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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초대칼럼 상단 이미지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이 게시판은 보다센터에서 초대한 각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소박하지만 통렬한 이야기와도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게시물 총 116

  •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다시 생각한다③- 자기결정권은 자유권을 넘어선 사회권이다앞선 두 번의 글을 통해 우리는 자기결정권과 자기결정능력은 같은 것이 아니며, 자기결정권이란 혼자서 결정한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여전히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일이 실질적으로는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이 전혀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자기결정능력이 부족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아직까지 아무것도 해본 게 없기 때문이지요. 분명히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견과 판단을 소통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조율하는 능력이 비발달장애인들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그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려면, 지난 번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일정한 결정이 내려질 때 그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관련 당사자의 의견과 판단을 소통하고, 존중하고, 반영하는 것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촘촘하고도 세밀한 시스템이 구축되고 인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그런 적극적인 노력을 해 본적이 전혀 없습니다.인권은 흔히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리고 자유권을 소극적 권리라고도 하고, 사회권을 적극적 권리라고도 합니다. 거칠게 말해서 소극적 권리인 자유권은 타인이나 국가의 간섭과 침해만 없으면 보장되는 권리인 반면, 적극적 권리인 사회권은 공동체와 국가가 말 그대로 적극적인 조치를 시행해야만 보장되는 권리입니다.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등이 자유권에 속하는 대표적인 권리이고, 교육권이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권리 항목들은 사회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후자의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예산이 반드시 수반됩니다. 그런데 어떤 권리가 자유권에 속하는가 사회권에 속하는가의 구분 역시 우리 사회에서는 일차적으로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예컨대 이동권(right to mobility)은 비장애인에게 있어 자유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거나, 정치적 탄압에 의해 연금 상태에 빠지지 않는 한 어떤 비장애인의 이동권이 침해될 일은 거의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권리여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이동권이 하나의 권리로조차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국립국어원의 신어자료집에 이동권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재된 것이 2003년의 일이니까요. 그러나 대다수 장애인에게 있어 이동권은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잘 누리세요.’라고 한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도 장애인들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못하도록 누가 와서 강제로 막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탈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거리와 건물 입구의 턱을 없애고, 경사로와 유도블럭을 깔고, 공공건물과 지하철에 엘리베터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을 도입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즉,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자유권적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사회권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습니다.언어권(right to language) 역시 흔히 자유권으로 분류됩니다. 언어권은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하여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인데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청인(聽人)에게 언어권은 자유권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청인의 입에 재갈을 물려놓고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며 한국어 말고 영어로만 일상생활을 하라고 겁박을 하지 않는 한 우리사회에서 청인의 언어권이 침해될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농인(聾人)에게 있어 언어권은 그저 자유권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농인들이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한다거나, 과거처럼 수화가 아닌 구화(口話)를 사용해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억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농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인 수화를 사용해서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즉, 농인들에게 언어권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화를 보급하고, 수화방송을 확대하고, 공공기관에 수화통역사를 배치하고, 수화통역을 활동지원서비스와 같은 사회서비스의 형태로 제공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사회권이기도 한 것입니다.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에게 있어 자기결정권은 자유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권입니다.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주변의 침해만 없으면 그들이 알아서 누릴 수 있는 소극적 권리라고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즉, 현재와 같은 조건을 전제로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얘기하는 것은, 저상버스도 지하철 역사의 승강기도 없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그리고 수화에 대한 적극적 인정과 체계적 지원도 없이 농인의 언어권 보장을 운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인 사회적 조치는 어떠한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까요? 