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시간들 09_김명희]:사고는 한순간
4월24일
딸과 함께 잠시 회사에 나갔다가
볼일이 있어서 외츨을 했었는데 찰라에 남편이 전화를 했다
아들이 뛰어 가다가 넘어져서 발목을 접질렀다는 통보였다
그래서
지금 병원을 가는중이라고 했고
나도 뭐 발목을 접질러 본적이 있었던 터라 크게 걱정을 하지않고
여기 저기 밀려있던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진료중인 정형외과에서 X-RAY 초음파 그리고 CT까지 찍었는데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고 수술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MRI까지 촬영을 하라고 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X-RAY 초음파 CT까지 찍었으면 어느정도 진단이 가능할테고 그러인해 수술 여부도 알수 있을텐데 라는생각에 앞서 혹여 요즘 병원들이 괜히 과잉 진료들을 많이 하는곳들도 있다는 소식을 매스컴이나 주위에서 겪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터라 내심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남편이 전해주는 말 한마디가 과잉진료 라는걸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는데 그말은
실비보험을 들었냐는 간호사의 물음이였고 그로인해 조금생겼던 불신은 더 불신이 깊어져
사실 기분도 상하고 지금까지 한 검사가 있는데 구지 MRI까지 찍자는 의도가 과잉진료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부터는
남편에게 그냥 할수있는 처치만 해 달라고 해서 그냥 오라고 전했다
그후
저녘에 돌아온 아들은 그정도라면 통깁스라도 할줄 알았는데 신발처럼 생긴 보조기구와 약을 받았다며 ᆢ
보조기를 끼고 걷는 걸음은 무겁고 몹시 불편해 보였다
슬슬더워지는 기온도 그렇고 씻고 닦는것도 그러했지만 조금 의지해서 걸으면 그닥 심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보조기를 끼고 한달쯤 생활을 했을까?
힘들면 출근은 하지말고 병가를 내라고 조언해도 구지 괜잖다며 출근을 하고 약은 꼬박 꼬박 챙겨 먹었고
그래고 한달이 지났는데 괜잖아 지려나 했는데 짧지않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처음과 큰차도 없이 여전히 절뚝거리는것은 물론 발을 한쪽 방면으로 착지해서 걸으면서
가끔은 허벅지까지 그리고 엉덩이까지 아프다는 말을 하곤했다
우리아이들이 일반적인 의사 전달과 일상생활에서의 필요한 언어구사는 별 문제없이 소통이 되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세히 통증을 표현하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평소에 내가 쓰는 언어의 모방으로 "쿡쿡 쓔셔오"
또는"시큰시큰거려요"
"잘 못걷겠어요 걸으면 아파요"라던가
어디가 아프냐는 부위도 여긴가 저긴가 자세히 알수없을 정도로 여기라고 했다가 저기라고 하니
때로는 심하게 아프지는 않는데 관심을 받으려고 또는 좀 아프다고 응석인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기간이 오래여서
과잉진료라고 여겼던 그정형외과에서의 진료는 배제하고 다른 정형외과에 진료를 다시 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과 검사와 보조기를 한달정도 한 상태라고 했더니 우선 또 X-RAY를 찍어보자고 했고
결과는 딩연히 뼈가 금이 가고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보조기를 벗고 3~4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보조기는벗고 3~4일 뒤에 혹시 뼈에 작게 생긴 금은 그때 보일수도 있다는 설명 이었다
그래서 그 3일이 지난 오후시간에 또 병원에 다시 들렀는데 환자 너무 많아서 벌써 진료 마감이라고 했다
그래서 간 걸음에 옆에 통증의학에 가서 지금까지 아프다고 하니 통증이라도 줄며볼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진료를 보기로했다
다친 과정과 앞에서 진료를 받은병원에서 한 여러가지 검사와 그래서 과잉 진료인듯 했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거기서는 또
우선 초음파를 다시 보자고 했고 초음파를 보는 도중 의사 선생님은 이런 이런 하시면서 보는 내내 긴장감을 주시더니
하시는 말이 지금 초음파를 보니 인대 파열이 맞고 이전병원에서 과잉진료는 아닌듯 하다고 했다
부연설명으로 인체해부학 책을 펼치고 발목의 인대를 보여 주시며 절대 파열될수 없는 인대까지 상한것 같으니 큰병원으로 이동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의뢰서를 써 주었다
그래서 상급병원을 가기로 결정했고
아들은
수술이라는 단어를 들은 뒤부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긴장감에 엄마 엄마 계속해서 부르며 평소에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하고 초조한때 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진료 마감이 될지도 모르고 예약이 안된 상태라서 더구나 진료를 못할수도 있어서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 곧바로 오면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부랴부랴 도착을 해서 진료를 하고 타의원에서 수술을 해야한다고도 전했다
수술결과는 MRI를 찍어 본 후에야 결정을 해야했고 MRI를 저녘시간에 찍을수 있어서 입원을 하기로 했다
수술이나 입원 이라는 말은 들어는 봤고 또 드라마를 같은곳에서 본 수술과 입원이라는 걸 보고 알고 있었는지 입원하고 수술을 언급할때 부터는
더 심각해져서 안절부절 못했다
입원해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MR I촬영시간이 다가 왔고 무엇이라고 설명을 해도 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검사에 대한 긴장감을 내려놓지 못했다
내심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잘모르는 상황이라 엉겁결에 할수있을거라 믿었다
