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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서울 연세대 이재원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8 조회수144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대학부_서울 연세대 이재원






22년을 뒤바꾼 2개월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 사건은 참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온다. “어른”이 되고 싶어 고군분투했던 세월은 날 궁극적으로 무기력이라는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국내 굴지의 명문대학교에 입학해도,“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고, 또 옥죄는 내 삶은 변하지 않았다. 입시라는 벽을 어떻게 무너뜨렸는데. 취업이라는 더 큰 벽이 날 가로막았다. 그렇게 22년을 살아온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할 힘이 없는, 그저 형체만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말 그대로 숨만 쉬는 사람. 모든 것을 다 내던지고 쉬고 싶었지만, 겁 많은 나는 그럴 수 없었기에 학교 행정 부서 인턴을 지원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그전까지 내게 주어질 일만 하면 되니까. 일을 하는 그 시간 동안에는 내가 번뇌에서 벗어나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한 안일한 마음이 컸다. “일”에 관심이 없던 내가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인턴으로 선발되었다. 무슨 기준인지도 모르지만, 문득 겁이 났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라는 혼잣말은 학창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우리 학교에서는 도움이 필요했던 친구들을 <참나무 반>이라고 일컬었다. 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일정한 교실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특정한 수업만 교실에서 들을 뿐 대부분의 일상은 <참나무 반>에서 보냈다. 장재율. 아직도 그 이름 석 자가 잊히지 않는다. 선한 미소가 인상적인 친구였다. 말투가 조금 어눌했지만, 어떤 도움이 필요하기에 <참나무 반>을 다니는지 도통 이유를 알 수 없는 친구였다. ‘바람개비’를 좋아하던 재율이는 나에게 ‘바람개비’를 접어 선물해 줬고, 초등학교 1학년,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재율이와 복도에서 마주치면 가끔 인사할 정도의 사이로 남게 되었다. 원인을 표명할 수는 없었지만, 점차 어떤 분야의 도움이 필요한지는 가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재율이는 <참나무 반>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이다. 재율이의 상황이 악화하였음을 실질적으로 깨달은 시점은 고등학교 1학년. 다른 학교에 잠깐 전학을 갔다 온 재율이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해보였고,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을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 핑계라고 들릴지 모르겠다. 사실 핑계가 맞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 역시 좋은 대학교를 진학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고, 타인, 특히 재율이에게 손을 건네줄 여유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 점수 1점 더 올리는 것이 매일의 목표였던 나는, 내 공부를 방해하는 자극에는 눈을 꾹 감았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수학 시험 직전, 쉬는 시간 내내 다리를 떨며 불안해하던 재율이가 자신이 제일 아끼던 샤프가 사라졌다며 소리를 크게 지르고 머리를 때릴 때, 어렸던 나에게는 그 모습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차분한 상태로 시험에 응시해도 좋은 성적이 나올까 말까 한 과목이었기에 말이다.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험을 봤으면 되는 문제였지만, 그떄는 이 모든 게 재율이 탓 같았다. 그 사건 이후 학교에서 오가며 마주쳤을 때, 난 얼굴을 들이밀던 재율이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않았다. 재율이가 무슨 말을 걸 때면, 시종일관 “모르겠는데?” “선생님께 물어봐”라는 말로 대화를 회피하려 했다. 졸업식 날, 재율이의 부모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재율이와 잘 지내고 있지? 재율이가 매번 고마워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 나는 곧장 행정 부서로 전화하여 부서를 바꿔달라 부탁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한 편으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그렇게 아침 8시 7612번 버스에 몸을 실은 나의 장애학생지원센터 인턴 생활은 시작되었다. 직장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인수인계와 실무는 다름을 출근 첫날에 깨달았다. 선임자에게 배운 내용이 아님에도, 일은 현실이고, 또 실전이었다. 내가 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장애학생지원센터 근로학생들이 출근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들의 “관리자”가 되었다. 얼렁뚱땅 일이 손에 익은 것처럼, 눈치껏 하루하루 버티는 나날이었다. 조금이라도 지적당하면 기가 죽었고, 머리로 그렸을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잘 되었던 사소한 일들에도 실수가 잦았다. 그렇게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대학교에 다닐 때처럼 주어진 일만 어쩔 수 없어서 해내던 나의 가슴을 뛰게 한 시점은 늘 똑같은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사실 해당 부서 팀장님께서 주신 다소 예기치 못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선배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움직임이 불편한 장애 학생들이 강의실을 안전하게 오갈 수 있게 활동을 보조하는 일은 근로 학생이 주로 담당해 왔다. 그날은 근로 학생이 팀장님의 업무를 도와드려야 했던 상황이었기에, 그 빈 자리를 내가 메꾸게 된 것이었다. 백양로 정중앙에 위치한 학생회관에서 다소 경사가 있는 백양로를 거슬러 올라가 언덕에 있는 위당관까지. 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기에, 난 그저 팀장님이 사사로운 일을 부탁한다고 여기며 퇴근만을 바라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며 위당관 5층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눈에 선배를 알아볼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서도, 손에서 끝까지 전공책을 놓지 않았던 그녀의 이름은 김미선, 영어영문학과 18학번에 재학 중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미선 선배가 위당관에서 중앙도서관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었기에, 난 그녀의 휠체어 뒤에 섰다. 휠체어를 한 번이라도 밀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비록 나는 서 있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과 겹치기에, 잠시나마 내가 그 사람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위당관에서 중앙도서관까지, 약 15분의 시간 동안, 난 잠시나마 미선 선배의 시야에서 시선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 이재원’으로 존재하며 바라봤던 캠퍼스는 미선 선배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을 수반한 장소였다. 위당관 문 앞을 나서면 마주하는 배수로에 바퀴가 빠질까 노심초사하는 것도 잠시, 몸이 앞으로 쏠릴 정도로 높은 경사의 언덕을 내려가야 한다. 언덕을 내려가면 보이는 길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전거와 킥보드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도로, 그리고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 뛰어올지 모르는 인도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특히 이 길은 가끔가다 바퀴로 인해 홈이 깊게 파인 곳도 있기에 울퉁불퉁한 그 길의 충격을 미선 선배는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바로 앞에 중앙도서관이 있어도 안심할 수 없다. 중앙 도서관은 일반 강의실이 소속된 건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시간 단축을 위해 해당 건물을 통과하는 학생들, 공부하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이 건물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한데 모이기 때문이다. 인파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성공적으로 탄 후에야 그녀의 여정은 끝이 났다. 찰나였지만, 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장애를 가진 사람은 다 ‘남’이라고 생각해 왔다. ‘남’이라는 글자를 곰곰이 곱씹어 보니, ‘나’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힘도 없이 등받이 없는 ‘ᄆ’ 모양 의자에 털썩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2개월간 인턴을 하면서 장애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엇인줄 아는가? 바로 ‘죄송한데...’이었다. 어쩌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저 ‘나’이고 싶지만, 자신이 타인에게 짐이 될까봐, 그 걱정 때문에 적극적으로 말하고, 또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등받이 없는 의자를 툭 밀 듯,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움직임은 그들이 ‘나’로서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연료를 제공해준다. 김미선 선배를 만난 이후,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장애 학생들이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노력했다. 지금쯤 그 학생들이 어딘가에서 훨훨 자유로이 날고 있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또한 이 글을 나의 벗, 재율이에게 속죄의 마음으로 바치는 바다.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글 속 등장하는 인물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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