자기결정권을 상호적인 관점에서 올바로 이해한다면 그 핵심은 소통과 의견의 조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대다수 비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상호간에 소통을 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데 있어 상당한 장애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대다수의 농인과 청인이 서로 소통을 하는 데 있어 장애를 경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농인이 청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음’이라는 장애를 경험한다고 해서 이것이 농인의 청각에 존재하는 손상이나 무능력 때문으로 설명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그 책임이 청인에게 귀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는 청인과 농인 어느 한 쪽이 아닌 그들 ‘사이’에 존재하며, 그러한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과 조치가 필요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과 비달장애인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의 장애 역시 어느 한쪽의 무능력이나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법무부에서는 지난 2013년 12월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발달장애인이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하여 진술조력인 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를 알리기 위해서 법무부가 2018년에 제작해 홈페이지에 게시한 카드뉴스에서는 진술조력인의 본질을 일종의 ‘통역사’라고 나름 적절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장애인들 중에서는 사법경찰․검사․판사만이, 그리고 발달장애인들 중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만이 상호 소통의 과정에서 장애를 경험할까요? 당연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발달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진술조력인 제도와 같은 지원 체계가 새롭게 확대 개편되어 보다 다양한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하나의 사회서비스로 제공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일상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학교나 직장에는 그들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감독하고 지원하는 권리옹호 인력이 배치되거나 일시적으로 파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적극적 조치가 이루어질 때만이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하나의 온전한 권리로서 사회적으로 보장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게시일2020-01-23

  • 사진 출처 비마이너''장애 이전에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하는 발달장애 당사자 대회''1200여명의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축제한마당.살면서 경험하는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까지의 자연스러운 과정들이 이분들에겐 목소리 높여 그것들을 인정해 달라는 호소로 다가왔다.장애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타당한 것들을 배제당하고, 시설에서의 지옥 같은 삶을 거부하는 몸부림들이, 부모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조차 변명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삶이 외롭다는 분, 지속적으로 일을 하고 싶다는 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분 등... 그분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 고민해야한다.자유발언 시간에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애정 고백하는 분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고, 마이크를 대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어~ 어~~소리만 계속하고도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에 대해 뿌듯해 하시던 분.그분을 위해 모두가 박수로 환호하는 분위기는 감동이었고 가슴이 벅차 눈물까지 흘렀다. 초청공연 시간에 많은 분들이 무대로 올라가 함께 흥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삶을 즐길 줄 아는 분들에게 우리 사회가 한 일은 무엇이었나, 우리 부모들이 자녀에게 한 건 또 무엇이었나 생각하니 고개가 떨궈졌다. 이런저런 치료실을 돌아다니느라 정작 자녀들이 뭘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던 지난 날들이 스쳐 지나갔고, 이런 자리에 내 아이는 참여할 수 없다고 지레 겁먹었던 걸 생각하니 아들에게 미안했다. 누구든 누군가를 만나 어떤 상황이든 자꾸 부딪히면서 함께 어울려야만 시야도 사고도 넓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귀한시간이었다.  글쓴이 조미영자신의 속도로 느리게 성장하는 아들과 더불어 빨리보다 천천히를 실천하는 주부입니다.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고자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잘 살아냅니다.

    게시일2019-11-20

  • 아들이 커갈수록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어야 한다. 그 외에 무엇이 중한디. 아들의 장애를 수용하지 못했던 시절, 무엇이든 끝장을 보는 성격답게 불행이라는 녀석을 온몸으로 껴안고 ‘불행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탔다. 선만 살짝 넘으면 염라대왕이 “어서와~ 저승은 처음이지?” 할 판이었는데 다행히 안 죽고 버텨서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 당시의 나는 살았지만 죽어있는 좀비와 다를 바 없었으니…. 그때가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이왕 사는 거 행복하게 살고야 말겠다는 의지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확고해졌다. 신기한 건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나인데 결과적으론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향성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애인 가족이라서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기에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다. 자식의 ‘장애’가 행복의 장애물이 되도록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 오늘은 남편에 대해 얘길 해볼까 한다. 행복하지 못했던 아내 옆에서 함께 불행했던 남자. 하지만 더는 불행하길 거부한 남자. 77년생 김재범의 이야기다. 장판(장애인판)에서 ‘이상적인 아빠’들의 모습을 많이 보면서 한동안 남편을 갈구는(?) 시간이 이어졌다. 저 아빠는 회사 일도 열심히 하면서, 자식의 장애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학교 일에도 적극적이고, 정책과 제도까지 섭렵하며 열심인데 우리 남편은 대체 뭐하나 싶었다. 