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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18_김종옥] 더위 먹은 세상, 장애학생이 위험하다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8-04 조회수1,325






더위 먹은 세상, 장애학생이 위험하다

 



1. 비극의 시작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자살을 했다. 교사가 된 지 2년차, 새내기 젊은이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온 나라 여론이 날씨만큼 뜨겁게 타올랐다.

처음엔 강남 부촌 자제들이 많이 다닌다는 학교라고 해서 갑질로 괴롭힌 유력자 학부모가 누구냐고 난리였다. 그러다 갑자기 갑질 학부모 뒤지기는 쑥 들어갔다.

 

전국의 교사들은 무참히 침해 받은 교권을 세우라고 들고 일어났다. 문제제기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순서다. 그런데 이후 양상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무너진 교권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 진보(라 쓰고 좌파라 읽는다)교육, 진상 학부모들이 지목되더니, 급기야는 장애학생과 그 부모들이 불려나왔다. 이 광풍에는 인터넷 여론, 언론, 심지어 교육감과 장관까지 가세해서 입 달린 사람이라 경쟁하듯 무책임하고 거칠고 한심한 소리와 진단들을 쏟아냈다.

 

민감하고 자극적인 사건으로 촉발되었으니 온갖 견해와 주장이 폭주하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세상 일이란 게 이런 광풍의 시간이 지나야 그 안에서 반성과 정제된 소리가 비로소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제된 소리를 기다리는 중에 느닷없는 탁류가 세상을 삼킬 듯이 쏟아져 흘렀다. 이번에는 특수교육 현장이다.

 

주호민 씨가 지난해 자기 아이를 정서적 학대한 것으로 의심되는 특수교사를 고발했고, 그 교사는 직위해제된 채로 재판 중이다. 그 교사는 다만 훈도하였을 뿐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탄원서를 작성했다. 사실여부는 여기서 멈춰있다. 진위와 그에 따른 처벌의 경중은 법원에서 판가름 나겠지만, 법이라는 도구의 한계는 모든 진실을 다 드러내거나 피차간 모두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다 헤아리지도 못한다. 법은 극히 최소한의 갈등 정리만 할 뿐, 화평탕탕하게 해소하는 건 사람의 일이다.

 

그럼에도 성부르게 이 사건이 초등교사의 자살로 촉발된 교권침해 논란과 한 몫에 묶인 것은 매우 고약한 일이다. 대체 누가 이 사건을 학부모 갑질의 상징인 양 묶어 내놓았는가. 누가 어떤 의도로 그랬든지 이 뜨거운 여름날 근 보름여 몰아치고 있는 광풍은 저열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나는 주호민 씨가 스스로 작성한 입장문도 보았고, 해당 교사나 주변 사람들이 썼다는 탄원서 등 문건도 보면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러한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긴 논리적 과정을 밝힐 필요는 없겠다.

다만 학대냐 아니냐에 대한 무수한 판단들이 터져 나오면서 그동안 매우 엄격하게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던​ 장애학생 인권이 흔들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에 큰 위협을 느끼며 깊이 분노한다.

 



2. 갑질하는 장애학생 부모?

 

학생 훈도와 학부모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교사들에 대한 공감 속에서, 그 중에서도 고역 중의 고역으로 특수교사의 처지가 부각되더니 설리번 선생님 같은 특수교사들을 괴롭히는 주범으로 장애학생들이 불려나온 것은 비극이다. 그 아이를 어렵게 훈도하는 교사들에게 그 부모들은 위협과 고발을 일삼는 진상 중의 진상, 갑질 중의 갑질로 대응하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무리하고 무례하게 구는 부모들이 왜 없겠는가, 분명 있다. 또한 훈도와 학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교사도 있고 학대를 은폐하고 있는 교사도 있다. 악당을 가려서 찾아내야 한다면 진상 갑질 부모도, 진정성을 잃은 교사도 있고, 양쪽에 끼어서 조정의 의무를 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뒷줄로 빠져있는 학교 관리자도 있고, 이 못지않게 문제를 방치해왔다가 허둥지둥하고 있는 교육행정 당국도 있다.

