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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서울측별시장상_일반부_구진영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80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서울측별시장상_일반부_구진영





핵개인의 시대에 서로를 보듬는 통합교육

 

언제나 그렇듯 느린 아들은 아주 먼 곳을 응시하며 실내화를 갈아신었다. 주변에 누가 지나가든 말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느릿느릿 자신의 신발을 벗었다. 실내화 주머니를 집에 두고 왔다고 당황하는 아이도, 오늘은 요리 실습이 있어서 신난다고 재잘대는 모습도, 느린 아이에겐 스쳐 지나가지도 않는 풍경이었다. 그때였다. 아들의 주변을 서성이는 아이가 나타났다.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뭔가 말하고 싶다는 듯 자신의 실내화를 갈아 신고 다시 왔다. 그리곤 느린 아들의 얼굴을 빤히 봤다. 할 말이 있다고 그렇게 많은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느린 아들은 세월아 네월아 실내화를 갈아 신고 있었다. 나는 저 아이를 안다. 이 아이는 아들과 2년 연속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다.

 

  일 년 전 이 아이를 등굣길에 만났을 때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아이는 자기 엄마에게 큰 소리로 소리쳤다. “엄마! 얘는 장애인이에요!” 그 소리를 들은 아이의 엄마는 당황스러운지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며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까지도 나는 우리 아이가 금세 좋아질 거라고 나를 속이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의 한 마디가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나만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맞다. 우리 아들은 장애인이다. 장애 등록을 하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일반 학교에 다니는 장애인이다. 서류상 기재되는 우리 아이의 모습은 발달장애, 자폐와 같은 단어였다. 허나, 나는 도무지 그 단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던진 메아리는 나를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그날 이후로도 그 아이는 나에게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아줌마, 얘는 장애인인데 왜 여기서 살아요?”,“뭐라고?”,“얘는 장애인인데 왜 이 아파트 단지에 사냐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초등학교 중앙현관의 풍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던진 그 한마디에 그동안 힘겹게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져 다시 긴 터널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물먹은 초록 이파리들이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축축한 냄새를 토해내고 있었다. 위로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그 습함이 내 몸을 감싸며 나 대신 울어 주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삶이 헛도는 수레바퀴 같이 느껴졌다. 늪에 빠진 바퀴를 꺼내기위해 아무리 용을 써도 도무지 빠져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할 텐데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과 다르게 느린 아들은 언제나 내 예상과는 다른 길로 성장해 헛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배려하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그저 스쳐지나가듯 말했고

 

무례한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 아이를 빤히 보고 갔다. 쟤가 자폐아라면서?라는 말을 허공에 흩뿌리면서 말이다.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상대방이 뱉어낸 문장을 해체해서 다시 조합시켜보곤 한다. 그렇게 공을 들이면 대부분 순식간에 상황이 파악되는데 단어만 허공에 동동 뜬채로 결론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가족들은 함부로 내뱉지 못했던 자폐라는 단어를 타인이 너무도 쉽게 내뱉을 때가 그랬다. 금기시 했던 단어가 등장해버릴때면 아이가 사회 속에 스며들지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 말해버리면 진짜 그렇게 될까봐 터부시해왔던 단어인데 타인이 너무 쉽게 내뱉는다.



  그렇게 어둡고 축축하고 고요한 시간이 지나갔다. 아주 길게 말이다. 이 길의 끝이 있긴한지 긴 한숨을 내뱉은 어느 날, 어둠이 서서히 걷히는게 보이기 시작했다. 터널의 끝에 다다른건지 언제 그랬냐는 듯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착석도 되지 않던 느린 아이는 어느 순간 앉아서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 지도사 선생님의 도움과 활동보조를 투입해서 얻은 결과였다. 하루는 지도사 선생님이 하교하는 아들을 인계해주시면서 엄청 웃으셨다. 수업시간에 제기차기를 했는데 아무리해도 우리 아들은 제기차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지 담임선생님께 가서 가르쳐달라는 몸짓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아이의 다리를 안쪽으로 구부린 후, 제기를 떨어트려서 툭 치라고 여러번 가르쳐주셨다. 아쉽게도 느린 아이의 열정은 몸의 어색함을 이기지 못해 제기 차기에 실패했다. 아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는데 집에 가서 더 많이 연습하기로 선생님과 약속하고 특수반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아이가 많이 성장했다싶어 내심 좋았다. 수업 시간에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가 참여를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봄의 풍경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느린 아이가 제일 잘 그려서 친구들이 박수쳐줬다는 이야기, 도무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는데 친구들 손을 잡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는 이야기, 선생님한테 도장을 받고 싶어서 알림장을 열심히 쓴 후 스스로 앞에 나가서 도장을 받고 왔다는 이야기 등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친구들은 이미 저 멀리 나아가서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아이는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눈치챈 것은 어른들만이 아니었다. 느린 아이의 친구들도 아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다사다난했던 1학년 생활을 마치고 2학년이 됐을 때였다. 처음 보는 아이가 나에게 아는 척을 한다.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이라고, 지난번 장애인의 날에 보내준 간식을 잘 먹었다며 엄마와 함께 인사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우리 아이 때문에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항의하면 어쩌나 너무 걱정된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느린 아이는 우리 반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친구들이 말을 시키면 답을 하진 않지만 하이파이브 하자고 하면 꼭 해준다고 말이다. 일년 전과는 다른 평가에 너무 놀랐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의했다. 아이는 너무 느리게 성장하고 있는데 상황이 반전됐단 말인가?


  우리 아이는 일 년만에 갑자기 좋아진 것일까? 그건 아니다. 아이는 여전히 느렸다. 통합반에 가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빼곤 그저 그 공간안에 몸만 있는 채로 다른 세상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통합반이라는 경험을 통해 반 아이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이 큰 변수였다. 일년 간 느린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쌓여 그저 저 아이는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이 느리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반 아이들이 모두배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별 과제가 주어지면 친구들이 어떻게든 끼워주기 위해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은 느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배정해주었다. 느린 아이는 예전처럼 멀뚱멀뚱 있는게 아니라 일일 반장 친구와 함께 수박을 썰고 종이를 오리며 작은 역할이라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쌓이다보니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같은 반 아이는 여전히 실내화를 갈아신는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답답한 건 언제나 엄마인 나다. 아들의 어깨를 톡톡 치며 친구한테 인사해주라고 말했다. 아들은 친구를 보는 둥 마는 둥 안녕하고 소리쳤다. 오른손을 팔딱팔딱 거리듯 살짝 흔들며 말이다. 그러자 아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혹시 우리 아이가 오 늘 처음 인사해줬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작년에 이 아이가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은 느린 아이에게 관심은 많은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악의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처음 만나서 그랬다는 것을 일년이 지나서야 알게됐다.

 
  요즘들어 통합교육에 관한 안 좋은 소식이 들린다. 그럴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우리 아이가 계속해서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통합교육이 무엇인지 알게 된 반 친구들의 노력으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요즘같이‘핵개인’의 시대에 느린 아이를, 그리고 반 친구들 서로서로를 보듬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이들이 공동체의 가치를 알아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혐오와 차별을 소거시킬 수 있게 그 기반을 단단히 해줘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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