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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너와 나의 시간들 03_김명희] 근로지원사를 통해 본 서로 통한다는 의미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7-21 조회수350




근로지원사를 통해 본 서로 통한다는 의미

 뉴스에서 장애 전담 어린이집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폭행하고 학대, 무시하는 등 도를 넘는 행동을 뉴스로 접하면서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희로애락은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기본 감정이고 감정에 불균등이 일어날 때 불편함과 불쾌감을 당연히 느껴야 하는데, 사람의 기본 감정까지도 무시한 채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장애 부모로서 지켜보는 것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장애인을 대하는 편견과 무시가 너무도 큰 슬픔으로 전해졌다.

아들 또한 어렸을 때부터 또 성인 된 지금까지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커다란 벽과 견뎌야 하는 낯선 시선들과 부딪히므로 암담함을 느끼면서 살고 있기에 수많은 장애인이 앞으로도 느껴야 할 수많은 힘듦과 어려움을 단편적으로 보는듯해서 가슴이 더욱 아팠다. 또한 수많은 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풀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인 것을 느끼게 했다.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니 또 다른 숙제가 시작되었다. 어렵지 않은 직장에 하루 몇 시간의 일거리가 있으면 경험으로 사회일원으로 성장할 계기가 될 것 같았다. 그때 우연히 지인을 통해 카페 근무를 시작으로 그다음 ○○슈퍼에, 그 후에는 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한 취업에 도전했고 그때에는 근로지원인 제도가 있다는 걸 알아서 그 제도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 제도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취업하고 직무에 적응하는 동안 함께 도움을 주는 근로지원인이 동반해주는 제도여서 장애인 취업자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고 출근 후 퇴근 시간까지 집에서 온통 신경을 쓰면서 혹시나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부모 마음에 안심을 주기도 했다.

장애인 일자리는 장기가 아니고 대부분 주로 6개월~1년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자의든 타의든 그래서 근로지원인분들을 몇 차례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러면서 취업 때 근로지원사 분들과의 상호작용과 유대관계에 대해 아들이 경험한 일들을 한번 이야기하려고 한다.

근로지원 제도를 이용한 취업의 시작은 ○○병원부터였다.

그것이 근로지원 제도를 통한 근로지원사를 만난 첫 번째 경험이었다. ○○병원에서 하는 일은 휠체어를 대여하고 또 되돌려 받는 업무였는데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탓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 더구나 연세 드신 분들의 휠체어 사용을 도와주고 때로는 진료받는 과까지 모셔드리기도 했다. 그때 감사하다며 환자분들이 전해 주신 음료나 과자 한 봉지에 너무 좋아하고 칭찬을 받았다며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주면서 일상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중에서 근로지원사분과의 일상도 빼놓지 않았는데 때로는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선생님께 감사하다며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퇴근한 후에도 저녁이면 전화도 주고받았다고 했다. 어떤 날은 아들이 몸이 아파서 조금 늦어지면 버스 정류장까지 선생님이 직접 마중을 나오시는 것으로 보아 아들과 선생님은 상호작용이 잘되는 듯했다. 선생님도 아들이 너무 인정스럽고 성격도 밝아서 너무 재미있다며 칭찬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감사와 사랑을 느끼게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후 몇 년도 인지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3~4년이 지난 듯한 일이었다. ○○호텔 직원 식당 정규직원 모집을 보고 이력서를 제출 후 면접에 통과하게 되었다.

소통 토론 강의를 보면 대부분 이럴 때 서로 잘 즐기며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던데 우리 가족은 기쁜 나머지 합격이라는 문자 통지를 보고 물론 축하한다고 시작은 했지만, "이제 ○○맨 이야. 직원들한테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잘못하면 끝이야."등 지금 또 생각해 보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군더더기처럼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규직이 되기 전 통과의례로 2주간 사전훈련이 시작되었다.

정규직이 되기 전 통과의례로 그동안 직무의 적응도나 성실성 등의 평가로 합격 불합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아들과 동행해 주는 근로지원사가 배정되었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8호선 장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2호선 잠실역에서 내려 맥도날드 앞에서 근로지원 선생님을 만난다고 했다. 처음이라 지하에서 찾기가 좀 어렵다며 첫 출근 후 그다음 날은 함께 가 주기를 원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장지역에서 내려 8호선으로 갈아타고 잠실역에 내려서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데 나도 어디가 어딘지 너무 힘들었다.