이것을 외면하고 단순한 악당 뒤지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여론은 딱하고, 이에 편승해서 댓글 받아쓰기 수준에 있는 언론은 한심하다. 아니, 한심한 작태라기 보나는 아예 범죄행위에 가깝다. 하다하다 최근엔, 정작 교사에게는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하면서 집에서 자기 자식 때리는 부모도 있다면서, 대체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교수까지 생겼다.

 

언론이 가세한 이 광풍이 고약한 건, 교육을 걱정하는 척하고는 있으나 실상은 장애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되었거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교사와 급우들을 무시로 때리고 할퀴고 꼬집고, 머리채를 휘잡고, 대소변도 못 가리고, 말도 못하면서 욕은 하는 파렴치한 가해자일 뿐이고, 그 부모들은 제 자식이 무도한 가해자인 건 외면한 채 교사를 내 아이를 위한 노예로 부리려 하는 염치없는 사람들로 간주된다.

 

이렇게 규정해 놓은 그들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는 두 부류다. 학교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문제아이와, 자기들이 수용할 정도가 되는 불쌍하면서도 고분고분한 장애아이. 이제 봐줄만한 정도가 아닌 애들은 학교와 교실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왜 굳이 통합학급에 있으면서 다른 애들에게 피해를 주냐, 특수학교로 가라, 학교를 떠나라, 홈스쿨링을 해라.

 



3.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이게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담고 있는가. 장애는 남에게 피해를 주니 보통의 일반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마땅하고, 장애인은 인격적으로 무시해도 되는 예외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분노와 충동행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장애 학생이 있다면, 그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그것을 혐오하고 피하거나 강제로 제압하는 게 아니다.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그런 행동으로 괴롭고 힘들다. 그것을 위험하지 않은 방식으로 분출하고 해소하게 누군가 도와야 하지 않나. 그리고 스스로 조절해갈 수 있을 때까지 전문가와 조력자가 붙어서 지원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학급에 함께 있는 비장애학생들에게 장애의 어려움을 이해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 방식을 함께 모색해야 하지 않나. 그것이 학교이고 교육이 아닌가.

그동안 장애학생에게 제대로 된 맞춤형 통합교육을 하기나 했던가. 그 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 받았던 장애학생들은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가 아니었던가. 지금 이 나라는 피해자를 보고 가해자라 손가락질하며 인격을 폄하하고 인권을 훼손시키고 있는 이 광풍을 막지 않고 있다. 자기 대신 가해자로 지목된 장애 학생 뒤에 서서 무슨 염치없는 계산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이 방학인 게 오히려 다행스럽다. 방학이 아니었다면 이런 분위기에서 통합학교 통합학급에 있는 장애학생들은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까. 온 사회가 존재가 민폐라고 손가락질하는 상황에서, 장애학생을 괴롭히고 따돌리며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왜냐면 저들이 틀렸고’, 저들이 잘못이고, 저들이 가해자이기 때문이라고 항변하면서.

 

그 속에서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더 가혹해진 교실에 앉아있어야 했을 것이다. 눈을 흘기고 조롱하고 눈에 띄지 않게 괴롭히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고, 귀찮아 하는, 절대로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 친구들 틈에서. 내 아이가 겪은 12년 동안의 악몽처럼.

 

장애학생 교육권 운동이 시작된 지 이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더디지만 우리 교육의 현장을 차근차근 바꿔왔다. 이제야 비로소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숨이나마 제대로 쉬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23년 폭염의 여름, 장애학생의 교육권은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이 모든 일의 단순한 해법을 장애학생 부모도 알고, 아마도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교사도 알고, 학교도 알고, 교육청도 교육부도 안다. 언론도 모르지 않을 게다. 잘 모르는 이가 아는 체하려고 몰려와 무언가를 공격하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거나 심성이 고약해서이겠지만, 알만한 주체들이 알면서도 이 여론의 광풍을 막아내고 돌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바로 악당이다.

 

악당은 가장 약한 자를 악당으로 둔갑시키는 비겁한 술수를 쓰는데, 지금은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내몰렸다. 세상이 더위를 먹어도 너무 심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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