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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1_김종옥] 뭇별의 시대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19-11-20 조회수3,749

  

한 달 전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는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행사에 참여했다. 이번 전국체육대회는 100주년 기념으로 서울이 개최지였다

서울지부 회원들은 성화합화식(사방에서 곳곳을 두루 돌고 온 성화가 하나로 모이는 의식)의 중심 무대에 50명의 가족이 섰고, 전국체전 개막식에서는 개막식 퍼포먼스였던 뭇별들의 행진100 여 명이 또 섰다. 전국체전에 이어서 열린 전국장애인체전 기간 동안에는 서울의 광역과 자치구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홍보부스를 6동 운영했고, 장애인가족문화제를 진행했다. 이쯤 했으니 우리도 뜻깊은 100주년 전국체육대회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문득 한 달 전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에 전국체전 기획팀에서 체전 성공에 기여한 곳에게 상을 준다고 연락이 와서이다. 체전이 끝나고서는 고맙다면서 체전 마스코트 인형을 백 개를 주어서 기쁘게 받았는데, 이젠 상까지 준다니 또 기쁘다.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부모운동 단체로서, 우리가 누구에게 감사하다고 한 적은 많은데, 누군가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한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가끔 농성장을 지나치던 어떤 사람이 마실 것들을 들고 와서 고맙다며 두고 가는 적은 있지만, 그 역시 짐작컨대 가족 중 누군가가, 아니면 인연이 닿았던 누군가가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감사하다는 인사

 

이번 체전 행사 기간동안 우리는 체전팀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리허설 와주셔서 감사하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 개막식 폐막식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말로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나긴 리허설 대기시간 동안 우리 요청에 따라 리허설 참석 횟수도 줄이는 등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줬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끼어넣은 것이 아니라, 무대의 주역 중 하나로서 초대했고, 그 역할을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였다.

 

처음에 체전 개막식 퍼포먼스 참여 제의를 받았을 때, 장애인체전 개막식이 아니라 전국체전 개막식이 맞냐고 거듭 물었다. 게다가 그저 나란히 서서 박수만 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율동까지 해야 하는 출연이라는 게 아닌가. 단 오분의 줄연을 위해 예닐곱 시간을 기다리는 긴 리허설을 여러 차례 해야 했지만, 우리는 두말없이 하기로 했다. 전국체전 메인무대에 선다는 의미가 작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회복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막상 기꺼이 한다고는 했지만 참여자 모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데리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대기하는 일이 거의 다인 리허설을 몇 차례나 해야 했고, 수만명이 모이는 행사가 혹시나 스트레스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예상되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참여의 의미를 크게 생각한 자원자들이 나와 주었다.

 

걱정할 일이 없었다

 

잠실종합경기장 옆 보조경기장에서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면서 다른 출연진들이 대기했다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것을 보던 일, 도시락이며 간식을 먹던 일, 초록의 운동장에서 기념촬영하면서 놀던 일, 비오던 날의 리허설 등이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첫날 저녁, 드디어 주경기장에 들어서며 보았던 거대한 풍경을 잊을 수 없다. 긴 통로를 지나서 무대 입구에 들어서자 눈앞에 갑자기 펼쳐진 커다란 운동장, 환한 조명, 무대 한가운데에서 용오름같은 흰 소용돌이가 올라가고 그 위 활짝 열린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무한대 표지의 조형물. 우리는 너나없이 그 풍경에 압도되었다.

, 이래서 예전에 인류문명의 탄생지마다 거대조형물이 만들어졌던 거로구나, 뭔가 거대한 규모에서 오는 압도, 그런 것이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굴복의 느낌을 동반한 소속감 같은 걸 느끼게도 하고 그랬겠구나, 하는 이야기들을 뜬금없이 나눴다.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를 채우는 음악소리, 현란한 불빛들, 수천명의 출연진이 오가는 복잡한 동선, 기나긴 대기시간, 호흡을 맞춰서 정연하게 입장해야 하는 등장, 모든 출연진과 함께 맞춰야 하는 율동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 체전 스텝들에게 우리 친구들에게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면서 엄포를 잔뜩 놓았었는데, 그런 것들이 그다지 필요 없다는 것을 첫날 리허설 때 이미 알았다. 우리 자녀들은 보조경기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들, 연습하는 모습, 도시락과 간식시간을 즐겼고, 주경기장 무대에선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크게 듣는 음향들, 태어나서 가장 큰 무대의 조형물들, 그 사이를 오가는 불빛들을 즐겼다. 그것은 손을 잡고있는 엄마 아빠들도 마찬가지였다.

 

넌 빠져도 된다는 말

 

처음에는 리허설에 한번 오면 두 번째는 다들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거듭될수록 리허설 참여자는 늘었다. 한 참가자 엄마가 이렇게 전했다.

첫날 고됐던 것 같아서 둘째날 오늘은 쉴까?’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나가자고 하는 거에요. 희한하죠?”

 

그 때 알았다. 그동안 이 친구들은 이런 단위의 행사에 동원됐던 적이 없었으리라. 유치원에서 율동이 안 되면 빠져도 된다고 했을 테고, 초등학교 운동회 때도 힘들면 빠져도 된다고 했을 게다. 어떤 모임에서도 안 해도 되고, 빠져도 되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소리를 주로 들었을 게다. 그리고 그걸 배려랍시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을 게다. ‘넌 빠져도 돼’,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따돌림인 걸 나도 알고 너도 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은 메인 무대의 메인 퍼포먼스 막바지에 등장하는 주요 출연자로서, 수천명의 출연진과 함께 분주한 개미떼처럼 저마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결국엔 큰 그림을 만드는 무대를 꾸미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분명히 이 의미를 즐겼고, 그 덕에 고단함을 잊었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역할을 해냈다. 우리는 빠지면 안 되는사람들이었으니까.

 

뭇별의 시대

 

우주의 성간먼지가 모이고 뭉쳐서 문득 별이 되어 반짝인다. 우리는 반짝이 비닐 옷을 입고(다른 출연진 의상만큼 화려하진 않았으나, 그리고 그들처럼 두터운 반짝이 화장을 하지는 않았으나) 휠체어를 앞세우고 메인무대로 들어서서 성간먼지가 모이듯 타원형의 무대로 올라섰고, 드디어 그 곳에서 뭇별이 되어서 반짝였다. 개막식 퍼포먼스의 제목인 뭇별의 시대는 드디어 우리가 뭉쳐서 별이 되어 반짝이면서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무대가 끝나자 누군가 전했다. 전국으로 생중계되던 메인 퍼포먼스 화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외 참가자 일동이라는 자막이 떴었다고. 무심코 텔레비전 화면을 보던 우리 회원들이 아마도 깜짝 놀랐을 걸 떠올리니 얼마나 흐뭇했던지!

 

한 달 전의 기억을 떠올려 이렇게 기록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잘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하니, 그것이 또한 감사해서이다.

 

...... 우리는 모두 낱낱이 백년치의 별이다. 뭇별들을 저마다 백년 동안 빛나게 하라.

 

 

 

글쓴이 김종옥 

이런저런 인역과 삶의 엮임으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을 하고 있음.

워낙은 SF소설 쓰는 것이 소망이나 청소년 철학 도서 몇 권과 칼럼을 쓰다가 일시 작파 중.

삶의 모토인 즐김과 쓰임 사이에서 오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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