이어지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런 자폐인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자폐인들이 인간다운 삶과 행복의 권리를 누리는 아름다운 곳으로 자리 잡아가게 될 것을 말이다.       

    게시일2021-06-29

  •     가족 외식 후 딸이 종종 간다는 카페에 들어갔다. 점잖게 밥을 먹은 후라 우리는 아들의 돌발행동을 예측하지 못했다. 하긴 돌발행동이 항상 평온한 상황에서 보이는 거라 무방비 상태의 혼란스러움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아들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손을 흔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겅중겅중 카페 안을 걷는 듯 뛰는 모습에 사람들의 놀란 시선이 아들에게 꽂혔다. 어차피 벌어진 상황이고 한 바퀴 돌면 자리에 앉는 걸 아는지라 나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남편은 빠르게 아들을 쫓아갔고 딸은 굳은 표정으로 얼음땡이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더 심하게 소리까지 지르며 한 바퀴 더 돌았을텐데 이제 아들도 그쯤에서 멈추고 점잖아지니 다행이다.“아 진짜! 정하진! 넌 잘 하다가 한 번씩 그러더라. 매너 좀 지키고 살자, 응?”딸은 그걸로 끝낸 동생을 보며 한 마디 했지만 귓등으로 듣는 아들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 딸이 안쓰러우면서 아직도 동생의 행동을 불안하게 보는 게 안타까웠다. 나 역시 그런 게 아무렇지 않게 봐 지진 않아도 태연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같이 움직이면 아들의 행동은 더 커지고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총이 정말 싫어서다. 부모와 누나 입장이 다르겠지만 나의 바람은 딸도 그냥 동생을 봐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해서 될 일은 아니고 딸이 스스로 그런 마음이어야 됨을 알기에 채근하진 않는다.   첫 월급 탔다고 딸내미가 거한 밥을 산다고 했다. 휴일이라선지 딸 직장 부근의 근사한 식당은 주차장 입구부터 붐볐다. 차 안에서 그림같이 앉아 있던 아들이 발렛 주차를 하려고 차를 세우자 갑자기 차문을 덜컥 열고는 뛰쳐나갔다. 혼비백산한 딸이 바로 아들 뒤를 쫓아갔다. 남편도 딸 뒤를 따라 갔다. 그 셋을 바라보며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덩치 큰 아들이 투스텝을 밟으며 겅중겅중 뛰어가니 주차장 입구는 모세가 지나가는 홍해가 되었다. 순식간이었지만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왜 저래?’로 대동단결되어 보였다. 겨우 아들을 진정시키고 예약된 곳으로 가니 룸이었다. 우리만 있으니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했다. 딸이 자꾸 아들을 못마땅해 했다. “넌 아직도 동생 행동이 그리 불편하냐? 잠깐 뛴 걸로 그렇게 인상 쓰고 눈치 주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딸은 그제서야 자신이 좀 과했나 싶었는지 움찔했다.“하진아, 미안. 누나가 요새 일이 많아서 좀 예민했어.”하면서도 완전 미안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너스레 잘 떠는 남편 덕에 분위기는 금방 달라졌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공간이 편하고 좋았다. 딸내미가 장소를 고심하고 정한 흔적이 보였다.   한 때 나는 아들과 동행하면 총 맞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차갑고 따가운 눈총. 얼굴 잘 빨개지는 나는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빨간 표정을 보이는 게 너무 싫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 행동으로 나타내는 아들이기에 얌전하다가도 갑자기 두 손을 흔들거나 손을 입에 대고 후후 분다. 어쩌면 아들의 이런 행동은 평생 가져 갈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말에 좌절 한 적이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잠시 멈췄다가 더 심하게 하는 아들이었기에 무서운 인내심을 발휘하여 모른 척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행동을 보이긴 해도 빈도와 강도는 줄어들고 약해졌다. 가족들은 한 번씩 못마땅한 속내를 아들에게 말하지만 그것도 나는 내버려뒀다. 가끔 아들은 ‘나 이거 하는데 엄마 왜 하지 말라고 안 해?’라는 표정으로 내 곁을 서성댔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해 외면했다. 그게 얼마나 큰 인내가 필요한 지, 자식 키우는 일이 때로는 면벽수행이란 생각이 든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은 외출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수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을 실천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내가 생각한 만큼 우릴 향해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로 바쁘다. 소리가 나니까 한 번 쳐다본 것 뿐이었다. 그걸 내가 눈총으로 받은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노골적으로 바라보면서 동정이나 불편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그래서?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우리 아들이 자폐라서 이래요 저래요’ 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그러라고 관두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주는 것보다 내가 느끼는 게 더 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면서 나는 아들과의 외출을 즐기고 있다. 때로는 아들에게 길을 묻는 행인도 있다. 아들이 대답해 줄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나는 기쁘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집콕’을 하는 가운데 나는 아들과 인적 드문 곳으로 나들이를 많이 다닌다. 점잖게 동행해 주는 아들을 보면 엉덩이라도 툭툭 쳐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하지만 성인 된 아들에게 그런 행동하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외출 힘들었던 시절이여, 이젠 안녕!   

