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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12_김종옥] 즐거운 투쟁나날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12-16 조회수749

거운 투쟁이라고 쓰고 보니 민망하다. 목숨을 걸고 벼랑끝에서 처절한 심정으로 삶의 투쟁을 하고 있는 숱한 투사들이 있으니.

하지만 때론 즐거운 투쟁의 시간도 있다. 내 기억에 몇 개의 투쟁이 그러했다. 해방구가 열리고, 희망과 열망에 달떠서 노래하고 춤추고 외치고 어깨걸이를 하던 투쟁들이 있었다.

 

투쟁의 추억

 

2016년 서울시청 후문을 점거하고 깔았던 서울장애인부모연대의 42일 투쟁도 그러했다. 날마다 몰려드는 동지들로 농성장은 늘 북적였다. 음식이 차고 넘쳐서 함께 온 아이들은 농성비만자가 되어갔다. 새벽 청소차 소리를 들으며 선잠에서 깨어나 시청앞 광장에서 이슬 젖은 잔디를 밟으며 빌딩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다. 42일 내내 지나온 얘기, 사는 얘기, 살아갈 얘기, 남기고 죽을 얘기를 했다. 우리끼리 있는 편안함에 아이들도 즐겁고 엄마들도 즐거웠다. 크게 싸우고 오래 버티고 잘 이겨냈고 크게 성취했다.

20184월 수천 명이 모여 흰 상복을 입고 삼보일배 행진을 할 때도 즐거웠다. 그에 앞서 209명이 삭발식을 했으니, 까까머리에 흰 상복 차림이 잘 어울렸다. 잘 봐, 이게 장애부모 투쟁이야~! 요새 식으로 하자면, 이런 거였다.

못난 건 세상이고, 우리는 그것에 맞서고 넘어서려는 사람들이니 슬퍼하거나 주눅들 일이 아니었다.

올해는 다큐영화 학교 가는 길이 즐거운 문화투쟁을 해 준 셈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깊은 공감을 받았다. 구체적인 우리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야흐로 문화투쟁이 세상을 설득하는 썩 훌륭한 방식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즐겁고 흥겨운 일이라는 것도.

 

해마다 11월말이면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내년 국가 예산 작업이 있다. 부모연대도 우리 예산을 얼마라도 더 올리려고 노심초사한다. 우리의 간절한 요구 요청은 무시당하거나 그 중 한두 개 만이 제한적으로 반영될 뿐이지만, 우리는 매번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또는 의사당 본관 앞을 가로막고 기습집회를 한다. 제일 두꺼운 바지와 두툼한 양말과 겹쳐입은 패딩점퍼로 팽귄이 된 채로 양 손에 발열팩을 쥐고 몸뚱이를 맞대로 앉아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대체 국가는 어디에 있습니까!”(다큐 학교 가는 길에 보면 김남연 당시 서울지부장의 이 외침이 나온다.)라고 목놓아 외치던 순간들이 있었다. 국회의사당 높은 계단에서 바라본 여의도 쪽 도심의 반짝이는 밤 풍경은 마치 먼 세상 속 그림인 양 몹시 근사했고, 그래서 더 서러웠다. 그 서러운 가운데서도 우리는 너른 잔디광장 너머 빌딩숲을 배경으로 손팻말을 들고 깔깔거리며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미세먼지와 황사와 겨울날의 차가운 수증기가 섞여서 뿌연 공기 속에 도시의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반짝이고, 그 앞에서는 그처럼 당당할 수 없는 포즈의 투사들이 우뚝우뚝 서서 인생샷을 찍었다.

올해는 대표단이 단식투쟁을 벌였다. 여의도 이룸센터 앞 컨테이너에 자리잡고 앉아 붙박이로 단식을 한 분들이 셋이고, 지역에서 단식을 이어간 분들이 있었다. 일박이일씩 동조단식에 참여한 이도 여럿이다. 국회의원들이 찾아와 미안해하며 최선을 다하겠노라 약속했다.

의지는 비장하나 투쟁은 따뜻한 법이라, 집 떠나면 즐거운 역마살이 낀 것도 아닐텐데, 컨테이너에 가 앉아있으면 즐거웠다. 다만 엄마아빠가 들어오지 않은 집 아들 딸들이 하루에도 여러번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물었다. 엄마 언제 오냐고, 아빠 뭐하냐는 전화가 오고 또왔다. “좀 있어야 해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아빠와 엄마들은, 오늘 뭐했니, 뭐 먹었니를 물으며 함께하지 않은 하루의 안부를 챙겼다. 투쟁은 따뜻하고 애틋하다.

 

여기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 계란 한 판씩을 먹었다. 무슨 소린고 하니, 죽염 한 두 알을 입속에 털어넣고 녹여 먹으면 꼭 삶은 계란 냄새가 나서 그리 부른 것이다. 밤에 화장실 갈 데도 마땅찮다고 저녁부터는 물도 마시지 않고 버티는 독한 단식을 이어가는 동안 컨테이너는 여지없이 투쟁해방구가 되었다.

