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계시나요?
이 게시판은 보다센터에서 초대한 각 분야의 칼럼니스트들이 여러분들께 ‘발달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곳입니다.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칼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일상이야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소박하지만 통렬한 이야기와도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게시물 총 120 건
나도 자기옹호가 필요해요!지역사회 발달장애인 자기옹호 일상화되길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당신은 아름답다는 문구 ⓒPixabay 얼마 전 한 자매가 카톡으로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블루베리 롤케이크를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보니, 함께 먹으면 좋겠다 싶어 생각한 끝에, 일본어를 함께 수강하고 계신 분들과 같이 나누어 먹기로 내 마음속에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이번 주 화요일에 파리바게트 매장에서, 직원에게 선물 바코드를 보여주고, 직원이 바코드 체크를 한 다음, 나는 롤케이크를 선물로 받아갔다. 일본어 회화를 공부하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함께 먹고 싶은 마음에 롤케이크를 조각조각 자르고 한 사람씩 주려고 하는 사이에 어느 한 여성 수강생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손으로 만진 케이크 주지 마세요! 저 이런 것 민감해요.” 순간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손으로 만진 게 생각나며 멈칫했다. 그래서 그 수강생에게 그럴 마음은 아니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바로 일본어 강사님은 플라스틱 칼로 잘라 수강생 각각이 손으로 떼서 먹게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다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여성 수강생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불편한 느낌이 다가왔다. 하루 전, 누나네 식구들 건강 체크를 하러 누나 집에 갔을 때 누나에게서 ‘너는 섬세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건강 체크를 할 때 사람 머리나 주머니 등에 금속 등의 물질이 있으면 건강과 관련한 데이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데이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건은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누나가 묶고 있는 머리핀을 풀라고 하고, 그 핀을 내가 건강 체크하는 동안 가졌다. 그런데 누나가 이런 소리를 하는 거다. “여자들은 남이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해. 그런 행동은 인센시티브(섬세하지 못하다)한 거야.” 그 당시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과거에도 여성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특성, 특징을 잘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섬세하지 못한 부분들 때문에 여러 번 다른 이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계속 들었던 것이 머릿속에 동시에 떠올랐다. 관계 단절 및 절교까지 이어진 경험도 또한 떠올랐다. 나의 섬세하지 못한 부분들로 싫은 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고마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번이 아닌 두 번 이상이다 보니 기운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성에 대해 섬세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나를 보면서 잠시 자폐성 장애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애가 어디 없어지던가? 그러다 잠깐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격려 주는 게 자존감을 높이는 거라는 어느 카톡방에서 보낸 링크 내용이 떠올랐다. 마음속으로 나 자신을 스트레스로 볶지 말고,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강식품을 먹은 다음, 대모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땀 쭉 흘리고, 내려가는 길에 근육운동을 하는 기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 운동했다. 근육운동을 하고 나서는, 나 자신에게 ‘수고하고 잘했어!’라고 속으로 토닥이며 단백질 보충제를 먹고 집으로 향했다. 스트레스가 조금씩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을 살아갈 에너지가 조금 생겼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픈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래서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하며, 나의 힘든 마음을 알아달라고 조르면 시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의 힘든 마음을 100% 공감하지는 못한다. 그 마음은 오로지 나 자신만이 100% 느끼며 알 수 있으니까. 인정받으려 노력하다 받지 못하면 스트레스만 잔뜩 쌓일 거다. 내일을 살 힘이 줄어들 것이고. 나 자신도 그런 경험 한 적이 적지 않으니. 그러니 차라리 나 자신에게 격려 주며 자신을 옹호하자고 말이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이다. 조언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거 같다. 더군다나 남에게 평가, 지적질을 많이 받는 현대사회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격려 주고 자신을 옹호해야 내일을 살 수 있는 희망의 자양분이 생김을 본다. 자신을 성찰할 힘도 조금씩 생길 터이고. 자기옹호야말로 나에게 정말 필요하고, 이것 또한 배워야 함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현대사회를 살아간다. 그런데 장애, 능력 없음, 위험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사람들은 이들에게 지적질을 심하게 하며, 혐오하고 차별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지적․자폐성 장애인 개인도 일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사회 환경 속에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우울증에 걸릴 환경에 노출되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며 마음에 격려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 자신이 자신을 격려․옹호하며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주지 않는 한 당당해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아름다우니까. 그러기에 자신이 힘든 가운데서도 살 힘을 주어 당당할 수 있도록 지적․자폐성 장애인 자신이 자신을 격려․옹호하는 자기옹호를 지원자가 지원하는 모습이 지역사회에 전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자기옹호에도 전문가나 지원자만의 의견이 아닌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를 통해 지적․자폐성 장애인 자기옹호가 지역사회에서 일상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스스로 자신을 옹호하며 당당해지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길.
