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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특수교사의 시선 03_김지화] 선택도 연습이 필요해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7-10 조회수476





선택도 연습이 필요해

 

 

 익숙한 등굣길에 내가 좋아하는 푸른색이 지천에 가득하고 뜨거운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걸 보니 7월이다. 그리고 요즘은 열기를 식히듯 예고하지 않은 잦은 비가 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매일 아침 출근을 앞두고 일기예보를 재차 챙겨보며 고민한다. 오늘은 우산을 가져갈 것인가, 가져가지 않을 것인가? 어느 날은 나의 직감으로 우산을 가져가지 않기도 하고, 어느 날은 우산의 예쁜 무늬를 핑계로 챙겨가기도 한다. 그리고는 매일의 선택에 따라 비오는 날 우산이 없어 낭패를 보기도 하고 우산이 무색하게 쨍쨍한 날 무거운 우산의 무게를 한껏 느끼며 땀 한 바가지와 함께 퇴근을 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날은 딱 맞는 선택에 스스로를 칭찬하며 콧노래 흥얼거리는 퇴근길을 맞이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오늘 입고 나갈 옷과 양말, 점심 메뉴, 버스를 탈 것인가 지하철을 탈 것인가, 운동을 갈 것인가, 침대와 한 몸이 될 것인가. 정말 사소하지만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나의 경우, 대부분의 선택 상황에서 어렵지 않게 의사를 결정하고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가지지 않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의견을 경청해주고 결정을 지지해주는 부모님의 양육 태도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며, 내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 몸으로 받으며 지나온 과거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선택의 순간에 서면 망설이게 되고 누군가 나 대신 선택을 해주었으면 좋겠고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에 대한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고 지금 한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봐 두렵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비장애인들과 비교하여 많은 순간 자신의 의사와는 다르게 또는 의사를 묻지 않고 보호자, 부모님, 교사 등 타인이 대신 무언가를 결정하는 순간에 숱하게 놓인다. 영유아기를 비롯해서 학령기에도 당사자의 선택 이후의 변수에 대한 예측이 어렵거나 또는 안전을 우선으로 하거나 혹은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것도 잊은 채 당연한 듯이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 없이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하물며 특수교육현장에서 법적 근거로 인해 반드시 실시해야하는 개별화교육지원팀 운영에 있어서도 장애 학생 본인의 의견이나 선택이 우선시 되거나 반영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물론 장애의 정도와 유형에 따라 의견을 반영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공감한다. 다만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장애인 당사자, 나에게 있어서 우리 학생들이 스스로 본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만큼 본인의 의사와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현재까지 기고자가 만난 많은 학생들 중에서는 장애인복지법의 장애 판정 기준에 해당하지는 않고 교육적 어려움은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현장에서 이야기하는 복지카드 없는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있다. 보편화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학생들은 대부분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이며 자신의 의사를 행동이나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선호도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며 선호도가 확실하다고 하면 이전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사소한 것은 일상생활패턴에서부터 크게는 직업적 선택까지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당사자 개인의 명확한 의사표현은 선택에 따른 만족도와도 대부분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 사회로 나가는 전환기에 있는 고등학교, 전공과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특히 자기결정’,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꼭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덧붙여서 선택에 따른 책임도 함께 따르는 것임을 꼭 설명한다.

 

 ​그러나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자기결정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나 선택의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가르치는 나조차도 힘이 들 때가 빈번하다. 실제로 올해 맡게 된 이제 졸업반인 남학생 A는 장애 정도도 심하지 않고 교우관계도 좋으며 학습 능력도 뛰어나 여러모로 미래가 기대되는 학생이다. 그러나 지역사회현장학습을 진행하며 주어진 예산 내에서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고를 때 늘 한 발짝 뒤로 물러나고, 간식을 먹을 때도 두 개의 과자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을 극도로 어려워하며, 자신의 선택이 본인을 포함한 타인의 일정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되면 몹시 당황해하고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평소의 A학생의 성품을 알기에 선택의 상황에서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기를 몇 번 반복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선택 상황의 해결은 주변인 누군가의 결정으로 종료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어느 날, A학생과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고. 그랬더니 A의 대답이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형도 장애가 있고 형은 꼭 자신이 원하는 걸 해야 부모님이 덜 힘드시고(A학생은 지적장애이며 A학생의 형은 자폐성장애를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결정해본 적이 없어서 선택 상황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된다고.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에는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고 말해주었다. 오늘 사용할 연필을 고르는 아주 사소한 선택부터 시작해서 점차 연습해나가면 선택 상황에 대한 불안함도 줄어들 것이라고 격려하면서.

 

 ​‘선택이 어려운 건 비단 발달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선택없이는 자기주도적이고 자신을 중심에 둔 삶을 살아가는 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선택도 연습이 필요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소한 선택사항에도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주고 수용해주는 것. 그러한 연습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힘을 키우는 우리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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