이불을 펴서 발을 덮고 기대 앉은 모습들을 보면, 단칸방에 모여앉아 시답잖은 놀이를 하거나 군입거리를 먹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뜨끈한 방구들에 앉아 서로의 발을 이리저리 밀쳐내며 놀던 저녁시간. 그러다가는 꼭 묻어놓은 아버지 밥그릇을 발로 건드려 엎어버렸고, 그때면 엄마가 들어와 등짝을 후려쳤다. 안타까운 건 엄마 일이고, 형제들은 키득거렸다.(물론 키득거린다고 또 한 대 얻어맞기 일쑤였다)

이불에 다리를 묻고 앉아 모두 비슷한 풍경으로 지나왔던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며 있자니, 진짜로 어른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던 형제사촌들이 모여앉은 기분이 들었다. 군고구마나 귤 대신 소금 몇 알이라는 게 다르지만.

 

투쟁풍경

 

끼니를 해먹거나 먹으러 가는 일이 없으니 시간이 참 여유롭게 흘러갔다.(이래서 우리가 가끔 실없이 꿈꾸는 건가 보다, 한 알 삼키면 한 끼니가 때워지는 알약을.) 해도해도 끝이 없는 아이 키우던 얘기, 지금 살아가는 얘기, 앞으로 살아갈 얘기, 잘 떠나갈 얘기를 하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내가 굳이 좁은 컨테이너에 끼어 잔 날은 밤새 비가 왔다. 비바람에 전원콘센트가 빠져 잠깐 바닥이 냉골이 되는 바람에 선잠에서 깨었다. 귀를 기울이니 금속이며, 천막이며, 플라스틱이며, 아스팔트며, 나무들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각기 다른 질감을 갖고 들려왔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어 빙하가 일시에 다 녹으면 이 컨테이너는 도시의 지붕 위를 둥둥 떠다니겠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을 보장하라는 우리의 구호는 세상 위에 둥둥 떠다닐 게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희망을 얻고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또 한 층의 계단을 올라설 게다, 이런 유치한 상상도 했다.(새벽엔 감성이 정돈되지 않아 매우 질퍽거리는 시간이기 십상이다.)

 

매일 집회마다 회원들이 많이 나왔다. 소리쳐 구호를 외치고, 팔뚝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투쟁은 기운이 펄펄 나는 일이다. 내가 내 아이를 위해 세상을 열심히 두드리고 바꿔나가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 일인가.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고, 세상에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것도 여럿이서.

 

파란 염색과 안녕

 

아이가 사는 것을 본다. 내 아이가 스스로 많은 부분에서 납득되지 않는 세상을 납득해 보려고 애를 써가며 살고 있는 것을 본다. 불안하고 이상하고 때론 아프고 괴롭지만, 그것을 누가 낱낱이 잘 이해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심지어 가족도 건성으로 이해하는 척 할 때가 많은 걸 느끼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많은 이가 그렇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삶은 투쟁이다. 어미가 되어서 투쟁의 동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찍이 전우익 선생이 혼자서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고 일갈하셨다. 혼자서만 잘 사는 걸 재밌다 여기면 못 쓴다는 말씀이지만, 지금 세상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고 하는 인간과, ‘혼자서만 잘 사니 너무 재밌는겨라고 하는 인간으로 나뉘어 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이번 생에는 우리 아이와 투쟁의 동지로 살아가기로 한 거다!

아들이 얼마 전에 머리카락을 파랗게 물들이고 싶다 했다. 외모에 전혀 무덤덤한 아들이 오직 하나 관심 있는 게 바로 머리인 것 같다. 파마를 하자거나 길러서 꽁지머리를 하자거나 해도 쉽게 따른다. 해보니 반응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남들이 멋있다 하니 내심 흡족한가보다. 이번에는 스스로 먼저 파란 염색하고 싶다 했다. 얼씨구나, 무지개색인들 어떠랴, 처음으로 뭔가 외모를 만들어보겠다 해왔으니 얼마든지 좋은 일이다. 파란 색 매니아인 아들은 마침 옷도 파란색이 많으니 글자 그대로 온통 새파란 청년이 되는 거다!

아들의 거룩한 뜻에 호응해서 나도 함께 파란물을 들였다. 좀 튀는 일도 별난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재미있는 상상을 시도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들도 나도 탈색까지 감행하고 파란 물을 들였다. 아들은 본인이 원하던 깊은 파란색보다는 조금 더 어둡게 나왔지만(그래서 한달 있다 한번 더 파랗게 하기로 했지만), 나는 엄청 체신없는 청보라 머리가 되었다. 몰론 알록달록 머리를 해보고 싶은 내 욕망이 기꺼이 춤추며 얹혀 따라간 거라 이미 체신머리 같은 건 눈 질끈 감았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거울 앞에서도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좋은 일은 감행하라. 즐겁고도 좋은 일은 감행하라. 이번 생에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 우리 아이들이 즐겁고도 좋은 일을 마음껏 감행하고 살게 될 날을 만들어간다. 그게 우리의 삶이다. 평등세상, 그 새파랗게 활기차고 즐거운 세상을 꿈꾼다.

 

한 해를 마감하며, 못다 한 말, 못다 한 일들이 끝없는 모래사막처럼 펼쳐져 있지만, 투쟁의 새 날을 맞기를 희망하며 인사를 고한다. 그리고 이만총총.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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