게시일2020-07-31
아들의 외모 변화 2년전과 현재 아들은 외모가 많이 달라졌다.헤어스타일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선 체중이 줄다보니 얼굴 형태가 달라보였다. 그래서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고 그랬나보다.아들과 2시간동안 은행, 주민센터, 카페, 마트 등 네 곳을 돌아 다녔다.오늘처럼만 차분하게 동행하면 내가 뭘 더 바랄까 싶다. 5년여 먹던 약을 중단한 지 2년이 다되어 간다.밤잠을 못자고 너무 산만할 땐 약을 안먹어서 그런가 갈등도 깊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약은 잊고 살게 되었다.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약이 약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생각해 보면 아들의 외모는 약과 운동을 중단하고부터다.다른 요인도 있을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큰 변화는 이 두 가지다.억지로 시켰던 운동을 하다 보니 집에 와서 많은 양의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짜증도 줄었고 그래서 약도 중단할 수 있었다.사람마다 케이스가 다르니 이런 말 하는 게 참으로 조심스럽다. 얼마 전 센터 복도에서 교실에서의 선생님 뒷모습과 정면의 아들 표정을 보면서 뭔가 꾸중 듣는 듯한 모습을 감지했다.역시나 청소를 안하고 뺀질대서 주의를 듣는 중이었단다.아들에게 뭔가를 얘기하면 들으려 하지 않고 밀쳐내고 다른 곳으로 뛰어가곤 했는데 그때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선생님의 주의를 잘 듣고 있던 모습이 꽤 괜찮아 보였다.아침에 차 안에서 오늘 목요일이고 내일부터 연휴가 시작되니 이번엔 우리 차로 부산에 가자고 얘기했더니 가볍게 네~를 말한다.오늘은 마무리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와라~말 끝나기가 무섭게따아!!!하며 싫다는 대답을 하는 아들.너 청소하는건 싫으냐?네!웃긴다. 지가 청소를 얼마나 했다고 싫다는 표현을 저리 강하게 하냐 싶어 기가 막혔다.속으로 올라오는 열을 가라앉히고는,그래도 네가 할 일은 하고 살아야지~ 너처럼 멋진 청년이 친구들 다 열심히 청소하는데 너만 안하는건 옳지 않아~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은 하는 거다.천천히 설명해줬더니 작은 소리로 네~표현언어는 안되지만 수용언어는 되니 이만큼이라도 소통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말 못하는 아들을 위해 많은 지인들이 기도해 주시는 걸로 안다. 그 기도 덕에 그나마 이만큼 살고 있다 생각하면 내가 받은 만큼은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달라진 외모만큼 아들의 내면도 보다 성숙하게 변화하여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싫어도 꼭 하면서 잘 살아가길 바란다.
게시일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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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손목을 다쳤다. 그림작품들을 정리하는 일을 하다가 뭔 일로 서둘러 뛰다가 넘어지면서 다쳤다. 바닥에 주저앉아 포장을 하는 데 불편해서 신발을 벗어놓은 채 양말바람이었고, 바닥은 대리석 바닥인 양 미끄러웠고, 비닐이며 종이포장재가 어지러운 채 널려있었으니 미끄러져 넘어지기 딱 좋았다. 두어 발걸음 뛰다 쭉 미끄러지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이 얼마나 길던지 오만 생각을 다 했다. 앗, 왼발이 미끄러지는데 오른발이 미처 앞으로 오지 못하겠구나이렇게 넘어지면 허리나 목이나 뒷통수를 다칠 수도 있겠구나되도록 충격이 덜하게 옆구리로 돌면서 넘어져야겠구나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이 좀 웃기겠구나... 그러다 어찌어찌 몸을 돌리면서 넘어지면서 뒷통수를 보호하는 데까지는 성공하고, 민망하게 넘어져 있는 채로 발목, 무릎, 허리, 엉치뼈를 살폈다. 살짝 아프기는 했으나 모두 무사하다! 그런데 일어나려고 손목을 바닥에 짚는 순간 손목에 탈이 난 걸 알았다. 통증이 슬슬 밀려오더니 집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아예 손목에 불이 난 듯 아팠다. 아침에 병원에 가니 다행히 손목골절은 아니고(손목은 골절되면 모두 수술해야 한단다), 인대가 늘어나고 연골이 부서졌고 염증이 심한 상태이니 반깁스를 하고 한달을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손목에 힘을 주는 일은 제약이 많을 거라 했다. 그러고 3주째다. 오른손이라 불편한 것은 말도 못한다. 사람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머리만 굴리는 일 말고) 두 손이 합작해서 하는 일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왼손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왼손과 오른팔뚝, 왼손과 이빨로 하는 협업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깁스를 만약 두어달 더 한다면 왼손과 오른발고락의 협업이 가능해질 것도 같다. 왼손으로 단추 끼우기는 하루만에 성공했고 매듭단추 끼는 것은 일주일만에 성공했다. 가위질만은 매일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왼손용 가위를 사는 건 좀 아깝다. 제일 안 된 것은, 서툰 능력으로 열 일 애쓰고 있는 왼 손을 보살펴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왼손으로 낑낑거리며 샤워를 했는데, 정작 수고한 왼손은 닦아줄 수 없으니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대접만 받은 오른손에는 로숀을 발라주지 않는 것으로 응징했다. 내가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나가니 세상이 조금 달랐다. 문 앞에 서면 사람들이 문을 잡고 기다려줬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몇 층을 눌러줄까 물었다.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조금 거리를 두고 서줬고 물건을 사면 가게주인들이 내 가방을 열어 물건을 담아 줬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손목의 사연을 궁금해하며 물어왔고, 이전에 자기 경험을 얘기하며 걱정을 해주었다. 요컨대, 친절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겼다. 식구들은 불평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운명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불러대도 군소리 없이 일을 도왔다.(다만 시간이 갈수록 불렀을 때 제 방에서 튀어나오는 시간이 늘어가기는 한다) 좀 안됐던 일은, 아마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생긴 일 같기는 한데, 네 식구 중 셋이 가벼운 장염이 걸렸을 때 자기 병간호를 제 스스로 했어야 했다는 건데, 이 역시도 식구들은 별 군말없이 잘 해냈다. 그 중에서도 평소 엄마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하던 딸은 가족들을 진두지회하며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고, 평소 까칠하던 남편과 게으르던 아들은 딸의 말에 고분고분하다.(본인이 나서서 집안일을 건사하기 싫으니 부자가 모두 수동 복종형이 된 거다) 특히 아들은 흡사 엄마가 다쳐서 도움 줄 일이 생긴 것에 신이라도 난 듯했다. 처음엔 졸졸 따라다니며 내 팔목이 어디 스치기라도 할라치면 “조심해욧!”을 연발했다. 