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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일반부_경기 최현정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8 조회수146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일반부_경기 최현정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서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어느 웹툰에서 읽고 마음에 담아뒀던 문구다. 최근 한 강좌에서는 이 말을 ‘시좌’라는 개념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즉 중심에 서느냐 변방에 서느냐에 따라 확보되는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중심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변방의 시좌에서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경험. 나는 시민옹호인 활동을 계기로 ‘장애’에 대한 직관이 이렇게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시민옹호인은 장애인복지관의 양성교육을 수료한 후 복지관 소속으로 관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 집단이다. 관내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장애인들의 권익 옹호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올해는 인권영화상영회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고, 몇몇 분들은 직무지도원으로 파견되어 취업 현장의 활동 보조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나도 7월 한 달간 한 회사에 동시에 입사하게 된 지적 장애인 두 분의 업무 지도와 협업 과정을 도울 인력으로 파견되었다. 함께 하는 동안 두 분의 업무 능력을 관찰하고, 각자가 가진 강점을 회사 업무에 잘 적용하도록 돕는 일을 수행했다. 장애 정도가 다른 두 분이 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수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협업을 하면서도 업무분장이 잘 이루어져야 해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어느 날 휴게 공간 청결을 담당하던 OO님이 물었다. “여긴 왜 이렇게 더러워요?” 회사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고,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없으니까 그런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OO님이 맡은 업무가 바로 그 일이라는 얘기를 해주려는데 먼저 이렇게 얘기했다. “이그, 관리를 좀 하면서 쓰지.” 순간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걸 OO님으로부터 들었다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OO님 말이 맞다. 치우는 몫은 어지럽힌 사람이 가져가야 맞다.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구조적인 분업 시스템을 OO님은 참으로 당당하게 나무랄 줄 아는 사람이다. 업무가 다 끝났는데 퇴근 시간이 아직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보통 퇴근 시간 전이라도 업무가 더 이상 없으면 과장님이 퇴근 지시를 주었던 터라, OO님에게 업무 보고를 하고 오라고 보냈다. 원래의 연습 멘트는 이러했다. “업무 끝났습니다. 시키실 업무 더 있습니까?” 하지만 연습하던 기억이 어느새 사라진 OO님이 선택한 멘트는 이러했다. “과장님, 업무 끝났습니다. 집에 가겠습니다.” OO님은 상황에 맞춰 내면을 감춰야 하는 사회적 언어 대신 자신의 솔직한 욕구를 참으로 당당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장애’는 다양성의 일종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할 수 없음’, 즉 무능력이라는 개념과 닿아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그들이 지닌 장애 이외의 것에 집중하여 바라보면 새로운 인식이 찾아온다. 지적 장애인은 학습에서 일어나는 자동사고인 전이와 일반화의 오류에서 자유롭다. 선행 경험이 다음 학습에 영향을 주기 힘들다는 건, 선행 경험에서 오는 오류의 전이 위험성 또한 없다는 말이다. 선행 경험이 비슷한 문제해결 상황에서 도움이 못 된다는 건, 학습한 내용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면서 저지를 일반화의 오류 또한 없다는 말이다. 지적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이라는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인식의 오류들로부터 자유롭다. 한편 언어적 소수자인 농인들은 세상을 사는 방식이 청인들과 다르다. 그들을 ‘듣지 못한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은 ‘잘 보는’ 사람들이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대화를 지켜보면,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손짓, 표정, 호흡 등이 어느새 주위 공간을 충만하게 채우는 느낌이다. 소리에 의존하는 청인들에 비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성을 즉각적이고도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농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불편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장애’로 규정하고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소수자로 바라보면서 발생하는 편견과 차별 때문은 아닐까.
 장애를 ‘능력 있는 몸’과 견주어 범주화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고 들었다. 대체 ‘장애’라는 말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일컫는 것 일까? 비장애인과 대체 어디가 어느 정도 달라야 ‘장애’라는 말을 붙이는 걸까? 비장애인들이 갖는 다양함 못지않게 장애인들 또한 놀라울 만큼 다양하다. 그런 개별성들을 무시하면서 인간을 경계 짓고 범주화하는 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사람들은 보통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장애인’이라는 이름표가 붙게 되는 순간 그 사람만의 개별 특성들은 희석되고 만다.
 복지관에서 만나는 장애 당사자들은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서도 다양한 모습이지만, ‘장애’라는 특성을 뺀 모습으로도 무척 다양하다. 호기심이 많은 이, 친화력이 좋은 이, 낯을 많이 가리는 이,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이, 이토록 다양한 이들이 ‘장애인’이라는 말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건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장애 당사자들과의 만남이 늘어갈수록 몸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을 ‘장애’로 규정하고 ‘장애인’으로 집단화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농인의 세계와 맹인의 세계와 자폐의 세계를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걸까. 하나로 묶이기 힘든 생물종들을 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류’라고 개념화하고 집단화했던 것이 과학적 오류였던 것처럼, ‘장애인’이라는 개념도 범주화의 오류는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이는 세계, 그 발견의 순간은 놀랍고 신기할 것이다. 한편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음을 인정할 때 이루어지는 인식의 확장 또한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울 것이다. 우리는 아직 장애를 제대로 모른다. 장애를 다양성으로 접근하면서 당사자를 한 사람 한 사람 보통의 이웃으로 만나기 시작하면 어느새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흐릿해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라는 말 속에 따로 들어가 있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다. 말이 주는 경계를 허물어보는 것은 내가 품을 세계를 넓게 확장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도가니>의 대사가 내내 마음에 남아 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다...우리가 싸워야 하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보통의 일상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의 사회가 아닐까. 비장애인이 누리는 보통의 일상을 장애인과 나누는 일, 그렇게 보통의 일상을 확장해 나가는 게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도록 태어났으며, 돌봄 속에서 성장하고, 돌봐주는 이로부터 독립을 한 이후로도 우리는 또 다른 타인과 상호 의존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 없는 살 수 없을 때까지 존재하다가 죽는다. 그런 의존적 삶이 만들어내는 다정하고 따뜻한 일상은 모두 함께 누려야 마땅하다. 모두 훼손되지 않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면서 동시에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연대에 동참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부단히 나만의 영토에서 벗어나 여럿이 함께 갈 수 있는 길 위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세상에 쓰임이 없는 사람이란 없다. 존재 자체가 이미 쓰임을 위한 예비이다. 중요한 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서툴게나마 나누려는 태도이다. 범주화로 닫혔던 서로의 경계를 열고, 우리가 함께 나누어 가진 근본적인 친화성을 회복해 나가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할 자원이 되어준다면, 각자의 취약성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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