아들 좀 보라고 하면 말 그대로 눈으로만 보고 있질 않나, 발달장애에 대해 공부 좀 하라고 하면 도망가 버리질 않나, 자식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빠들 모임이 있길래 나가라고 등 떠밀었더니 질색을 하질 않나. 그래. 사람은 바꿔 쓰는 거 아니랬다. 혈압관리를 위해 내가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에휴. 내 팔자야. 그러다 알고 지내던 아빠 둘이 남편을 모임에 보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무슨 모임이냐 했더니 장애 아이를 둔 아빠들끼리 그냥 술 먹고 노는 모임이란다. 남편에게 얘길 했더니 그건 좋다며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래. 좋아하는 술이나 실컷 마시고 오라며 남편을 보냈다. 벌써 1년 전 일이다. “장애가 다 뭐야, 공부가 다 뭐야, 그냥 술이나 마시자!” 아마도 이런 취지에서 발족된 아빠 모임이었을 텐데, 알고 보니 남편에겐 이런 게 절실했다. 어느 날 물었다. “아빠 모임에선 대체 무슨 얘기들을 해?” “당신 욕 해”“내 욕?”“응. 아내들 욕”“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욕먹을 게 뭐 있어.”“있지. 엄마들은 그러잖아. 자기들만 힘들다고”아하. 바로 이것이었구나. 술 먹는 아빠 모임의 최대 미덕. 엄마인 우리들은, 다시 말해 장애인 자식의 주양육자로 있곤 하는 우리들은 힘듦을 나눌 대상이 있었다. 학교나 치료실, 부모단체나 자조모임 등에서 만난 엄마들과 ‘수다’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눴다. 하지만 아빠들에겐 그럴 기회가 없었다. 자식의 장애를 공개했다고는 해도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자식에 대해 이야길 나누진 않았다. 자식 얘기를 시작하면 힘내라며 위로를 듣던가 갑자기 분위기가 너무 조심스러워져서 말을 꺼낸 당사자가 민망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냥 자식에게 장애가 있을 뿐인데 ‘장애 아이 아빠’로 대상화되어 버리곤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아들 좀 보라고 하면 정말 눈으로만 보다가 나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곤 했던 남편이지만, 장애 아이 아빠로 살면서 느끼는 삶의 무게는 그도 버거웠을 것이다. 술 먹는 아빠 모임에 나가는 남편은 즐거워 보였다. 굳이 자식들 얘길 하지 않아도 서로가 처한 상황을 이해했기에 마음 편하게 웃고 즐기는 게 보였다. “여자들은 지들만 힘들대”라고 하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았다. 그렇게 공감한 뒤엔 다른 데선 못할 ‘아내 욕하기 타임’을 통해 희생하는 엄마 뒤에서 돈 벌어오는 아빠로 살며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털어내곤 했다. 그렇게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낸 아빠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희생하는 아내와, 장애인 자식과, 비장애인 자식에게 아빠로서의 사랑과 의무에 더욱 충실했다. 영화 전문 기자, 공무원, 만화가, IT업계 종사자, 인권 활동가, 개인 사업 등 저마다 하는 일은 달랐지만 이들은 ‘아빠’라는 이름으로 모여 웃고 깔깔거리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렇게 ‘또 다른 나’와 만나는 경험이 남편의 행복지수를 더 높이는 데 일조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아빠들이여. 모이라고. 법과 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상동 행동과 감각 추구에 대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술 먹고 낄낄대며 아내들 욕하고 자식들 때문에 속터지는 마음을 풀어내면 된다.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아빠들도 마음이 사람이 된다. 그래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자식의 장애가 인생의 장애가 아닐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자식의 장애와 더불어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글쓴이 류승연전직 정치부 기자. 현직 글 쓰는 엄마. 발달장애인 아들이 세상 속에서 어우러져 살려면 사람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펜을 잡음. 작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중. 

    게시일2019-11-20

  •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다시 생각한다②: 자기결정권은 혼자서 결정한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지난번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자기결정권이란 능력과는 무관한 말 그대로의 권리임을 설명 드리면, 장애인 교육 및 복지 현장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나 발달장애인 부모님들도 눈을 반짝이시면서 고개를 힘차게 끄덕끄덕 하십니다. 그러나 이내 다시 풀이 죽은 표정을 지으며 푸념을 하시곤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혼자서 결정한 대로,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는 데 어찌하나요. 원칙은 뭔지 이해가 되는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장애인 부모님의 말씀 속에는 자기결정권에 대한 또 하나의 흔한 오해, 그렇지만 매우 핵심적인 오해가 존재합니다.자기결정권의 보장이란 모든 상황에서 어떤 주체가 혼자서 결정한 대로, 그리고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의미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만일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것의 의미라면, 발달장애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그 누구도 자기결정권을 누리며 살 수는 없습니다. 한번 잘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언제나 여러분이 혼자서 결정한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오셨나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우리는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연립(聯立)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이존재(Zwischensein)’인 인간은 무언가 판단하고 결정할 때 늘 혼자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논의를 거듭하며, 그 많은 상담소와 컨설턴트들은 또 왜 존재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늘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남과 상의하지도 않고 혼자서 판단하거나 결정함”을 뜻하는 단어가 ‘독단(獨斷)’인데요, 그것이 늘 바람직하다면 왜 우리가 누군가를 ‘독단적인 인간’이라는 말로 비판을 하겠습니까.즉 자기결정권이란 자기결정을 내리고 있는 여러 주체들이 상호의존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 소통을 하고 조율을 해가며 실현할 수밖에 없는 권리입니다. 