내가 신문을 집어들 때도, 수건을 걸 때도, 가방을 들 때도, 물을 따라 마실 때도 아들은 내가 혹시라도 오른팔을 쓸까봐 감시하고 주의를 준다. 하루종일 “조심해욧”을 입에 달고 있으니 잔소리꾼도 이만한 잔소리꾼이 없다. 그러고보니 아들은 예전에도 나를 돌보는 일이 생기면 열심히 나섰다.(물론 길게 가지는 않았다. 이런 것도 ‘루틴’이 되면 참 좋겠으나..) 내가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일이 잦은데, 어느날 식구들이 그게 좀 심해졌다며 걱정했다. 가위에 눌리면 온몸이 감전이 된 듯 찌릿찌릿하고 기운이 빠져나간다. 나는 식구들에게 빨리 와서 깨워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날 밤 설핏 잠이 들었는가 하다가 문득 머리맡에 누가 서있는 기운을 느껴 화들짝 놀라 깼다. 올려다보니 어두컴컴한 데서 아들놈이 스윽하고 서있는 거다. 왜 그러냐 했더니 엄마가 가위 눌리면 깨워달라 했다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머리맡에 그렇게 서있으면 어쩌냐, 너 때문에 가위 눌릴 뻔 했다, 이놈아,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잠이 들다가 좀 이상해서 다시 보니, 이번에는 아들이 살짝 열린 문 뒤에서 가만히 방에다 귀를 대고 있는 거다. 그 날 이후 나는 되도록 거실을 차지하고 잔다. 제각각의 이유로 올빼미 생활을 하는 식구 셋이서 언제라도 튀어나오기 쉽게 하려고 말이다. 그러니 나를 괴롭히려는 가위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놈이다. 남을 돕는다는 것처럼 자존감을 높이는 일도 없다. 봉사도 중독된다는 말처럼 남을 돕는 건 기쁨이 넘치는 일이다. 누가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남을 위해 기꺼이 수고하고,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마음에 흡족하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처지가 되었고, 내가 한 일이 스스로에게 기특했고, 제법 세상에 쓸모있었다는 기쁨이 있다. 누군가를 도왔다는 것,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 이타적 즐거움의 본질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해왔지만, 그래서 때론 참 냉정하고 야멸찬 분석을 내어놓기도 했지만, 나는 이 즐거움도 우리 본성 안에 들어있는 거라고 믿는다. 우리 아들놈에게 이토록 누군가를 보살피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열망이 들어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그게 상대의 나약함을 확인하는 우쭐함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든, 어쨌든 우리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다. 이렇게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내 깁스한 오른손이 제공하고 있으니, 이럭저럭 깁스 한 달도 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 말년병장처럼 무사히 깁스를 풀 날짜를 세고 있기는 하다. 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 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게시일2020-07-02
아예 처음부터 후보자의 사진과 정당마크나 심볼을 포함한 투표용지를 제작하는 등 모든 이를 위한 유니버설한 기준으로 전체 투표용지 제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특수투표용지를 따로 만드는 것보다 비용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장애인뿐만이 아닌 노인, 아동 등 모든 이들의 의견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을 것이다.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 토론회 모습 ⓒ이원무 그런데 왜 그렇게 안 되고 있을까? 토론이 끝나자마자 토론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토론자는 다음의 결정적인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쉬운 그림 투표용지 등의 유니버설한 기준으로 투표용지 만들면 정치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요.” 그러면서 일본의 경우 자신이 투표하고 싶은 사람에게 투표할 때 그 사람 이름을 정자로 써서 투표함에 넣어야 유효표로 인정해 준단다. 그러니 일본이 정치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나에게 얘기했다. 하긴 이 방법이 장애인, 노인 등에겐 어려운 방법일 테고, 결국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권리 행사 시 어려움을 겪게 될 테니 말이다. 결국 지적장애인 당사자들이 선거권 보장을 위해 요구하는 쉬운 투표용지 및 선거공보물을 정부 차원에서 만들 때 노인, 아동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등 모든 이들이 선거권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이것이 내가 이번 토론회에서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았던 거다. 그렇게 되려면 국회에서 일하는 정치권의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거나 잇속 차리기에 매몰되지 말고, 각종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게 국회의원에겐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의 명을 받드는 공직자의 본분을 생각하며 일에 전념하는 국회의원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되도록 국민들은 국민소환제 요구 등을 통해 계속 정치권을 감시할 것이다. 아무쪼록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적장애인 선거권 보장을 통해 완성되어가길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바란다.토론회 종료 후 한 컷 ⓒ이원무
게시일2020-06-30
장애인 참정권 토론회서 뇌리에 강하게 남은 한가지지적장애인 선거권 보장은 진정한 민주주의 길로 가는 계기투표행위를 상징하는 그림 ⓒPixabay 참정권은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이자 기본권이며, 국민이 주권자임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국가의 제도와 정책, 법률, 그리고 나와 관련한 일에서 나의 의견을 전달하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참정권이기에 사람들이 이 권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참정권이 있으나 이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한 편의 부족으로 참정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점자 공보물을 책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이내로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점자가 일반 글자와 비교해 1/3 정도밖에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규정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선거 정보를 전달받을 수 없어 참정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선거 관련 정보제공 시 수화통역은 의무가 아니라서 매우 단편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지적장애인의 경우는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그림투표용지 등이 제공되지 않아 선거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표소에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닌 관계로 지체장애인도 투표소 접근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장애계는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위의 문제들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개선되지 않았고, 선거권 침해로 인한 불만들이 각 장애유형마다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법무법인 디라이트, 국회의원 이인영 의원실이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의 토론회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었다. 