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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9_조미영] 모자들의 가을여행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0-24 조회수591




 붐비는 휴게소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사람들의 눈길이 약속이나 한 듯 청년에게 쏠렸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일행이 있다는 안도감에 타인의 불편한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오면서 차 안에서의 점잖았던 모습은 유지하되 소리만 크게 지른 청년1. 그의 엄마는 이유를 알았지만 우린 왜 저러지?’의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엄마 넷과 아들 넷이 서울에서 영암으로 23일 여행을 갔다. 자폐성장애인 아들들의 무덤덤한 표정에 비해 오륙십 대 엄마들은 신이 났다. 자녀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자립준비를 위한 월1회 스터디를 시작한 지 3년차, 사실은 공부를 위장한 수다가 정기적인 만남의 기쁨이었다. 사흘 동안 그 수다를 양껏 풀 수 있어 우리는 설렜고 청년들은 그들대로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기를 바랐다.

우리의 목적지인 영암은 청년1의 외가인데 가족끼리 갈 때는 휴게소에 자주 들렀단다. 몇 개의 휴게소를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항의하는 걸로 소리를 지른 거라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건 잘한 거지만 그 방법이 적절치 않았다고 청년1의 엄마는 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고 본인이 원하는 걸 표현도 잘하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휴게소한마디만 했어도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얘기는 당사자들이 듣지 않도록 차 안의 좁은 공간에서는 하지 않았다. 모든 대화 주제에 명확한 칭찬 아니고는 아들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기에 이분들이 다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경험을 나누며 많이 웃었다.

 

영암에 도착하여 미리 메모한 먹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청년4는 연신 생글거리며 물건 사는 일을 즐겼다. 출발할 때 엄마들은 앞좌석에, 청년들은 뒷좌석에 앉아가려고 했으나 일찌감치 앞쪽을 차지하고 폰에 열중하던 모습이 고집이 센가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사흘 내내 밝은 표정으로 눈 마주칠 때마다 웃는 표정에서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휴게소를 들른 후 청년4는 맨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우리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는 스스로 자리를 바꿔 줬으니 이거면 된 거다.

사흘간 먹을 양식들을 넉넉하게 구입하고 숙소에 닿았다.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여 고기를 굽고 야채를 씻어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맥주라고 말하며 캔맥주를 가져오는 청년1에게서 낮에 휴게소에서 소리 지르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고기 먹을 땐 역시 술이 있어야 한다며 모두들 건배했다. 날이 흐려 달님은 어둠 속에 숨었지만 칠흑같은 시골의 밤은 고요했고 청년들은 그들끼리, 엄마들은 불멍하며 담소를 나눴다.

 

이튿날, 일행은 목포 유달산 조각공원으로 갔다. 12인승 승합차에서 내리는 청년3을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숙소에서 신던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어른들이 많았어도 나올 때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니 학교든 기관이든 선생님들이 아이 관찰 못한다고 푸념이나 원망하면 안된다고 우린 입을 모았다. 오래 전 남이섬으로 나들이 갔을 때 늦게 오는 아이가 있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배가 오니까 혼자 탔던 우경이가 생각났다. 자원봉사자가 많았지만 배 타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우경이는 혼자 배를 타고 가는구나

똘똘한 자폐인 성민이 국어책 읽는 듯한 억양으로 내뱉는 말에 인솔자였던 나는 혼비백산 떠나려는 배를 세우고 우경이를 데려왔다. 얼마나 식겁했는지 성민이 아녔으면 큰 일 날 뻔 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게 생각났다. 청년3의 슬리퍼 정도는 애교다.

우리나라 최초로 야외에 조성되었다는 유달산 조각공원은 규모가 상당했다. 계단과 경사로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휠체어나 유아차로 이동해 누구나 목포시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조각공원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는 케이블카를 보고 바로 이동하여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추석연휴라 북적이는 인파 속에 8매의 티켓을 각자 손에 쥐고 대기줄에 섰다. 바닥이 보이는 크리스탈 캐빈이라 느낌이 다를 걸 예상하며 설렜다. 움직이는 캐빈에 올라탈 때 조금 긴장은 됐지만 몇 번의 가족여행으로 아들이 경험한 적이 있어 나는 아무 생각없이 먼저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아들이 저만치 도망가고 있었다. 가족 여행할 때 얼떨결에 타도록 아들을 에워싸고 움직였던 걸 잊고 이제 스스로 잘 탈 거라 믿었던 나의 신뢰는 무너졌다. 결국 우리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잠시 틈을 두고 아들에게 두어 번 사정했으나 매몰찬 아들은 끝내 거부했다. 우리 때문에 마음 놓고 구경 못 하고 내려 올 것 같은 일행이 신경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옥상 벤치에 앉아 팸플릿을 뚫어져라 보는 아들의 속내는 이거 봐도 되는데 굳이...’로 읽혔다. 아들을 바라보며 이동기구를 이용해 더 좋은 곳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게 아쉬웠고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이렇게 거부한다면 본인도 주변인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 걸까.

어디선가 소음에 가까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건물 앞 공터에서 트로트를 애절하게 부르는 여성이 물러나고 통기타를 맨 남녀가 7080 가요를 불렀다.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아련함에 빠져들었고 별로 느낌 없어 보이는 아들은 곁에서 내 눈치를 보며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엄마가 속상했을 거란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렇다면 너도 좋아하지 않는 이 순간을 견디라는 보복 심리로 나는 아들을 외면했다.

 

마지막 날 아침은 샌드위치와 컵라면을 먹었다. 평소 집에서 라면을 멀리하는 편이라 아들이 먹는 걸 말리고 싶었지만 다들 먹는데 혼자 못 먹게 하는 건 아니지 싶어 놔뒀다.

집안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기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왔어요. 빨리 신고해요.” 평소 호기심 많은 나였지만 남자로 보이는 여자일 거라 생각하고 바로 나왔다. 화장실 앞에서 청년3의 엄마가 아들을 찾고 있었다. 차에 간 거 아닐까 중얼거리며 같이 둘러보다가 문득 여자 화장실의 남자가 생각났다. 우리 둘은 쏜살같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고장 나서 제거한 듯 출입문이 없는 칸에 청년3이 앉아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아들이에요. 저희가 데리고 나갈게요.” 했더니 다들 안도의 숨을 쉬며 조용해졌다. 엄마가 아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는데 엄마 따라 들어간 청년3. 몰라서가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것을 그냥 해본 걸로 보였다. 평소 잘 하는 걸 한 번씩 저질러 주는 우리에겐 작은 해프닝이 다른 사람들에겐 사건이 되는 일상이다. 자폐인의 반듯한 외모가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고 변태로 보였나 보다며 우리는 웃었지만 사람들은 놀랐을 것이다. 이럴 때 크게 꾸짖거나 과한 호들갑은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적절한 주의 한 마디로 끝내야 한다.

 

관광 목적이 아니라 자녀와 엄마의 일상을 체크하고 점검해 보자는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좋은 곳을 구경하는 맛을 빼놓을 순 없다. 서로 말을 주고받진 않지만 표정과 행동으로 소통하는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엄마들끼리는 우리의 노후와 독립된 자녀들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희망을 보았다. 혼자가 불안할 때 모여서 대안을 찾아간다면 우리의 미래가 그리 암울하진 않다. 함께의 힘이다. 이분들 다 독립시키고 우리 엄마들만의 여행을 기대해 보는 모자들의 가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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