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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5_김종옥] 4월은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4-19 조회수2,053

1. 그러라 그래

 

얼마 전에 양희은이 나온 한 TV 프로그램을 봤다. 까마득한 신인가수들과 함께 앉은 양희은은 노래에 얽힌 얘기도 하고 후배들이 부르는 자신의 노래도 듣고, 또 자신의 노래도 들려주었다. 젊은 시절, 그의 노래를 듣고 부른 나와 같은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요즘 사람들이 원로가수양희은을 듣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언젠가부터는 노래보다는 네 이름이 뭐니라는 그 유명한 문장이 노래보다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엔 그러라 그래라는 말이 그를 대표하는 수사가 되었다. 그 제목의 책까지 낸 것을 보면 그러라 그래라는 말로 그 자신이 대표되는 것이 썩 괜찮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러라 그래라는 말이 갖는 뜻이 담백해서 참 좋다.

상대가 하는 짓을 허용하겠다는 뜻이며, 나는 그것에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다. 그는 그럴 권리가 있으니 그걸 낵 어쩌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가 누구의 행동을 말리거나 간섭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누가 무슨 헛짓을 하든 나는 영향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누가 다른 누군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나에게 일러바칠 때, 또는 누가 다른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공연히 속을 끓일 때에도, 다른 누군가 때문에 네 속을 너무 후벼파거나 공연한 헛염불 들이지 말라는 충고가 된다. 다정히 어깨를 쓰다듬는 위로의 충고가 아니라, 등짝을 한 대 툭 치면서 내뱉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너의 그 번잡한 속이 실은 네 스스로 엉켜놓은 그물 같은 것이니,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그냥 툭, 툭 잘라버리고 나오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고 싶어서 그러고, ‘그러기 싫어서 그러지 않는다. 비극은,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억지를 부리고, ‘그렇게 해주기 싫어서 고집을 부릴 때 생겨나는데, 우리는 수시로 이 비극을 스스로 짓는다.(굳이 떠올라서 덧붙이자면, 친정 엄마들은 대체로 이 그러라 그래가 절대 안 되는 분들이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그러라 그래가 아니다. 실은 내가 양희은의 담백을 이해하기까지는 세월이 좀 걸렸다는 고백을 해놓고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서두가 길어진 것이다. (이것도 내 병통의 하나이지만,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굳이 고칠 게 무에 있겄나, 그냥 그러라 그러지, .)

 

어린 시절, 나는 양희은이 너무 담백하게 노래를 부르는 게 못마땅했다. 아침이슬 같이 처절한 노래를 너무나 맑은 목소리로, 한숨 하나 섞지 않고 매끈하게 부르는 게 어색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서 벌어진 그 끔직한 비극을 전하는 노래가 마치 졸졸졸졸 흐르는 요르레히디요하는 요들송처럼 청량하게 들리는 게 이상했다. 내가 듣기에 운동권가요가 건전가요처럼 들렸다는 얘기다. 그러다 한계령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으면서 내 오랜 착각에서 벗어났다.

 

무언가를 보태지 않아도 될 때는 보태지 않는 게 좋다. 노래에도, 연기에도, 글에도, 말에도, 그리고 마음에도-. 보태지 않아야 오직 그 안에 있는 고갱이,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쌓인 내공이 없고 다져놓은 내면이 얕으면 담백하지 않게 된다. 허세를 부리거나 질척거리는 때가 이런 때다.

 

그런데 양희은의 담백을 알고나서 또 새로운 병통이 생겼으니, 그것은 내 생각에 담백하게 불러야 좋은 노래를, 누군가 담백하지 않게 감정을 너무 넣어서 간지럽거나 토하듯이 부르면 그만 몹시 화가 난다는 것이다. 조미료를 많이 친 음식, 과하게 장식한 옷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언짢아지고 마는데, 그걸 못참고 내색을 하면서 욕을 한바가지 퍼붓는 때가 생겼다. 딸이 그런 나를 보면서 한마디 내뱉는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 그게 그 사람 스타일인 걸 어쩌라고, 그냥 그러라 그래~. 나는 졸지에 꼰대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이야기의 주제가 그러라 그래도 아니고 담백도 아니라고 했으니, 이제 본론이다. 양희은이 그 담백함을 갖고서 부른 ‘4을 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 ‘4의 가사를 쓰려다 몇 해를 넘기면서 결국 못 쓰고 다른 이가 썼다고 했다. 내가 본 프로그램에서는 이 노래를 후배가수가 불렀는데, 그가 부른 ‘4도 좋았지만, 양희은의 목소리로 다시 듣고 싶어져서 다시 찾아 들었다.



