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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6_김종옥] < 학교 가는 길 >에 관한 다섯 개의 단상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5-24 10:46:22 조회수313

단상 1 - 문화는 힘이 세다


어 달 동안 다큐영화 <학교 가는 길>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 가는 길>2017년 서울 강서특수학교 건립을 막아서는 사람들 앞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호소했던, 이른바 강서무릎사건에 관한 영화이다. 당시에 이 장면이 찍힌 사진이 보도되면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이 일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말대로 한 장의 사진이 사회를 거대하게 바꾸었던사건이 되었다. 강서 서진학교는 서울지부의 소원처럼 떡벌어진 큰 잔치는 하지 못한 채 2020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조촐하게 개교를 했다.


 

그리고 올해 55, 무릎 사건 그 이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 건립까지의 모든 갈등과 깊은 서사를 담아낸 김정인 감독의 다큐 영화 <학교 가는 길>이 개봉되었다. 이미 지난해부터 여러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터라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긴 했지만, 보란 듯이 전국 개봉관에 걸렸으니 뜻하지 않은 선물더미를 받은 듯 벅차기만 하다.

 

이 영화는 특수학교 설립에 관한 단순한 싸움의 기록물이 아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사는 이야기, 세상의 편견이나 오만과 싸워가는 용감한 엄마들의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의 이야기, 그리고 세상이 변해가(야만 하)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두루 담겨있으니,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보아 주었으면 하는 기대로, 영화 참여자들은 두어 달이 넘도록 영화 알리기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들의 극성(이 말 말고 달리 표현한 길이 없다, 또한 여기서 우리란 부모연대를 말한다)과 영화 자체의 탄탄한 작품성과 배급사의 노력으로 무척 많은 매체에서 영화를 소개해 주었고 영화를 본 사람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소문을 내준 덕에, 영화는 개봉 열흘만에 유료관객 1만명을 넘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특정 소재를 다룬 다큐영화가 1만을 넘긴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1만씩 들었으면 하고 바란다.

 

다큐 중간에 강서4인방의 한 명인 이은자 씨가 우린 투쟁이여~!”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투쟁이다. 이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게, 부모연대 회원인 것이, 우리가 세상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려는 모든 행위가 투쟁인데, 지금 우리는 문화운동으로 격렬히 투쟁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품위 있으면서 효과적이라고 느낀다.(다른 투쟁이 품위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투쟁이 꼭 품위 있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문화는 투쟁의 선동물로서 도구적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뛰어난 투쟁방식이다. 우리는 1만명을 붙잡고 낱낱의 사람마다 99분씩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미안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응원하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삶의 어떤 순간에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어떤 정책을 만들거나 검토할 때, 이 다큐 속에서 생생하게 기쁨과 사랑과 슬픔을 말하던 엄마들을 떠올릴 것이다. 길을 걷다가 어떤 이를 보면서 혹시 다큐 속에서 본 이들처럼 저 이도 발달장애를 가진 이라서 도움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며 잠시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

 

다큐 속에서 우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아이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었고,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내 아이로 태어나 주어야 하는 귀한 존재이다. 그리고 참 미안하다.

이 마음을 1만 명에게 전하고 보니, 10만에게, 100만에게 전하지 못해 아쉽다. 그리 되면 세상을 설득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할 테니.

 


단상 
2-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


든넷 된 친정엄마에게 이 영화를 보여드렸다. ‘데모하는 것들은 국가(보수정권이든 아니든 어느 쪽을 향하든 상관없이)에 위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선동투쟁이 아닌 모험이었다.(영화 속에서 내가 구호를 외치거나 머리를 밀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으니 그리 큰 모험은 아니되, 내가 몸담은 조직이 이런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것은 노출될 가능성이 분명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 영화를 보고나서 자식들에게 분부한 제일성은, “너희하고 너희 아이들 꼭 다 봐라였다. 그러면서 직계자손들의 영화비를 지원하고, 딸의 아들 통장에 용돈을 쓱-, 넣어주셨다. 통화를 하다가 바쁠 텐데 통화를 길게 해서 미안하구나.” 라는, 내가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사를 듣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난 뒤에 친정식구들이 모였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친정식구들이 어찌 변했는지 아직 알 수는 없다. 다만 가족 톡방에서 내가 하는 말에 좀더 빨리, 좀더 상냥하게 답문자를 남기는 것을 보면서 다큐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살고 있으니, 가장 가까이 기대는 사람들부터 이 영화를 보게 해야 하지 않을까. 기대는 어깨가 단단해져야 우리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큐 효과가 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단상 3 - 무릎을 꿇는다는 것


한 고백을 다시 반복하자면, 나는 그 날 그 현장에서 무릎을 꿇려고 나가는 동지들을 붙잡고 말렸었다. 영화 속, 그들이 무릎을 꿇느라 비어버린 의자들 사이에서 망연자실 서있는 게 바로 나다. 반대쪽 주민들이 소리 지르고 욕하고 행패를 부리는 것을 긴 시간 보면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들의 패악질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에 몰두해 있는데, 동지들이 우르르 나가더니 무릎을 꿇었다. 저런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다니, 저런 무례한 자들 앞에 무릎을 꿇다니, 나는 도저히 무릎을 꿇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옜다, 까짓 무릎, 나도 꿇어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맞무릎까지 꿇은 어떤 자 앞에서 당장 일어서라고 고래고래 악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알았다. 우리가 무릎을 꿇은 것은 단지 그 무례한 사람들에게 뭔가를 호소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세상에 불쌍한 표정으로 사정하기 위함도 아니었다는 것을. 새끼를 위해 한 순간 모욕을 당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는 결기의 표현이고, 그 때의 모욕은 이미 모욕이 아니라는 것을. 정작 수치스럽게 느껴야 했던 것은, 말 아닌 말들이 난무하는 강당에서 엄마들이 무릎을 꿇는 장면을 기어코 만들어내게 했던 세상이다.