그래서 어찌하던 촬영을 해야 진료를 할수 있으니 시작을 위해 영상의학과에 도착하니 혹시나 폐쇄공포증이 있냐는 질문에 한번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고 폐쇄공포이라는 말을 아들이 듣고는 대충은 그게 어떤것이라는걸 알았는지 더 불안해 하며 촬영실에 들어가는데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잠깐만 이어폰끼고 있으면 되고
그리고 누구나 다 할수있고 너도 할수 있다고 하고 나와서 기다라는데 마음이 짠하고 몹시 기분도 그러했다
얼마를 지나 아니나 다를까
보호자를 찾았다
결국에는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 고 해서 촬영 실패를 했다고 했다
병실에 들어와서 저녘밥이 나왔는데도 밥맛이 없다며 먹지를 못하고 밤새 조마조마하며 다음진료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한번
수면 촬영을 하는거로 결정이 났고
다음날 오후에 시간이 정해졌다
다음날 오전시간 동안 기다림은 지루하고 또 아들의 흔들리는모습이 혹시라도 또 실패를한다면 진료 잔체가 불가 인가? 하는 불안감이 들면서 내가 경험한 공횡장애의 공포가 스물스물 올라 오려고 해서 긴장감을 놓칠수 없었다
아들은 그사이 그래도 아는 지인들에게 입원이니 수술이니 하며 불안감을 전달 하고 위로 받기도 했고 그중에는 친한 여사친 두명은 그소식을 듣고 또 병문안을 온다고도 했다
그사이 재 촬영시간이 되었고 진정제를 투여후 시도 한다고 설명을 듣고 아들도 나도
초조하고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아들은 촬영실로 나는 대기실 벤치에 앉아서 기도를 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또 다시 보호자를 찾았다
어쩐지 쉽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것이 아니라 그게 진정제를 투여한 후 재 시도 에서도 수면상태가유지 되지않고 너무 많이 움직여서 또 다시 실패라고 했다
더이상은 약물은 용량이 과다여서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서 위험할수도 있다고 했다
처음에 실패한 자체도 그랬지만
또 MRI결과가 없으면 수술이 불가능 할텐데 그후가 사뭇 걱정이 되니 조금 참고 할수도 있을텐데 그리고 왜?또 수면이 되지를 않았는지 ᆢ등등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촬영에 실패하고 나오는 아들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조금 원망 섞인 투로 좀 참을성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는 욕심과 차후 또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사이 여사친 두명이 서울에서 찾아왔다 두사람 언젠가 같은 알바를 하는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인데
케잌과 음료를 사서 대중교통ㅈ으로는 2시간 이상 걸리는 그 먼길을 그것도 오전 근무시간을 마치고 찾아왔다니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서로 위로해 주고 격려하며 걱정해주는 따틋한 마음을 보면서 가득차 있던 걱정들이 그시간 만큼은 줄어드는듯 했다
결국 수술은 하지못하고 통깁스를 하는것으로 모든것을 대신했는데 통깁스후에는 목발을 보조도구로 사용해야 했지만 혹시나 어설프게 사용하다 넘어지기도 한다면 더 큰 불상사가 생길것 같아서 며칠간은 힐체어를 임대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집에서와서 힐체어를 사용하려니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가장큰 불편함이 화장실 사용이였는데 화장실 갈때도 입구까지는 힐체어에 앉아 가서 그후에는 아빠가 업던지 부축을 해서 겨우 겨우 사용하는듯 일상의 리듬들이 깡그리 어긋나 버리는 현실에 마주하게 되는 등 사소한것에도 어려움이 따라 다녔다
3주를 사용해보자고 했지만 1주일은 힐체어의 힘을 빌렸고 그후에는 1주일은 불편해도 그낭 깁스를 한 발을 디디면서 생활해도 된다고 해서 그방법에 도전을 해 보았지만
이또한 무겁고 무릎까지 고정해 놓은 깁스는 그 무게만큼 또다른 통증을 호소 했고 2주를 보내고 났는데도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아 너무도 걱정이 되는 매일이였다 그래서 도저히 그냥 볼수가 없어 또다시 찾은 병원에서 그럼 이번에는 깁스를 벗어 보자고 했다 그래서 그날부터는 또다른 시도로 깁스는 떼어내고 보조 신발을 신고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나 아프다고 하는 말들이 잦아들지 않았다
또다시 진료를 하면서 수술을 하라고 했는데 깁스를 해서 아직도 이렇듯 걷지도 못하고 통증이 있으니 혹여 잘못되어 영구 장애로 남는것은 아닌지?
마음속에 쌓여있던 걱정을 말했더니 절대 그렇지는 않다며 물리치료를 권유했고 영구장애는 절대 안된다기에 안심을 하며
지금 까지 물리치료와 굳은 인대를 부드럽게 하는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았다
4월24일 사고 이후 어느새 8월 이 다 지나가고 있다
그동인 불편하고 힘든 과정을 그래도 잘 견뎌내어 조금씩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의 정상에 가까운 걸음거리와 통증의 호소도 훨씬 적어졌다
그러면서 몸이 불편해서 잘걷지못하는 외삼촌 생각이 났다고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 알것 같다고 해서 그경험으로 또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마음 하나를 읽을수 있게된것 같아서 한걸음또 성숙해지는 시간이 된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몇달만에 처음으로 식구들과 스크린을 쳤는데 버디도 두개를 잡고 처음 이글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서 그동안의 시름을 말끔하게 씻겨 주었다
잠깐의 잘못과 실수로 일어난 순간 의 사고가 얼마나 오래동안 일상에서의 힘듬과 고통이 되었는지 새삼 느꼈고 건강이 중요함을 온가족이 크게 느낀
그래서 힘들었지만 그 또한 귀한 경험을 할수있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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