특히나 이번 토론회는 지적장애인 참정권 보장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토론회에서 여러 얘기들이 오고 갔다. 지적장애인은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으니,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지적장애인의 선거권을 앗아가고 있고, 아직도 정치인들이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이자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을 발제자는 언급했다. 토론에 참여한 지적장애인 당사자는 이에 공감하면서 그림을 제공했을 때 공정한 투표가 되지 않는다는 선관위의 입장을 반박하며,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그림투표용지의 제공을 국회, 정부 등에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작년 10월 초,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문자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의 그림투표용지 투표과정 시연을 퍼포먼스로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이외에도 각 장애유형에 대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라는 의견 등이 있었다. 다 일리가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글씨와 숫자로만 이루어진 불친절한 투표용지가 장애인의 일만은 아니라는 한 토론자의 말이 나의 관심을 가장 끌게 될 줄이야. 이 토론자는 대한민국에서 전체 장애인이 2018년 기준으로 258만 명이고, 글자와 숫자를 모르는, 다시 말해 문해력이 없다고 조사된 사람이 311만 명이라, 선거에서 알기 쉬운 정보는 장애인만이 아닌 노인 등도 필요함을 토론 시작 부분에서 언급했다. 아울러 7년 뒤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 사회가 대한민국에 도래할 것이라는 점도 설명했다. 이후 공직선거법에 투표용지에는 기재할 정당 및 후보자 순위에 의해 1, 2, 3으로 표시하고, 정당명과 후보자의 성명은 한글로 기재한다는 규정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투표용지 또는 투표보조용구를 제작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 등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은 특수투표용지의 일종인 점자투표용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으나, 그 용지가 나오고 있지 않음이 현실임을 이야기하며, 이 이면에는 정치권에서 선거권을 장애인만의 문제로 국한해 해석하다 보니, 특수투표용지 만드는데 비용이 얼마 드느냐는 예산문제로 이해하며 한 발짝도 선거권 증진 논의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게시일2020-06-30
자녀,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행복하기이제 성인된 아들이 통합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인연의 엄마들과 긴 시간 얘기를 나눴다.엄마들의 노력이야 다들 비슷했지만 그 노력이 아들의 수용 여부 또는 타고 태어난 자신의 한계에 따라 엄마 노력이 돋보이기도 하고 묻히기도 한다.물론 노력의 방법도 좌우하긴 하겠지만.나는 내가 아들에게 교육적으로 어떻게 해줄까를 잘 몰라 전문가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전문가를 잘 만나 아들의 기능을 높이면 아이가 행복할 줄 알았다.유명하다는 언어치료실에서 더 이상 자신이 해 줄게 없다는 얘길 들었을 때 엄마들은 그 치료사가 능력되는 아이만 상대한다고 비난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양심적이라고도 했다. 엄마를 포기시키면 최소한 헛돈은 쓰지 않게 된다고... 언어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감각치료, 수영, 특수체육...그나마 인증된 교육은 나았다.말하게 한다고 혀에 침을 놓게 했는가 하면, 온몸에 대침 30여개를 꽂고 20여 분간 견디게 했으며(그렇게 산만한 아이가 이때는 또 가만히 견뎌준 게 신기하고 미안하다) 수은을 제거해야 된다고 어떤 성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사도 맞았다. 엄마의 무식한 열정이 아들을 엄청 고생하게 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시절.유난히 하얗고 예뻤던 여자아이는 모든 엄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가끔 볼 때마다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 엄마의 고민도 꽤 깊었다. 능력이 되는 만큼 심각한 루틴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한때는 다른 사람의 고민마저 부러울 때가 있었다.어느 덧 아들을 이해하며 살면서부터 이런저런 고민들을 들으면 그래, 고민되겠다 싶고 그 엄마의 힘듦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어렸을 때 치료실을 자가용으로 모시고 다녔던 나는 커서 늘 후회가 많이 되었다.대중교통으로 이동했던 엄마들은 그 시간을 오롯이 자녀에게 집중하여 많은 걸 나눌 수 있었음을 나중에 알았다.나는 운전에 집중하다보니 아들에게 눈길한 번 안주고 짐처럼 싣고 돌아다녔던 것이다.여태 그리 생각했는데 한 엄마는 대중교통 이용한 경험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일요일만 되면 전철타고 대여섯 시간을 돌아다녀 피곤하다고 했다.충분히 혼자 다닐 수 있지만 가끔 소리지르는 행동도 걸리고 엄마와 함께 나가자고 하니 도리가 없단다.무엇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헷갈리는 부분들이 많다.자폐인들이 백인백색이란 말이 그래서 나오지 않았겠나. 이렇게 성인 된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자니 각자의 고충이 남아있음이 안타깝다.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우리 모두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니 그게 나만의 무거운 십자가로 생각하여 실의에 빠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어차피 안고 살 고민이라면 잘 다독여서 함께 사는 게 현명하지 싶다.우리 엄마들이 지치지 않고 자녀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어제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오늘을 마주하길 소망한다.
