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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교육감상_청소년부_충남 복자여고 서채은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43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교육감상_청소년부_충남 복자여고 서채은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철이 없던 언행으로 인해 글을 쓰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내 경험을 적음으로써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었으면 해 글을 쓴다. 나의 작은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세상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봄이라기에는 덥고 여름이라기에는 선선한 날이었다. 어렴풋이 불었던 바람마저 가히 완벽하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놀이공원에 갈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고모와 함께 일상적인 외출을 하였다. 하지만 지하철에 타자마자 모든 시선이 나와 고모에게 쏠렸다. 고모와 조카의 외출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여덟 살 아이와 휠체어에 탄 여자의 외출은 타인의 시선에는 신기하고 측은하기만 했던 걸까? “어린 것이 착하네.” 지하철에 타기 전 한 행인에게 들었던 말이 스쳤다. 나는 단지 고모와 놀이공원에 갈 뿐인데, 칭찬을 받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솟아오른 입 꼬리를 가릴 수는 없었다. 나는 고모의 휠체어 손잡이에 작은 손을 얹었다. 놀이공원에 도착해서도 고모는 내게 자랑스러웠다. 다급하게 뛰어가려는 나를 막아 세우고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고모 덕분이었다. 나는 전부터 타고 싶었던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자고 말했다. 고모는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내 들뜬 발걸음이 고모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었다.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 대기선의 끝이 보일 때, 나는 고모를 뒤로하고 놀이기구에 올랐다. 사람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내게 말을 걸 것처럼 하다가도 뒤에서 휠체어를 끌고 오는 고모를 보고는 납득했다는 듯 마저 이야기를 했다. 안전장치를 하고, 캐스터의 목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상상을 했다. 상상으로 몇 바퀴를 돌았을 때까지도 놀이기구는 출발하지 않았다. 아니, 출발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필요하지 않았고,머지않아 나는 고모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고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열차에 탑승할 사람들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나는 안전장치를 풀었다. 우뚝 선 채로 크게 외쳤다. “타는 데에 조금 걸릴 수도 있지, 조금 늦게 탄다고 뭐가 달라져요? “ 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대기 줄 사이로 파고들었다. 한숨을 쉬던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열차에서 내린 뒤 고모의 팔을 끌어안았다. 고모와 함께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은 채로 그 놀이기구를 뒤로했다.

  그 후로 2년, 난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고모에게서 전에 갔던 놀이공원에 가자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 주 주말, 나는 오랜만에 고모를 만났다. 초등학생 때처럼 고모의 전동 휠체어 뒤에 서서 걸어갔다."어린 것이 착하네. 봉사활동 하는 중이니?" 지하철에 타기 전 한 행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고모와 놀이공원에 갈 뿐이었다. 칭찬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내려가는 입 꼬리를 가릴 수는 없었다. 놀이공원에 도착해서도 고모는 내게 짐이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니. 고모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규칙이다. 나에게는 혜택이 아닌, 차별처럼 느껴졌다. "우리 전에 못 탔던 놀이 기구 타러 갈까?" 말을 마친 고모는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 놀이 기구 방향으로 전동 휠체어를 움직였다. 힘겹게 놀이 기구를 타려고 하는 고모, 고모를 불쌍하게 보는 시선, 놀이 기구를 빨리 못 타 짜증 나 있는 사람들, 아직 안전장치가 채워지지 않은 내 옆자리.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고모, 나 이거 안 타고 싶어. 다른 거 타자." "너 이거 타고 싶었던 거 아니야?" "다른 거 타자고! 사람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나의 소리침에 고모는 할 말이 있다는 듯이 입을 뻥긋하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려왔다. 회전목마가 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 머리가 돌고 있는 건지. 정신이 빙글빙글 돌았다. 고모가 부끄러웠다. 왜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건지, 왜 나까지 창피하게 만드는지 짜증이 났다.고모는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지만 나는 끝내 모른 척을 했다. 놀이공원에서 나올 때까지 나는 고모에게 짜증을 냈다. 집에 가는 길에도 고모는 나에게 쩔쩔맸다. "기분 안 좋아? 무슨일 있었어?" "오랜만에 놀러 나와서 어색한가 봐." 쩔쩔매는 고모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어서 이 대화를 얼른 끝내고자 대충 얼버무렸다. 그들의 시선이 가장 중요했던 열다섯의 나는 그들에게 고모와 같은 시선을 받을까 두려웠다.
  두 번이나 같은 사람과 같은 곳을 방문해 같은 일을 겪었다. 초등학생 때는 고모를 그저 고모로만 보고 편하게 생각했기에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타기에는 어려운 놀이 기구를 타자고 하러 갔었다. 중학생 때는 고모를 장애인으로 인식하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느라 고모와 밖에 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남들의 시선이 두렵다는 이유로 고모에게 나쁘게 행동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장애인을 안쓰럽게 보는 사람들을 보며 편견에 찌든 사람이라며 혐오했던 초등학생 때의 나는 고작 몇 년 후에 그들과 다를 것 없었다.고등학생의 나는 초등학생, 중학생 때의 나와 직면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생의 순수함과 중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남의 시선이 한 곳에 모이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문득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가 원해서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고모가 편견을 가진 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저 조카를 사랑하는 고모가 나를 안아주어 혼란스럽던 마음이 잦아들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의 가족이라고 해서 왜 편견의 시선으로 보는 것일까? 그저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뿐인데. 그냥 조금 느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나는 웅덩이에서 바다를 보게 되었고, 점점 변화해 갔다. 바늘 같은 그들의 눈빛에 움츠려들지 않게 된 것. 고모를 온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비 내리는 고모 마음속에 비를 잠시 멈추고 햇빛을 비추어 조그맣지만 밝은 무지개를 띄울 수 있게 됐다는 것. 세상을 향해 순수하면서도 성숙한 목소리를 낼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에게는 조금은 느리지만 내가 사랑하는 고모가 내 옆에 있다는 것. 내 철 없던 행동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지만 나한테 일부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거 알아.

 

미안했어. 그리고 항상 고맙고 사랑해 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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