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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경기 강남대 용수연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84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경기 강남대 용수연





다양한 우리가 모여 만드는 다채로운 삶

 

 

  즐겁다. 행복하다. 웃는다. 깔깔대는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웃겨서 숨이 넘어간다. 박수 소리와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내 삶은 어땠지? 나는 어떻게 놀고 어떻게 자랐을까? 이 글을 쓰기위해 내 지난날들에 있었던 그들의 모습을 한 명씩 떠올렸다. 그 순간은 항상 즐거웠다. 우리는 웃으며 즐겼고, 그래서 재미있었고, 삶은 다채로웠다. 처음으로 만났던 장애를 가진 여자아이, 같은 학원 친구의 여동생이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을까, 피아노 학원 앞에서 학원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놀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유모차를 탄 채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왔고, 내 친구는 달려가서 여동생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뼈가 다 드러난 마르고 여린 몸, 유모차에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한 채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가진 아이, 내 친구가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면 입을 벌리고 웃는 그 아이를, 초등학교4학년의 나이에 장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아이를 마주치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같이 놀던 내 친구들도 놀랐다. “왜 이렇게 말랐어?”,“못 걸어?” 등의 아주 순수하지만 무례한 질문이 오갔다. 내 친구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응. 못 걸어.”, “몸이 아파.”라며 여동생에 대해 친구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친구와 당사자에게 너무 미안한 말들이 아니었는가. 하지만 그때 우리의 그 질문들은 전혀 그 아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했기에 나온 질문들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보는 장애에 대한 경험, 조금은 다른 아이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그 궁금증이 해소된 후에 우리는 그 아이와 어떻게하면 즐겁게 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장애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 우리는 그 아이를 당연하게 ‘우리와 만났으니 같이 놀아야 하는 아이’로 생각했다. 그래서 같이 놀았다. 같이 둥글게 삥 둘러앉아 학원에서 카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그 아이에게 피아노 건반 누르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게임을 하다가 질리면 그냥 뛰어놀았다. 대신 한 명이 유모차를 끌고 달려야 했다. 불편하지 않았다. 웃기고 재밌었다. 놀다가 그 아이가 입을 벌리고 ‘헤헤’하고 웃을 때면 우리는 다 같이 ‘재밌나봐!’하며 더 즐겁게 놀았다. 그 아이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그때 피아노 학원 앞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깔깔대는 웃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같이 놀 사람이 있다는 것, 사람이 많아서 즐겁다는 느낌이 초등학생인 우리에게는 전부였다.

  피아노 학원을 관두고 나서, 초등학생을 지나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들어선 1학년 2반, 나는 새로운 곳에서 만날 친구들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선생님의 소개를 시작할 때였다. 뽀글뽀글한 곱슬머리를 길게 내려놓은 주황색 가방을 멘 여자 친구가 앞문으로 들어왔다. ‘앞문은 선생님 전용 문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앞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오는 그 아이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선생님께서는, 줄곧 ‘도움반’에 대해서 알려주기 시작하셨다. 도움반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모인 반이다. 그 친구들은 도움반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반에 한, 두 명씩 반 배정이 된다. 그래서 그 뽀글뽀글한 머리의 여자아이는 우리 반의 도움반 친구라고 소개해주셨다. 중학생이 되어서 그런지, 장애인 학우에게 무례하게 구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없어서일까, 몇몇 학우들은 아무렇지 않게 짓궂은 장난을 친다. 장난을 치지 않는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은 그 친구를 무시하거나,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그 친구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 표정 한마디 변하지 않는 아주 가만히 있는 아이였다. 그 친구에 대한 몇몇 아이들의 놀림이 사라질 때 즈음, 아마 국어 선생님께서 모든 학생이 한 번씩 돌아가며 글을 읽게 시키셨을 것이다. 그 친구의 차례였고, 평소에도 말 한마디 안 하는 친구였기에 우리는 다들 드디어 목소리를 들을 차례라고 생각하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일어난 상태로 몇 초.. 몇 분이 지났을까. 기다리던 학생들은 짓궂은 마음인지, 그저 목소리를 듣고 싶은 기대했던 마음 때문인지 그 친구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냥 한 번 지르고 앉아”, “그냥 해봐~”, 그 친구를 위해 학생들은 응원의 말을 외쳤다. 나도 그 친구가 한 단어라도 뱉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입이 열렸고, 선생님께서 읽으라고 했던 부분까지 작은 목소리로 아주 빠르게 읽어냈다. 우리는 그 친구의 말이 끝날 때까지 숨을 죽이다가, 끝났을 때 “와~!!!”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다. “잘한다!!”, “대박~!” 그 친구의 용기에 감명을 받았던 우리는 다 같이 한 마음, 한뜻으로 그 친구에게 대단하다고 외쳤다. 장애로 인해 말을 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얼마나 큰 노력이었을까, 우리가 환호할 때 쑥스럽게 웃던 그 얼굴을 잊지 못한다. 그 친구를 비난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오히려 그 친구의 다른 점을 인정하며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기다려 준 우리 반 친구들의 마음이 너무 생생해 잊히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정말 다양한 장애 유형의 친구들과 함께 지낸다. 같은 학과에 뇌 병변, 지체, 지적, 시각, 청각장애인 정말 다양한 장애 학우가 있다. 나는 학교에 가는 게 즐겁다. 이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 몰래 잡담 하기도 하고, 수업이 끝나면 배달을 시켜 먹고, 비장애인과 장애인 구분할 것 없이 다 같이 모여서 시답잖은 얘기하며 웃는다. 엊그저께 다리가 아프다는 민수에게 태균이가 “난 휠체어 타서 안 아픈데.”라고 했던 장난. 웃음이 멈추지 않는 명준이가 수업 시간에 자꾸 웃어서 내가 “웃어서 교수님 시선 끌지 마.”라고 했던 장난. 그런데도 또 웃어서 그냥 같이 웃어버린 상황들. 우리는 너무 친해서 장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즐겁게 놀 뿐이다. 오히려 나의 평범했던 지난날에 지금의 이들이 함께하기에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내가 살아오는 삶에 장애인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전까지 과거에 있었던 내 주변의 장애인들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달랐기에, 그들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함께 지냈을 뿐이다. 장애인이 함께 지내거나 함께 살아가는 삶은 불편하고 어려울 것 같다는 게 하나의 인식이지만, 내가 경험해 온 삶에서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행복함이 가득한,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이었다. 모든 인간은 다 다르다.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 같은 성격을 가진사람은 없다. 개개인의 취향과 성향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장애 라는 것도 하나의 다름일 뿐이다. 그리고 그 다르다는 것은, 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다. 모두가 다르다. 다른 무언가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의 탓이 아니다. 비장애인의 관계 속에서도 불편하고 힘든 관계가 있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생길 수 있는 당연한 것들이다. 장애라는 것이 다름의 기준에서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없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구분할 것 없이, 다른 점이 있다면 충분히 배려하면 된다. 다양한 사람이 많을수록,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이자, 뜻깊은 경험의 기회가 생기는 것일 뿐이다.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저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이다.


장애는 그저 다름이다. 다름을 인정할 때, 다채로운 삶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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