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7_조미영] 나홀로 여행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7-14 조회수549





나홀로 여행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바다와 친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수영복 차림으로 수건 하나 걸치고 3~4분 뛰어 바다로 가곤 했는데, 커서는 지척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결혼하고 서울에서 살다보니 바다가 그리웠다. 가까이 있는 한강으로 달래지지 않아 가끔 동해 일출과 서해 일몰의 황홀한 바다에 빠져들곤 했다.

부산에서 살던 둘째언니가 거제로 이사한 지 8개월이 되어간다. 가족여행으로 너 댓 번 갔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장소만 옮겨졌지 여전히 내가 챙겨야 할 가족이 있으면 여행의 맛이 반감된다.

일 때문에 바쁜 남편을 두고 아들과 거제에 가겠다고 했다. 혼자 긴 시간 운전 힘들다며 남편은 기차로 혼자 가란다. ‘아싸! 이게 웬 떡이냐내심의 소리는 숨기고 그래도 될까?’ 걱정스런 표정을 했더니 흔쾌히 돈 워리라는데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못이기는 척 나선 여행길은 SRT 기차에 오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앞좌석 뒤에 붙은 테이블을 내려 휴대폰과 안경집을 나란히 놓고 오래 전에 구입했던 시집 컵라면이 익어가는 시간에를 읽었다. 내가 여태 보아온 시집의 시들은 마침표가 없었는데 여기 수록된 시들은 꼼꼼하게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차이가 뭔지 단순하게 시인의 마음인지 궁금했다. 짧은 문장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시인들은 위대하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메타포를 접하면 몇 번을 반복해서 읽기도 하지만 결론은 그저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뿐이다.

국내 최장 50km의 율현터널을 지나니 눈부신 바깥세상이 시집을 덮게 만들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천천히 움직이는 산과 하천에 비해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들은 환한 미소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일상에 찌들어 사는 나는 대체 무슨 걱정을 하며 살고 있나 싶었다.

 

부산역에 나온 두 언니들을 만나 거제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승용차보다 높은 대형버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더 넓고 깊어 보였다. 거가대교와 해저터널을 지나 깊은 산골에 도착한 우리는 텃밭채소와 문어 등 도시와는 질이 다른 저녁을 먹었다. 다섯 자매가 모이면 뭐든 해먹이려고 동분서주하는 형부가 고맙기도 하고 몸이 안 좋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인기척이 없다. 영화 이끼에서 이장 정재영 배우가 마을을 두루 바라보는 그 느낌이 갑자기 전해온다. 멀리 거가대교는 섬과 육지를 연결해 주느라 고정된 분주함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올 때 보는 바다와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같지만 다르다.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날이 좋으면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던 바다였는데 바람과 비를 만난 바다는 제법 일렁거림이 보여 거대한 늪을 상상하게 한다. 생명을 앗아가는 거센 해일 말고 이런저런 모습의 바다는 언제나 옳다.

 

조그마한 배를 타고 섬에서 섬으로 이동했다. 둘레길 2.9km를 잘 조성해 둔 작은 섬 이수도. 13식으로 유명한 그곳은 거의 대부분 가정집이 민박을 하고 있었다. 일반 음식점은 보이지 않았고 민박 예약을 하면 그 집에서 세 끼 밥을 제공했다. 사실 1박까지 하면서 구경할 거리는 없었는데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바다를 끼고 둘레길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힐링이 되었다.

장마철이라 후텁지근하고 끊임없이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꿉꿉한 비마저 싫지 않았다. 두어 시간동안 걸으며 흘린 땀을 샤워로 씻어내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얘길하며 천장을 뚫고나갈 기세의 웃음소리에 잠자던 새들이 벌떡 일어날 것만 같았다.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양껏 웃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게 남이 해주는 음식이라고 했던가.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고 이수도를 빠져나왔다. 지난번에 가봤던 멀리 보이는 매미성에 다시 가보고 싶었으나 언니네 집 야채와 과일 딸 욕심에 바로 돌아왔다.

주렁주렁 열린 살구는 제풀에 떨어진 것이 정말 맛났다. 새들이 쪼아 먹은 흔적을 보니, 우리가 먹을 거라 상관없지만 상품으로 출하하여 생계를 잇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일 것 같다.

 

23일의 여행에서 돌아오니 집이 낯설지 않았다. 나름 정리정돈도 잘 되어 있었고 설거지도 제때 해서인지 씻어 놓은 그릇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사흘 동안 나는 집을 잊고 있었다. 예전에는 혼자 집을 나오면 가끔 전화해서 잘 있냐고, 아들 어떠냐고 먼저 묻곤 했다. 이번에는 부녀의 긴 말들이 오고가는 가족대화방도 외면했다. 남편이 급기야 거제 간 엄마는 지금 묵언수행중이냐고 물었다. 그럴 리가, 언니들과 수다 떠느라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었는데.

아들을 조금씩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는 중인 나를 느꼈다. 어쩌면 독립을 주저하는건 아들의 부족함이 아니라 엄마인 내 마음이지 싶다.

나홀로 여행으로 나는 내 삶을 즐기고 아들은 엄마의 간섭과 참견을 벗어나 스스로를 챙길 줄 아는 일일우일신하는 일상이 되면 좋겠다.





 

저작권표시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와 출처 등을 표시하면 자유이용을 허락합니다. 단 영리적 이용과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총 댓글수 : 0개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