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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서울 광운대 김현지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93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서울 광운대 김현지





보다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내 남동생은 ‘미토콘드리아 근병증’이라는 병과 함께 산다. 이 병의 양상은 사람마다 다른데, 내 동생의 경우엔 의사소통이 안 되고, 평생 기저귀를 차야 하고, 밥도 잘게 잘라 먹여야 하며 가끔 무호흡증 경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근육이 약해지는 병이고 따라서 심장 근육도 약해져 가는 경향이 있다. 친구들에게 앞의 말을 쭉 늘어놓으면 다들 헉하고 놀라지만, 내게는 아직도 누워 노는 귀여운 동생일 뿐이다.나는 동생과 함께 살다 보니 ‘장애’라는 단어에 민감해졌다. 이를테면 책 제목, 길 가다 보는 공익광고 포스터, <소나무>나 <세상에 이런일이> 같은 프로그램과 장애인 유튜버들, 특수학교와 병원에 오가며 만나는 여러 장애인들이 눈에 밟힌다. 일상에서 그 단어가 보이면 친구들보다 한 번은 더 살피게 되는 것 같다. 장애라는 단어는 내게 늘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동생이 학교를 다니기 전까지는 다른 장애인을 TV 속 후원 프로그램으로 접했다. 어려서 뭘 모를 때였지만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금은 후원 프로그램 특성상 안타까운 사연을 그대로 보이는 장면이 불가피하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도 채널을 돌리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 무언가 씁쓸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내가 현실에서 보는 장애인 가정은 내가 속해 있는 우리 집의 모습이다. 우리 집은 동생의 장애와 상관없이 무척 재미나게 살았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애쓴 아버지의 시간과 밤낮없이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며 동생을 키워낸 어머니의 시간이 몇 배속한 것처럼 지나갔지만 말이다. 부모님께서 고군분투하시던 시절에 나는 어렸고, 우리 집이 조금 가난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감각할 수 있었다. 뭣 모르던 시절에 나는 한 번도 동생의 무게를 느낀 적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제일 신경 쓰신 부분이 ‘동생 때문에’ 우리가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 가족은 동생을 중심으로 뭉쳤다. 모두가 동생을 우선시하고 챙겼다. 퇴근한 아버지는 동생의 손을 잡고 배밀이 시키는 놀이를 좋아하셨다. 손을 잡으면 아버지 쪽으로 쑥 전진하는 동생과 기특해서 하하하 웃으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동생을 안고 우유를 먹이면 옆에 앉아 말을 걸고 등을 두드리는 나. 누워 있는 동생의 볼을 만지고 이불을 덮어주는 오빠. 모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동생을 챙긴다. 세 남매가 다 성인이 된 지금도, 각자 방 안에 있기보다 거실에 누워 있는 동생 곁으로 모여 대화를 나눈다.

  가정환경 덕분인지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우리 집처럼 재미나게 사는 장애인 가족의 모습도 보여줘야 해!’라는 다짐이 있었다. 그래서 진로 희망란에 늘 PD를 써넣었고, 대입 면접에서도 “소외된 사람들을 밝게 비추는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국문과에 진학했고, 이제는 글로 장애를 다루는 데 애쓰고 있다. 브런치스토리에 동생과의 삶을 써 내려가고, 동생과 엄마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로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고,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바우처분에게 응원받는다. 보잘것없는 내 글이 주목받는 걸 보면서, 이 이야기가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동생과 함께 커가면서 장애인 일상을 다루는 콘텐츠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내가 어렸을 적엔 내 동생이 특별하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동생, 그리고 장애가 그 만큼 사회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동생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주 소외된 이야기, 매우 특수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는 뜻이다. 요즘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장애인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댓글에 응원하는 사람들이 몇천, 몇만 명이나 되니 ‘예전보다 장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구나’ 싶다. 반가운 변화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더 드러낼수록, 우리는 장애라는 정의의 몸집을 더 불릴 수 있다.

  장애인이라고 묶어 부르는 이들의 삶은 감히 묶기가 미안할 정도로 다양하다. 병명도 다르고, 당연히 직업도 다르며, 도와주는 사람의 유무와 그 사람들의 삶, 그들이 사는 환경과 나이, 성격 모두 다르다. 아주 쉽게 말하면, 비장애인의 삶이 다 다른 것처럼 그들의 삶 또한 모두 다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일상이 특별한 것처럼 보여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장애인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장애인 동생을 둔 누나로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동생을 ‘아픈 아이’라고 부를 때다. 물론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정해져 있어 엄마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만 부르기엔 동생의 다른 특징들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나는 동생을 선택할 수 없었고, 동생도 자기 신체 상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만남을 선택할 수 없는 상태로 가족이 되었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일은 누구 한 명이 책임질 일이 아니며 동시에 모두가 책임감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하다. 때로는 그 말이 나를 짓누를 때도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동생을 책임지고 볼 수 있을까? 요양병원에 보낸다 해도 내가 동생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적인 고민 앞에 입을 머뭇거리게 되고, 또 그런 내가 싫어서 막막함이 감도는 밤이 많았다. 그것도 부정할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다.

 

“하루를 잘 살아내면 된다.”

  그럴 땐 엄마가 해준 말로 다시 일어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루가 모이면 내 인생이 되는 거니까.동생과 보내는 하루에 집중하면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 대신 현재의 행복만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다. 동생은 내가 더 많은 것을 품고, 생각하고, 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나의 뮤즈다.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면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을 생각과 경험을 한다. 동생은 말을 못 하고 나를 보지도 못해서 대신 촉감으로 의사소통한다. 볼을 쓰다듬고 뽀뽀하고 손을 꼭 잡는 누나와 동생 사이가 어디 흔한가? 가끔 동생이 가족들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듯 기막힌 타이밍에 웃기도 하고, 엉덩이를 흔들어 우리를 웃게도 해준다. 그런 동생이 내 삶에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좁디좁은 세상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학과 후배가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고 말했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 하나의 세계, 혹은 그 이상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동생은 질문과 대답 없이 깨달음을 주는 아이고, 내게 진정한 희로애락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누나, 나는 아픈 아이가 아니라 김ᄋᄋ이야.” 말하는 눈을 가진 아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말하는 이가 누군지는 상관이 없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요?” 질문 후에 펼쳐질 그 사람만의 세계가 얼마나 빛날지 기대된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말하는 이를 살핀다. 삶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서사이며 그 자체로 평가할 이유도, 자격도 없는 고귀한 것이다. 동생과 함께 크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장애인의 모습이 더 많이 포착되기를, 그게 글이든 영상이든 그림이든. 그래야 우리의 세상도 더 넓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건 새로운 우주 하나를 품는 일이다. 지금 내가 보고, 살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도 좁은 곳일지 모른다. 있는 그대로, 장애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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