게시일2020-06-29
남매의 싸움 여섯 살 터울의 딸과 아들. 동생이 장애인임을 일찍부터 알았던 딸은 초등 학교 다니면서 일기장에 동생 얘기를 참 많이 썼다. 남들처럼 동생과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겠지만 아침 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엄마가 동생 돌보느라 바쁘니 언제나 혼자 자신을 추스르며 사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엄마인 나도 마음이 아팠음에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아들에게만 전심전력을 다하며 살았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매일 엄마도 함께 등교하여 아들 옆자리에서 함께 수업받던 잔인한 3월이 끝날 즈음 나는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고생을 했다.병원을 다녀와 안방 침대에 누워 있던 어느 날.잠결에 남매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어날 기운이 없어 그대로 누워 있다가 한참 뒤 나와 보니 아들 얼굴엔 세 개의 긁힌 자국이, 딸의 손목에는 두 개의 긁힌 자국에 피가 맺혀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동생이 화장실에서 전동칫솔로 장난을 쳐서 누나가 그만하고 나오라는데도 무시하고 계속 장난을 치니, 칫솔을 빼앗으려는 누나와 안뺏기려는 동생이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둘 다 긁힌 것이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누나를 혼냈는데 딸은 싱글거리며 말했다.‘엄마, 그래도 오늘 나 소원 성취했어. 내가 동생하고 한 번 싸워 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거든. 근데 저 상처 보니 마음이 아프다...하진아 미안~’순간 우리 부부는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애써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 일이, 남들은 피하고 싶은 것들이 누군가의 소원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아렸던 그날. 이제는 둘 다 성인된 남매의 어린 시절 소환으로 쓴웃음 지어본다.
게시일2020-04-27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배우고 싶어요"- 권리협약에서 추구하는 통합교육 정책을 마련하길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권리협약을 제작하느라 애쓰고 있던 지적장애인 당사자들이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배우고 있었을 때였다. 교육을 받을 권리, 일할 권리,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등 여러 가지 권리가 있었다. 그 가운데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시간에 한 당사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 “체육활동을 중학교 때는 많이 했는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특수학교 수업이랑 겹쳐서 많이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체육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수업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못하게 됐어요.” 체육활동을 하면서 비장애인과 친하게 지낼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는 말로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었다. 그 말을 들으며 지적장애인 당사자 마음 한켠에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며 통합교육을 받길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그 당사자의 바람대로 가고 있을까? 작년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특수학급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얘기가 있어 보도내용을 보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학교에 특수학교 수요자가 1명이라도 있을 때 특수학급 의무설치 실시2) 학교 신축/증축 시에도 특수학급 의무설치3) 특수학급 의무 설치 적용이 어려운 사립학교에 ‘적극 설치’ 권고4) 5년 동안 특수학급을 161개 이상 늘리기 특수학급과 특수학교 증설은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의 교육 분야의 주요방향이다.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에서 장애학생이 공부하는 경우에는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생활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고,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가 상실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서로 어울려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등의 통합교육(Inclusive education)이 주요방향이라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권리협약과도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거다.△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중 교육 문화 체육 분야의 정책 방향 요약 설명자료 ⓒ 보건복지부얼마 전 서울커리어월드사태나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사태에서 보듯이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를 겪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특수학교를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비장애학생들과 같이 있는 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비장애학생과 같이 통합반에서 수업하면 장애학생의 수업 이해를 위해 수업내용 줄이고 쉬운 말로 고치는 교수적 과정을 고치는 특수교사가 있어야 한다. 이 교사가 통합학급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배치 근거도 부족하다. 또한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공동/교대로 수업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고 특수교사의 역할은 의견제시에 머물러 있다. 더군다나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입시교육 위주의 시스템은 통합교육을 더욱 어렵게 한다. 교사들도 장애학생의 행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폭력이 발생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래서 특수학교로 가려 해도 자신의 동네에 없는 경우가 많아 장거리 통학까지 해야 한다. 부모 입장에선 자녀가 비장애학생과 같이 어울리는 통합교육을 하게끔 하고 싶어도 이런 환경이다 보니 특수학교, 특수학급 증설을 요구하게 되는 거다. 결국엔 정부, 지자체 차원의 실질적 통합교육 부재가 이런 사태를 불러온 거다.△‘강서구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때 특수학교 설립을 강력하게 호소하며 무릎을 꿇는 장애부모들 ⓒ 에이블뉴스 DB 실질적 통합교육이 되지 않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강서구 특수학교 사태와 서울 커리어월드 사태는 다시 고개를 들며 재발될 수밖에 없고, 통합교육에 대한 논의를 오랫동안 반복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지적장애학생, 자폐성 장애학생은 외딴 섬에 있고 싶지 않다. 같이 배우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가 진행하는 장애이해교육 기회를 자주 늘리는 것, 수업내용을 쉬운 말과 맥락 설명으로 교수적 수정을 하는 것 등의 정당한 편의를 법에 명시하고 제도화하는 것 등을 통합교육 방향의 사회환경 조성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 외에도 다양한 통합교육 방향의 사회환경 조성방법이 있을 것이다. 교육부와 서울시 교육청 등은 장애학생 당사자, 부모, 전문가들이 말하는 통합교육에 관련한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고민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특수학교, 특수학급 증설에 관해서는 지양하는 쪽으로 다시 재고해주시길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부드리는 바이다. 그래서 비장애학생과 같이 체육활동을 하고 싶어 했던 지적장애인 당사자 마음속 바람처럼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공부하며 행복하게 어울리는 통합교육이 우리나라에 현실로 다가오기를~~
