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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동네형2_류승연] 아들에게 좋아하는 이성이 생겼다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20-01-23 조회수2,094

[동네형2] 아들에게 좋아하는 이성이 생겼다.





 


쌍둥이인 비장애인 딸과 발달장애인 아들이 나란히 사춘기 초입에 돌입했다. 

아이들은 제 나이대로 잘 커나가는 중이지만 엄마인 나는 두 녀석의 동시 사춘기를 몸으로 받아내며 노화에 가속이 붙고 있는 느낌이다. 

이 속도대로 가다간 멀지 않아 ‘사춘기 대 갱년기’의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 게 제아무리 날고뛰는 사춘기라도 어디 천하의 갱년기를 이길쏘냐. 너희들이 사춘기를 잘 보내고 싶거든 엄마에게 갱년기가 하루라도 늦게 오길 빌어야 할 것이야. 


어쨌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아들딸 모두 이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것이다. 

딸은 좋아하는 남자 사람 친구에게 고백을 받고 “심장이 쫄깃했다”며 한동안 들떴으나 반년 뒤 “이전과는 다른 마음”이라는 그의 솔직한 고백에 짧은 첫사랑의 추억을 접어야 했다. 마침 그즈음 드라마 ‘호텔 델루나’가 방영됐고 딸은 이번엔 남자주인공인 배우 여진구에 홀딱 빠져버렸다. 


“사랑해요~ 여진구~ 저랑 결혼해주세요~”를 매일 외치는 딸을 보고 있자니 뉴키즈온더블럭에 빠져 도니 월버그의 아내가 되겠다 공언했던 내 학창시절이 생각나면서 웃음이 난다. 

아들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발달이 늦어 발달장애인이라지만 쌍둥이를 키우다 보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아들과 딸의 발달은 ‘인간의 속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아들도 좋아하는 이성 친구가 생기면서 사춘기의 시작을 알렸다. 같은 반 친구인 예은이(가명)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들은 예은이에 대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현장학습을 가려고 스쿨버스에 타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꼭 예은이 옆에 가서 앉는다고 한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난 담임선생님이 “동환아~ 예은이 좋아? 예은이 예뻐?”하고 물으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면서 온 얼굴에 웃음을 짓곤 한다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도서관엘 가면 더 편하게 있으라며 아들이 예은이 양말을 벗겨준다고 한다. 벗긴 양말은 예은이 신발 위에 놓아둔다고. 잘한다. 아들. 신발 벗으면 양말도 벗고 싶은 게 당연한 거지. 암. 사람이 편하려면 양말도 벗고 홀가분하게 있어야지!


그리고 어느 날인가는 하교 종이 울리자 예은이 가방을 들고 뒤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아직 친구에게 가방을 매주는 행동은 하지 못하기에(손가락 소근육 발달이 그리 정교한 지경엔 이르지 못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행동인 ‘가방 들고 기다리기’를 한 것이다. 

그렇다. 엄마가 건네준 감자 담긴 비닐봉지는 몇 걸음 들고 걷다 땅에 내려놓으면서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가방은 기꺼이 들고 기다리는 사랑꾼이었던 것이다. 

허허.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그런데 이 사실에 괘씸한 게 아니라 웃음이 난다. 내 아들도 다른 많은 아들들처럼 기꺼이 여자친구 가방을 들어주는, 이 시대의 매너남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행복해 웃음이 난다. 


그렇게 좋아했던 예은이가, 아들의 첫사랑이었던 예은이가 여름방학에 전학갔다. 2학기가 시작된 교실은 모든 게 이전과 똑같았는데 단 하나, 예은이만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새로운 행동이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다. 갑자기 교실 앞으로 나가 칠판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라미는 아들이 그릴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직 손가락 소근육 발달이 정교하게 이뤄지지 않아 연필이나 분필을 쥐고 하염없이 삐뚤빼뚤한 원을 동글동글 그리는 게 아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기다. 

그런 아들이 칠판 가득히 원을 그리기 시작한 건데….

예은이는 자폐가 있는 소녀였고, 세상과 그림으로 소통하곤 했다. 칠판 가득히 꽃과 나무, 풀 등을 그리곤 했던 예은이. 동환이에게 새로 나타난 ‘칠판에 그림(원) 그리기’가 예은이의 흔적을 쫓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말을 못해도, 인지가 낮아도, 소근육 발달이 정교하지 못해도, 사춘기가 오고 사랑도 찾아온다. 

내가 겪었고, 딸이 겪고 있는 모든 것을 아들도 그대로 겪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다고? 아니 다르지 않다. 똑같다. 쌍둥이를 동시에 키워보니 더욱 확실히 알겠다. 

우리 집엔 장애인이 살지 않는다. 그냥 말 안 듣는 사춘기 초입의 초등학생 두 명이 살 뿐이다. 




글쓴이 류승연

전직 정치부 기자현직 글 쓰는 엄마

발달장애인 아들이 세상 속에서 어우러져 살려면 사람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펜을 잡음작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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