    게시일2021-06-16

  • 단상 1 - 문화는 힘이 세다두어 달 동안 다큐영화 <학교 가는 길>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 가는 길>은 2017년 서울 강서특수학교 건립을 막아서는 사람들 앞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호소했던, 이른바 ‘강서무릎사건’에 관한 영화이다. 당시에 이 장면이 찍힌 사진이 보도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이 일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말대로 ‘한 장의 사진이 사회를 거대하게 바꾸었던’ 사건이 되었다. 강서 서진학교는 서울지부의 소원처럼 ‘떡벌어진 큰 잔치’는 하지 못한 채 2020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조촐하게 개교를 했다.  그리고 올해 5월 5일, 무릎 사건 그 이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 건립까지의 모든 갈등과 깊은 서사를 담아낸 김정인 감독의 다큐 영화 <학교 가는 길>이 개봉되었다. 이미 지난해부터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터라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긴 했지만, 보란 듯이 전국 개봉관에 걸렸으니 뜻하지 않은 선물더미를 받은 듯 벅차기만 하다.   이 영화는 특수학교 설립에 관한 단순한 싸움의 기록물이 아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사는 이야기, 세상의 편견이나 오만과 싸워가는 용감한 엄마들의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이 변해가(야만 하)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두루 담겨있으니,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보아 주었으면 하는 기대로, 영화 참여자들은 두어 달이 넘도록 영화 알리기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들의 극성(이 말 말고 달리 표현한 길이 없다, 또한 여기서 ‘우리’란 부모연대를 말한다)과 영화 자체의 탄탄한 작품성과 배급사의 노력으로 무척 많은 매체에서 영화를 소개해 주었고 영화를 본 사람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소문을 내준 덕에, 영화는 개봉 열흘만에 유료관객 1만명을 넘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특정 소재를 다룬 다큐영화가 1만을 넘긴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1만씩 들었으면 하고 바란다.   다큐 중간에 ‘강서4인방’의 한 명인 이은자 씨가 “우린 투쟁이여~!”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투쟁이다. 이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게, 부모연대 회원인 것이, 우리가 세상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려는 모든 행위가 투쟁인데, 지금 우리는 문화운동으로 격렬히 투쟁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품위 있으면서 효과적이라고 느낀다.(다른 투쟁이 품위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투쟁이 꼭 품위 있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문화는 투쟁의 선동물로서 도구적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뛰어난 투쟁방식이다. 우리는 1만명을 붙잡고 낱낱의 사람마다 99분씩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미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응원하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삶의 어떤 순간에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어떤 정책을 만들거나 검토할 때, 이 다큐 속에서 생생하게 기쁨과 사랑과 슬픔을 말하던 엄마들을 떠올릴 것이다. 길을 걷다가 어떤 이를 보면서 혹시 다큐 속에서 본 이들처럼 저 이도 발달장애를 가진 이라서 도움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며 잠시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   다큐 속에서 우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아이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었고,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내 아이로 태어나 주어야 하는 귀한 존재이다. 그리고 참 미안하다.이 마음을 1만 명에게 전하고 보니, 10만에게, 100만에게 전하지 못해 아쉽다. 그리 되면 세상을 설득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할 테니.   단상 2-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 여든넷 된 친정엄마에게 이 영화를 보여드렸다. ‘데모하는 것들’은 국가(보수정권이든 아니든 어느 쪽을 향하든 상관없이)에 위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선동투쟁이 아닌 모험이었다.(영화 속에서 내가 구호를 외치거나 머리를 밀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으니 그리 큰 모험은 아니되, 내가 몸담은 조직이 이런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것은 노출될 가능성이 분명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 영화를 보고나서 자식들에게 분부한 제일성은, “너희하고 너희 아이들 꼭 다 봐라”였다. 그러면서 직계자손들의 영화비를 지원하고, 딸의 아들 통장에 용돈을 쓱-, 넣어주셨다. 통화를 하다가 “바쁠 텐데 통화를 길게 해서 미안하구나.” 라는, 내가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사를 듣기도 했다.영화를 보고난 뒤에 친정식구들이 모였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친정식구들이 어찌 변했는지 아직 알 수는 없다. 다만 가족 톡방에서 내가 하는 말에 좀더 빨리, 좀더 상냥하게 답문자를 남기는 것을 보면서 ‘다큐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살고 있으니, 가장 가까이 기대는 사람들부터 이 영화를 보게 해야 하지 않을까. 기대는 어깨가 단단해져야 우리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큐 효과’가 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단상 3 - 무릎을 꿇는다는 것 여러 한 고백을 다시 반복하자면, 나는 그 날 그 현장에서 무릎을 꿇려고 나가는 ‘동지’들을 붙잡고 말렸었다. 영화 속, 그들이 무릎을 꿇느라 비어버린 의자들 사이에서 망연자실 서있는 게 바로 나다. 반대쪽 주민들이 소리 지르고 욕하고 행패를 부리는 것을 긴 시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들의 패악질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에 몰두해 있는데, 동지들이 우르르 나가더니 무릎을 꿇었다. 저런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다니, 저런 무례한 자들 앞에 무릎을 꿇다니, 나는 도저히 무릎을 꿇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옜다, 까짓 무릎, 나도 꿇어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맞무릎까지 꿇은 어떤 자 앞에서 당장 일어서라고 고래고래 악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알았다. 우리가 무릎을 꿇은 것은 단지 그 무례한 사람들에게 뭔가를 호소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세상에 불쌍한 표정으로 사정하기 위함도 아니었다는 것을. 새끼를 위해 한 순간 모욕을 당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는 결기의 표현이고, 그 때의 모욕은 이미 모욕이 아니라는 것을. 정작 수치스럽게 느껴야 했던 것은, 말 아닌 말들이 난무하는 강당에서 엄마들이 무릎을 꿇는 장면을 기어코 만들어내게 했던 세상이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해 꿇었던 무릎이었다. 굴욕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를 상대에게 되돌리는 행동이었고, 더 낮춤으로써 낮추려는 상대를 낮추어버리는 대단한 저항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날 밤에 깨달았다. 하지만 어쩌랴, 도저히 저들 앞에 무릎을 꿇는 게 너무 싫어서 덩그마니 서있던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다 한들 투쟁에 큰 흠집이 나는 건 아닐 테니,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좀 머쓱한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퉁치고 넘어가려 한다.   그래서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적었다.