게시일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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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휴식 지원 프로그램에 아들과 참여했다.대부분 이삼십대 청년들 모두가 주부양자인 엄마와 함께였다.행사 때마다 항상 도드라지는 친구가 있기 마련인데 20여명의 우리 자녀들은 조용한 가운데 휴식을 즐기며 모든 일정을 잘 소화해 주셨다.아마도 빡빡하지 않은 여유로운 일정이 모든 참여자들에게 자연을 양껏 즐기는 힐링캠프로 그 역할을 한 것 같다. 함께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사진을 다시 챙겨보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 자녀들이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들은 아직도 자녀가 어리게만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부모들이 자녀를 너무 유아로만 생각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대신 해주는 경향이 없지 않다.물론 누군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겠지만 자녀들에게도 실수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실수를 통해 배우고 익히는 기회를 막지 말아야 함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어렸을 때부터 혹시 어디라도 뛰어 갈까봐 손을 꼭 잡고 다녔던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모자가 한몸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 우리 아인 장애가 있어 엄마가 손놓으면 안돼요~하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듯하다. 나도 이제 겨우 아들의 자유를 조금씩 허용하는 부모다. 그래서 사실 작년에 서너 번 아들을 잃어버려 맘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들이 어디로 가는지 짐작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더 큰 일이 발생하는 건 원치 않지만 살다보면 급작스런 일들이 우리 일상에 침범하기 마련이다. 미리 너무 차단하기보다 서로의 신뢰감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함을 알았다. 삶에 정답이란 없지만 이런저런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우리에겐 필요하고 그 과정들이 모여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하지 않을까...
게시일2020-03-02
한국의 미등록 자폐인 현실, 싱가폴 사례 통해 보다!- 자폐인 혜택 거의 전무, 자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존재17년 전 당시, 교회에서 장애의 특성과 관련한 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 내용 가운데는 말을 반복하고,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는 것이 자폐성 장애의 특성 중 하나라는 내용도 있었다.확실히 알 때까지 묻고 또 묻는 식의 행동, 농담과 진담 구별이 안 돼 동료들의 괴롭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이 생각나며 ‘나 진짜 자폐성 장애 있는 것 아냐?’라고 속에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1년 후 작은 누나가 ‘너 자폐성 장애 있는 것 맞아! 관계에서 힘들었던 요인 중 하나인 거지.’ 하면서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순간, 그때부터 퍼즐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절망감이 찾아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니 조금씩 마음에 평온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엄마가 내 장애에 대해서 알려줬더라면 내가 덜 힘들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후회와 원망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장애인단체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장애의 개념 및 장애인의 현실을 알고 나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장애인이면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게 싫어서 안 알려주고 싶은 그 마음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30여 년 동안 미등록 자폐인으로 살았던 셈이다. 그 후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2019년 11월 말이 되었다. 당시 한국장애인연맹에서 주최하는 장애인당사자 심포지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심포지엄 세션 중에 동북아 및 동남아 장애인복지시스템과 사회적 운용환경을 알아보며 한국 실정에 맞는 정책을 고민해보는 해외사례 발표 세션이 있었다. △한국 DPI에서 작년에 주최했던 제12회 장애인당사자 심포지엄 행사 안내 표지 ⓒ한국장애인연맹그 세션에 일본과 싱가포르의 장애인연맹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각기 자신들의 나라에서 실시하는 장애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인적 사정이 있어서 일본 세션은 듣지 못하고 싱가포르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1) 싱가포르에는 장애유형별 NGO단체별 장애등록이 있긴 하나 장애인연금이 없는 등 장애 관련 지원이 거의 없어 국가적 차원의 등록시스템, 또는 등록은 없다. 2) 싱가포르에선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미비로 장애인에 대한 낙인이 존재한다. 이 내용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의 장애를 등록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미등록 자폐성 장애인 현실이 생각났다.싱가포르와 달리 우리나라는 장애인등록시스템, 장애인연금이 있다는 것이 다르긴 하나, 자폐성 장애인에게 돌아가는 지원이 거의 없다는 점은 비슷하다. 자폐성 장애인은 연금을 받아도 쥐꼬리 정도의 금액이고, 고기능 자폐인의 경우엔 장애인연금을 전혀 받지 못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 시험을 잘 보게끔 해주는 정당한 편의 등도 지원받지 못한다. 또한 자폐성 장애 하면 문제행동, 도전적 행동, 서번트 등 부정적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며 자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 가운데 자녀의 자폐성 장애에 대해 밝히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장애를 밝히지 않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당사자들도 많다. 내 경우도 그랬으니까. 결국 자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요인 등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미등록한 자폐성 장애인이 추산해서 약 2만 명이나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미등록 자폐성 장애인 현실과 싱가포르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 거다.△ 자폐성 장애의 잃어버린 역사와 신경다양성의 미래에 대해 다룬 책 ‘뉴로트라이브’ 표지 ⓒ 알마출판사 자폐성 장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될 수 있도록 신경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당사자들로부터 이루어지고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져야겠다. 그리고 장애이해교육을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가 진행하며, 자폐 극복이 아닌 자폐인의 권리와 차별금지를 교육내용으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자폐성 장애로 등록되면 장애인연금, 자폐인 관련 정당한 편의제공 등의 지원도 전보다 더 많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래서 자폐인도 자신의 장애를 당당히 드러내며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살아 숨쉬기를~~