그렇기에 자기결정권은 그 실현의 최대치가 아니라, 권리가 부정되지 않는 최저기준을 중심으로 보장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락은 다르지만, 생활권의 보장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사람이 살면서 누리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아닌 최저생활기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러한 인간다운 삶의 최저기준을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그렇다면 자기결정권의 최저기준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정한 결정이 내려질 때 그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관련 당사자의 의견과 판단을 소통하고, 존중하고, 반영하는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단능력이나 소통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러한 과정이 생략되거나 그러한 과정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정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최종적인 결정은 해당 주체가 지녔던 최초의 의견 및 판단과는 다르거나 변화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자기결정권이란 타인의 행복과 이익, 그리고 해당 주체의 행복과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며 일정하게 조율되어 실현될 수밖에 없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딱딱하기는 하지만 이를 간단한 그래프를 통해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A의 영역은 어떤 주체가 지닌 최초의 의견과 판단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경우, 그러니까 자기의 행복-이익과 타인의 행복-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경우입니다. 반면에 C의 영역은 어떤 주체의 의견과 판단이 자기의 행복-이익도 침해하고 타인의 행복-이익도 침해하는 경우입니다. 극단적인 예로는, 어떤 사람이 자살 폭탄테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경우를 들 수 있겠지요. 그리고 B는 너는 좋지만 나는 좋지 않은 경우, 반대로 C는 나는 좋지만 너는 좋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이 둘은 자기의 행복-이익과 타인의 행복-이익이 어떤 형태로든 서로 상충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의 경우라면 해당 주체의 의견과 판단은 당연히 별다른 소통이나 조율 없이 그대로 최종적인 결정으로 확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B, C, D의 경우에는 주변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러한 의견과 판단을 수정하는 쪽으로 조율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즉 어떻게 A의 영역에 좀 더 근접한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합니다.앞서 자신의 아이가 혼자서 결정한 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다고 푸념을 하셨던 발달장애인 부모님과도 얘기를 나누어보면, 그렇게 내버려두기가 어려웠던 것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경우들이었습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K는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과 같은 원색 계열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해 겨울에 빨간색 오리털 파카를 새로 사주었더니 겨울 내내 그 옷만 입고 다니더랍니다. 겨울에야 뭐 굳이 말리지 않고 내버려두었는데, 그 옷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왔는데도 외출을 할 때 계속 그 파카를 입으려 했다는 것이지요. 따뜻한 봄날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으면 어떻겠습니까. 땀도 나고 덥고 아이가 힘들게 뻔했겠지요. 즉 이 경우에는 굳이 타인까지 고려하지 않더라도 해당 주체의 의견과 판단이 자신의 행복-이익에 해가 되는 경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K는 동그랑땡 반찬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가족이 다 함께 맛집이라고 알려진 한 식당으로 외식을 하러 갔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 밑반찬으로 동그랑땡이 나오는 걸 보더니 K가 손으로 그걸 집어먹으려고 하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결정권의 보장이 중요하다고 그냥 그렇게 집어먹도록 내버려 두기는 곤란했겠지요. 해당 주체의 행동이 타인의 행복-이익에 해가 될 수 있는 경우이니까요.사람들이 보통 어떤 발달장애인이 결정한 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결정이 이처럼 어떤 형태로든 해당 주체나 주변의 타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면 그 주체가 발달장애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연히 소통과 조율을 통한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즉 그러한 조율과 수정 자체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어차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소통과 조율의 과정 자체를 생략하거나, 그러한 과정이 힘들다고 해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자기결정권의 침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자기결정권의 무시나 침해가 반복되고 일상화되면 해당 주체는 자기결정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함으로 인해 점점 더 자기결정의 능력도 발휘할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우리가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오해하게 되면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본의 아니게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기결정능력까지 감소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김도현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고,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기도 하다.              쓴 책으로 『차별에 저항하라』(박종철출판사, 2007),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 2007), 『장애학 함께 읽기』(그린비, 2009)가 있으며,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그린비, 2011),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그린비, 2017)를 우리말로 옮겼다.

    게시일2019-11-20

