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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백선영]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사법처리할 것""""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08-04 조회수1,067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사법처리할 것” 

마치 흉악범 잡는다는 포스터라도 내건 것 같다. 선량한 시민들을 볼모로 투쟁한다며 절박하게 싸워야 하는 사람의 상황은 1도 모를 법한 여당 대표,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치기하면서 공정한 법 처리를 요구하던 그의 언사에 숱한 사회적 비난이 쏟아져도 이 사회를 운영하는 권력은 그런 이들의 손을 들어준다. 김광호 신임 서울경찰청장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사회적 장치의 부재라는 선명한 현실보다는, 권력을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며 전장연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 사법처리하겠다는 망언만 일삼고 있다. 전철 하나 타기 위해 숱한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고, 활동지원사가 없는 밤에 불 타 죽어야 하는, 장애인들에게 닥친 사건 사고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안타까운 사연일 뿐이다. 돈 따내기 위해 싸운다는 비아냥마저 손쉽게 들린다. 그러나 예산 없이 제도를 운영할 수 없고, 그 예산을 향한 파이 경쟁으로 먼저 내몰았던 건 정부다. 충분한 복지 예산보다 부자 감세에 초점이 맞춰진 윤석열 정부 하에서 장애인들의 권리는 아랑곳없다. 그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였으니 엄벌한다"는 기조만 있을 뿐.

 

경찰서부터 법 위반-엄벌의 대상은 누구인가?

결국 전장연의 활동가 28명이 36개의 사건으로 입건돼 경찰 출석 요구를 받고있는 상황이다. 전장연은 경찰 조사에 친절히 응했으나 문제는 경찰서 내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안 돼 있단다. 세상에 이렇게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있는가. 장애인들을 이동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꼬집는데, 바로 그 구조적인 야만들을 본인들이 행하고 있다는 것. 이는 저들이 그렇게도 외쳐대는 법치에도 반하는 일이다.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동권, 장애계 일부의 의제가 아니고 모두의 의제

전장연의 투쟁은 2022년 장애인권리예산 쟁취가 주 요구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는 투쟁이기 때문에 이동권 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권,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라는 보편적 권리, 이는 발달장애인들의 의제가 될 수 없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 대한항공에서 자폐인의 탑승을 거부하는 사건이 일어나 논란 중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몇몇 개인의 경험만 들어봐도 비일비재하게 있어 온 것들이다. 내 경우에도, 아이와 휴가철에 놀러 간 곳에서 배를 타려고 할 때에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낯설고 변화된 환경에 큰 소리로 울자 내리라는 선장의 명령을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어떠했는가. 발달장애인은 마스크를 써야만 공공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사실 발달장애인의 이동권은 훨씬 더 열악한 수준인데, 명문화되어 있진 않아도 이동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부터 실생활에서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왔을 때, 쓰기 힘들고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의 조건 자체를 제기하면서 예외 규범을 만들기는 했으나 교통 수단 이용까지 확대되지는 못 했다. 발달장애인은 예외라는 안내 방송은 하지 않아서 마스크 쓰기 힘든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들은 아예 외출을 제한하거나 자차가 있는 경우에만 이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동 수단에 대한 접근권 자체가 제한되는 배경은 결국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은 공공의 위험을 자극한다는 논리에 있고, 이는 발달장애인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는 낙인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동 수단만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 자체에서 수용되지 못하는 결과를 번번이 낳아왔다.

사실 전장연 투쟁 초기에 일부의 시선들은 전장연이 신체 장애인 중심이라며 문제 제기도 있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전장연의 투쟁은 신체장애인 중심의 투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의제의 확장을 제기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그 의제들을 더욱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당사자나 가족, 연구자 활동가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발달장애인에게 이동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내부의 공론화, “발달장애인이 공공교통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인식과 규범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의식을 사회에 던지고, 그에 기초한 캠페인들도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저항과 투쟁이라는 행동들을 통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의 의제가 협소하다는 제기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요구의 연결점들을 찾고, 확장시켜내고 함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방안들을 고안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지구 끝까지 쫓아와 범죄를 묻겠다는 경찰청장에 맞서 지구 끝까지 찾아가 우리의 권리를 찾겠다는 각오를 보인 전장연,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일하며 살 권리, 존재 자체를 존중받을 권리를 위해 수많은 장애인 동지들과 활동가들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가열 차게 싸우고 있다.

현재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겐 징역 6개월의 구형이 내려진 상태다. 자신의 버스 탑승을 거부하는 버스 기사에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외치며 15분간 출발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마저 구조적으로 침해당해온 현실은 비단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만 향해 있지 않다. 나를 거부하는 공간, 내가 이용할 수 없는 공공시설, 발달장애인들도 억울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의 과거를 복기해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누군가는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한가롭게 배나 타며 여행이나 다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화를 내며 내리라고 말한 선장에게 몇 마디 던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여행할 권리가 있고 즐길 권리가 있다고”. 물론 박 대표 만큼의 일장 연설에는 자신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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