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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17_조미영] 예방주사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08-20 11:39:36 조회수366

원 근처만 봐도 겁을 먹고 후다닥 뛰어가는 자폐성장애 아들에게 백신 접종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안 맞고 감염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포기하는 건 꽤나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주사 맞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팔 옷의 소매를 올리면 바로 내려버리는 아들에게 우선 민소매티를 구입해서 입혔다. 소매 올릴 필요 없이 바로 알콜스왑으로 팔을 소독하고 코바늘로 꾹 눌러 5초간 견디는 연습을 했다. 처음엔 인상을 쓰며 내켜 하지 않다가 계속 반복하다보니 반소매를 입은 날도 스스로 소매를 걷어 올려 주사 놀이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정하진씨, 주사 맞읍시다.”

라고 말하면 바로 달려와서 팔을 내밀었다. 무사히 잘 맞을 수 있을 거란 기대와 한바탕 전쟁을 일으키고 정작 주사는 구경도 못하고 돌아올 수 있겠다는 절망감이 수시로 찾아왔다. 누군가는 잘 맞았다고 좋아하는 소식이 들렸다. 부러웠다. 또 누구는 소란만 피우고 끝내 접종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고도 했다. 아들도 그럴 것 같아 심란했다.

그래도 열심히 연습을 했고 드디어 접종 당일이 되었다.

체크와 예진표를 작성하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아들의 표정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의사와의 문진은 순조로왔다. 선생님을 바라보며 얌전하게 앉아 약물에 대한 이상 반응과 접종 후의 주의할 점에 대해 잘 들었다. 대기실로 나와 마지막 관문을 기다렸다. 부스에 들어가 주사만 맞으면 끝인데 아들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주사기를 들고 있는 간호사를 보자마자 냅다 뒤돌아서 대기실 의자에 도로 앉았다. 불안한 눈빛과 빠른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꼬기 시작했다. 나는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괜찮다느니, 안 아프다느니, 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게 무의미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조용히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에서 연습할 때랑 분위기가 달라서 당황했구나. 기다려 줄게.”
 

사와 간호사들이 부스에서 나와 한 마디씩 했다. 다들 걱정스런 마음인 걸 알지만 아들에게는 소용없는 조언들이었다.

과자로 유인해서 들어오게 하면 될텐데...”

아들은 식탐이 있긴 해도 상황에 따라 먹거리를 포기한다. 까짓 거 안 먹으면 되는 걸 너무 잘 안다.

엄마가 안고 아빠가 아들 못 움직이게 꽉 잡으면 되는데...”

아들은 안기는 걸 거부한다. 설사 내가 안는다 해도 바로 빠져나가는데 아들의 덩치를 감당할 수 없다. 남편 역시 아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다.
 

들이 몇 번을 부스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걸 본 접종센터장이 진심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 주었다. 차 안에서 맞고 간 경우가 있다며 우리도 그래 보자고 했다.

넓은 공간에서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 생포하듯 건장한 남자들이 아들의 사지를 잡고 뭔가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차라리 예방 접종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에 그나마 차 안의 좁은 공간에서는 시도할 만했다.
 

마와 아빠가 자신의 몸을 잡고 있는 걸 불편해 하는 사이 간호사는 재빠르게 아들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팔을 움직이는 바람에 주사 바늘이 아들의 팔을 길게 스쳐가서 피가 났다. 통증으로 그랬을까? 아들이 멈칫하는 사이 간호사는 접종을 마쳤다. 반창고를 붙이려 했으나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땀에 젖어 반창고가 미끄러져 붙지 않았다. 15분 동안 대기하면서 아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예방 주사 맞은 거야. 수고 했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고 남편은 고생했다며 아들을 칭찬했다.

 

사 맞는 연습은 사실 무의미한 것이었다. 주사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가 문제였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팔을 잡는 자체가 아들에겐 공포였다. 본인이 두렵다고 결정한 이상 그 어떤 설명도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주사를 맞게 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점잖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대했으나 아들은 두려운 분위기와의 싸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나마 어릴 때처럼 바닥에 누워 뒹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는 게 늘 고비다. 앞으로 어떤 고비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생각하면 암담하다. 하지만 또 이렇게 넘어갈 수 있음이 다행이다. 미리 겁먹지 말고 평소에 내공을 잘 쌓아 현명하게 대처하며 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병원만 보면 피하던 아들이 병원 안까지는 잘 들어가고 있으니 예방주사쯤 아무렇지 않게 맞고 나올 날도 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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