아이야, 무릎을 꿇은 어미를 보고 슬퍼하지 말아라. 이것은 슬픈 싸움의 기록이 아니라, 즐거운 싸움, 승리의 기록이란다. 그리고 어미들은 너희들을 위해 늘 승리할 것이니-.     단상 4- 간절함에 대하여 얼마 전에 우연히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몇 년 전 다큐 영화를 봤다. 티베트의 자기 사원을 찾아가려는 린포체와 그의 스승의 이야기다. 눈보라가 가득한 산 속에서 린포체 앙뚜가 뿔소라를 꺼내 분다. 멀리 있는 그의 제자들이 듣기를 바라며 힘껏 부는 뿔소라 소리는 눈보라와 함께 온 산에 가득하다.    간절함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간절함을 갖는 일이 있다면, 이 또한 차가운 산 속 눈보라 속에서 뿔소라를 부는 것처럼 할 일이다. 먼지와 욕지거리가 난무한 체육관 속에서 무릎을 꿇는 일처럼 할 일이다. 때로는 이 일들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어쨌거나 상관없다. 이미 그 일 자체가 기적이다. 우리의 단단한 내면의 투쟁, 승리의 기록. 그리고 단상 5 - 김정인을 위하여 (* 진작에 한 식구처럼 된 김정인 감독에 대한 찬사를 기록해두지 않을 수 없어, 이 글에 붙여 놓는다.)   2017년 가을, 먼 데 있는 특수학교에 힘들게 다니는 장애자녀를 둔 엄마들이 욕하고 달구치는 이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선 토론회가 거칠고 찢겨진 고함으로 세 시간이 지나간 때였다. 동정을 구해서도, 굴복의 표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대로 단단하게 구축한 진지였다. 오늘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야, 라는 꺽진 항거의 진지. 그 장소에 한 다큐 감독 지망생이 있었다. 그는 장애 쪽도 반대 쪽에도, 어떤 인연이 있어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온 것이라 했다. 그 날 그 자리에서 그는 강서 특수학교의 개교까지를 영상에 담기로 결심하고, 이후 카메라를 짊어지고 그 엄마들의 투쟁을 따라다녔다.   젊은 감독의 일은 생각보다 긴 여정이 되고 말았다. ‘한 장의 사진으로 사회를 바꾸었다’는 이 사건으로 학교 설립까지 단숨에 달려갈 줄 알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동안에 그는 그의 카메라에 담기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들의 투쟁의 여정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차곡차곡 기록하게 되었다.   무려 5년이 걸린 제작기간 동안 그는 다큐 감독으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바른 균형감을 갖기 위해 강서 특수학교 이슈의 모든 배경을 취재하고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였으며, 그 자신의 말대로 ‘작품의 톤앤매너 (Tone & Manner)를 정하는 데 무수한 고심을 해’왔다. 토론회 이후 이 사건을 다룬 수많은 언론보도와 온오프라인의 숱한 매체에 나왔던 모든 콘텐츠를 망라하여,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만들어진 모든 관련 콘텐츠를 빠짐없이 모니터링’ 하면서 치우치지 않은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이 다큐는 특수학교를 세우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의 대립이 단선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인한 폐해, 모순된 사회 구조 속에서 오랜 기간 고통을 당한 주민들의 애환 등 말 그대로 가양동의 역사성, 특수성’을 충실하게 담은 작품이 되었다. 이걸 만든 김정인, 그는 선하면서 결기가 독한 감독이다.   우리 앞에 선물처럼 당도한 다큐 ‘학교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되고 만들어졌다. 이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강서 특수학교 설립 투쟁의 주인공들이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나이였다는 것에 감동하면서, 감독이 담아낸, 울림이 깊은 서사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이야기 안에 감동의 지점들이 이토록 다채롭다니-,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동한다. 단지 내 일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일이라서, 삶의 동지들의 일이라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귀한 인연으로 빚어낸 일이라서 감격한다.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게시일2021-05-24

  • 아들 입술에서 피가 난다. 환절기만 되면 건조한 입 주위를 비비는 아들. 얇은 피부는 금세 빨개지고 급기야 피가 보인다. 딱지가 생겨 이제 나으려나 보다 생각하면 그걸 떼 내고 다시 비비기를 반복하니 상처 부위가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연고나 크림을 발라주면, 살갗에 뭐라도 묻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아들은 그게 없어질 때까지 더 세게 닦아댄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관심을 끊고 아들 스스로 참아서 끝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상처 주위를 소매로 쓰윽 닦을 때마다 내 몸에 전류가 흐른다. 아들보다 내가 더 아프다. 해마다 이삼월에 그러더니 최근 몇 년간은 잘 넘어갔다. 이제 그 참혹한 모습은 졸업했구나 싶었는데 다시 보게 되니 더 암울했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전국 집중 결의대회’가 있었다. 나는 장애인 부모라서 우리 자녀들의 권리를 위한 기자회견이나 집회는 대부분 참석한다.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지자체에서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중계한다고 보라는 문자가 왔다. 기차 안에서 복지 시설의 이용자들이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작은 화면을 통해 보니 오늘이 ‘장애인 고문의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행사들, 누가 무엇을 기념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 관심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다.   정부 청사 도로변에는 오늘 대규모 집회가 있으니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적혀 있었다. 순간, 실종 사건이 잦은 발달장애인 소식을 이렇게 발빠르게 전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절차로 골든타임을 놓쳐 버리는 일이 좀 많은가.전국에서 장애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 장애 자녀들의 부모 단체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복지부 옆 도로를 메웠다. 발달장애인의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이 서글펐다. 우리들의 간절함이 허공으로 분해되는 느낌이라 안타깝다가 나중엔 화가 났다. 듣지 않으려 하고 모른 척 외면하는 건 국회나 정부 부처나 다르지 않으니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연대하여 외치는 방법 말고 달리 할 게 없는 현실이다. 집회는 민중가수들과 프랑스 ‘레미제라블’ 오리지널팀, 발달장애 청년들의 공연으로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나는 부모라서, 당사자는 본인 일이라서 온몸으로 투쟁한다지만 장애 운동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감사하다. 내 일을 우리 일로 여기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그들의 일상이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   아침에 보니 아들 입 주변에 딱지와 피가 엉겨서 마스크를 쓰면 더 따가울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일주일에 겨우 두 번 나가는 평생센터인데 아쉽지만 결석했다. 아들이 집에 있으면 우리 가족의 개인 삶이 없다. 집이 사무실인 남편의 서재에 아들은 거침없이 들어가 업무를 방해한다. 누나 방에 들어가 끌리는 책을 빼서 모퉁이를 찢어 놓는가 하면 서랍을 뒤져 헝클어 놓기도 한다. 작은 상처 때문에 두문불출해야 하는 일은 아들 인생에 적지 않았다. 그러면 가족 누군가도 ‘집콕’하면서 아들과 함께 있어야만 한다. 집에서 일을 하는 남편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누나인 딸 찬스도 많이 쓰고 있다. 장애인 가족은 국가의 테두리 밖에서 가족의 ‘돌려막기’로 살아가고 있다. 가족 없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그래서 나는 세종시 집회를 취소하지 않고 참석해야만 했다. 평소에는 아들을 집에 두고 혼자 외출할 때 나는 아들의 존재를 잊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시도 때도 없이 자꾸 아들 생각이 났다. ‘입가 상처가 더 번지지 않았을까?’‘속이 불편한 것 같았는데 괜찮아졌나?’