게시일2020-03-02
한국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 안녕 못 해요! -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존중·지원하는 우리 사회이길 '지능이 10세 이하 수준의 어린아이’ '순수한 아이’,‘위험한 사람’'항상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불쌍한 사람’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하면 사람들이 하는 생각들이 이런 걸 거다.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이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인간 이하의 삶을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법이 시행 중에 있고,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추가하자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요즘 정부 들어선 발달장애인 관련 공익캠페인도 지상파를 통해 내보내기도 했었다. 20세기라면 이런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 말아톤, 채비 등의 영화나 굿닥터 등의 드라마를 통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에 대해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영화나 드라마에 장애극복 서사가 포함된 게 화나면서도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에 대해 전보다 관심이 많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그 관심만큼이나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이 과연 안녕할까?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단언코 아니라고 본다. 4년 3개월 전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면서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이 나아지길 기대했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법 관련 예산은 기존 예산에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치예산만 포함되었을 뿐 휴식 지원 서비스, 소득보장 등 가족과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질 증진과 관련된 것에는 절대적 예산 부족으로 실질적인 장애가족 삶의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가족지원체계가 있어도 돌봄인력 활동시간은 하루 평균 1~2시간에 처우도 최저임금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60~70만 원을 받는 열악한 현실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부양의 경우엔 아직도 가족이 1차적 책임을 거의 다 져야 한다.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의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게 만드는 부양의무제는 아직도 폐지되지 않고 있다. ▲ 2015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광화문 농성 3주년을 맞아 개최한 문화제 진행모습(좌측), 문화제를 보고 있는 청중들 모습(우측). ⓒ이원무 가족지원체계가 열악하다 보니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를 겪는 자녀들은 집에 처박히거나, 시설에 맡겨지게 된다. 지역사회에 있어도 사회에서의 장애혐오와 장애인식에 대한 미비로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는커녕 고립된 섬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자폐성 장애인은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아직도 팽배하다. 시설에서는 지적장애인을 어린아이 취급하고, 자폐성 장애인의 소위 문제행동을 제압한다는 명목으로 종사자들이 당사자에게 반말하거나 학대와 폭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가해자 처벌은커녕 훈육과 장애인 보호라는 이유로 형 감경, 집행유예 등을 내린다는 소식을 많이 접한다. 최근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를 겪는 자녀의 부모들이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지원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긴 했다. 고무적이긴 하나 아직도 자녀의 의사를 대신 결정하는 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성년후견인이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한다. 얼마 전 발달장애인 당사자 단체인 ‘피플퍼스트’에서는 알기 쉬운 선거공보, 쉬운 그림투표용지 등을 요구했지만 선관위에서는 공정한 투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발달장애인법에 나온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은 문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 올해 10월 25일 서울 4호선 혜화역 지하철 4번 출구에서‘모두를 위한 그림투표용지’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의 모습 ⓒ 에이블뉴스DB 이외에도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은 대개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 정부에서 이들에게 맞는 직업이란 바리스타, 단순조립포장, 제과제빵 등 아직도 단순노동을 생각하는 것 같다. 학자나 교수, 변호사, IT업계에 진출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그럴 능력이 있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에 대해선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이런 현실로 인해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은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안녕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고 본다. 욕구에 따른 가족지원제도의 재설계,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에게 학대와 폭력을 행사한 경우 가중처벌과 피해자 지원을 통한 장애인 인권보장,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보장과 보충급여제, 부양의무제 폐지, 사회복지사의 구체적 처우 개선대책, 장애극복보다 장애인 차별금지와 권리보장에 초점을 맞춘 당사자 장애이해교육 기회 증진 등... 이런 것들을 실제로 구현하도록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는 진심 어린 노력을 우리 사회와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평소에 하는 게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그럴 때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의 당사자성은 인정받고, 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부모들과 형제들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찾아가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정책으로든, 일상생활에서든 평소에 따뜻하게 가족처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주시길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간곡히 바란다. 주) 발달장애인: 한국과 일본에서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하는 말임.