  •   한 달 전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는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행사에 참여했다. 이번 전국체육대회는 100주년 기념으로 서울이 개최지였다. 서울지부 회원들은 성화합화식(사방에서 곳곳을 두루 돌고 온 성화가 하나로 모이는 의식)의 중심 무대에 50명의 가족이 섰고, 전국체전 개막식에서는 개막식 퍼포먼스였던 ‘뭇별들의 행진’에 100 여 명이 또 섰다. 전국체전에 이어서 열린 전국장애인체전 기간 동안에는 서울의 광역과 자치구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홍보부스를 6동 운영했고, 장애인가족문화제를 진행했다. 이쯤 했으니 우리도 뜻깊은 100주년 전국체육대회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문득 한 달 전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에 전국체전 기획팀에서 체전 성공에 기여한 곳에게 상을 준다고 연락이 와서이다. 체전이 끝나고서는 고맙다면서 체전 마스코트 인형을 백 개를 주어서 기쁘게 받았는데, 이젠 상까지 준다니 또 기쁘다.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부모운동 단체로서, 우리가 누구에게 감사하다고 한 적은 많은데, 누군가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한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가끔 농성장을 지나치던 어떤 사람이 마실 것들을 들고 와서 고맙다며 두고 가는 적은 있지만, 그 역시 짐작컨대 가족 중 누군가가, 아니면 인연이 닿았던 누군가가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감사하다는 인사   이번 체전 행사 기간동안 우리는 체전팀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리허설 와주셔서 감사하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 개막식 폐막식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말로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나긴 리허설 대기시간 동안 우리 요청에 따라 리허설 참석 횟수도 줄이는 등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줬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끼어넣은 것이 아니라, 무대의 주역 중 하나로서 초대했고, 그 역할을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였다.   처음에 체전 개막식 퍼포먼스 참여 제의를 받았을 때, 장애인체전 개막식이 아니라 전국체전 개막식이 맞냐고 거듭 물었다. 게다가 그저 나란히 서서 박수만 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율동까지 해야 하는 출연이라는 게 아닌가. 단 오분의 줄연을 위해 예닐곱 시간을 기다리는 긴 리허설을 여러 차례 해야 했지만, 우리는 두말없이 하기로 했다. 전국체전 메인무대에 선다는 의미가 작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막상 기꺼이 한다고는 했지만 참여자 모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데리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대기하는 일이 거의 다인 리허설을 몇 차례나 해야 했고, 수만명이 모이는 행사가 혹시나 스트레스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예상되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참여의 의미를 크게 생각한 자원자들이 나와 주었다.   걱정할 일이 없었다   잠실종합경기장 옆 보조경기장에서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면서 다른 출연진들이 대기했다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것을 보던 일, 도시락이며 간식을 먹던 일, 초록의 운동장에서 기념촬영하면서 놀던 일, 비오던 날의 리허설 등이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첫날 저녁, 드디어 주경기장에 들어서며 보았던 거대한 풍경을 잊을 수 없다. 긴 통로를 지나서 무대 입구에 들어서자 눈앞에 갑자기 펼쳐진 커다란 운동장, 환한 조명, 무대 한가운데에서 용오름같은 흰 소용돌이가 올라가고 그 위 활짝 열린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무한대 표지의 조형물. 우리는 너나없이 그 풍경에 압도되었다. 아, 이래서 예전에 인류문명의 탄생지마다 거대조형물이 만들어졌던 거로구나, 뭔가 거대한 규모에서 오는 압도, 그런 것이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굴복의 느낌을 동반한 소속감 같은 걸 느끼게도 하고 그랬겠구나, 하는 이야기들을 뜬금없이 나눴다.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를 채우는 음악소리, 현란한 불빛들, 수천명의 출연진이 오가는 복잡한 동선, 기나긴 대기시간, 호흡을 맞춰서 정연하게 입장해야 하는 등장, 모든 출연진과 함께 맞춰야 하는 율동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 체전 스텝들에게 우리 친구들에게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면서 엄포를 잔뜩 놓았었는데, 그런 것들이 그다지 필요 없다는 것을 첫날 리허설 때 이미 알았다. 우리 자녀들은 보조경기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들, 연습하는 모습, 도시락과 간식시간을 즐겼고, 주경기장 무대에선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크게 듣는 음향들, 태어나서 가장 큰 무대의 조형물들, 그 사이를 오가는 불빛들을 즐겼다. 그것은 손을 잡고있는 엄마 아빠들도 마찬가지였다.   넌 빠져도 된다는 말   처음에는 리허설에 한번 오면 두 번째는 다들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거듭될수록 리허설 참여자는 늘었다. 한 참가자 엄마가 이렇게 전했다. “첫날 고됐던 것 같아서 둘째날 ‘오늘은 쉴까?’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나가자고 하는 거에요. 희한하죠?”   그 때 알았다. 그동안 이 친구들은 이런 단위의 행사에 동원됐던 적이 없었으리라. 유치원에서 율동이 안 되면 빠져도 된다고 했을 테고, 초등학교 운동회 때도 힘들면 빠져도 된다고 했을 게다. 어떤 모임에서도 안 해도 되고, 빠져도 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소리를 주로 들었을 게다. 그리고 그걸 배려랍시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을 게다. ‘넌 빠져도 돼’,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따돌림인 걸 나도 알고 너도 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은 메인 무대의 메인 퍼포먼스 막바지에 등장하는 주요 출연자로서, 수천명의 출연진과 함께 분주한 개미떼처럼 저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결국엔 큰 그림을 만드는 무대를 꾸미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분명히 이 의미를 즐겼고, 그 덕에 고단함을 잊었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역할을 해냈다. 우리는 ‘빠지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뭇별의 시대   우주의 성간먼지가 모이고 뭉쳐서 문득 별이 되어 반짝인다. 우리는 반짝이 비닐 옷을 입고(다른 출연진 의상만큼 화려하진 않았으나, 그리고 그들처럼 두터운 반짝이 화장을 하지는 않았으나) 휠체어를 앞세우고 메인무대로 들어서서 성간먼지가 모이듯 타원형의 무대로 올라섰고, 드디어 그 곳에서 ‘뭇별’이 되어서 반짝였다. 개막식 퍼포먼스의 제목인 ‘뭇별의 시대’는 드디어 우리가 뭉쳐서 별이 되어 반짝이면서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무대가 끝나자 누군가 전했다. 전국으로 생중계되던 메인 퍼포먼스 화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외 참가자 일동’이라는 자막이 떴었다고. 무심코 텔레비전 화면을 보던 우리 회원들이 아마도 깜짝 놀랐을 걸 떠올리니 얼마나 흐뭇했던지!   한 달 전의 기억을 떠올려 이렇게 기록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잘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하니, 그것이 또한 감사해서이다.   ...... 우리는 모두 낱낱이 백년치의 별이다. 뭇별들을 저마다 백년 동안 빛나게 하라.    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 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게시일2019-11-20