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애써 지워도 계속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곳에서 방황했지만, 일정을 끝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아이돌 공연을 보며 허밍을 하고 있었고 딸은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외출 중이었다. 오전엔 딸아이가 서점을 다녀왔단다. 남편과 딸이 교대로 집에 있어서 그나마 각자의 볼 일은 볼 수 있었다. 우린 이렇게 아들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아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아들 곁에 있어줘야 한다. 급하게 외출이 약속된 날은 취소하거나 다른 가족이 내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산만한 아들은 집에 있으면서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 못 하고 부산스럽다. 그래도 왔다갔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게 낫다. 힘없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걸 보는 건 짠하다.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한 걸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니 그걸 잘 알아차려야만 한다.   피범벅 된 입 주위 상처로 마스크를 할 수 없어 열흘 정도 집에만 있던 아들이 드디어 센터를 나갔다. 간만의 여유를 즐겨볼까 하다가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와대 앞 ‘세월호’ 엄마들의 피켓팅을 연대하고 왔다. 드러나서 잘 보이는 아들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삶이 황망해진 부모들의 보이지 않는 상처는 어쩌란 말인가. 사라지지 않을 상처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진다면 이웃의 삶이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분명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어 약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제가 될 것이다. ​  

    게시일2021-05-17

  • 스트레스 해소, 여행 자유 향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목적장애인 관광권 보장하는 실효적 방안 필요해는 바야흐로 2021년을 맞았고, 그것도 4월 말을 향하고 있는 시점이다. 코로나 시국을 맞은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건강한 세포까지 공격하는 자가면역성 바이러스인 코로나 종식을 위해 미국, 독일, 영국 등에서 앞다퉈 백신을 개발했거나 현재 개발 중이다. 이 바이러스도 변이가 일어나기에, 개발한 백신이 변이된 바이러스를 얼마나 잡을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백신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면 언제 이 시국이 종식되지 하는 불안감도 든다. 게다가 올해가 시작했을 때 필자가 거주하는 집 근처에 확진자가 나와, 다음 날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코로나 감염 여부를 검사했다. 다행히 음성으로 판정되었지만, 감염병엔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 건강식품을 섭취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근엔 9,9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아무쪼록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건강 잘 챙기며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도 열심히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올해 1월, 페이스북에서 한 지체장애인이 올린 유럽여행 사진들을 봤다. 필자는 코로나 시국 동안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이 사진들을 보면 그게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단 말을 했다. 그분도 같은 마음이라며 코로나가 종식되길 필자와 함께 희망했다. 사실 필자도 여행을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밖에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해외여행 몇 차례를 다녀왔다. 여행 겸 월드컵 관람을 다녀온 적이 있었고, 어떨 때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국가심의 참관하러 제네바에 갔다 온 적도 있었다. 그때는 여행이라기보단, 일하러 간 거였지만. 모스크바 성바실리 대성당 ⓒ이원무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같이 해외여행을 해야만 했지만, 15년 전 독일월드컵 때부터 혼자서 여행하고 돌아오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여러 여행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러시아월드컵 관람 겸 유럽여행을 했을 때였다. 2017년 12월경에 폐에 혈전이 올라와 숨을 가쁘게 쉬어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고, 거기서 나중에 알고 봤더니 폐색전증이었다. 한발 늦었으면 저세상 갔을 뻔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이후 몸이 힘들다 보니 마음도 힘들었다. 그때 어느 지인의 소개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운동과 병행하면서 몸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체지방, 몸무게가 빠지면서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다이어트 하는 도중 러시아월드컵 티켓 판매소식이 있었다. 현장에 가서 축구를 보고 싶은 마음에 티켓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전 세계에서 사이트 접속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 티켓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다행히 대한민국 대 독일전, 16강 전 2경기 표를 구했다. 숙박은 유스호스텔 닷컴이나 호텔스닷컴 등을 통해 가장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한 숙박 시설을 택해 예약했고, 비행기 표는 투어 2000을 이용해 예약‧지불했다. 25일 동안 여행하면서, 추억들 다 소중하지만, 특히 독일을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이긴 카잔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러시아월드컵을 전패해서 축구협회 개혁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렇게 이겨버리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러다 축구협회 개혁이 물 건너가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러시아월드컵 독일 전 종료 후 팬들과 함께 한컷 ⓒ이민수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백야 경험은 물론, 러시아 정교회 건물들을 비롯해 곳곳에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고, 러시아의 역사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곳도 방문하여, 나름대로 음미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카잔에선 카잔 크레믈린과 바우만 거리를 중심으로 볼만한 곳이 의외로 많았던 것도 아울러 기억에 남는다. 모스크바에서는 교회 형제들을 만나면서, 나와 나이가 같은 사람도 만나 반가웠고, 가끔 연락을 했다, 코로나 이후로 연락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연락하고 싶다.   폴란드의 그다인스크, 포즈난을 방문하고 독일 베를린을 3박 4일 동안 잠시 들렀다가, 마지막에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귀국하기 하루 전날,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각물을 감상하며, 열심히 돌아다녔다. 공원을 나오기 전, 활발하게 돌아다니게 된 나의 몸을 생각하며, 여행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었다. 정말 기뻤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여행에 비해 기억에 더욱 많이 남는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3년 전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여행했던 곳이. 지금은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 여행 가기 어렵다. 갔다 돌아오면 자가격리 2주간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에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까지 더해 그렇다.