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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8_조미영] 발달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전문가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9-11 조회수618





발달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전문가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연약해 보이는 여성을 냅다 밀었다. 마트의 매끄러운 바닥에서 여성은 뒤로 넘어지며 쭈욱 미끄러졌다. 연거푸 재생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남성은 발달장애인이었고 여성은 활동지원사였다. 앞 상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은 가지만 함부로 예단할 순 없기에 넘어진 여성의 몸 상태가 나쁘지 않기만을 바랐다. 자폐성장애인 아들의 과거가 떠올랐다.

 ​96년생 아들에게 나는 가혹한 엄마였다. 자폐는 선천적 장애건만 뭐든 많이 시키면 좋아지는 줄 알았다. 승용차로 하루 120km를 넘게 달리며 아들을 치료교육으로 내몰았다. 실력있는 전문가를 찾아 아들을 맡기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음악, 미술, 언어, 감각통합 등 아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치료와 교육이라는 수렁에서 힘들어 했지만 나는 외면했다.

 ​그나마 순하던 아들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울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 머리를 때리는 자해가 심해져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손에 잡히면 뭐든 입으로 가져가 망가뜨렸고 못하게 뺏으려고 손을 내밀면 어김없이 손을 잡아채 물었다. 손목에 시퍼런 멍들을 달고 살았다. 꼭 안아서 진정시키려다 배를 물려서 한참을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은 아직도 아프다.

 

 ​열 살 무렵, 지옥같은 일상에서 놀이치료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에게 하고 있는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엄마가 아이와 집에서 편하게 노는 방법을 배웠다. 아이의 저지레를 보고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해나 타해, 반사회적 행동만 관여하라는 말을 계속 읊조리며 수도승처럼 사는 건 힘들었다. 건강을 핑계로 특수체육은 계속 했는데 하기 싫은 운동을 매일 해야 했던 아들은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쟤 저렇게 먹다가 죽는 거 아냐?”

 ​불안한 눈빛으로 혼잣말을 일삼던 시절, 본인이 그만 먹을 때까지 놔두지 않으면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피웠기에 속상한 마음으로 보고만 있었다. 학교 수업 끝나면 체육센터에서 바로 픽업해서 운동 후 집까지 바래다주니 아들 없는 나의 하루는 견딜 만 했다. 하지만 하교 후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등교 전 오전 9시까지의 시간은 참담한 전쟁이었다. 아들은 밤잠을 못자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가족 모두의 잠을 방해했고 여름에도 아들의 괴성이 밖으로 나갈까봐 창문을 열지 못했다.

 

 ​학령기를 그렇게 보내고 새로운 전문가를 만났다. 벌써 6년차, 아들은 많이 변했다. 7년여 먹던 약(아빌리파이, 정신과 약)을 끊은 지 3년이 지났다. 혼자만의 웃음과 울음이 멈췄다. 가장 보기 힘들었던 자해도 없다. 밤잠 안자는 것을 가족들이 모른다. 혼자 제 방에서 책을 보거나 다른 걸 하며 지내기에 아침에 일어나서야 불면의 밤을 보낸 걸 짐작한다.

 ​“우리 아들 이제야 사람꼴난다. 이만큼 오느라 너 고생 많았어.”

 ​편안한 표정의 아들이 보이는 사람꼴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좋은 지원자를 만나 내가 한 일은 어떤 모습을 보이던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었다. 상동행동(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멈추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표현언어는 없어도 뭐든 아들이 선택하도록 자꾸 물으면서 소통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아들을 바꾸려고 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변하게 하는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활동지원사를 밀어 넘어지게 하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아들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았다면, 좋은 지원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화면 속 인물이 아들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어렸을 때 가능한 교육이 성인에게는 이미 고착되어 힘든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타해하는 건 장애가 있다 해도 성숙하지 못한 행위다. 발을 동동거리며 안타까워만 할 게 아니라 아직 어린 아이들의 언행이 나빠지지 않도록 적절한 지도와 교육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인지교육은 아이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자신의 욕구나 소통방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부모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족에게 떠맡기거나 특수교사와 사회복지사에게만 전가하는 건 실패 확률이 높다. 장애인을 둘러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무엇보다 시급하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자꾸 알리고 개선점을 찾아갈 때 비로소 매년 발생하는 극단적 선택으로부터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부디 손놓고 방관하는 태도 접고 다같이 잘 사는 사회 만드는 일에 국가가 나서야 할 때다.




 

* 이 원고는 월간지 #작은책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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