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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9_조미영] 우리 삶은 소나기가 아니야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20-10-14 조회수2,014

우리 삶은 소나기가 아니야.

 

“1998621일 날씨 맑음.

28개월 된 아들과의 삶이 너무 힘들다. 남들이 자폐성향 많은 아이라고 했지만 내가 많이 노력하면 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1년 이상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한 아들과 나의 삶은 너무 피폐하다.

한줄기 소나기가 더위를 데리고 간 덕분에 시원한 밤이다. 지금 아들과의 삶이, 우산 없이 맞은 소나기처럼 일시적인 불편함이면 참 좋겠다.”

 

유난히 까탈스런 아들을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사방팔방 검사 받으러 다니던 시절의 일기를 보았다.

장애 판정을 받기 전, 여기저기 다니며 그저 아이에게 장애가 없고 단지 늦되는 아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무던히도 병원과 치료실을 뛰어 다녔다.

아이의 기분에 따라 어느 곳에서는 이상이 없다 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심한 자폐증상이 보인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막막한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검사보다 적절한 교육과 치료에 집중했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여 아이를 양육해야 했던 그 시절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다음 해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아들은 결국 발달장애(자폐)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걸 해줘야 할지 몰라 오로지 사설 치료실을 전전하며 긴 세월동안 거금을 들여 치료와 교육에 매진했지만 크게 변화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아들에게 너무 과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들을 위한 게 아니라 스트레스만 가중된다는 걸 알았다. 아울러 엄마인 나는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위안감만 컸을 뿐 그 많은 개별 교육을 어린 아들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인지 교육보다 생활 교육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아들에게 변화가 보였다.

아들이 뭔가를 못해서 속상하고 화가 났던 과거와 달리, 작은 것 하나라도 하는 것에 기뻐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일상이 그리 힘들진 않았다. 엄마가 힘들지 않으니 아들도 편해 보이고 표정도 밝아졌다. 여전히 힘든 부분이 없진 않지만 아들의 교육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을 당시 보다는 점점 살만한 날들이 찾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사는 삶이 그저 한바탕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는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소나기는 피하면 되지만 아들과의 삶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죽을 만큼 힘들어도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한 번씩 웃음주고 기쁨 주는 행동으로 그 힘듦을 상쇄시켜 주는 아들과 소나기보다 더 험한 폭풍과 폭우를 만나더라도 살아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힘들어도 헤쳐 나가야 했다. 시간이 우리의 힘듦을 해결해 주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아들은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지만, 강요에 의한 일상이 아니라 기회를 많이 제공하면서 자기결정권을 늘려나가는 삶을 즐기고 있다.

작은 변화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오늘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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