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에서 ⓒ이원무그래서 코로나가 종식되기까지 일단은 돈을 모은 다음, 종식되면 유럽이든 어디든 해외여행을 다시 가고 싶다. 코로나 때 쌓인 스트레스는 물론 해외의 여러 사람들을 새로 또는 다시 만나면서 관계도 쌓고 싶다. 종식되기 전까지는 코로나 상황을 보며, 기회 될 때 국내에서 여행할 만한 곳을 조심스럽게 찾아 여행 다닐 생각이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게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하는 장애인들이 요즘에는 더욱 많아지고 있다. 특히 지체장애인의 경우엔, 전동휠체어가 생기고 나서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돌아다니는 자유 만끽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는 다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 가는 게 지금은 어렵지만 종식되면 이를 감행할 장애인들이 많아질 거다.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저임금 보장을 통해 여행자금 모으고, 물리적‧심리적 접근성과 웹 접근성 향상 등으로 숙박 시설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가가 장애인 관광권을 보장하는 실효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게시일2021-04-27

  • 1. 그러라 그래   얼마 전에 양희은이 나온 한 TV 프로그램을 봤다. 까마득한 신인가수들과 함께 앉은 양희은은 노래에 얽힌 얘기도 하고 후배들이 부르는 자신의 노래도 듣고, 또 자신의 노래도 들려주었다. 젊은 시절,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른 나와 같은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요즘 사람들이 ‘원로가수’ 양희은을 듣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노래보다는 ‘네 이름이 뭐니’라는 그 유명한 문장이 노래보다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엔 ‘그러라 그래’라는 말이 그를 대표하는 수사가 되었다. 그 제목의 책까지 낸 것을 보면 ‘그러라 그래’라는 말로 그 자신이 대표되는 것이 썩 괜찮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러라 그래’라는 말이 갖는 뜻이 담백해서 참 좋다. 상대가 하는 짓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며, 나는 그것에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다. 그는 그럴 권리가 있으니 그걸 낵 어쩌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가 누구의 행동을 말리거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누가 무슨 헛짓을 하든 나는 영향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누가 다른 누군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나에게 일러바칠 때, 또는 누가 다른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공연히 속을 끓일 때에도, 다른 누군가 때문에 네 속을 너무 후벼파거나 공연한 헛염불 들이지 말라는 충고가 된다. 다정히 어깨를 쓰다듬는 위로의 충고가 아니라, 등짝을 한 대 툭 치면서 내뱉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너의 그 번잡한 속이 실은 네 스스로 엉켜놓은 그물 같은 것이니,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그냥 툭, 툭 잘라버리고 나오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고 싶어’서 그러고, ‘그러기 싫어’서 그러지 않는다. 비극은,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고, ‘그렇게 해주기 싫어’서 고집을 부릴 때 생겨나는데, 우리는 수시로 이 비극을 스스로 짓는다.(굳이 떠올라서 덧붙이자면, 친정 엄마들은 대체로 이 ‘그러라 그래’가 절대 안 되는 분들이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그러라 그래’가 아니다. 실은 내가 양희은의 담백을 이해하기까지는 세월이 좀 걸렸다는 고백을 해놓고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서두가 길어진 것이다. (이것도 내 병통의 하나이지만,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굳이 고칠 게 무에 있겄나, 그냥 그러라 그러지, 뭐.)   어린 시절, 나는 양희은이 너무 담백하게 노래를 부르는 게 못마땅했다. 아침이슬 같이 처절한 노래를 너무나 맑은 목소리로, 한숨 하나 섞지 않고 매끈하게 부르는 게 어색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서 벌어진 그 끔직한 비극을 전하는 노래가 마치 ‘졸졸졸졸 흐르는 요르레히디요’ 하는 요들송처럼 청량하게 들리는 게 이상했다. 내가 듣기에 운동권가요가 건전가요처럼 들렸다는 얘기다. 그러다 ‘한계령’과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으면서 내 오랜 착각에서 벗어났다.   무언가를 보태지 않아도 될 때는 보태지 않는 게 좋다. 노래에도, 연기에도, 글에도, 말에도, 그리고 마음에도-. 보태지 않아야 오직 그 안에 있는 고갱이,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쌓인 내공이 없고 다져놓은 내면이 얕으면 담백하지 않게 된다. 허세를 부리거나 질척거리는 때가 이런 때다.   그런데 양희은의 담백을 알고나서 또 새로운 병통이 생겼으니, 그것은 내 생각에 담백하게 불러야 좋은 노래를, 누군가 담백하지 않게 감정을 너무 넣어서 간지럽거나 토하듯이 부르면 그만 몹시 화가 난다는 것이다. 조미료를 많이 친 음식, 과하게 장식한 옷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언짢아지고 마는데, 그걸 못참고 내색을 하면서 욕을 한바가지 퍼붓는 때가 생겼다. 딸이 그런 나를 보면서 한마디 내뱉는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 그게 그 사람 스타일인 걸 어쩌라고, 그냥 그러라 그래~. 나는 졸지에 꼰대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이야기의 주제가 ‘그러라 그래’도 아니고 ‘담백’도 아니라고 했으니, 이제 본론이다. 양희은이 그 담백함을 갖고서 부른 ‘4월’을 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 ‘4월’의 가사를 쓰려다 몇 해를 넘기면서 결국 못 쓰고 다른 이가 썼다고 했다. 내가 본 프로그램에서는 이 노래를 후배가수가 불렀는데, 그가 부른 ‘4월’도 좋았지만, 양희은의 목소리로 다시 듣고 싶어져서 다시 찾아 들었다. 2. 4월의 노래   꽃잎이 난다 사월이 간다 / 너도 날아간다 / 산 그림자 짙은 이곳에 / 나는 떨고 있는데 / 봄비 내린다 꽃잎 눕는다 / 나도 젖는구나 / 녹아내리는 시절 / 기억들은 사람이었구나다 보냈다 생각했는데 / 잊은 줄 알았었는데 / 숨쉬고 숨을 쉬고 / 또 숨 쉬어봐도 남는다 / 모자란다 니가 / 내 몸이 녹아 내린다 / 네게로 스며들었다 / 꽃잎은 날고 봄비 내리면 / 나를 보낸다 / 꽃잎이 난다 / 사월이 간다 / 나도 날아간다   우리에게 4월이란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겨울을 지내고 온 천지사방에 화사한 꽃들이 여기저기서 일제히 올라온다. 봄꽃은 피고지고 하는 여름꽃들이나 계절 내내 피어있는 가을꽃들과 달리 달려들 듯 피었다가 꿈인 듯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이 봄꽃들을 보면서 그렇게 찬란하게 왔다가 홀연 사라진 이들을 생각한다.   봄꽃이 필 때면 수유리 419 공원에 가서 꽃을 보며 ‘젠장, 더럽게 곱네~’라고 비장한 인사를 건네는 때도 있었다. 그러다 아예 7년전부터는 봄이 봄이 아니다. 세월호 엄마들이 봄꽃이 피어날 때마다 아프다 했으니, 그분들에게 봄꽃은 살을 후벼파고 찢으며 올라오는 꽃들이다.   처음엔 철철 흐르는 눈물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없이 바다를, 봄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눈물과 너의 눈물이 그물이 되어 세상을 덮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쩔쩔 매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는 슬픔이 담백해진 것을 알겠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고, 여전히 분노하지만, 날것으로 퍼덕이덕 슬픔은 이제 단정히 접혀서 7년의 두께만큼 마음 한켠에 놓였다. 그리고 담백한 것이 담고있는 무게와 힘을 느낀다.   이번 4월16일에는 새로 조성된 안산의 기억교실에 갔었다. 기억교실이 있는 건물 앞 광장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노래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무치는 사람의 이름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다. 단원고 2학년을 그대로 옮겨놓은 교실에는 책상마다 아이들 사진과 꽃과 공책 등이 놓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몇 반 몇 번이었더라, 기억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가 앉아보았다. 세월호 아이들은 살았으면 올해 스물다섯 살이란다.   