여긴가 저긴가 아들은 몇 번 잘못 들기도 했지만, 용케 약속한 장소라며 가리켰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떤 여자분이 다가오더니 대뜸 하는 말이 "○○! 여기서 기다리라니까 왜 거기서 기다려요?" 몇 걸음 더 내려와서 기다렸다고 저러지? 가시 돋친 듯 내뱉는 말투를 지켜보는 나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인사를 할 겨를 도 없이 그분은 내가 엄마인지도 모른 채 아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쳐다보는데 몹시 씁쓸했다. 그 순간에 아들의 평소 모습은 다정다감하고 친절하고 목소리 톤이 부드러운 사람을 좋아하고 너무 많은 말(잔소리)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평소 모습이 떠오르며 어쩌면 이분은 아들과 정서적인 코드가 잘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혼자서 출근이 어렵다는 말 없이 잘 다니기에 대견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2주 동안 그 선생님과 직원들의 평가점수로 정규직으로 전환이 결정된다는 말은 미리 듣고 시작했던 터라, 출근 후 며칠이 지나서 영양사님의 전화는 너무 쾌활하고 좋아서 분위기가 살아난다는 말과 또 힘든 부분 있으면 최대한 도와주시겠다고 하는 전화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2주간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어떤 날은 근로지원사님으로부터 아들이 락스 냄새를 싫어한다. 어떤 날은 이런 일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하며 투덜댄다고 하면서 아들로 인해 좀 힘들다는 내색을 하기도 했다. 혹여 평가점수가 낮아질까 봐 "죄송합니다. 잘하도록 지도하겠습니다~~"라고 응대를 한 뒤 퇴근해 오면 전해 들은 일들을 아들에게 "조심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말대꾸도 하면 안 되고, 버릇없는 행동을 하면 안 되고~" 하면서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사건(?)이 터졌다. 공단 직원이 집으로 전화해서 근로지원인 분이 아들 때문에 울면서 전화했고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말은 해주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해서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평가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때였고 괜히 더 신경이 쓰여 퇴근해 온 아들을 앉혀놓고 혼도 냈지만 수긍하지는 않는 눈치였고, 근로지원사님을 이해하는 데는 무엇인가 걸림돌이 있어 보였고 아들 또한 근로지원사를 몹시 못마땅하게 느끼는 눈치였다.

이전의 분들과는 다른 서로 소통하는 행동이나 톡이나 전화 문자 등은 물론 근로지원사에 대한 언급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둘 사이에는 차가운 기류가 흐르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에 아들은 "엄마 합격 되는가 봐?"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듯 해서 "?"라고 물으니 "다음 달 일정표에 내 이름이 적혀있던데."라며 얼굴이 상기 되기도 했다. 떨어져 실망할까 봐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 잘되겠지."라고 기다리던 마지막 날 근로지원사님의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2주간의 이야기와 기분 상하고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과 함께 결과는 기다려봐야 아는 거고 자기가 어떻게 합격 불합격을 내라는 건 아니다 말속에는 아들이 되는지 봐라 그건 내 탓이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 날 결과가 나오는 날 아들은 힘없이 퇴근 후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된대"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가슴이 덜컹 무너졌고 기대했던 마음을 알고 있어서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저녁에 영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정규직에는 불합격했다기에 아들은 다음 달 일정표에 이름까지 있다고 좋아했다는 말을 전했더니 그랬는데 근로지원 선생님과 의견충돌이 있는 모습을 보고ᆢ 죄송하다며 아들 위로 잘해주라는 말을 전해 들으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의견충돌이 아닌 감정 충돌이었다. 어떤 이유로 자존심이 상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직무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조금이나마 직무에 익숙해지는 시간과 때로는 격려 또는 응원해줄 수 있는 역할을 가진 사람이면서 더구나 가장 가까이 장애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직무를 가진 분이 그 도중에 자존심을 운운하고 또 자존심 상해서 그만두어야겠다고 공단에 전화했다는 사실도 합격 불합격을 떠나 그 일이 스스로 맞지 않거나 최소한 장애인의 지적 수준이나 성향 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야말로 어른답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감정 장애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최소한 장애아를 맡아주는 장애 전담 어린이집 교사나 근로지원사처럼 가장 가까이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보살펴주는 사람들은 장애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하지 못한다면 그 직업군에 도전조차도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장애인을 둔 부모의 경험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또 다른 근로지원사님과의 만남이 더 있었고 다정다감하며 애정으로 아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통한다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한다는 건 감정의 소통이 잘되어 서로서로 잘 이해하고 걸림이 덜 하다는 것도 그래야 부딪힘도 적어진다는 것도 아들을 통해 거울처럼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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