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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일반부_경기 임아영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8 조회수135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일반부_경기 임아영





죽음의 울타리에서

  서른 살쯤 결혼하고 쉰 살쯤 시골의 자그마한 벽돌집을 사서 예순살이 넘어서는 은퇴한 남편과 유기견 한 마리 돌보며 목가적인 삶을 살아야지. 마당에는 작은 텃밭을 일구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힘든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살아가야지. 이십 대 후반의 철모르던 내가 설계했던 장밋빛 미래의 모습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돌 무렵까지는 이대로 열심히 살면 꿈꾸던 미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제법 그럴듯한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한 차례 유산 뒤에 가진 소중한 아이가 중증 자폐성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 모든 계획은 쓰레기통에 처박혀 버리고 나에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를 캄캄한 내일만이 남았다. 장애 판정을 받고 복지카드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던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멍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올 것이 왔구나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머리가 멍하고 숨이 잠시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는 것만 생각이 난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차일피일 미루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주민센터로 향했다. 두 돌이 다 되어가도록 옹알이조차 없던 아이. 주변에서는 첫째이고, 외동에 특히나 남자아이면 세 살 네 살 넘어서 말이 트이는 애들이 많다며 전전긍긍 언어치료실을 기웃거리는 내게 ‘유난’하다는 꼬리표를 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촉이 딱 맞았던 건데 그때는 왜 그렇게 주변의 눈치를 봤을까. 햇빛이 유리구슬처럼 반짝이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이미 예상하고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발걸음 하나하나 내딛는 것이 지옥의 늪지대를 건너는 것처럼 몹시도 무겁고 버거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뒤돌아 가고 싶었다. 그냥 깊이 가라앉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에 달린 ‘엄마’라는 이름표가 기어이 발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의연한 척 담담하게 복지카드를 받아들고 나왔다. 누가 보면 주민등록등본 한 장 떼고 나온 사람처럼 평범한 얼굴을 하고 주민센터 주차장에 주차된 가장 큰 차 뒤로 곧장 걸어갔다. 밝은 태양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 안에 쪼그리고 앉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숨죽여 울었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림자에 숨어든 나를 찾아내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왜,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그 답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세상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경우도 사는 것이 전쟁인데 하물며 말 못 하고 돌발 행동투성이인 자폐성 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카로운 시선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들과 다른 소리, 남들과 다른 눈빛, 남들과 다른 손짓까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구경거리가 되고 마는 숱한 순간순간들. 말을 못 한다는 것 말고는 장애의 특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던 세살 무렵, 혹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이 트일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동네에 열 군데가 넘는 곳을 전부 돌아다녔지만 모두 입소를 거절당했다.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학습지 등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수업도 돈을 더 내겠다, 보호자가 옆에서 돌발행동하지 않도록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붙잡고 있겠다, 뒤에서 보고 있게 만이라도 해 달라 읍소하고 사정해봐야 소용없었다. 놀이터에 가면 다른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고 통합 교육을 한다는 특수반이 있는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통합은커녕 모든 활동에서 열외 되어 창고를 개조한 이름만 특수반인 문 닫힌 곳에서 일과 시간 내내 지내야 했다.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들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며 기분이 좋아 ‘이이-’하고 소리를 내면 운동하던 사람들이 하던 운동도 멈추고 쳐다보는 것은 부지기수. 밖에서 떼를 쓰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대처하려 하면 ‘집에나 있지 저런 애를 왜 데리고 나오나 몰라’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싸여 버거울 때가 오면 나는 여지없이 죽음을 떠올린다. 아이가 죽고 나면 모든 것이 편안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아이 없이 홀가분해진 나의 행복한 미래를 떠올리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악을 쓰고 누워버리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한복판에서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기라도 하 는 날이면 너와 내가 같이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나겠구나 싶다. 그리고 이내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화들짝 놀라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장애인 자녀를 숨지게 하고 본인도 자살 기도를 한 보호자에 대한 뉴스를 보면 그래도 자녀를 죽이지는 말지 왜 그랬을까 안타까웠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뉴스를 보면 머지않아 내가 맞이할 미래라는 생각, 저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렀을까 아프지 않았을까와 같은 생각을 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기사를 보면 슬프다기보다 그저 담담히 ‘어, 이런 방식으로 죽는 것도 괜찮네’ 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한다. 죽음이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내가 죽으면 갑자기 없어진 엄마가 어디를 갔는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아이 혼자 남겨진 미래를 떠올릴 때의 그 공포는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해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짓누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너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서 너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하며 영양제를 한 움큼씩 씹어 삼킨다. 삶과 죽음이라는 양가감정이 늘 나를 둘러싸고 있다. 언제나 죽고 싶고 그만큼 늘 간절히 살고 싶다.

 몇 년 전 나름대로 장애를 잘 받아들이고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잠자던 아이와 함께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내 마음이 병들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그다음 날부터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아이는 지금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거기서 내가 만난 학부모들은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정신과에 다니고 있었다. 죽음의 울타리에 몸을 반쯤 걸치고서라도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멍든 마음에 연고라도 발라야 오늘을 또 살아 낼 수 있으니까.

 세상에 꼭 같은 생명은 단 하나도 없다. 코스모스 한 송이의 꽃잎도 그 빛깔과 모양이 전부 다르다. 장애인을 특별대우 해달라? 복지금을 더 달라?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뾰족한 시선과 손가락질을 멈추어주길 바랄 뿐이다. ‘너희들끼리 섬에 모여 살며 밖으로 나오지 말라’, ‘왜 밖으로 나와서는 정상인들을 힘들게 하느냐’ 따위의 폭언을 멈추어주길 바랄 뿐이다. 나의 아이가 그저 골방에 갇힌 채 잉여 인간으로 삶을 마감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비와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모두와 같은 모양으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냥 독특한 사람인가 보다’하고 지나가 주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저마다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상대를 평가한다. 눈금이 매우 촘촘한 잣대를 상대에게 겨누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대상에는 서슴없이 혐오의 칼을 날린다. 잣대를 내려놓고 적대를 멈추어주길, 환대해 주지는 않더라도 그저 ‘다름’으로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해 주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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