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보다칼럼

[특수교사의 시선 04_김지화] ‘친구’의 의미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9-25 조회수479






친구의 의미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 온 첫해에 만난 아이들은 전공과에 진학한 갓 스무 살의 7명의 어여쁜 아이들이었다. 어느덧 함께한 2년의 시간이 지나고 20192, 학교를 떠나 졸업(전공과정은 의무교육 과정이 아니어서 정식 명칭은 수료임을 밝힌다)을 하게 되었다. 졸업식날 그간 아이들을 사회로 보낼 준비를 하며 함께 동고동락했던 학부모님들과 졸업의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서로에게 응원과 지지의 말을 전했는데 한 학부모님께서 부탁이 한 가지 있다고 말씀하셨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면 흔쾌히 들어드리겠다 응답했고, 그러자 학부모님께서는 졸업 이후에도 아주 가끔씩 아이들과 선생님이 만나서 그동안의 일과를 나누고 조그만 친목모임이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다. 사실 교사 입장에서는 매해 졸업반을 맡게 된다는 전제하에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졸업생이 배출되는 구조로 졸업한 학생들과 함께하는 사적모임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강제성이 있는 모임이 아니고 졸업한 학생들에 대한 추수지도는 특수교사로서 늘 고민하던 부분이었으며, 졸업 후의 아이들의 일상과 변화, 성장도 일면 궁금하였기에 비정기적으로 모이되 아이들이 모임의 주축이 되며, 나는 가능한 때에 참여하며 필요한 경우 아이들의 모임 운영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는 것을 전제로 모임을 만들어가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20239월 현재, 2019년에 졸업한 아이들은 매해 1~2회 정도 투표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임 날짜와 장소, 회비를 정하고 꾸준히 만나고 있다. 처음에는 모임 날짜를 취합하여 정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고 만나서 먹는 음식의 종류를 정할 때도 서로의 선호도가 달라 작은 다툼이 있기도 했으며 회비 정산과정에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학부모님들의 개입요청으로 인해 회비 정산 과정에서 지도를 해준 적도 있지만, 5년여의 시간동안 친목모임을 꾸려나가며 아이들은 분명 성장하였다.

 ​사실 사설 학원(치료센터, 복지관 등)에서도 자조모임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이용자들끼리 모여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조모임은 아이들의 사회성을 기르는 교육의 일환으로 일종의 이용료를 내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숙제처럼 참여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리 전공과 졸업생들이 운영하는 친목모임 역시 아이들에게 숙제로 다가오지 않을지 나름의 염려가 있었다. 특히 자폐성 장애의 특성상 1년에 몇 번은 모이자!라고 공지를 하고 나면 반드시 그 횟수를 채워야만 하고 졸업생들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참석자의 임의 변동도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늘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전을 늘 강조했었기에 모임 이후 집으로 가는 시간을 고려하여 모임 장소는 지역사회 근처로 정하고, 과도한 회비는 개별적인 부담이 될 수 있어서 적정선을 정하고, 모임의 총무는 모임 때마다 돌아가면서 하는 등 나름의 규칙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가장 의미를 두고 싶었던 부분은 아이들끼리 친목모임을 잡기 위해 서로 전화나 SNS로 연락하며 일상을 주고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각자가 겪었던 일상에 대한 일방적인 이야기 전달의 형태였지만 서로의 근황을 알고 있고 어디에 취직했으며 어디에 여행을 다녀왔으며 명절에는 어떠한 이슈가 있었는지, 나 역시 나의 친구와 나누는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나눔이 생겼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이 친목모임이 헛되지 않은 모임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실 일상에서 나와 완전히 다른 타인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다보면 의견이 달라서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상대방과 맞지 않아 다툼이나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마다 잘 해결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모든 일을 없었던 것처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럴 때 우리는 친구와 함께 커피 한 잔, 차 한 잔, 술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스트레스를 푼다. 때로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등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친구이기에 할 수 있는 말도 있고, 가족에게 공유할 수 없는 비밀을 친구에게는 털어놓기도 한다. 힘든 회사생활도 내 고충을 알아주는 직장동료로 인해 이겨낼 수도 있고, 교제하고 있는 이성친구에게서 받은 상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친구 덕에 툴툴 털어버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친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친구친할 친오래될 구가 합쳐진 말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의미한다. 나와 전공과를 졸업한 제자들 역시 지금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지만 이렇게 친목모임을 오래오래 나누다보면 인생의 대소사를 함께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위로하며 가깝게 오래 사귄 이로서 친구의 의미를 담뿍 담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가진다. 더불어 나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언제든 터놓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나의 오래되고 친한 친구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살짝 이번 친목모임에서의 이슈를 나누자면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졸업생이 있고, 1023일에 풍물공연을 앞둔 두 명의 직장인이 있으며, 이렇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오랜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 한 선생님이 있었다고 한다.

 






 

저작권표시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와 출처 등을 표시하면 자유이용을 허락합니다. 단 영리적 이용과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총 댓글수 : 0개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