2. 4
월의 노래

 

꽃잎이 난다 사월이 간다 / 너도 날아간다 / 산 그림자 짙은 이곳에 / 나는 떨고 있는데 / 봄비 내린다 꽃잎 눕는다 / 나도 젖는구나 / 녹아내리는 시절 / 기억들은 사람이었구나

다 보냈다 생각했는데 / 잊은 줄 알았었는데 / 숨쉬고 숨을 쉬고 / 또 숨 쉬어봐도 남는다 / 모자란다 니가 / 내 몸이 녹아 내린다 / 네게로 스며들었다 / 꽃잎은 날고 봄비 내리면 / 나를 보낸다 / 꽃잎이 난다 / 사월이 간다 / 나도 날아간다

 

우리에게 4월이란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겨울을 지내고 온 천지사방에 화사한 꽃들이 여기저기서 일제히 올라온다. 봄꽃은 피고지고 하는 여름꽃들이나 계절 내내 피어있는 가을꽃들과 달리 달려들 듯 피었다가 꿈인 듯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이 봄꽃들을 보면서 그렇게 찬란하게 왔다가 홀연 사라진 이들을 생각한다.

 

봄꽃이 필 때면 수유리 419 공원에 가서 꽃을 보며 젠장, 더럽게 곱네~’라고 비장한 인사를 건네는 때도 있었다. 그러다 아예 7년전부터는 봄이 봄이 아니다. 세월호 엄마들이 봄꽃이 피어날 때마다 아프다 했으니, 그분들에게 봄꽃은 살을 후벼파고 찢으며 올라오는 꽃들이다.

 

처음엔 철철 흐르는 눈물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없이 바다를, 봄을 볼 수가 없었다. 나의 눈물과 너의 눈물이 그물이 되어 세상을 덮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쩔쩔 매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는 슬픔이 담백해진 것을 알겠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고, 여전히 분노하지만, 날것으로 퍼덕이덕 슬픔은 이제 단정히 접혀서 7년의 두께만큼 마음 한켠에 놓였다. 그리고 담백한 것이 담고있는 무게와 힘을 느낀다.

 

이번 416일에는 새로 조성된 안산의 기억교실에 갔었다. 기억교실이 있는 건물 앞 광장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노래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무치는 사람의 이름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다. 단원고 2학년을 그대로 옮겨놓은 교실에는 책상마다 아이들 사진과 꽃과 공책 등이 놓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몇 반 몇 번이었더라, 기억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 가 앉아보았다. 세월호 아이들은 살았으면 올해 스물다섯 살이란다.

 

그 나이쯤 되어보이는 한 청년이 어떤 책상 앞에 서서 그저 물끄러미 공책이며 메모며를 내려다 보고 있더니, 또 다른 책상 앞에 가서도 한참을 그러고 섰다. 내가 윗층 교실을 다 돌고나서 내려와 보니 그 때까지도 그렇게 어떤 책상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그에게도 4월은 한숨을 아무리 쉬어봐도 사라지지 않는 눈물이며 한숨일 것이며, 이 세상은 노랫말처럼, 누군가로 채워지지 않아 모자란 곳이 있다.

그가 그저 우두커니 서서 말없이 삼키고 있는 담백한 슬픔을 보았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일은 삶의 일이다. 살다보니 그런 그리움을 담고 살 일이 있는 것이다. 그게 봄이라, 하냥 피었다가 매정하게 일제히 꽃비가 되어 떨어지는 봄이라, 아련하고 강렬한 그리움이 더 깊어가는 것이다.

기억교실을 나와 전철 타는 곳으로 걸어가는 내 등 뒤로 아이들을 호명하는 노래가 따라온다. 그 노래는 마치 나비처럼 나폴나폴 날며 따라온다. 노래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곳에 와서 길을 건너려고 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널 지키는지 네가 날 지키는지

 

나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그리움으로 지키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도 나의 삶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그뿐이랴, 그 아이들이 세상도 지켜주고 있다. 우리가 아직 연민과 연대의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은, 봄꽃같은 그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꽃같은 연민과 연대의 상징으로 그 아이들이 또한 있기 때문이다.


3. 슬프고 찬란한 봄의 힘
 

세상은 무심하여, 올해의 봄은 미안마의 처참한 고통과 함께 왔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4월 한복판, 20일이다. 세상은 이 봄에, 무심함으로, 차별과 배제로, 무례함으로 고통을 받았던 이들을 떠올리며 참회해야 한다. 그 바탕에는 연민이 깔려 있고, 그 표출은 연대의 힘으로 나온다. (‘그러라 그래식의 무심함은 이럴 때 쓰는 건 아니다.)

 

봄꽃같은 사람들이 겨울을 이긴 기쁨으로 축복으로 피었다가, 다시 반짝이는 새싹으로 솟아올라야 하고, 깊고 푸른 잎새로 무성해야 한다. 그게 봄의 힘이다. 4월은 그래서 슬프고 찬란한가 보다. 그래서 나의 봄은, 담백하기도 하고 여전히 담백하지 않기도 하다.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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