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삼포해변에서
아들 자조모임에 부모들이 동행했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고성의 삼포해변으로 이동하면서 승용차 앞좌석 부모들은 말을 조심했다. 자폐성장애인 아들들이 우리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함부로 그들 얘길 하면 안 된다는 것쯤 잘 알고 있기에. 안 듣는 척 창밖을 응시하면서도 우리가 웃을 대목에선 본인들도 웃었다. 아들은 옆 좌석 영후형에게 반갑다는 인사로 상체를 들이대며 친근함을 보였다. 그런 걸 싫어하는 영후군은 몸을 창가로 피하는 모습이 우리를 웃게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의사소통 수단이다.
홍천휴게소에서 일행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휴가철이라 붐비는 휴게소에서도 청년들은 점잖게 빈자리를 찾아 얌전하게 밥을 먹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릴 적 다동이었던 아들이 생각난다. 나대지 못하도록 식탁 안쪽으로 밀어 붙여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고 아들이 난리치는 게 두려워 외출을 삼갔다면 오늘같은 아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빛과 하늘빛이 유난히 맑은 삼포해변에 텐트를 쳤다. 어느 기업의 대형 텐트가 일렬종대로 설치되었지만 이용객은 소수였다. 뻔뻔하게도 백사장에 텐트 치는 걸 금한다는 기업 이름의 팻말을 보았다. 기업이 해변을 전세 낸 것도 아닐진대 그들은 되고 개인은 안되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개의치 않고 우린 우리만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겼다.
물을 좋아하는 아들이 바닷물 앞에서 들어가질 않고 계속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발을 적시고 허리까지 오는 깊은 곳을 갔지만 아들은 먼 산보며 딴청을 피웠다.
“하진아, 선생님하고 천천히 물에 들어가 볼까?”
불안함을 눈치 챈 선생님이 손을 내밀자 아들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움직였다. ‘어? 쟈가 들어 오는구나’싶어 얼른 아들 곁으로 달려갔다.
“얼른 들어가자, 엄청 시원해!”
팔을 잡아 당기는 나의 채근에 놀란 아들은 뒤로 돌아 백사장으로 냅다 뛰어갔다. 아! 나의 잘못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마음을 움직이는 아들에게 성급한 엄마가 그 새를 못 참고 덤볐으니 아들은 놀랐을 것이다.
다시 선생님의 접근으로 아들은 마침내 바다에 몸을 담갔다. 그렇게 재미지게 놀 걸 왜 그리 뜸을 들였을까? 아들 나름의 생각과 속도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만을 강요한 나를 반성했다.
한 번 입수한 아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물 위에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며 즐거워했고 잠수를 시도하는 모습에 나는 그저 흐뭇했다. 상황에 맞게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성숙했다는 걸로 보인다. 하기 싫어서 그저 바라만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움직여서 뭐든 해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가를 다양하게 즐기며 사는 것,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지 않겠나.
아들이 바닷속에서 노는 걸 보다가 중년의 부부가 청년의 튜브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에 시선이 멈췄다. ‘아, 장애인 가족이구나’ 직감하면서 아들 보는 척 자꾸 눈길이 그쪽으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어 결국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드님이 즐거워 하네요. 제 아들은 스물여덟인데 아드님은 몇 살이세요?”
“아네, 스물다섯이요. 어디 다니세요?”
“저흰 평생교육센터 다녀요, 아드님은요?”
“주간보호센터요, 평생센터는 5년이 기한이죠?”
“네, 그래서 내년에 다른 곳 알아봐야 해요.”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남편되는 분은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혼자 아들 키우는 엄마인가?’라고 묻는 듯 했다. 나의 상상력은 엉뚱해서 가끔 혼자 웃게 하는 맛이 있다. 보아하니 남편보다 아내가 아들 키우는 데 더 적극적인 모습이어서 뇌병변 아들 건사하느라 마음보다 몸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았다. 뇌병변 자녀의 부모들은 내가 아는 대부분 허리와 손목이 다 망가져 고생하고 있었다. 자폐인 부모는 자녀가 많이 움직여서 못 움직이도록 붙잡고, 뇌병변 부모는 이동이나 거동을 지원하느라 힘든 걸 예전에 서울시청 농성에서 알았다. 만나서 대화하지 않으면 장애인 부모라도 서로의 고충이 다름을 알지 못한다.
청년은 경직도 경련도 없어 보였고 걷는 것도 가능하니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건 남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데 그 가족의 휴가가 행복해 보였다.
어딜 가든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대부분은 장애인이다. 신체장애는 무심히 지나치지만 자폐나 지적장애는 한 번 더 보게 된다. 물론 그들이 모르게 곁눈질하지만 알아도 그냥 서로 외면한다는 걸 느낀다. 동변상련이라선지 동지라는 유대감은 나쁘지 않고 따듯하다.
비장애인들의 시선도 동정이나 시혜보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따듯함이면 좋겠다. 자폐인의 독특한 언행에 때로는 무관심의 친절이 우리를 편하게 한다.
다함께 잘 사는 사회를 바라는 건 모두의 바람이라 여기며 삼포해변으로의 나들이가 물놀이로 행복했던 아들을 담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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