그 나이쯤 되어보이는 한 청년이 어떤 책상 앞에 서서 그저 물끄러미 공책이며 메모며를 내려다 보고 있더니, 또 다른 책상 앞에 가서도 한참을 그러고 섰다. 내가 윗층 교실을 다 돌고나서 내려와 보니 그 때까지도 그렇게 어떤 책상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그에게도 4월은 한숨을 아무리 쉬어봐도 사라지지 않는 눈물이며 한숨일 것이며, 이 세상은 노랫말처럼, 누군가로 채워지지 않아 모자란 곳이 있다. 그가 그저 우두커니 서서 말없이 삼키고 있는 담백한 슬픔을 보았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일은 삶의 일이다. 살다보니 그런 그리움을 담고 살 일이 있는 것이다. 그게 봄이라, 하냥 피었다가 매정하게 일제히 꽃비가 되어 떨어지는 봄이라, 아련하고 강렬한 그리움이 더 깊어가는 것이다. 기억교실을 나와 전철 타는 곳으로 걸어가는 내 등 뒤로 아이들을 호명하는 노래가 따라온다. 그 노래는 마치 나비처럼 나폴나폴 날며 따라온다. 노래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곳에 와서 길을 건너려고 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널 지키는지 네가 날 지키는지   나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그리움으로 지키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도 나의 삶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그뿐이랴, 그 아이들이 세상도 지켜주고 있다. 우리가 아직 연민과 연대의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봄꽃같은 그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꽃같은 연민과 연대의 상징으로 그 아이들이 또한 있기 때문이다. 3. 슬프고 찬란한 봄의 힘  세상은 무심하여, 올해의 봄은 미안마의 처참한 고통과 함께 왔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4월 한복판, 20일이다. 세상은 이 봄에, 무심함으로, 차별과 배제로, 무례함으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을 떠올리며 참회해야 한다. 그 바탕에는 연민이 깔려 있고, 그 표출은 연대의 힘으로 나온다. (‘그러라 그래’식의 무심함은 이럴 때 쓰는 건 아니다.)   봄꽃같은 사람들이 겨울을 이긴 기쁨으로 축복으로 피었다가, 다시 반짝이는 새싹으로 솟아올라야 하고, 깊고 푸른 잎새로 무성해야 한다. 그게 봄의 힘이다. 4월은 그래서 슬프고 찬란한가 보다. 그래서 나의 봄은, 담백하기도 하고 여전히 담백하지 않기도 하다.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게시일2021-04-19

  • 산책로인 줄 잘 못 알고 들어선 등산로가 걷기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데크길이 있었지만, 흙길은 폭신해서 좋은 반면 돌을 박아서 더 울퉁불퉁한 길에선 자주 발목을 삐끗했다. 무장애 길(걷기 쉬운 길)은 휠체어나 유아차만 편리한 게 아니다. 발이 불편한 모두에게 좋은 길이다.코로나19로 사람들의 나들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평일 등산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가다 서서 가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즐겼다. 힘차게 내려가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레 올라가던 중 뒤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상의가 같은 오렌지색의 옷을 입은 남녀가 저만치서 올라오고 있었다. 먼저 지나가라고 우리 가족은 한쪽으로 비껴섰다. 중년 여인과 청년이었고 모자관계로 보였다. 곁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청년에게서 아들의 향기가 느껴졌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유심히 보던 우리 가족의 상상력이 날개를 달았다.  “청년이 발달장애인 거 같은데.”  “어허이! 당신은 아무한테나 장애인이라고 하면 안 돼!”  “엄마와 성인 아들이 같은 옷을 입고 등산하는 거 낯설지 않아?”내가 말하자 남편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아빠! 나나 되니까 가족여행에 잘 따라다니지, 다른 성인 자녀들은 같이 안 다니거든!”딸아이는 발끈했다.  “등산 즐기는 거래도 가족끼리 사회적 거리두기 하는 건 좀 어색해 보이구만.”아무래도 내 눈에 보이는 두 사람은 마치 나와 내 아들의 모습 같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우리 앞을 지나간 두 사람을 두고, 남의 말을 함부로 한 게 미안하다며 화제를 돌렸다.예정된 목적지까지 올라가니 그들은 내려오고 있었다. 여전히 조용한 그들, 여성은 우리를 보고는 먼저 올라가라는 듯 좁은 길 한쪽으로 몸을 돌려 섰다.“감사합니다.”내가 말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삶의 고단함이 내게로 와 닿았다. 청년은 다시 한번 나를 힐끗 보더니 팔을 앞으로 저으며 여성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나의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청년을 다시 본 가족들도 이내 수긍하는 눈치였다.자폐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집중력에 좋다는 등산을 많이 했다. 험한 길을 올라가려면 땅을 잘 보고 가야 하니 그럴 것 같았다. 등산 자체가 돈 안 드는 좋은 운동이기도 했다. 아들 치료와 교육비로 거금을 할애하던 시기인지라 나만 부지런하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물불 가리지 않고 남들이 좋다면 무조건 해보는 것들이 많았다. 말을 못 하는 건 혀가 굳어서 그렇다며 혀에 침을 놓기도 했다. 몸에 수은이 많아 그런 거라며 한약을 먹기도 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당사자인 아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등산은 쉽지 않았다. 날다람쥐 아들은 오르막 산길을 날아다녔다. 불러도 못 들은 척 직진 본능만 발휘하는 아들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이러다 필경 아들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쯤 결국 등산을 포기했다. 아들에게 아무리 좋은 치료교육이라도 최악의 경우가 예상되는 건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남편과 셋이 다시 등산했다. 잘 다니던 길도 아들은 오르막길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힘든 걸 경험했기에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현이었다.   “힘들구나, 그럼, 저기 저 나무까지만 갔다 오자.”싫은 티 내면서도 아들은 그런대로 잘 따라 주었다. 일주일 내내 아들과 씨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아들만 데리고 등산을 했다. 둘만의 등산은 시간이 더 빨라졌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들어오는 똑같이 생긴 ‘아빠와 아들’을 보면 흐뭇했다.가족여행 중에 만난 엄마와 아들을 보며 장애 자녀를 오롯이 엄마만 책임지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남편이 직장을 다닐 때는 혼자의 몫이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 부부’도 했었다.남편은 아들에 대해 잘 몰랐다. 일주일에 하루 보는 아들이 고집을 피우고 힘들게 하면 화를 내며 아들을 채근했다. 하지만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집에 사무실 공간을 마련한 후로는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남편은 아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엄마인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알아주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들은 26세의 청년이 되었다. 화장실에서 장난치다가 막힌 변기를 뚫어보겠다고 용쓰는 걸 보면 다시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잊고 웃음이 나온다. 때로는 화를 내면서도 어릴 때의 모습 생각하면 지금은 양반이라고 봐주는 아량이 가족 모두에게 생겼다.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사는 발달장애인들이 존재를 인정받고 지역사회 안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늙어가는 엄마가 성인 장애 자녀에게 매달려 사는 고된 일상은 멈춰야 한다. 그러려면 보다 촘촘한 복지 체계가 필요하다. 의미 있는 낮 활동 시간이 더 늘어나고 개인에게 맞는 복시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서 평일의 등산이 엄마 뒤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조력자의 지원 아래 이뤄져야 한다. 다른 자조 모임 활동이 활성화되어야 발달장애인의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가족이 없더라도 존중받으며 한 인간으로 사는 삶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부모는 그것이 소원이다.     

