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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7_김종옥] 어떤 경쟁은 그 자체로 반칙이다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6-30 조회수1,753

1. 오래된 시장이 있는 동네에 산다

 

우리 집은 꽤 나이 먹은 아파트인데, 나는 이사 오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이 집의 낡음을 타박하며 쭈욱 살고 있다. 어떤 물건을 대할 때 그것의 표정이 보이는 이상한 병통이 있는지라, 내가 타박할 때마다 이 집이 듣고서 상심하거나 심통을 부릴까 슬며시 걱정스럽다. 사는 집은 이렇게 투덜대면서 사는 동네만큼은 유치하게 자랑질 만발이다. 우리 동네엔 오래된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쓰고보니 희한하다. 왜 오래된 시장은 자랑하면서 오래된 집은 구박일까...)

 

우리 집과 전철역 사이에 크고 긴 시장길이 있는데, 여길 오가는 재미가 참 각별하다. 수십 년째 그대로인 가게가 있는가 하면 자꾸만 바뀌는 가게도 있다. 점포도 없이 길가에 푸성귀 몇 가지 놓고 좌판을 열었던 분이 한참 뒤에 작은 가게를 장만해서 산뜻하게 장사를 시작하기도 하고, 장사도 별로 안 되는 것 같은데 매번 근사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개업했다가 정리하고 바로 근처에 또 개업하고 또 정리하고 또 개업하고를 반복하는 집도 있다.

 

이 곳이 최근 몇 년 새에는 나도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더 유명해져서 코로나19에도 서로의 어깨를 스치지 않고는 걷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어주부가 과일과 채소를 사면서 매번 남성시장에서 샀다 자랑하고(심지어 이 시장에서는 아보카도가 한 개 5백원 하는 것도 있다며), 이정현이 끌수레를 끌고 와서 호떡을 먹고, 이영자가 신기하다며 떡집 앞에서 떡을 사서 돌리기도 하는 그 시장이 바로 우리 동네 시장이니, 자랑질을 할밖에.

시사주간지에 난 어묵집도 있고, 숨은 맛집 고수들이 찾아낸 메밀국수 집도 있고, 비빔국수와 물국수 딱 두 가지만 파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행복한 국숫집도 있다.(이 두 집은 절대 안 가르쳐 줄란다. 지금도 땡볕에 이십 분씩 줄을 섰다 먹는데, 더 알려지면 정말 큰일이다!)

 

2. 선을 넘는 가게들

 

그런데 이 시장길을 오가는 것이 대체로는 매우 각별한 즐거움이지만 또한 동시에 고질적인 고통이기도 하다. 이른 점심때부터 매일 고주망태가 되어서는 시장 어귀에 서서 오가며 눈을 마주치는 모든 이에게 욕을 퍼붓는 할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이미 그 할아버지는 늘 그러한 풍경 속의 정물이 되어서 누구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잰걸음만 떼면 그뿐이니까. 오히려 건강을 잃고 한참 출근하지 못하셨을 때 동네사람들이 얼마나 은근 걱정들을 했었는지. 그렇다고 또 거의 날마다 시장길 초입(고주망태 할아버지와 대략 이삼십 미터 거리를 두고)에서 상품권 다발을 내밀며 여러 일간지 구독을 권하는(심지어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함께) 아저씨의 한결같은 속삭임(“신문보세요, 신문”)이 부담스러워서도 아니다. 내게 고통을 주는 건 선을 지키지 않는 가게들이다.

 

시장의 가게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 잇따라 있기에 길을 표시하는 선이 쭉 그어져 있다. 가게의 영역은 딱 거기까지라는 표시이다. 칼같이 이 금을 지키는 오래된 뚝심의 가게도 있지만, 많은 가게들이 슬금슬금 그 선을 침범하고 물건들을 내놓는다. 많이 내놓은 곳도 있고 소심하게 조금 선을 밟는 정도로 내놓는 곳도 있다. 나란히 있는 어떤 집들은 서로 눈치를 보아가며 물건 내놓기 경쟁을 하기도 한다. 제일 고약한 집은, 물건을 내어놓는 것만도 모자라 물건을 실은 오토바이를 턱하니 가게 앞에 대놓는다. 마치 물건을 싣고 나르기 위한 것인 양 짐짓 끈도 내려놓고 위장했지만,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게 길 가는 사람들을 가로막고 자기 가게로 억지로 들이기 위한 꼼수라는 것을 다 안다. 심지어 길가에 과일과 채소 상자를 잔뜩 내어놓은 어떤 집은, 정작 가게 안 진열대는 휑하니 비어 있는 때도 많다.

