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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교육부장관상_대학부_광주 윤요한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85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교육부장관상_대학부_광주 윤요한




“엄마, 나는 누구랑 놀아요? 아이들이 안 놀아줘요. 정말 슬퍼요. 엄마, 나는 아이들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아파트 놀이터에 갔는데 나를 보더니 아이들이 다 가버렸다. 쫓아갔는데 아이들이 달려서 가버렸다. 나도 달려서 따라가다가 넘어져 버렸다. 무릎이 다쳤다. 아팠다. 눈물이났다. 속상했다. 왜 나하고 안 놀아 주는거야. 엉엉. 엄마에게 울면서 말했다. 울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요한아, 무엇이든 도와주는 게 114 전화야. 우리 114에게 물어볼까?”

“몰라요. 아무렇게나 하세요.” 나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전화기 버튼을 누르셨다. 뚜 뚜 뚜

“여보세요? 거기 114지요? 놀고 싶은데 친구들이 안 놀아줘서요. 놀아줘 학원 알려주세요” “네? 고객님. 뭐라고요? 놀아줘 학원 말씀이세요? 놀아줘 학원은 없구요. 음악놀이치료 학원은 있는데 여기 알려드릴까요?”

“네 거기 해주세요”
 

그렇게 신기하게 알게 된 곳이 샘 음악치료센터였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당장 그 음악놀이치료 센터로 갔다. 어떤 여자 아주머니가 웃으며 맞아주셨다.
 

“어머니, 어떻게 알고 여기 오셨어요? 저희 오픈 한지 3일 밖에 안 되었어요. 지금 홍보도 안 했는데요”

원장님은 찾아온 것이 신기한지 눈을 크게 떴다.“114에 전화해써요”내가 대답하자 원장님은 정말 신기하다고 어떻게 그렇게 연결되었냐고 놀랍다고 하셨다. 나의 음악치료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요한이 원장님과 노래 한번 해볼까?”

  원장님은 노래도 가르쳐 주시고 막대기로 탁탁치며 박자도 가르쳐주시고 리코더와 멜로디언도 시켜 주셨다. 차근차근 가르쳐주시는 원장님 덕분에 음악의 세계로 들어갔지만 음악은 어려웠다. 특히 박자가 어려윘다. 그래도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센터를 갔다. 놀아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악을 배우다보니 ‘나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원장님이 바이올린을 해보자고 해서 난생 처음 바이올린을 해보게 되었다. 기본자세와 활 잡기, 손가락 위치 연습이 잘 되지 않아 힘들었다. 6학년 때 학예회에서 방과 후 바이올린 합주 공연할 때에는 많이 긴장되었고 박자를 놓쳐서 멍했다. 그래도 음을 찾아서 연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서 나는 그것만이라도 감사한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 있었고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렇게 시작한 바이올린을 중학교때도 하고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계속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정말 기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우 음악료센터에서 합주부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었다. 바이올린과 또 첼로 그리고 플루우트 또 클라리넷 악기 하는 아이들이 모인다고 했다. 난생 처음 보는 악기들이었다. 원장님은 합주부 이름이 위드챔버앙상블이라고 했다. 이름도 어렵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지만 이렇게 모이는 것이 무척 신기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위드챔버앙상블 단원들은 나처럼 발달장애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모였지만 서로 바라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지금도 처음 연습할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위드챔버앙상블은 그렇게 2021년 5월에 만들어져서 처음 합주 연습을 했다. 엉망진창이었다. 연습하다 멈추고 또 다시 하고 피아노와 안 맞고 우리끼리 안 맞고 지휘자님을 봐야 되는데 안보고 누가 돌아다니고 누구는 하다가 누워버리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나는 이렇게 하다가 될 수 있으까 걱정도 되었다. 한번은 바이올린을 하는 oo이가 짜장면 사준다고 해놓고 엄마가 안 사주었다고 주먹으로 창문을 치기도 하고 연습하다가 안 한다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휘자님은 한숨을 쉬고 전화하고 엄마들은 잡으러 다녔다. 또 어려운 것은 합주 연습할 때 연습 장소 공간이 좁아서 서로 팔꿈치가 부딪쳤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첼로가 늦게

오고 어떤 날은 풀룻이 늦게 오고 우리는 기다리다가 지쳤다. 참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2021년 잊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코로나가 한참 심할 때 대전방송이 주관하는 장애 학생 음악콩쿨에 우리 팀이 단체팀으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연주할 곡은 ‘크리플 크릭’이라는 곡이었다. 바이올린 따로 첼로 따로 플롯 따로 클라리넷 따로 우리는 진짜 연습을 많이 했다. 내 평생에 그렇게 많이 연습해보기 처음이었다. 코로나 시기여서 대전방송국까지 가지 않고 대전방송국에서 광주로 와서 방송국 사람들이 와서 우리를 찍는다고 하셨다. 드디어 합주대회날 우리는 구두를 신고 하얀 셔츠를 입고 검정 바지를 입고 복장을 다 통일하고 머리에 무스도 바르고 준비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휘자님도 옷을 멋지게 입고 오셨다. 방송국 사람들은 우리를 하나하나 다 인터뷰를 하고 자기 소개도 하라고 시키고 찍으셨다. “이거 정말 TV에 나와요?” 진짜 나온다고 하셨다. 생방송이면서 원격으로 대회를 해서 우리 차례가 될 때는 모두 숨도 살살 쉬고 조용히 있다가 하나 둘 셋 넷 지휘자님의 표시에 따라 연주를 시작했다. 나는 힘차게 연주했다. 긴장되고 손이 떨렸다. 지휘자님을 보려고 했지만 악보를 놓칠까봐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박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연주했다. 손에 땀이 났다. 오늘따라 동생들도 정말 잘 맞추었고 잘 한 것 같았다. 지휘자님이 손을 내리면 우리는 활을 내린다. 우리는 다 같이 활을 내렸다. 드디어 연주가 끝났다. 함께 있던 어머니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우리는 끝나고 한참 기다렸다. 과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심사 결과 발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끝나고 다른 아이들이 계속 출연해서 연주했다. 다들 잘 했다. 우리가 떨어지면 어쩌지 걱정되었다.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드디어 심사결과 발표시간이 되었다. 동상 은상을 발표하고 위드챔버앙상블 금상입니다. 발표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는데 지휘자님과 방송국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박수쳐 주어서 알았다. 와! 우리는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정말 기뻤다.

 

  그리고 또 기쁜 일이 이어졌다. 대전방송국에서 우리 앙상블팀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이다. 12월 24일에 방송이 되었는데 우리들이 연습하는 모습과 인터뷰한 것이 다 방송되었다. 방송으로 내 얼굴이랑 우리 앙상블 동생들 얼굴이 나오니 신기하고 우리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울었다. ‘세상을 향한 맑은 울림’ 이것이 다큐멘터리 제목이었다. 뭔가 감동되는 제목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114에 전화했던 때가 생각난다. 아무도 안 놀아주어서 114에 전화해서 물어보자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음악치료학원을 가르쳐 주었을까... 아무도 안 놀아 준다고 울었고 넘어져서 다치고 그렇게 슬플 때가 있었지만 그래서 나는 바이올린을 하게 되었다.친구들은 바리스타로 취직하고 취업을 나갔다. 나도 취업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이올린은 취업이 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또 114에 물어봐야 할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 말한다. 이제 나는 바이올린을 끝까지 배우고 싶다. 그래서 음악을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114에 물어보지 않고 당당히 앙상블 연주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세상을 향한 맑은 울림 연주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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