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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너와 나의 시간들 05_김명희] 취업의 종착지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8-11 조회수328






취업의 종착지

 아들은 돌아 돌아서 결국은 아빠 회사에 입사했다. 졸업 후 다른 몇 곳에 취업해서 3개월~6개월 근무를 거듭했던 게 2018년부터였던 것 같다. 그동안 취업의 경험을 돌아보면 어떤 곳은 적성에 맞기는 했지만, 장기근무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또 어떤 곳은 혼자서 긴 시간을 지켜야 하는 업무로 지겹고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아들의 성향에 맞는 일자리는 어떤 것이냐는 기준이 생겨났다. 아들은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로는, 일단 혼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근무하는 것에 흥미를 더 느끼고, 정적인 것보다는 움직임이 많은 활동적인 것 그리고 스스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는 듯했다.

그런데 장애인 일자리는 대부분 환경정리(미화) 등의 사무실 청소나 식당 카페 등 설거지나 테이블 정리와 같이 간단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꺼리는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묵묵히 그 일을 해야 하는데, 종종 싫증을 내기도 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사무보조로 파일 정리를 해보기도 하고 배운 골프를 가지고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스윙을 도와주는 골프(강사) 보조도 해보고 아름다운가게 등에서의 옷가지와 비품의 정리 정돈을 해서 상품 가치를 높여주는 포장과 진열하는 업무도 해보고 건물 내·외의 환경미화도 해보고 하면서 아들은 그 일자리가 힘들고 자기 능력은 안 되지만 더 좋고 좀 더 쉬운 그런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 평소의 생각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하루 4시간씩의 단기 근로를 해서 받은 급여로 적금도 들고 예금도 해서 필요할 때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서 받은 돈으로 선물이라며 엄마 아빠 때로는 친척 조카들에게도 뽐내며 가끔은 용돈을 챙겨주는 모습을 볼 때는 기특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런데 늘 아빠 회사에 출근하겠다고 아빠한테 말을 했지만, 또 다른 곳에 출근해서도 자기는 아빠 회사에 출근하고 싶다고 말을 하니, 언제나 그만둘 수 있다는 모습으로 보여서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을 게 뻔했다. 그래서 지금껏 그래도 여러 차례 경험했으니 더는 아니라고 할 게 아니고 그것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하고 작년 가을부터는 아빠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했고 현재 근무 중이다.

아빠 회사는 김포에 있고 그라비아 인쇄 회사인데 그라비아 인쇄는 주로 비닐 원단에 각종 제품의 디자인을 인쇄하는 곳이다. 잉크의 조색을 통해 디자이너가 원하는 명도 채도가 완벽한 색감으로 샘플대로 제품을 완벽하게 인쇄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화장품 마스크팩의 파우치, 식품회사의 비닐포장지, 수산물 농산물을 담는 비닐 파우치 등 디자인을 통해 동판을 만들어 인쇄과정을 거치면 무지의 투명 비닐이 각종 색깔을 입고 디자이너가 원하는 그 색감의 제품으로 태어난다. 1공장에는 사무실과 인쇄 현장이 있고, 2공장은 1차로 인쇄한 비닐을 2차 공정인 합지를 해서 오면 그다음 단계의 공정으로 파우치 형태의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가공을 하는 곳이다.

아들은 거기에서 대리라는 직함으로 인력사무실에서 일을 하러 나온 외국인 근로자들을 관리하고, 그 사람들이 제품의 불량을 선별하고 할 때 상자도 옮겨다 주고 또 상자에 테이핑 또는 포장하는 일도 하며, 현장에서 필요한 소모품도 점검해서 유·무를 사무실에 알려주기도 하는 업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무엇을 할지 어색해하며 한자리에 서 있기도 하고 무엇을 하라고 알려주는 것만 하는 듯했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직원으로서 한몫을 잘 해내고 있다. 가공하는 사이사이에 자투리로 나오는 비닐을 수거하는 것은 물론 하루 종일 빗자루, 물걸레질로 구석구석 먼지를 훔쳐내고 불량 샘플은 가지런히 모아두었다가 인쇄부서에 전달해서 똑같은 불량이 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도 주고, 가공기 9대가 돌아가면 매우 시끄러워서 그리고 잠시 집중을 안 하면 위험할 수 있음도 감지해서 "핸드폰 사용금지"라는 스티커를 뽑아서 기계 앞에다 붙여놓기도 했다. 선별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도 작업 도중에는 말을 삼가야 능률도 오르고 선별을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거라며 뼈 있는 소리를 날리는 등 관리자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도 보여주고 열심히 자기 임무와 할 일을 찾아가는 모습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월급날에 가까이 있는 마트에 몰래 가서 아이스크림을 한 보따리 사 와서 나눠 주기도 하고 고생한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점심시간에 불러내어 그 나라 음식을 사주기도 했다.

