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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동네형1_류승연] 엄마들 욕하는 ‘아빠 모임’의 미덕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19-11-20 조회수3,968

아들이 커갈수록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어야 한다. 그 외에 무엇이 중한디.

아들의 장애를 수용하지 못했던 시절, 무엇이든 끝장을 보는 성격답게 불행이라는 녀석을 온몸으로 껴안고 불행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탔다. 선만 살짝 넘으면 염라대왕이 어서와~ 저승은 처음이지?” 할 판이었는데 다행히 안 죽고 버텨서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

당시의 나는 살았지만 죽어있는 좀비와 다를 바 없었으니. 그때가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이왕 사는 거 행복하게 살고야 말겠다는 의지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확고해졌다.

신기한 건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나인데 결과적으론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향성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애인 가족이라서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기에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다. 자식의 장애가 행복의 장애물이 되도록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

오늘은 남편에 대해 얘길 해볼까 한다. 행복하지 못했던 아내 옆에서 함께 불행했던 남자. 하지만 더는 불행하길 거부한 남자. 77년생 김재범의 이야기다.

장판(장애인판)에서 이상적인 아빠들의 모습을 많이 보면서 한동안 남편을 갈구는(?) 시간이 이어졌다. 저 아빠는 회사 일도 열심히 하면서, 자식의 장애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학교 일에도 적극적이고, 정책과 제도까지 섭렵하며 열심인데 우리 남편은 대체 뭐하나 싶었다.

아들 좀 보라고 하면 말 그대로 눈으로만 보고 있질 않나, 발달장애에 대해 공부 좀 하라고 하면 도망가 버리질 않나, 자식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빠들 모임이 있길래 나가라고 등 떠밀었더니 질색을 하질 않나.

그래. 사람은 바꿔 쓰는 거 아니랬다. 혈압관리를 위해 내가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에휴. 내 팔자야.

그러다 알고 지내던 아빠 둘이 남편을 모임에 보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무슨 모임이냐 했더니 장애 아이를 둔 아빠들끼리 그냥 술 먹고 노는 모임이란다. 남편에게 얘길 했더니 그건 좋다며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래. 좋아하는 술이나 실컷 마시고 오라며 남편을 보냈다. 벌써 1년 전 일이다.

장애가 다 뭐야, 공부가 다 뭐야, 그냥 술이나 마시자!” 아마도 이런 취지에서 발족된 아빠 모임이었을 텐데, 알고 보니 남편에겐 이런 게 절실했다.

어느 날 물었다.

아빠 모임에선 대체 무슨 얘기들을 해?”

당신 욕 해

내 욕?”

. 아내들 욕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욕먹을 게 뭐 있어.”

있지. 엄마들은 그러잖아. 자기들만 힘들다고

아하. 바로 이것이었구나. 술 먹는 아빠 모임의 최대 미덕. 엄마인 우리들은, 다시 말해 장애인 자식의 주양육자로 있곤 하는 우리들은 힘듦을 나눌 대상이 있었다. 학교나 치료실, 부모단체나 자조모임 등에서 만난 엄마들과 수다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눴다.

하지만 아빠들에겐 그럴 기회가 없었다. 자식의 장애를 공개했다고는 해도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자식에 대해 이야길 나누진 않았다. 자식 얘기를 시작하면 힘내라며 위로를 듣던가 갑자기 분위기가 너무 조심스러워져서 말을 꺼낸 당사자가 민망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냥 자식에게 장애가 있을 뿐인데 장애 아이 아빠로 대상화되어 버리곤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아들 좀 보라고 하면 정말 눈으로만 보다가 나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곤 했던 남편이지만, 장애 아이 아빠로 살면서 느끼는 삶의 무게는 그도 버거웠을 것이다.

술 먹는 아빠 모임에 나가는 남편은 즐거워 보였다. 굳이 자식들 얘길 하지 않아도 서로가 처한 상황을 이해했기에 마음 편하게 웃고 즐기는 게 보였다.

여자들은 지들만 힘들대라고 하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았다. 그렇게 공감한 뒤엔 다른 데선 못할 아내 욕하기 타임을 통해 희생하는 엄마 뒤에서 돈 벌어오는 아빠로 살며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털어내곤 했다. 그렇게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낸 아빠들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희생하는 아내와, 장애인 자식과, 비장애인 자식에게 아빠로서의 사랑과 의무에 더욱 충실했다.

영화 전문 기자, 공무원, 만화가, IT업계 종사자, 인권 활동가, 개인 사업 등 저마다 하는 일은 달랐지만 이들은 아빠라는 이름으로 모여 웃고 깔깔거리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렇게 또 다른 나와 만나는 경험이 남편의 행복지수를 더 높이는 데 일조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아빠들이여. 모이라고. 법과 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상동 행동과 감각 추구에 대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술 먹고 낄낄대며 아내들 욕하고 자식들 때문에 속터지는 마음을 풀어내면 된다.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아빠들도 마음이 사람이 된다. 그래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자식의 장애가 인생의 장애가 아닐 수 있게 된다. 그래야 자식의 장애와 더불어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글쓴이 류승연

전직 정치부 기자. 현직 글 쓰는 엄마

발달장애인 아들이 세상 속에서 어우러져 살려면 사람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펜을 잡음. 작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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