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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일반부_경기 박수희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8 조회수260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일반부_경기 박수희








장애 ‘아이’ 찬송이네 가족의 평범한 삶


  저는 비장애인 아들과 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는 두 아들 엄마입니다. 2014년 겨울, 둘째 아이(찬송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35년 나의 인생에 ‘장애’란 단어는 그저 책에서나 보고 방송에서나 듣던 말 이었습니다. 하지만 찬송이를 낳고 키우면서 ‘장애’는 이제 내 ‘삶’ 자체가 되었고, 그렇게 남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길거리나 식당, 서점, 쇼핑몰 등 우리가 흔히 가는 곳에서 내가 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병원이나 치료센터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길거리에서나 식당, 버스, 지하철 등에서 장애인을 만나지 못했을까, 장애인이 거의 없어서 그런걸까,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은 2022년도 말 기준 265만명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은 도대체 어디에들 숨어 있는걸까. 그들은 왜 바깥으로 나오 지 않는걸까.
 찬송이가 태어나고 만3년 동안은 계속된 수술과 입원으로 거의 병원에서 지내다시피 하기도 했지만, 여행은 커녕 외출 자체도 처음엔 너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아이 상태가 워낙 위중해서 응급상황이 두려워 집 앞 산책조차도 조심스러웠고, 두 번째는 사람들의 직.간접적인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찬송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많이 아파 보였는데 코에는 식이 튜브가 끼워져 있었고, 목에는 구멍이 뚫려있고 가끔 석션을 하느라 목에 난 구멍으로 튜브를 집어넣기도 하고 기계 알람 소리는 계속 삑- 삑-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면 항상 시선 집중은 기본이고, 오지랖 넓은 분들은 쯔쯔 혀를 차며 안쓰러움 반, 거부감 반 섞인 눈빛을 쏘시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시선들이 너무 싫고 슬프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스스로 병원 외에는 외출을 끊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차단하고 홀로 지낸 거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첫째를 보았을 때 요즘 말로 ‘현타’가 쎄게 왔습니다. 찬송이가 태어났을 때 네 살이던 첫째는 어느새 여덟 살 초등학생 형아가 되어 있었고 이렇게 평범하지 못한 삶을 준 것도 미안한데, 남들 다 다니는 여행 한번 못 가고, 외출 한번 마음대로 다니지 않는 게 너무 억울하고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즈음부터 찬송이 컨디션만 괜찮으면 최대한 자주 외출하도록 노력하고,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가족여행을 가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한 두 차례씩 가족여행은 꼭 가고 있습니다. 물론 찬송이를 데리고 장거리 1박 이상 여행이란 게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엔 남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고, 일단 의료 기기들이 너무 많아서 이동 자체가 녹록치 않았습니다. 산소발생기, 산소포화도 모니터기, 석션기, 산소통, 앰부, 피딩펌프 등등... 짐이 한가득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마음의 준비, 의료용품 준비도 꼼꼼히 해서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집에서 2~30분 거리(30km)에 있는 펜션을, 두 번째는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원주, 세 번째는 광주 곤지암, 네 번째는 청주, 그다음은 인천, 삼척, 평창... 우리의 여행은 점차 거리가 멀어졌고 마침내 올해 6월엔 찬송이와 함께 제주도를 정복했습니다!!! 찬송이가 처음으로 간 아쿠아리움에서 수족관 속 물고기들을 너무 신기하게 바라보고 비자숲에서 숲 냄새를 맡아보고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저 평범한 척하면서 돌아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적어도 우리 가족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즐거운 시간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무장애 길도 늘어가고 점차 홍보가 되고 있지만 사실 장애아를 데리고 외출 할 때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휴게소에서 기저귀를 갈고 싶어도 아이를 눕힐만한 곳이 없습니다. 신생아 정도 눕힐 수 있는 기저귀갈이대 말고 조금 큰 아이들은 눕힐 곳은 없는데 영유아기를 벗어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나 혹은 성인들이 밖을 나올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리프트 시설이 없는 곳도 많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용을 거의 안해서 사용 방법을 모르는 곳도 있었습니다. 외출 시 밖에서 석션을 하거나 산소발생기 충전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시설이 따로 마련된 곳도 전혀 없어서 항상 콘센트를 찾아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조금 익숙해졌지만 그럴수록 외출이나 여행 시 불편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장애인,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나라와 그 사회와 그 국민이 어떤지 평가하고 결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었지만 장애인 시설이나 장애 인식 부분에서는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지인의 경험에 의하면 복잡한 지하철에서도 장애인 휠체어가 먼저 내려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아무도 항의하거나 인상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였다면 ... 지하철에서 과연 이렇게 평화롭게 다닐 수 있었을지 생각만으로 씁쓸해집니다. 저는 장애 가족으로서 장애인과 같은 삶을 먼저 살고 있지만, 이전에 내가 그랬듯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와는 무관심한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의의 사고로, 천재지변 등으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우리 가족이 장애를 얻을 수 있기에 우리 삶 속에 장애가 ‘인식 개선’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 그냥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의 삶의 모습과 방식이 다양하고 다르듯이, 장애인 혹은 장애 가족으로써의 삶도 그냥 우리 삶의 다양한 한 방식일 뿐인 것입니다. 즉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삶 가운데 한 방식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찬송이는 코로 숨을 쉬지 못하는 대신, 목(기관)에 구멍을 뚫고 숨을 쉰다. 찬송이는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대신, 위루관을 통해 음식을 먹는다. 찬송이는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신, 눈,코,입으로 울고 웃고 표현한다. 찬송이는 귀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신, 인공와우를 통해 소리를 듣는다. 찬송이는 두 발로 걷지 못하는 대신, 휠체어로 이동하며 세상 구경을 한다. 찬송이는 학교를 가지 못하는 대신, 특수 선생님께서 우리집에서 수업을 한다. 찬송이는 등이 가려울 때 스스로 긁지도 못하고 옆으로 돌아누울 수조차 없이 꼼짝없이 한 평 남짓 침대에 갇혀 지내고 1살 미만의 지능을 가졌지만, 온 우주를 꿈꾸며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천사의 미소를 짓는다.

 나에게 우리 찬송이는 장애를 가진 아픈 아이가 아니라, 그저 잘 웃고 애교 많은 장난꾸러기 사랑스런 둘째 아이일 뿐입니다. 세상이 찬송이를 향해 ‘장애’ 아이라고 말하고 정상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라고 인식할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 아이를 그저 장애가 있는 ‘아이’로 바라보고 틀린 게 아닌 다른 존재임을 받아들여주길 감히 욕심부려볼까 합니다. 그것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배려의 차원이 아닌, 어쩌면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고 필수 불가결한 요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 아이도, 당신 가족도, 혹은 당신도 장애를 가지게 되면 나처럼하게 될 거에요“라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다름을 옳고, 그른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다름을 다름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장애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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