 

가끔가다 어쩐 일인지 일제히 금 안으로 물건들을 들여놓을 때도 있는데, 아마도 민원으로 단속을 하거나 상인회에서 자체결의를 하거나 했겠지만, 얼마 가지 않아 가게의 영역은 고무줄처럼 또 늘어난다. 조금 내놓는 집은 조금 얄밉고 많이 내놓은 집은 많이 밉다.

 

3. 시장의 반칙

 

나는 날마다 시장길을 따라 오가며 양 옆의 가게를 살핀다. 오늘은 이 가게가 더 내밀었군, 오늘은 저 가게가 더 들이밀었군, 하고 속으로화를 내며 걷는다. 아마도, ‘속으로가 아닐 것이다. 인상도 잔뜩 쓰고 걷는다.(요새는 마스크 속에서 소리내어 구시렁거리기까지 한다.)

이 아저씨는 안 그러셨는데 왜 반칙 대열에 합류하셨나, 아니 저 아주머니는 언제 그릇 하나를 더 내놓으셨나. 나는 참으로 별스럽게도 이십 년도 더되는 세월을 날마다 오가는 길에 어느 가게 물건이 튀어나와 있는가를 꼬나보고 화를 내며 다닌다. 그러면서 금을 넘어 상품을 내어놓는 가게 물건은 절대로 사지 않는다는 소심하고도 단호한 응징을 한다. 이게 나의 공정(公正)이다, 이러면서. 어쩌다 시장길에 동행하는 딸은, 내가 언제나 같은 소리로 투덜거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단다. 그렇지만 나는 도대체 너무나 한결같이 화가 나는 거다. 이 화는 지치지도 않는다.

 

그들의 반칙이 너무 싫다. 한 집에서 반칙을 쓰면, 그것은 곧 전염이 된다. 점점 더 많은 물건을 앞으로 내밀어 놓게 되고, 급기야는 오토바이를 가게 앞에 세우게 된다. 선을 지키던 사람들은 갈등하게 되고 이윽고 반칙을 경쟁하게 된다. 그야말로 악화가 양화를 걷어차 버리는 고약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야외에서 무언가를 볼 때 모두가 앉으면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군가 더 잘 보겠다고 일어서버리면 제일 앞에 있거나 제일 키 큰 사람 빼고는 누구도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모두를 망치는 경쟁이다. 굳이 경쟁에서 룰을 지키지 않는 것만이 반칙이 아니다. 어떤 경쟁은 경쟁 자체가 반칙이다!

내가 아껴 자랑해 마지않는 이 시장길에서, 반칙하는 가게들 때문에 나는 날마다 또한 괴롭다. 괴롭기는 하되 그럭저럭 어떤 행동을 하지 않고 견뎌온 것을 보면, 이 못된 경쟁을 미워하는 마음이 나를 말려죽일 정도는 아니었던가 보다. 그래도 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이 째려보고 욕하면서 오갔으니 참 엔간히도 밉고 싫은 마음이 고집스레 쌓였다. 날마다 더케로 쌓이는 미움이다.


4.
어떤 경쟁은 그 자체로 반칙이다

 

예전에 가족오락관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도 즐겨 봤는데, 내가 재밌어 한 부분은 바로 그 프로그램의 게임에는 반칙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의 의지였는지 모르지만 그 게임들에는 반칙이 용납되지 않았다. 어차피 오락이고 웃자고 하는 게임인데도 누군가 슬쩍 반칙을 쓰면 여지없이 점수가 인정되지 않았다. 떼를 써도 소용없고 속이고 넘어가려 해도 반드시 적발이 되었다. 보는 내내 얼마나 마음이 편하든지.

