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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서울 가톨릭대 박도현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65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서울 가톨릭대 박도현






살아줘서 고마워
 


  나는 어렸을 때였지만 이 일만큼은 정말 잊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이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놀이터에서 이곳저곳 놀러 다니고 정글짐에서 신나게 뛰어놀다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는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도 무슨 일인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글짐 바닥에 쓰러진 동생이있었다. 머리 쪽으로 넘어져서 피가 나고 나는 차마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빨리 신고 좀 해주세요!”

누군가가 신고를 하고 어느새 구급대원들이 출동했다. 구급차를 타고 몇 분간을 달려가 병원에 도착했다. 동생은 이런저런 처음 들어보는 검사를 하고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깨어나서 행복하기도 잠시 우리는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뇌전증이라는 장애를 판정하게 되었습니다.”

  “뇌전증,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했던 처음 보는 병명을 처음 마주한 나는 그러면 앞으로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앞으로 얼마나 함께 할 수 있는 거지?”라는 불안감이 제일 먼저 다가왔다. 이때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학생의 신분이 어떻게 이런 큰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뇌전증에 대해 아직은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뇌전증은 뇌전증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 인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뇌전증 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여 만성화된 질환군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몰라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하는 질병이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써서 같이 놀아줬다면.. 동생이 이렇게 쓰러질 일도 없고 장애를 갖지 않았을 텐데... 나는 매일 매일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갔다. 동생이 조금이라도 삶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옆에서 하나하나씩 모두 도와주고 효과가 있다면야 민간요법도 마다치 않았다.

 

“제발, 내 곁에만 있어줘! 나는 너 없는 삶은 아직 상상한 적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단 말이야!”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동생은 어느덧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곱하기를 배우기에 미리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함께 구구단을 외어나갔다.

“2 곱하기 8은 뭐지?”

“음... 이십팔!”

“아니지, 그러면 3 곱하기 4는?”

“나 알아! 3에다가 4를 곱하니까 삼십사!”

  평소 나는 그 누구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왔기에 이러한 상황을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동생에게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이런 것도 못하면 어떻게 할래?” 동생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이 글썽글썽 거리고 콧물도 찔끔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울기 시작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순간 가슴이 울컥해지고 티가 나지 않으려 눈물을 최대한 숨겼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는 같은 문장이라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머릿속에 기억이 날 수 있도록 다양하게 공부했다. 숫자카드를 만들어서 “3 곱하기 5는?”이라고 물어보면 15라는 숫자카드를 먼저 집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도 만들어서 하고, 구구단을 외자라는 게임과 더불어 구구단 보드게임 등 동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 방법들을 만들어 냈다. 이로 인해 어렵게만 느껴지던 공부를 조금이나마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이제는 “8 곱하기 7은”이라고 물어보면 “오십육”이라고 당당하게 답을 말한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주다니 이번에는 또 다른 의미로 괜스레 울컥거린다. 사실 나도 이런 것들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한 건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히 모두가 처음인 게 당연한 거다. 누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처음부터 보고 키워왔을까? 사람이란 게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는 거처럼 나도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장애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장애라는 건 틀린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고 다같은 존재이니까! 힘든 일을 모두가 함께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품고 살아왔기에 이렇게 동생은 조금씩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이제 동생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분위기메이커이며 웃음과 걱정을 함께 공감해주는 사랑스러운 막내라는 위치에 서 있다. 오늘은 또 어떤 말로 우리를 하하 호호 웃게 해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동생은 나의 바람대로 잘 성장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살아온 덕분인지 이제는 건강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생에게는 꿈이 생겼다. 바로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의사가 되어서 세상에 아픈 사람 없이 모두를 치료해주고 싶다는 말을 듣고 괜히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지금까지나는 돈을 많이 받는 직업만을 원했는데, 동생은 그 어린 나이에도 돈을 벌기보다는 사람들을 살리는 데 더 큰 의미를 둔다니 이런 말을 들을 때 면 동생이 어쩌면 나보다 더 의젓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장애’에 대해서 처음에는 막연한 불안함을 가지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장난을 주고받으며 둘도 없는 형제가 되었다. 아직도 완전히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살아간다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사랑하는 동생, “살아줘서 고마워!” 나는 이런 ‘장애’라는 것에 대해 많은 인식이 바뀌게 되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에서도 정말 수많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놀아주고 밥을 먹어주는 봉사활동이 있어 참여한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었고 우리를 정말 기쁨으로 마주해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틀린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고 모두 같은 사람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잘 살아와 준 동생에게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그 무슨 말보다도 가장 먼저 건네주고 싶다. 동생과 더불어 나를 항상 옆에서 위로해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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