    게시일2021-04-19

  • 부디 좋은 해 맞으소서   1. 영화를 보는 가장 행복한 때   예전에 어떤 강의를 듣는데 강사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나는 그 때 근사하게 대답하려고(그리고 진심도 어느 정도 담아서) ‘삶의 모든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강사는 멋있는 대답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고 나서 곧 후회했다. 행복한 순간과 덜 행복한 순간을 뭉뚱그려서 한 몫에 대답을 해버렸으니, 특별히 호명되지 못한 진짜 행복한 순간들은 얼마나 섭섭했으랴,   그래서 그 때 진짜로 나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는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봤는데, 그것은 홀로 오전에 조조영화를 볼 때라는 걸 알았다. 우리집 근처엔 빌딩 12층에 근사한 작은 극장이 하나 있고, 거기 상영관이 두 개(0관과 1관) 있는데, 이른바 예술영화니 저예산영화니 하는 영화들을 튼다. 무엇보다 야외로 트인 넓은 베란다에 나서면(처음엔 완전 야외라 바람이 휘몰아쳤는데 지금은 유리온실처럼 유리벽을 만들었다) 관악산이 한 스크린에 담긴 듯 보였다. 스크린 위쪽은 멀리 산이 가득 차 있고, 스크린 아래쪽은 도시의 불빛이 뿌려져 있는 기막힌 전망을 가진 이 베란다에는, 세월호 리본으로 겹겹이 치장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이는가 하면 작은 영화행사 같은 것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0관은, 영화가 끝나면 한쪽 벽면 전체를 덮고 있던 커튼이 웅~, 하고 올라가면서 전면 유리벽이 드러나는데, 그쪽으로는 그 영화관 건물만큼 높은 빌딩들이 엎어서 멀리 언덕 위의 아파트에게까지 이어지는 너른 벌판처럼 보이는 풍광이 참 근사하다. 무엇보다도 그 유리벽은 서쪽을 향해 트여 있어서 오전에는 경사진 빛이 뿌옇게 도달해서 몽환적이고, 혹시라도 저녁때쯤 끝나는 영화를 볼라치면 영화의 여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서쪽 스크린에 펼쳐지는 기가막힌 도시의 노을에 압도당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그대로 앉아서 도시의 풍경을 또하나의 스크린으로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은 아마도 그 영화관뿐일 게다. 때론 말도못하게 이상하게 사무치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또 멀리 보이는 관악산을 조망하며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는 비로소 먼지 낀 세상 속으로 내려가는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전까지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다음에 또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바깥 풍경이 좋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는 두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바로 대답해줄 것이다. 수십, 수백명의 스텝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영화를 아름다운 공간에서 편안히 누리는 이 호사는, 행복이라고 말하기에도 넘친다.   2. ‘멜랑꼴리아’의 깊은 우울   앞수다가 길어졌다. 그 곳에서 봤던 한 영화 얘기로 시작하려다 사랑하는 공간과 거기서 보낸 시간을 길게 떠올렸다. 올해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한 아쉬움이 컸나보다.(뭐든 미련이 남으면 쓸데없이 말만 길어지는 법이다.)   몇 년 전에 ‘멜랑꼴리아’라는 영화를 봤다. 2012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무거운, 깊은, 우울한, 깊숙이 가라앉는, 우울이 사무치는 영화다. 우울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모두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권한다. 나도 그 때 제법, 상당히 우울했으므로 이 영화를 봤고, 그리고 그 때 알았다. 우울은 ‘연민’과 닿아있고, 인류는 그 연민의 연대,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멀리서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데,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인류는 그저 한 달 뒤쯤으로 계산된 그 시각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된다. 그걸 앞두고 벌어지는 세상의 혼란 속에서 오직 평소 깊은 우울에 빠져있던 주인공만이 처연하게 침착하다. 모든 우울은 시간의 상실과, 존재의 고독과,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차서 바야흐로 침잠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니, 본질적으로 그러한 종말에 처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달리 호들갑을 떨거나 생떼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나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찌 할 것인가를 생각해봤다. 상황을 반전시킬 무엇이 없을 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어찌 할 것인가는 쉽게 답이 나왔다. 그런데 남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초기 혼란이 빨리 수습되고, 인류가 품위있게 종말을 맞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왕 벗어날 수 없는 파국이라면, 이 우주 안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지라도, 좀 품위있게 인류의 역사를 마치자, 이런 생각을 했다.   3. 새로운 것의 시작일까   오래 묵은 영화까지 들먹인 이유는, 2020년을 덮친 코로나19 때문이다. 꼬박 일년을 코로나19 뉴스를 보면서 살았다. 이것이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이렇게 길게 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았을테고, 우리는 미증유의 사태에 그야말로 일년 내내 휘둘렸다.   바이러스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허점을 드러내고, 인류란 게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스스로 드러내게 했다. 생물분류학상 단일종인 인간은, 한 인간에게 치명적인 어떤 것은 바로 77억 모두에게 치명적이라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존재다. 분명히 한 개의 변종 바이러스로 시작되었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지구적 재앙이 되어 인류를 위협했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나온다고 하니, 어떻게든 이 겨울을 무사히 넘겨서 내년 봄과 여름을 맞아야 할텐데, 우리들에게 다가와 있는 거대한 우울한 질문은 그 다음이다. 백신이 나오면 끝이 날까. 백신도 듣지 않는 변종이 나오면 어찌 될까. 우리는 살면서 이 난리를 얼마나 자주 겪게 될까. 결국 우리는 소행성이 닥쳐오기 전에, 핵으로 서로를 폭파시키기 전에, 마이크로 수준의 이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멸종할까. 요컨대 올해의 이 난리가 그저 힘겹게 넘어가는 고비일지,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 어두운 것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전에 철학과 관련된 책을 쓰고는 이곳저곳 그것과 관련한 강의를 다닌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인류의 종말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류가 파국을 맞을 몇 가지 상황을 들어보곤 했는데, 그 때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위협으로 지목된 것이 바이러스의 위협이었다. 그러면 그 다음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정확히는 어떻게 종말을 맞을 것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강의를 통해 알았다. 