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퉁명스런 말에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빠져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자조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샤워하겠다고 들어간 아들에게 욕실 문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말로 지시하는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가 봉변당했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아들에 대한 교육 방법을 그렇게 평가절하하는 남편이 무지해 보였다. 그리고 여태 내가 해 온 교육과 훈련 방식이 쓸데없는 걸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화도 났고 암담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은 주로 내가 했지만 집안에서의 신변 처리나 저지레에 대해서 남편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해주었다. 특히 씻는 것에 대해 늘 자신이 몽땅 다 해주면서 그것이 최선인 듯 생각했다. 혼자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가르치라고 해도 귓등으로 들었다. 깔끔하게 못한다는 이유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아들을 씻기고 챙겼다.
아들의 자립을 생각하고 행동이 바뀐 남편이 대견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직접 다 해 주면 몸이 좀 고달퍼도 어렵지 않다. 아들도 힘 안들이고 사는 게 편할 수 있지만 부모가 영원히 같이 살 순 없으니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져야 타인의 지원을 덜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날들을 이어가던 중 남편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을 내가 했던 것. 그런데 돌아온 남편의 반응에 나는 절망했다. 아들 곁에서 갖은 노력하며 살았던 나의 노력을 폄하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날 저녁 서로 더 이상 말 한마디 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화가 났다. 평소의 남편답지 않은 모습에 어쩌면 그게 진심이라서 훅 튀어 나온 말 같았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자식 교육에 쓸데없는 말 하는 부모가 있을까? 여태 아들에게 내가 하는 것들이 다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깜짝 놀랐다. 어제 내가 한 말을 단박에 자르더니 남편도 밤새 고민했나 보다. 남편의 말에 내 표정은 순식간에 펴져서 욕실 앞으로 달려갔다.
“옷 입은 채로 서 있으라면 얘가 도망가니까 자기랑 같이 벗고 들어가서 우선 머리감는 것부터 보여 줘봐. 말은 가급적 적게 하고.”
어제와 달리 남편도 밝아진 표정으로 ‘알았다’ 말하고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 감는 걸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이 신통했다. ‘따아!’라는 싫다는 의미의 말 한마디 뱉고는 바로 뛰쳐나올 것 같았는데 머리를 꼬며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설거지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활짝 웃으며 ‘네!’하는 아들의 표정도 밝았다.
요즘 좁은 욕실에서 부자가 아침저녁으로 샤워하는 모습이 뿌듯하다. 저러다 아빠들의 로망이라는 아들과 목욕탕 가서 등 밀어주는 것까지 할 수도 있겠다.
아들의 변화는 기쁘고 남편이 달라지는 모습은 흐뭇하다. 냉각기로 접어들 것 같았던 그 날의 일이 서로에게 성찰의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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