  • <서번트 증후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영화 레인맨과 드라마 굿닥터 포스터들 © 다음영화, 페이스북> ‘자폐’를 ‘능력’으로 활용하는 사회이길 자폐성 장애를 겪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서번트 증후군’이 있다고…. ‘서번트 증후군’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소통 능력이 낮으며, 반복적인 행동 등을 보이는 여러 뇌 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기억, 암산, 퍼즐이나 음악적인 특정 부분에서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의한다.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에게 과학이나 예술 분야 등에 재능이 뛰어나면 그런 사람들에겐 탁월한 재능, 천재라 칭송하며 이들을 많이 높여준다.그런데 자폐성 장애가 있으면 부정적인 말로 시작한 다음 알고 보니 재능이 있더라 하는 식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말한다. 자폐성 장애 하나로 능력이 하찮게 생각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사람들의 재능은 장애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다 소중한 것인데 말이다. 자폐인의 재능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회에 기여하도록 잘 활용한 예가 있을까?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은 자폐성 장애 특징인 정보의 시각화를 이용, 동물 이동경로에 가장 적합한 가축시설을 만들었다. 이렇게 된 데는 장애를 창의적인 재능, 능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칼록 선생의 역할도 컸다. 자폐를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인 특성으로 본 것이다. 이로 인해 그녀는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자폐인식 제고의 날에 찍은 Auticon 직원들 모습 © Auticon>자폐성 장애인만이 일하는 사회적 기업 Auticon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 관련 부품테스트, 적합성테스트, 제품 합격테스트 등을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검사자(Software tester) 일을 이 기업에서는 자폐성 장애인에게 맡긴다. 소프트웨어 검사자에겐 집중력이 엄청나게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다.하나에 꽂히는 게 있으면 엄청나게 집중하는 자폐성 장애의 특성 중하나를 활용하는 것이다. 자폐성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생산력을 높이는 능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자폐성 장애인도 사회발전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사회가 생각하는 것이다.자폐성 장애의 특성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든 Auticon과 탬플그랜딘의 예를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까?2018년 장애인고용공단의 기업체 장애인 고용실태조사에서 장애인 고용률은 평균 34.5%인데, 그 가운데 자폐성 장애인은 19.8%로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고용률을 보인다. 사회가 자폐성 장애인의 특성과 능력을 긍정적으로 보며 잘만 활용한다면 자폐인의 고용률은 물론 전체 장애인 고용률도 올라가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자폐성장애인의 구직비율 증가 및 신체감각장애의 감소추세가 장애인 고용시장의 핵심적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자폐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때 장애인 고용시장의 변화에 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등이 발맞추어 가며 사회공헌은 저절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자폐인들이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당당하게 어울려 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자폐인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당당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자폐인의 특성을 능력으로 활용해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지원을 우리 사회가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회에서 당당하고 긍정적인 자폐인의 이미지가 현실로 될 수 있을 테니까…   글쓴이 이원무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에서 정책연구팀 간사를 지냈으며, 현재 UN장애인권리협약 NGO연대 보고서 위원입니다. 여행,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 및 건강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에이블뉴스에 2년 동안 칼럼을 연재했고, 5년 전에는 UN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보고서 1차 심의 때 민간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게시일2019-11-20

  • < 아름다운 일상을 누린다는 것에 대하여 >   우리 엄마는 일곱자매의 여섯 번째였다. 이렇게 ‘~였다’라고 과거형으로 쓰는 건 이미 1번 이모부터 시작해서 5번 이모까지 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엄마는 달랑 두 자매의 맏이가 되었다. 재작년에 언니 둘을 한꺼번에 잃고는 아주 많이 우울해 하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되어가니, 엄마의 지난 이십 년은 온통 이별하고 외롭게 남겨지고 하는 일이었을 뿐인 셈이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건, 식구들의 숨소리와 소란한 생활소음들과 이런저런 살냄새와 샴푸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카락들과 아무데나 걸쳐져 있는 수건들과 여기저기 벗어던진 양말들과 식탁 위에 놓인 과자 부스러기와 펼쳐진 신문쪼가리 따위가 가득한 집안이다. 하루 세 번 부엌이 소란해지고 도마소리가 나고 렌지후드가 돌아가고 음식냄새가 풍기고, 누군가 소리치며 현관문을 나가고 누군가 들어오며 들어왔다 외치고, 그러면 방에서 삐죽 얼굴 내밀고 한 번씩 쳐다보고, 저녁 뉴스를 보면서 저마다 떠들고, 서로들 잔소리 하며 참견하고 그러다 방마다 들어가서 곤하게 코고는 소리 나는 그런 집안이다.   엄마가 저녁마다 전화를 해서는 “식구들 다 들어왔냐?”고 물을 때 그 속에는 그런 부러움을 한껏 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가정을 꾸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서 엄마와 통화를 하고나면 늘 마음이 무겁다. 마치 엄마가 우리집 문 바깥에 서서 이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서성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엄마는 그저 의자나 화분같은 정물처럼 앉아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컨대 식구들 숨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잠자고 일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다름아닌 나다. “너한테 할 소리는 아니다만-” 엄마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너는 네 새끼하고 평생 같이 살 거잖니. 