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26_조미영]욕실 풍경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08-26 조회수944

 

그렇게 길게 말하지 말고 자기가 들어가서 씻는 걸 보여 줘.”

 

 

어허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고마 저리 가라!”
 

 

남편의 퉁명스런 말에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빠져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자조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샤워하겠다고 들어간 아들에게 욕실 문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말로 지시하는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가 봉변당했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아들에 대한 교육 방법을 그렇게 평가절하하는 남편이 무지해 보였다. 그리고 여태 내가 해 온 교육과 훈련 방식이 쓸데없는 걸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화도 났고 암담했다.

 

 

아들이 열 살 되던 해 남편은 직장인에서 자영업자가 되었다. 사업 준비 차 한 달여간 집에 있으면서 아들의 일상을 보고 경악했단다. 저렇게 힘든 아들을 10년간 엄마 혼자 건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 스스로에게 다짐했단다. 아들의 뒷바라지는 이제부터 남편인 자신이 하겠노라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은 주로 내가 했지만 집안에서의 신변 처리나 저지레에 대해서 남편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해주었다. 특히 씻는 것에 대해 늘 자신이 몽땅 다 해주면서 그것이 최선인 듯 생각했다. 혼자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가르치라고 해도 귓등으로 들었다. 깔끔하게 못한다는 이유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아들을 씻기고 챙겼다.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이 달라졌다. 말로 아들을 가르친다.
 

 

 

옴마가 니 혼자 하게 하란다, 아부지가 갈쳐 줄테니까 스스로 해바라.”
 

 

 

욕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래라카이, 저래라카이.’ 하면서 언성도 높아졌다. 아들은 으으으!’소리내며 반항했다. 그냥 하던대로 씻겨주면 되지 왜 이러냐는 반응처럼 느껴졌다. 샤워가 끝나면 늘 중얼거리는 남편.
 

 

 

아이고, 막내딸 시집보내느니 내가 가긋다!”
 

 

아들의 자립을 생각하고 행동이 바뀐 남편이 대견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직접 다 해 주면 몸이 좀 고달퍼도 어렵지 않다. 아들도 힘 안들이고 사는 게 편할 수 있지만 부모가 영원히 같이 살 순 없으니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져야 타인의 지원을 덜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날들을 이어가던 중 남편에게 직접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을 내가 했던 것. 그런데 돌아온 남편의 반응에 나는 절망했다. 아들 곁에서 갖은 노력하며 살았던 나의 노력을 폄하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날 저녁 서로 더 이상 말 한마디 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화가 났다. 평소의 남편답지 않은 모습에 어쩌면 그게 진심이라서 훅 튀어 나온 말 같았다. 쓸데없는 말이라니, 자식 교육에 쓸데없는 말 하는 부모가 있을까? 여태 아들에게 내가 하는 것들이 다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고요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평소와 달리 아침 인사는 생략되었고 아들의 무의미한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아침밥을 먹고 과일과 차를 마신 후 설거지를 하려고 씽크대 앞에 섰다.

 

 

하진아, 우리 씻자. 여기 서서 아부지가 하는 거 잘 보레이.”
 

 

깜짝 놀랐다. 어제 내가 한 말을 단박에 자르더니 남편도 밤새 고민했나 보다. 남편의 말에 내 표정은 순식간에 펴져서 욕실 앞으로 달려갔다.

옷 입은 채로 서 있으라면 얘가 도망가니까 자기랑 같이 벗고 들어가서 우선 머리감는 것부터 보여 줘봐. 말은 가급적 적게 하고.”

어제와 달리 남편도 밝아진 표정으로 알았다말하고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 감는 걸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이 신통했다. ‘따아!’라는 싫다는 의미의 말 한마디 뱉고는 바로 뛰쳐나올 것 같았는데 머리를 꼬며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설거지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같이 집을 나서며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요즘 내가 자기한테 짜증이 좀 심해진 것 같아 어젯밤에 반성했다.”
 

 

 

남편의 말에,
 

 

 

그래? 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서로 익숙해지니까 그런 건지 곰곰이 생각하니까 자기한테 미안하더라.”

 

 

연애하고 결혼한 기간이 40년 넘었으면 익숙한 게 자연스럽지 않나?”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생각해 보니까 하진이가 우리 하는 걸 따라하는 게 많았더라. 칼국수 먹을 때 숟가락에 얹어서 먹는 걸 어설프게 따라 했던 거 하며 가전제품 작동하는 것도 말로 가르쳐서 하는 것보다 우리가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게 많았더라. 그래서 자기 말대로 해 볼라고.”
 

 

 

운전대 잡은 손을 놓고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두 말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어. 명령하듯 이렇게 하라고 한 건 내 잘못이지. 그래도 아침에 하는 거 보니까 자긴 진짜 사람이 괜찮더라. 우리 서로 말 안하고 며칠 갈 것 같았는데 완전 기분 좋았어. 그렇지 하진아, 아빠 멋있지?”
 

 

활짝 웃으며 !’하는 아들의 표정도 밝았다.

 

요즘 좁은 욕실에서 부자가 아침저녁으로 샤워하는 모습이 뿌듯하다. 저러다 아빠들의 로망이라는 아들과 목욕탕 가서 등 밀어주는 것까지 할 수도 있겠다.

아들의 변화는 기쁘고 남편이 달라지는 모습은 흐뭇하다. 냉각기로 접어들 것 같았던 그 날의 일이 서로에게 성찰의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저작권표시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와 출처 등을 표시하면 자유이용을 허락합니다. 단 영리적 이용과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총 댓글수 : 6개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