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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40_조미영] 불안 즐기기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17 조회수712






 불안 즐기기

 

 

 ​부재중 전화 두 통이 같은 번호였다. 평생교육센터 다니는 아들 담당 교사는 주로 문자로 소통하는데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는 건 뭔 일이 있다는 거다. 얼른 전화를 했더니 연수중이니 문자하라는 문자에 그냥 알겠다고 답을 보냈다. 잠시 후 문자 알람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장문의 글이 있었다. 오전에는 아들 컨디션이 좋았는데 오후에 뭐가 마음에 걸렸는지 자해를 심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땀이 나서 흥분한 건지 흥분해서 땀이 난 건지를 궁금해 했다. 아들의 돌발 행동 원인을 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내가 봐왔던 아들은 흥분하면 땀을 뻘뻘 흘리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직접 보지 않았기에 나도 아들이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자폐인의 흥분지수가 높아져서 자해나 타해로 이어지면 주변인들의 당혹스러움은 잘 알고 있다. 너무 평탄한 날들이 이어져서 이제 아들의 일상이 잘 자리 잡힌 것 같아 안도하며 지냈는데 오랜만에 다시 나타난 아들의 행동에 마음이 심란했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었던 때가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웃음과 울음이 시작되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웃는 아들 보며 겉으론 따라 웃었지만 속으론 울었다. 그나마 서럽게 우는 것 보다는 웃는 게 낫다 생각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을 당한 양 눈물을 뚝뚝 흘릴 때면 같이 울었다. 울음보다 더 보기 힘들었던 건 자해였다. 양 손으로 뺨을 때릴 때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들의 얼굴을 내가 두 손으로 감싸면 아들은 내 손등을 때렸다. 이렇게 아픈데 아들은 왜 통증에 약해서 자신을 학대하는건지 마음이 찢어졌다. 진정시키려고 안아주면 발버둥치는 아들과 씨름하는 날이 많았다, 화장실을 더럽히고 종이를 찢는 등의 내가 움직여서 치우면 되는 저지레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제발 자해만 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자폐인 아들과의 동거는 늘 불안했고 모두가 잠든 밤이면 이 고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 아침이 두려웠다. 뻔한 하루가 지겨워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겨우 살아냈다. 그런대로 별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면 아들을 칭찬했다. 칭찬 들은 다음 날은 어김없이 더 심하게 자해를 하거나 울음떼를 써서 나를 자극했다. 말로 내뱉으면 부정 탄다는 생각에 속으로만 흐뭇하게 여기며 아들 눈치를 보곤 했다.

 

 ​힘들게 학령기를 지나 성인 대열에 서면서 아들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발달센터에서 좋은 분을 만나 아들을 대하는 나의 언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면서 남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은 행동들을 억제하고 다그쳤던 걸 멈추라고 그분은 아들 대신 나를 가르쳤다. 그곳은 아들을 교육하거나 상담하지 않았고 또래 청년들과의 자조모임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몸소 보고 듣고 깨닫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7여 년간 먹던 정신과 약 아빌리파이가 아들에게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끊을 수 있도록 도움 받았다. 단약하면 과잉행동이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신경쓰였지만 아들의 일상을 잘 관찰하면서 서서히 약을 끊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봐 준 덕분이었다.

 

 ​눈에 띄는 아들의 보기 힘들었던 행동이 거의 사라져 평온한 날을 보내던 차, 아들의 자해 연락에 나는 잠시 흔들렸다. 너무 잦아서 또 그랬구나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왜 그랬는지 궁금했다. 아들의 행동을 잘 관찰하며 살다보니 물론 추측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행동에 대해 아들을 곁에 앉혀두고 조곤조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표현언어가 없는 아들은 곧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시늉을 하곤 했다.

 ​간헐적으로 보이던 자해와 감정의 소용돌이가 점차 줄면서 아들 때문에 마음 졸이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잔잔한 날들을 보내던 차, 오랜만의 자해 연락은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도 아들에게 아는 체하지 않고 평소처럼 대했는데 그날 밤 한바탕의 짧은 소동이 있었다.

 ​욕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의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고성을 지르며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던 과거와 달리 본인이 낼 수 있는 흥분한 소리를 내며 뛰어 다녔다. 남편과 나는 외면했다. 각자 할 일에 집중하고 조금 기다렸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래봤자 엄마 아빠가 자신을 다독거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는지 밤새 잘 자고 일어났다. 이상한 소리와 벌컥 문 열고 닫는 소리에 가족 모두 밤잠을 못 자게 했던 날들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불면의 밤인가 살짝 긴장했는데 최근의 평온함이 이어졌다.

 

 ​27년을 아들과 함께 살면서 내공이 어느 정도 쌓였다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상황으로 느낀 나의 내공은 그리 두껍지 않았다. 집에서야 내가 감당하면 되지만 밖에서 그러면 주변인들의 불안함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올라왔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게 우리 삶이거늘 모두가 다 평탄한 일상이면 좋겠지만 예기치 못한 일들도 보고 들으며 사는 건 자연스런 것이라 생각하자고 나를 다독인다.

 

 ​편안해 보였던 아들의 내면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을 자해로 나타내는 건 아닌지 그냥 넘어가기엔 아들에게 미안하다. 어떤 메시지를 엄마에게 보내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요즘 너무 안일하게 사는 내게 긴장하란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들의 행동 하나에 내 마음이 허물어지진 말아야겠다. 몸과 마음이 다 아팠던 긴 시간을 나는 잘 넘어오지 않았는가. 평온 속에 감춰진 불안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확대해석하고 내공을 갉아먹도록 방치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불안조차 즐기려고 다짐하는 나는 강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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