난 그게 부럽다.”   - 엄마의 소망이 문 밖에서 서성인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땐, 아무리 자신의 외로움이 사무친다고 어쩜 나에게 그걸 부럽다 말할 수 있을까 했었는데, 살아갈수록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아픈 자식이든 망아지처럼 펄펄 뛰는 자식이든 새끼를 내 품에서 품고 싶은 어미 마음이 어디 다르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홀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의 청년시절을 생각해보면, 언제까지나 자식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부모들의 부질없는 소망일 수밖에 없다. 자식들은 성장해서 독립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지켜보며 늙어가는 것이 부모의 행복이다.   내가 속해있는 장애인부모연대 지회에 두 해 전에 연세 드신 회원이 가입하셨다. 무려 울 엄마와 동갑이셨는데,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따님하고 단 둘이 살고 계시다 했다. 딸은 나보다 몇 살 아래였다. 회원 가입 절차를 안내했던 이는 지회 부회장이었는데, 가뜩이나 눈물많은 그이는 ‘따님이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여쭈었더니 집에 그냥 있었대요.’라고 전하며 회원 가입시켜드린 그 날 밤늦도록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 모녀의 수십 년 아득했을 세월이 맘이 아팠고, 혹시나 나의 미래 모습이 그러할까 싶어 또 맘이 아득했다고 했다.   - 미안하면 세상을 바꿔줘   몇 년 동안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네 못들어갔네 하는 소식들을 전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아이들이 취직을 했네 못했네 하는 소식을 전한다. 가끔은 이른 혼사를 전해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조금 미안해 한다. 목소리에 그런 미안함이 살짝 얹혀 있다. 미안하면 세상을 바꿔줘, 이렇게 말하며 농담인 듯 호탕하게 웃지만, 그게 진짜 진심이라는 걸 친구들은 알 게다.   우리들은 언제 그런 평범한 일상을 맞이하게 될까. 내 아이가, 가까운 학교에 다니고, 즐거운 일터에 다니고, 하고싶은 여가생활을 누리고, 쉬고 싶은 곳에서 하루를 마치는, 일정하고 안전하고 고요한 일상을 갖는 모습을 언제나 보게 될까 생각해 본다. 그리 되면 우리 엄마가 더 이상 자식 끼고 사는 나를 부러워 하지 않고 ‘너도 네 품을 떠난 자식 때문에 헛헛하겠구나’ 하면서 동지애를 느끼실까.   그런데 실은, 우리 아이들이 그런 평범한 일상보다도 더 별나고 더 좋은 일상을 누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리둥절하고 낯설고, 알 수 없는 고통스런 자극 속에서 삶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하고 더 단정하고 더 아름다운 장소와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세상에서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대접하고 더 배려하고 더 귀하게 여겨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을 고상한 사회의 자부심으로 여겨야 하는 일이 아닌가. 장애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부끄러워하는 것을 넘어서, 귀한 대접 해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아직 반 발짝 떼지도 못한 터에 뜬구름 올라타자는 소리처럼 들릴 테지만. 아무튼 장애를 가진 아이나 그의 가족이 장애를 이유로 고통받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회가 틀림없이 오긴 오겠지만, 그럴 것이라고 기어코 믿지만, 우리가 더 늙기 전에, 우리들 아이가 아직 청년인 시절을 다 보내기 전에 와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게 너무 어림없는 소망이라면,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노년을 맞기 전까지는 와 주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나 맞춰지기를 강요받아서 힘겨웠던 삶을 내려놓는 때까지, 품위 있고 존중받고 행복한 할머니, 할아버지로 삶을 마칠 수 있게.   장애를 가진 아이의 어미 아비인 우리들은 언제나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고 내 아이와 중첩되어 있다. 내가 다져놓은 땅에서 내 아이가 한 발 딛는다. 그러다 길 위에서 서로 마음이 어긋나서 멈추어 다투기도 한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내 몸 어딘가에 나 있는 가시가 남을 찌르기도 하고 나를 찌르기도 하리라. 서로간에 딱한 일이지만 그러나 어쩌랴. 갈 길이 멀고 급하니 어서 추스르고 나아가야 한다.   지난 연말부터 서울장애인부모연대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참 달려오다가 발걸음이 얽혔다. 우리들 각자의 삶의 싸움이 치열했으니 그게 반영된 이 다툼도 치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수습과정에서 상처가 없진 않겠으나, 뚝심 있으면서 유쾌한 투사의 깃발이 곧 다시 올라오기를 기대한다. 김종옥(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게시일2019-02-20

  •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다시 생각한다①: 자기결정권은 자기결정능력과 같은 것이 아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장애 영역에서 흔히 듣게 되지만 장애인에게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권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도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이러한 자기결정권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의 인격권(人格權)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그러한 행복추구권이 전제하는 자기운명결정권으로부터 유래하는 헌법상의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권리로서 인식하며 인정하고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장애인과 같은 발달장애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지요.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오래전부터 금치산(禁治産)․한정치산(限定治産) 제도를 통해 의사능력(意思能力)과 행위능력(行爲能力)이 언제든지 부정될 수 있는 집단이었고, 민법 개정을 통해 2013년 하반기부터 시행되고 있는 성년후견제도 역시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합법적으로 타인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이처럼 부정되는 현실은 자기결정권에 대한 어떤 오해에 기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자기결정권이라고 하는 것이 주체에 대한 개인주의적 관점, 그러니까 ‘홀로 서기’의 관점에서만 접근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아닐까요?저는 2010년부터 3년 정도 『함께웃는날』이라는 발달장애 전문 계간지를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재정적인 문제로 폐간이 되기는 했지만요. 