 

세상의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해 꿇었던 무릎이었다. 굴욕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를 상대에게 되돌리는 행동이었고, 더 낮춤으로써 낮추려는 상대를 낮추어버리는 대단한 저항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날 밤에 깨달았다. 하지만 어쩌랴, 도저히 저들 앞에 무릎을 꿇는 게 너무 싫어서 덩그마니 서있던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다 한들 투쟁에 큰 흠집이 나는 건 아닐 테니,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좀 머쓱한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퉁치고 넘어가려 한다.

 

그래서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적었다.

아이야, 무릎을 꿇은 어미를 보고 슬퍼하지 말아라.
이것은 슬픈 싸움의 기록이 아니라, 즐거운 싸움, 승리의 기록이란다.

그리고 어미들은 너희들을 위해 늘 승리할 것이니-.

 

 

단상 4- 간절함에 대하여


마 전에 우연히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몇 년 전 다큐 영화를 봤다. 티베트의 자기 사원을 찾아가려는 린포체와 그의 스승의 이야기다. 눈보라가 가득한 산 속에서 린포체 앙뚜가 뿔소라를 꺼내 분다. 멀리 있는 그의 제자들이 듣기를 바라며 힘껏 부는 뿔소라 소리는 눈보라와 함께 온 산에 가득하다.

 

 

간절함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간절함을 갖는 일이 있다면, 이 또한 차가운 산 속 눈보라 속에서 뿔소라를 부는 것처럼 할 일이다. 먼지와 욕지거리가 난무한 체육관 속에서 무릎을 꿇는 일처럼 할 일이다. 때로는 이 일들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어쨌거나 상관없다. 이미 그 일 자체가 기적이다. 우리의 단단한 내면의 투쟁, 승리의 기록.



그리고 단상 5 - 김정인을 위하여

(* 진작에 한 식구처럼 된 김정인 감독에 대한 찬사를 기록해두지 않을 수 없어, 이 글에 붙여 놓는다.)

 

2017년 가을, 먼 데 있는 특수학교에 힘들게 다니는 장애자녀를 둔 엄마들이 욕하고 달구치는 이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선 토론회가 거칠고 찢겨진 고함으로 세 시간이 지나간 때였다. 동정을 구해서도, 굴복의 표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대로 단단하게 구축한 진지였다. 오늘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야, 라는 꺽진 항거의 진지.

그 장소에 한 다큐 감독 지망생이 있었다. 그는 장애 쪽도 반대 쪽에도, 어떤 인연이 있어 온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온 것이라 했다. 그 날 그 자리에서 그는 강서 특수학교의 개교까지를 영상에 담기로 결심하고, 이후 카메라를 짊어지고 그 엄마들의 투쟁을 따라다녔다.

 

젊은 감독의 일은 생각보다 긴 여정이 되고 말았다. ‘한 장의 사진으로 사회를 바꾸었다는 이 사건으로 학교 설립까지 단숨에 달려갈 줄 알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동안에 그는 그의 카메라에 담기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들의 투쟁의 여정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차곡차곡 기록하게 되었다.

 

무려 5년이 걸린 제작기간 동안 그는 다큐 감독으로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바른 균형감을 갖기 위해 강서 특수학교 이슈의 모든 배경을 취재하고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였으며, 그 자신의 말대로 작품의 톤앤매너 (Tone & Manner)를 정하는 데 무수한 고심을 해왔다. 토론회 이후 이 사건을 다룬 수많은 언론보도와 온오프라인의 숱한 매체에 나왔던 모든 콘텐츠를 망라하여,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만들어진 모든 관련 콘텐츠를 빠짐없이 모니터링하면서 치우치지 않은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이 다큐는 특수학교를 세우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의 대립이 단선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인한 폐해, 모순된 사회 구조 속에서 오랜 기간 고통을 당한 주민들의 애환 등 말 그대로 가양동의 역사성, 특수성을 충실하게 담은 작품이 되었다. 이걸 만든 김정인, 그는 선하면서 결기가 독한 감독이다.

 

우리 앞에 선물처럼 당도한 다큐 학교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되고 만들어졌다. 이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강서 특수학교 설립 투쟁의 주인공들이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나이였다는 것에 감동하면서, 감독이 담아낸, 울림이 깊은 서사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이야기 안에 감동의 지점들이 이토록 다채롭다니-,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동한다. 단지 내 일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일이라서, 삶의 동지들의 일이라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귀한 인연으로 빚어낸 일이라서 감격한다.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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