처음엔 혼란스럽겠지만 곧 받아들이고 침착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거나, 조용히 홀로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남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일년 내내 코로나19 상황이 만든 우울 속에 있으면서, 이 거대한 우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했을까. 나는 영화 ‘멜랑꼴리아’를 보고나서 얻은 결론, 인류는 생명에 대한 연민, 그 연민의 연대, 오직 그것뿐 다른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한번뿐이고, 그나마 유한한 삶을 살다가 소멸하는 모든 생명 존재는 그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연민해야 한다. 그 안에서 누구나 똑같이 대접받고 대접하고, 누구나 누리는 것이 엇비슷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나이 먹고 늙어갈 때는 누구나 엇비슷한 수준의 삶을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사는 데 힘들었던 조건이었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그런 대접이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것을 맘껏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그래, 맞다. 평등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누구나 자신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더 불리하게 살지 않는 사회, 그러한 평등사회를 얘기하고 있는 거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본질적인 연민과 연대의식으로 이뤄내려는 사회이니까.   코로나19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우리는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바로 사회적 환경, 공공의 시간, 공공의 공간이 필요한 이들이었음이 이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공공의 시간과 장소가 부족해진 발달장애인이 겪은 어려움이란 호소는 일년 내내 외친 주제였다. 더불어 그동안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어떠한 공적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었던가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되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올 한 해가 어땠는지 꼼꼼히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엄마, 어떤 가족, 어떤 이웃이 될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이 되고 싶어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소멸하게 되는 시점에서는 서로의 몸뚱이를 부둥켜 끌어안고 세상에서 가장 깊은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테니까 말이다, 그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소리이다. * 덧붙이는 흰소리... 2020년을 그냥 없었던 해로 치고, 올해 12월 31일 자정을 넘기면서 다시 2020을 시작하면 안 될까. 나이도 한 살 되돌리기 하고. 인류 모두가 한 살 묵혀서 다시 시작. 그냥 2020년은 연습삼아 살았던 해로 치고, 다시 시작, 이건 안 될까. 한 해를 이렇게 보냈다는 게 못내 억울해서 하는 말이다. 이만 총총. 모두 좋은 해, 맞으소서~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게시일2020-12-28

  • ‘변신’과 ‘아무튼 아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자신의 몸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다?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다 보면 허무맹랑한 픽션이 아니라 벌레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배척하고 폭행하고 언어폭력을 일삼는 비정한 사회를 엿보게 된다.벌레로 외모가 바뀌었지만 남자는 가족들과 소통하고자 안간힘을 쓰는데도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에 그가 사라져 주기만을 바랄 뿐 남자에게 아무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어느 날 내게 닥친 불행을 가족조차 감싸주지 않는데 사회에 소리쳐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겠지만 이제는 소리 내야 한다. 장애의 책임은 가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하기 때문에 있는 힘껏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영화 ‘아무튼 아담’을 보면서 나는 소설 ‘변신’을 떠올렸다.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더 실감나면서도 아담을 둘러싼 인적 자원들의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100여 년 전에 쓰여 진 것이지만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여전히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무시와 배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아담은 자신의 승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술을 마신 채 호기롭게 호수로 뛰어 들어가던 중에 목뼈 부상으로 사지마비 장애를 입는다. 그 앞 장면에서 담 위에 올라가 승진을 발표하며 들떠 있던 아담이 아래로 떨어질 때의 복선은 아찔하다. 삶을 포기하려고 그 호숫가로 가지만 아담은 새로운 다짐으로 일상에 복귀한다. 그를 지원하는 치료사와 경제적으로 궁핍함에도 항상 미소 띤 표정의 형, 무조건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어떤 도움을 줄지 살피는 부모님은 그의 커다란 인적 자원이었다. 자립을 말하고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립과 독립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포함해야만 가능한 것이고 그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발달장애국가책임제를 선언했지만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요즘의 코로나19 사태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자가격리로 외출이 단절된 상황에서 활동량 많은 자폐인들의 고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마스크를 끼지 못해 집에서만 있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부모가 집에서만 있으면서 마스크를 끼게 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이 분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해야 가정에서의 교육도 이루어질 수 있다.나 역시 자폐성장애인 성인 아들이 집에만 있을 때 6개월 동안 마스크 끼는 걸 시도도 못했다. 거부부터 해버리니 강제로 하게 할 순 없었는데 센터에 나가면서 1분씩 끼면서 시간을 늘려나갔더니 지금은 목에 걸고 다니며 수시로 하는 걸 그리 힘들어 하지 않는다. 모든 기관들이 이 난국에 비대면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아주면 좋겠다.   영화 보는 동안 산발적인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실물 사진으로 그의 아내와 딸을 보니 내가 느낀 안타까움마저 미안할 지경이었다. 누가 누굴 함부로 안쓰러워하고 동정할 일은 절대 아닌 것이다. ‘변신’의 주인공처럼 더 이상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아무튼 아담’처럼 이 세상의 많은 아담들이 용기를 가지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할 것 이다.    

    게시일202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