게시일2020-02-19
인권감수성이 높아 외로운 비장애 형제자매 비장애인인 딸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덕에 또래보다 높은 인권 감수성을 지니게 됐고 그로 인해 친구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인 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딸 반에 ADHD 아이가 전학가게 됐다. 학폭위가 열렸고 강제전학이 결정 나면서 어쩔 수 없이 쫓기듯 가게 된 전학이다. 담임이 ADHD 친구의 전학 사실을 알리는 순간 교실 안 친구들이 “우와~”하며 박수치고 환호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부한다. 아이들에게 뭐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ADHD 아이의 완전통합이 학폭위라는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 건 이 아이를 둘러싼 모든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이들에게서 박수가 나오게 만든 건 모두 어른인 우리의 잘못이다)그 소식을 전하며 딸이 말한다. “엄마. 난 작은 소리로 ‘와~’ 한번 한 다음에 관심 없는 척, 그림 그리는 척 했어”딸은 친구의 전학이 마음 아프다. ADHD도 넓은 범주의 발달장애로 이해하고 있는 덕이다. 친구의 모습과 동생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탓이다. 그렇게 친구의 전학이 가슴 아프지만 딸 역시 작은 목소리로 ‘와~’라는 ‘액션’을 보였다고 한다. 친구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은따(은근한 왕따)가 될까 그랬다고 한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중한 11살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은따가 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타협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양심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한 번만 짧게 ‘와~’라고 외친 다음 그림 그리는 척을 했다고, 관심 없는 척을 했다고. 그랬어야만 하는 딸의 심정이 온전히 느껴지며 가슴 한쪽이 찌릿해진다. 엄마로서 난 말해야 했다. 사실을 알리고 상황을 이해시켜야 했다. 4학년이니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모르고 당하는 것보단 알고서 미리 각오하고 대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너는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동생 덕에 네가 보는 세상이 친구들이 보는 세상과 다르기 때문인데, 앞으로도 ‘다른 너’는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외로움을 느끼는 일이 있을 거라고 했다.딸이 보는 세상은 마냥 즐겁고 천진난만한 친구들의 세상과는 조금 다르다. 장애인 혐오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혐오에 분노할 줄도 알며, 그로 인한 인권 감수성도 발달해 있는 상태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도록 딸의 유년 시절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장애인 가정의 특수성이 비장애 형제자매를 빨리 철들게 하는 현실에 화도 난다. 하지만 딸에게 ‘다른 너’로 인해 혼자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 세상에는 발달장애인 수만큼 많은 비장애 형제자매가 있다고 했다. ‘다른 너’는 혼자가 아니라 아주 많다고 했다. 이미 성인이 된 언니 오빠들은 ‘나는’이라는 비장애 형제자매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에 가입해도 되고 네가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필요 없다고. 비장애 형제자매로서 느끼는 슬픔이나 외로움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서로 위로하고 나누면 된다고. 그러니까 네가 지금 할 일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너만의 세계를 잘 가꾸는 것이라 했다. “아, 그럼 나중에 길동이(가명) 오빠랑 의선이(가명)랑 나도 모임을 만들면 되겠다”아빠모임 덕에 장애인 가족들이 함께 놀러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오빠와 친구 이름을 말한다.그러라고 했다. 무엇이든 너희들 하고픈 대로 다 하라고 했다. 그렇게 비장애 형제자매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게 너희들 자존감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주저 말고 하라고 했다. 캠페인을 해도 좋고, 국회의원을 만나러 가도 좋고, 그냥 모여서 수다 떨고 놀러 다녀도 좋다고 했다. 무엇이든 너희들 하고 싶은 거 다 해. 장혜영 감독의 이야기도 했다. 비장애 형제자매 중엔 이런 활동을 하는 언니도 있다고. 요즘엔 정치도 시작했다고 하니 딸이 “대박”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유튜브에 가면 그 언니를 볼 수 있냐며 재차 이름도 확인한다. “대박, 대박, 진짜 짱이다. 근데 그래도 난 내가 동환이 데리고 살기는 싫어”라고 한다.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래. 엄마도 네가 동환이 데리고 사는 거 싫어”“대신 가족으로서 잘 챙겨 줄 거야”“그래. 그래”비장애 형제자매이기에 갖는 특수성이 있다. 분명 슬픔도 있고 어쩔 땐 외로움도 있다. 단지 형제자매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남과 다른 요소를 어릴 때부터 갖게 되는 현실이 부당하게 느껴지지만 아직까진 어쩔 수 없다. 사회가 변화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1명의 장애인만 있는 게 아니듯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장애 형제자매는 장애인 수만큼이나 많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위안을 준다. 그리고 같은 생각과 같은 슬픔과 같은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게 되면 그땐 더 이상 슬픔이 슬픔이 아니고 외로움도 외로움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든든한 힘이 된다. 서로의 지원군이 된다. 그 사실을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단순했던 딸의 세계가 복잡하게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의 딸은 내가 아들을 낳은 후 겪었던 많은 일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딸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과 타협할 부분은 타협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정면 대결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엄마인 내가 할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딸의 선택을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것뿐이다.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장애 형제자매이기에 더더욱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장애인 자식을 둔 엄마의 큰 소원이다.
게시일202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