 

그러고보니 이 병통은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듯싶다. 경쟁하는 놀이가 참 싫었다. 일테면 의자뺏기, 모둠짓기 놀이들이 그랬다. 누군가 낙오시켜야 하는 놀이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약빠르게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의자를 놓치고 낙오된 아이들을 볼라치면 그 눈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때 그 낭패, 허망함, 약오름이 마치 한 동이 물을 뒤집어 쓰는 듯 그대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 경쟁이 반칙을 동반해서 결과가 바뀌었을 때, 마음 속에 가시뭉텅이가 콱 박혀서는 두고두고 분했다. 그러다 그러다 어느 때인가부터 어떤 경쟁들은 그 자체로 반칙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많은 경쟁이 불평등한 출발을 하고, 공평하지 않은 조건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출발선이 반듯하면 공정하다 하고, 같은 도구를 주면 공평하다 한다. 그 출발선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불평등하고 누구나 세워놓는 그 반듯한 출발선이 불공정할 수 있는데도 그것이 공정하다고 말한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출발로 경쟁하고, 그 결과 차지한 것이 천지 차이가 나는데도 그것은 공정한 경쟁의 산물이라고 착각한다.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누리고 사는데도 그것이 경쟁의 산물이면 공정하다고 우긴다.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살아오면서 스스로 불평등한 욕망의 괴물들이 되어버린 걸까. “네가 일한 만큼만 처먹고 살아!”라는 영화 대사를 들으며 속이 후련했던 것은, 대개는 일한 것보다 더 부풀린 댓가를 바라고 일하며, 그런 일은 대체로 경쟁이라는 속성을 갖는다는 이유에서였을 게다.

 

경쟁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한 겨룸이고 보면, 그것은 누군가 무언가를 획득한 것에 대해 정당한 획득으로 승인을 해주는 과정일 수 있다. 경쟁했니? , 경쟁하느라 노력했겠구나, 그럼 네가 차지한 것은 공정한 승리의 전리품이다, ,,.

하지만 우리는 안다. 링에 오를 수 있고없고부터도 이미 경쟁을 치룬 결과이고, 그 때의 경쟁은 그런 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며, 그로써 얻어지는 것은 많은 이들의 욕망이 덧씌워진 도박판의 판돈이 올라간 과장된 전리품이라는 것을. 우리의 불평등한 욕망은, 혹시라도 내가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음흉하게도 그 판돈을 올려놓은 채로 그냥 놔둔다는 것을.

 

평평하지도 않은 땅바닥에다, 보이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입구를 가진 운동장에서 승자를 위한 룰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공정한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지는 무수한 우연과 행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운동장이 평평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건 거짓이다. 그 사기에 동참하면 안 되며, 스스로에게 그 욕망을 허용하면 안 된다. 결단해야 하고 스스로를 꾸짖어야 한다.

 

5. 결단

 

그래서 나는 시장에서 가게자리의 선을 넘어서 물건을 내어놓는 얍삽한 마음이 참 싫다. 못된 경쟁에 애먼 사람들까지 가담하게 만들고는, 마치 그것이 누구나 갖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욕망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이 너무 싫다. 그런 욕망에 솔직한 것이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고 그것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눙치는 게 너무 싫다.

느닷없이 능력있는 자가 많이 차지하고 살면서 그렇지 못한 자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공정한 세상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었다. 내 아들하고 나이차가 많이도 나지 않는 그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나훈아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내 아이가 그가 등판하는 운동장에 서기 어려워 휘청거리거나 그늘에 앉아있을 게 분명해서 그의 말이 싫은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공정이, 숱한 반칙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기 십상이라 그렇다. 운동장에 서기 전에 자신을 포함하여 그 운동장에 설 사람들의 삶에 대해 성찰해야 하며, 그 운동장에서 겨뤄서 차지할 것들이 공정한 댓가인지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그 때 비추어볼 세상에는 자신의 욕망은 제외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야 공정할 수 있다. 자신의 욕망을 제외한 세상에 비추어 살펴보고, 공정하지 않다면 그 운동장에 들어서지 않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 자기 결단을 할 자신이 없는 자가 운동장에 들어서는 것을, ‘위험하다말한다.
 

.... , 경쟁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에게, 위험한 세상의 목록이 도대체 줄지를 않는다, 날마다 내미는 점포의 물건들처럼.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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