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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아름다운 일상을 누린다는 것에 대하여 [김종옥]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19-02-20 조회수1,791


< 아름다운 일상을 누린다는 것에 대하여 >

 

우리 엄마는 일곱자매의 여섯 번째였다. 이렇게 ‘~였다라고 과거형으로 쓰는 건 이미 1번 이모부터 시작해서 5번 이모까지 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엄마는 달랑 두 자매의 맏이가 되었다. 재작년에 언니 둘을 한꺼번에 잃고는 아주 많이 우울해 하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되어가니, 엄마의 지난 이십 년은 온통 이별하고 외롭게 남겨지고 하는 일이었을 뿐인 셈이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건, 식구들의 숨소리와 소란한 생활소음들과 이런저런 살냄새와 샴푸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카락들과 아무데나 걸쳐져 있는 수건들과 여기저기 벗어던진 양말들과 식탁 위에 놓인 과자 부스러기와 펼쳐진 신문쪼가리 따위가 가득한 집안이다. 하루 세 번 부엌이 소란해지고 도마소리가 나고 렌지후드가 돌아가고 음식냄새가 풍기고, 누군가 소리치며 현관문을 나가고 누군가 들어오며 들어왔다 외치고, 그러면 방에서 삐죽 얼굴 내밀고 한 번씩 쳐다보고, 저녁 뉴스를 보면서 저마다 떠들고, 서로들 잔소리 하며 참견하고 그러다 방마다 들어가서 곤하게 코고는 소리 나는 그런 집안이다.

 

엄마가 저녁마다 전화를 해서는 식구들 다 들어왔냐?”고 물을 때 그 속에는 그런 부러움을 한껏 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가정을 꾸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서 엄마와 통화를 하고나면 늘 마음이 무겁다. 마치 엄마가 우리집 문 바깥에 서서 이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서성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엄마는 그저 의자나 화분같은 정물처럼 앉아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컨대 식구들 숨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잠자고 일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다름아닌 나다.

너한테 할 소리는 아니다만-” 엄마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너는 네 새끼하고 평생 같이 살 거잖니. 난 그게 부럽다.”

 

- 엄마의 소망이 문 밖에서 서성인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땐, 아무리 자신의 외로움이 사무친다고 어쩜 나에게 그걸 부럽다 말할 수 있을까 했었는데, 살아갈수록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아픈 자식이든 망아지처럼 펄펄 뛰는 자식이든 새끼를 내 품에서 품고 싶은 어미 마음이 어디 다르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홀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나의 청년시절을 생각해보면, 언제까지나 자식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부모들의 부질없는 소망일 수밖에 없다. 자식들은 성장해서 독립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지켜보며 늙어가는 것이 부모의 행복이다.

 

내가 속해있는 장애인부모연대 지회에 두 해 전에 연세 드신 회원이 가입하셨다. 무려 울 엄마와 동갑이셨는데,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따님하고 단 둘이 살고 계시다 했다. 딸은 나보다 몇 살 아래였다. 회원 가입 절차를 안내했던 이는 지회 부회장이었는데, 가뜩이나 눈물많은 그이는 따님이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여쭈었더니 집에 그냥 있었대요.’라고 전하며 회원 가입시켜드린 그 날 밤늦도록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 모녀의 수십 년 아득했을 세월이 맘이 아팠고, 혹시나 나의 미래 모습이 그러할까 싶어 또 맘이 아득했다고 했다.

 

- 미안하면 세상을 바꿔줘

 

몇 년 동안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네 못들어갔네 하는 소식들을 전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아이들이 취직을 했네 못했네 하는 소식을 전한다. 가끔은 이른 혼사를 전해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조금 미안해 한다. 목소리에 그런 미안함이 살짝 얹혀 있다. 미안하면 세상을 바꿔줘, 이렇게 말하며 농담인 듯 호탕하게 웃지만, 그게 진짜 진심이라는 걸 친구들은 알 게다.

 

우리들은 언제 그런 평범한 일상을 맞이하게 될까. 내 아이가, 가까운 학교에 다니고, 즐거운 일터에 다니고, 하고싶은 여가생활을 누리고, 쉬고 싶은 곳에서 하루를 마치는, 일정하고 안전하고 고요한 일상을 갖는 모습을 언제나 보게 될까 생각해 본다. 그리 되면 우리 엄마가 더 이상 자식 끼고 사는 나를 부러워 하지 않고 너도 네 품을 떠난 자식 때문에 헛헛하겠구나하면서 동지애를 느끼실까.

 

그런데 실은, 우리 아이들이 그런 평범한 일상보다도 더 별나고 더 좋은 일상을 누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리둥절하고 낯설고, 알 수 없는 고통스런 자극 속에서 삶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편안하고 더 안전하고 더 단정하고 더 아름다운 장소와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세상에서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대접하고 더 배려하고 더 귀하게 여겨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을 고상한 사회의 자부심으로 여겨야 하는 일이 아닌가. 장애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부끄러워하는 것을 넘어서, 귀한 대접 해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아직 반 발짝 떼지도 못한 터에 뜬구름 올라타자는 소리처럼 들릴 테지만.

아무튼 장애를 가진 아이나 그의 가족이 장애를 이유로 고통받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회가 틀림없이 오긴 오겠지만, 그럴 것이라고 기어코 믿지만, 우리가 더 늙기 전에, 우리들 아이가 아직 청년인 시절을 다 보내기 전에 와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게 너무 어림없는 소망이라면,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노년을 맞기 전까지는 와 주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나 맞춰지기를 강요받아서 힘겨웠던 삶을 내려놓는 때까지, 품위 있고 존중받고 행복한 할머니, 할아버지로 삶을 마칠 수 있게.

 

장애를 가진 아이의 어미 아비인 우리들은 언제나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고 내 아이와 중첩되어 있다. 내가 다져놓은 땅에서 내 아이가 한 발 딛는다. 그러다 길 위에서 서로 마음이 어긋나서 멈추어 다투기도 한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내 몸 어딘가에 나 있는 가시가 남을 찌르기도 하고 나를 찌르기도 하리라. 서로간에 딱한 일이지만 그러나 어쩌랴. 갈 길이 멀고 급하니 어서 추스르고 나아가야 한다.

 

지난 연말부터 서울장애인부모연대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참 달려오다가 발걸음이 얽혔다. 우리들 각자의 삶의 싸움이 치열했으니 그게 반영된 이 다툼도 치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수습과정에서 상처가 없진 않겠으나, 뚝심 있으면서 유쾌한 투사의 깃발이 곧 다시 올라오기를 기대한다.


김종옥(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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