점심시간이면 휴게실에서 식사하는 데, 식사 시간 30분 전이면 어김없이 미리 에어컨을 가동해 놓는 센스있는 행동도 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생겨나는 눈썰미인 것 같다. 쓰레기 분리도 아들이 오기 전에는 잡동사니들을 마구 한데 다 모아서 일반폐기물로 버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뒤 커다란 비닐봉지에다 캔·플라스틱이라고 적어 와서 붙여놓고 직원들에게 분리수거를 확실하게 철저하게 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플라스틱 물병도 띠지를 깨끗이 떼어 낸 다음 알뜰하게 잘 분리해서 모으고 있다. 그리고 가공 원단을 감아서 온 지관을 재활용업체에서 수거해 가면서 얼마의 돈을 주곤 하는데 보통 사람이었다면 모른 채 그냥 주머니에 넣고 말았을 수도 있지만 아들은 회사물건을 팔아서 생긴 돈이라며 한사코 회사경리에서 건네주는 것을 보면서 남들은 조금 느리고 어눌하다고 이상한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거짓 없고 순수한 영혼임에 감사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24살의 남자 신입사원이 들어 왔는데 그때도 새로운 직원이라고 입사를 축하하고 잘해 보자며 불러내어 점심과 커피를 대접하는 모습이 때로는 계산적이지 못해 손해 보는 듯 해도 누군가를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마음은 우리에게도 본보기가 된다. 그리고 신입사원이 어린 나이인데 나이 든 형이나 사장님 앞에서 담배를 마주 보고 피우는 모습이 내 눈에도 거슬려서 나도 한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는데 그다음 날 아들도 그 느낌을 받았는지 멀리서 지켜봤더니 그 직원을 불러서 "00! 일루에 와봐 할 말 있어. 사장님이나 어른들 앞에서는 담배 피우지 마~~"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요?"라고 되묻는 그 직원을 향해 "그거는 예의 없는 행동이야."라는 말을 하는 걸 보고 그래도 형다운 모습과 직장에서 상급자로서 눈에 벗어나는 행동도 깨우쳐줄 줄 아는 모습을 보고는 많이 성숙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20대 후반 30대를 지나 40~50대가 되었을 때 부모가 없는 일상을 먼저 생각해 보면 답답하고 암담한 모습으로 늘 불안한 미래의 아들이 가장 큰 숙제이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장애 부모들의 염원은 자식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게 소원이라는 한결같은 생각들이 나의 가슴에도 늘 가시처럼 박혀 있는데 조금씩 그리고 한 걸음씩 나아지고 발전하는 모습에서 그나마 한시름 놓을 수 있고 또 여유를 가지게 된다.

오늘도 작업 때 "찔림·베임 주의"라는 스티커를 프린터 해와서 붙이며 직원들에게 일일이 조심해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라고 알려주는 모습에서 여느 직장에서 볼 수 있는 관리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니 세월이 약이 되고 대리라고 불리는 그 직함에서 완장의 힘이 주는 책임감과 자존감의 상승으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그래도 지금까지 짧게 근무했지만 몇 년에 걸쳐 장애인 일자리 여러 곳에서 배우고 경험한 도움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해서 8시간 동안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었음이 걷기 앱에서 확인이 되는 걸 보면 공장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완장에 부여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돌고 돌아 정착한 아빠 회사에서 자기 몫을 다하며 하루하루 조금씩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 홀로서기의 발판이 되기를 조용히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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