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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7_조미영] 고성 삼포해변에서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8-14 조회수551





고성 삼포해변에서

 

  아들 자조모임에 부모들이 동행했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고성의 삼포해변으로 이동하면서 승용차 앞좌석 부모들은 말을 조심했다. 자폐성장애인 아들들이 우리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함부로 그들 얘길 하면 안 된다는 것쯤 잘 알고 있기에. 안 듣는 척 창밖을 응시하면서도 우리가 웃을 대목에선 본인들도 웃었다. 아들은 옆 좌석 영후형에게 반갑다는 인사로 상체를 들이대며 친근함을 보였다. 그런 걸 싫어하는 영후군은 몸을 창가로 피하는 모습이 우리를 웃게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의사소통 수단이다.

  ​홍천휴게소에서 일행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휴가철이라 붐비는 휴게소에서도 청년들은 점잖게 빈자리를 찾아 얌전하게 밥을 먹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릴 적 다동이었던 아들이 생각난다. 나대지 못하도록 식탁 안쪽으로 밀어 붙여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고 아들이 난리치는 게 두려워 외출을 삼갔다면 오늘같은 아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빛과 하늘빛이 유난히 맑은 삼포해변에 텐트를 쳤다. 어느 기업의 대형 텐트가 일렬종대로 설치되었지만 이용객은 소수였다. 뻔뻔하게도 백사장에 텐트 치는 걸 금한다는 기업 이름의 팻말을 보았다. 기업이 해변을 전세 낸 것도 아닐진대 그들은 되고 개인은 안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개의치 않고 우린 우리만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겼다.

  ​물을 좋아하는 아들이 바닷물 앞에서 들어가질 않고 계속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발을 적시고 허리까지 오는 깊은 곳을 갔지만 아들은 먼 산보며 딴청을 피웠다.

  ​“하진아, 선생님하고 천천히 물에 들어가 볼까?”

  ​불안함을 눈치 챈 선생님이 손을 내밀자 아들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움직였다. ‘? 쟈가 들어 오는구나싶어 얼른 아들 곁으로 달려갔다.

  ​“얼른 들어가자, 엄청 시원해!”

  ​팔을 잡아 당기는 나의 채근에 놀란 아들은 뒤로 돌아 백사장으로 냅다 뛰어갔다. ! 나의 잘못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마음을 움직이는 아들에게 성급한 엄마가 그 새를 못 참고 덤볐으니 아들은 놀랐을 것이다.

  ​다시 선생님의 접근으로 아들은 마침내 바다에 몸을 담갔다. 그렇게 재미지게 놀 걸 왜 그리 뜸을 들였을까? 아들 나름의 생각과 속도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만을 강요한 나를 반성했다.

  ​한 번 입수한 아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물 위에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며 즐거워했고 잠수를 시도하는 모습에 나는 그저 흐뭇했다. 상황에 맞게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성숙했다는 걸로 보인다. 하기 싫어서 그저 바라만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움직여서 뭐든 해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가를 다양하게 즐기며 사는 것,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지 않겠나.

 

  ​아들이 바닷속에서 노는 걸 보다가 중년의 부부가 청년의 튜브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에 시선이 멈췄다. ‘, 장애인 가족이구나직감하면서 아들 보는 척 자꾸 눈길이 그쪽으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어 결국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드님이 즐거워 하네요. 제 아들은 스물여덟인데 아드님은 몇 살이세요?”

  ​“아네, 스물다섯이요. 어디 다니세요?”

  ​“저흰 평생교육센터 다녀요, 아드님은요?”

  ​“주간보호센터요, 평생센터는 5년이 기한이죠?”

  ​“, 그래서 내년에 다른 곳 알아봐야 해요.”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남편되는 분은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혼자 아들 키우는 엄마인가?’라고 묻는 듯 했다. 나의 상상력은 엉뚱해서 가끔 혼자 웃게 하는 맛이 있다. 보아하니 남편보다 아내가 아들 키우는 데 더 적극적인 모습이어서 뇌병변 아들 건사하느라 마음보다 몸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았다. 뇌병변 자녀의 부모들은 내가 아는 대부분 허리와 손목이 다 망가져 고생하고 있었다. 자폐인 부모는 자녀가 많이 움직여서 못 움직이도록 붙잡고, 뇌병변 부모는 이동이나 거동을 지원하느라 힘든 걸 예전에 서울시청 농성에서 알았다. 만나서 대화하지 않으면 장애인 부모라도 서로의 고충이 다름을 알지 못한다.

  ​청년은 경직도 경련도 없어 보였고 걷는 것도 가능하니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건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그 가족의 휴가가 행복해 보였다.

 

  ​어딜 가든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대부분은 장애인이다. 신체장애는 무심히 지나치지만 자폐나 지적장애는 한 번 더 보게 된다. 물론 그들이 모르게 곁눈질하지만 알아도 그냥 서로 외면한다는 걸 느낀다. 동변상련이라선지 동지라는 유대감은 나쁘지 않고 따듯하다.

  ​비장애인들의 시선도 동정이나 시혜보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따듯함이면 좋겠다. 자폐인의 독특한 언행에 때로는 무관심의 친절이 우리를 편하게 한다.

  ​다함께 잘 사는 사회를 바라는 건 모두의 바람이라 여기며 삼포해변으로의 나들이가 물놀이로 행복했던 아들을 담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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