이 잡지의 발행처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라는 곳으로, 200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장애인 교육권 투쟁을 이끌면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만들어 내고, 이후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흔히 ‘발달장애인법’이라고 불리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단체였지요. 다른 NGO들이 그런 것처럼 장애인단체들도 종종 이러저러한 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당시 전국장애인부모연대도 그렇게 한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발달장애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공재단이든 민간재단이든 지원금을 주면 생색을 내고 싶어 그러는지 꼭 아크릴로 만든 조그만 간판을 주면서 사무실 입구에 달아놓도록 합니다. 그래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실 입구에도 ‘○○재단 장애아동 프로젝트 지원사업: 발달장애청소년의 자기결정권 향상 프로그램’이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을 지원했던 재단은 민간기업의 재단이어서 좀 더 생색을 내고 싶었는지, 아예 정식으로 기금 전달식을 하면서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더라고요.어느 날 저는 사무실 청소를 하다가 책장에 놓여있던 그 사진을 조금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 속 플래카드에는 사무실 입구의 간판과는 조금 다르게 ‘○○재단 장애아동 프로젝트 지원사업: 발달장애청소년의 자기결정능력 증진 프로그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자기결정권 향상’이라고 표현되었던 것이,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결정능력 증진’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순간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향상’이라는 말과 ‘증진’이라는 말은 뭐 그렇다 치고, ‘자기결정권’이라는 말과 ‘자기결정능력’이라는 말을 그렇게 바꿔 써도 되는 것일까? 그게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는 즉시 자기결정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여러 문헌과 서류들을 훑어보았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러한 문헌과 서류들에서도 ‘자기결정권’과 ‘자기결정능력’이라는 용어를 별다른 구분 없이 혼용하는 경우가 매우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자기결정권과 자기결정능력을 대동소이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것이지요.사실 인간이 수행하는 모든 신체적․정신적 활동은 그것이 권리의 차원에 존재를 한다 할지라도 능력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측면 또한 분명히 존재를 합니다. 교육은 이러한 문제를 성찰함에 있어 하나의 유용한 사례가 될 수 있는데요, 장애인의 교육권이라는 말은 이전에도 존재를 했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교육권이 ‘부정’되어온 시기가 존재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교육 활동을 수행하는 것과 관련된 능력이 부족하거나 부재하다는 이유로 교육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 내에서 제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지체장애인), 칠판에 판서된 내용이나 교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고(시각장애인), 수업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고(청각장애인), 교사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발달장애인)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 장애인 부모, 교사들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교육권이 ‘인정’된 지금, 그 누구도 장애인은 능력이 없으니 학교에 올 수 없다고,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교육권이 인정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지원 체계가 갖추어지고, 여기에 필요한 예산 역시 확보가 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조치들이 지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즉 하나의 권리란 크게 ‘권리의 부정 단계/권리의 인정 단계/권리의 실현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으며, 능력의 부재를 이유로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권리의 부정 단계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논리인 것입니다. 교양 있고 재산 있는 사람들, 즉 지력(智力)과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인정되었던 선거권이 신분ㆍ성별ㆍ재산․교육 정도 따위의 제한을 두지 않는 보통선거로 확대되어온 역사적 과정도 이러한 맥락을 보여줍니다. 생존 또는 생활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 역시 능력의 차원이 존재합니다. 즉 생활력이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존권은 헌법을 통해 보장되는 권리이기에 우리는 생활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정부를 상상하거나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정리해보면, 능력과 권리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능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될 때에만 우리는 그 어떤 것을 권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다양한 차이를 지니고 있기에 다양한 활동의 영역에서 다양한 정도로 능력의 차이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면, 그러한 능력의 부족 때문에 권리의 실현이 제한되지 않도록 적절한 제도가 마련되고 더욱 많은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권리의 논리입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능력이 낮을 수 있다는 것까지 완전히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결정능력이 낮다고 해서 자기결정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결정능력과 자기결정권을 동일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결정의 권리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임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김도현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고, 노들장애인야학 부설 기관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이기도 하다. 쓴 책으로 『차별에 저항하라』(박종철출판사, 2007),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게시일201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