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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청소년부_인천 원당고 마린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97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청소년부_인천 원당고 마린





  언니에게 자립은 증명의 대가였다. 때문에 언니는 뭐든지 증명하려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언니의 증명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이건 의존적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현금으로 금액에 맞춰 계산할 때도, 옷 가게에서 직원을 찾을 때에도 나는 언니를 대신했다. 설령 그 일이 아주 단순한 일이어도 예외 따윈 없었다. 그게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고3이다.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말은 어눌했지만 어느 정도의 대화는 가능했다. 언니의 정신연령이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언니와 함께 나가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그렇지, 언니가 밖에 나가서 중얼거릴 때마다 위아래로 흘겨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싫었다. 때문에 엄마의 강요로 언니와 함께 나갈 때면 나는 모든 걸 도맡아 했다. 아니, 언니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대신 증명했다.


  언니를 또다시 증명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나에게 언니를 맡겨둔 뒤 친구들과 일본으로 떠난 엄마 때문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일주일 치 반찬은 벌써 바닥이 보이는데, 엄마가 오기까지는 3일이 더 남았다. 계란후라이와 스팸이 질렸다고 징징대는 언니에게 말했다. 치킨을 시켜줄 테니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언니는 집 앞 10분 거리의 분식집을 꼭 가야겠다며 떼를 썼다. 죽어도 나가기 싫었는데. 층간 소음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고, 엄마가 책상에 두고 간 2만 원을 주머니에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를 대신 증명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검은 모자를 썼다. 언니를 대신 증명할 때마다 얼굴이 후끈후끈 해졌다. 얼굴이 진짜 토마토가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존재했다. 나는 언니를 부끄러워했다. 언니의 손가락은 메뉴판 위에서 빙빙 떠돌았다. 그리고 물음표 공격이 시작됐다.
 

“수페셜 돈까쓰는 뭐야? 내장탕?”
 

  말없이 주문서를 작성했고, 언니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식탁을 탕탕 두드리면서 아주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장애인인가 봐. 어후 왜 저래.수군대는 말소리가 고막을 괴롭혔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김밥을 먹는 옆 테이블과 언니가 무섭다며 찡찡거리는 아기까지. 모든 게 맘에 안 들었다. 주문서를 볼펜으로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치즈떡볶이 1인분에 참치김밥 한 줄이요! 순대도 주세요! 언니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 들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하던 틀린 그림 찾기였다. 스테이지 10개를 클리어했을 때쯤 음식이 나왔고, 빨리 먹으라며 언니를 툭툭 건드렸지만 미동이 없었다. 겨우겨우 젓가락을 잡은 언니는 기껏해야 김밥 5조각과 순대 한두 개, 그리고 떡볶이에 있는 어묵만 속속 골라 먹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식사를 끝마친 나는 계산을 하고 나왔다. 여전히 배고프다고 중얼거리는 언니의 입에 지퍼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왜 그러는 거야? 밥맛 떨어지게 깨작깨작 먹어대고. 좋아하는 거

사줬잖아.”
 

"나는 동까쓰랑 우동 먹고 싶었어..."
 

  우물쭈물하는 언니에게 따지려 했다. 그럼 아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냐고 말이다. 나는 입 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이 말이 모순임을 깨달았다. 나는 언니가 주문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내 맘대로 소리를 질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언니가 자기 자신을 증명할 시간을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언니도 충분히 말을 할 수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언니는 무조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증명했던 시간들은 언니를 서서히 갉아먹어 바보로 만들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로. 언니를 질질 끌고선 맞은편 닭강정 집으로 향했다.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닭강정 좋아하니까 한 번 주문해봐. 언니의 눈빛은 이슬마냥 금새 초롱초롱해졌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아저씨에게 말했다.

 

“수위트갈릭 닭깡정! 어... 스빠이씨 닭깡정도 하나, 주세요!”
 

  아저씨는 씩씩하다면서 언니에게 서비스 떡 튀김을 건넸다. 죄책감의 파도는 나를 잠식했다.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언니의 말은 때문이었다. 언니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한 순간은 19살이 돼서야 찾아왔다. 이제 나는 언니를 다시 증명하려 한다. 언니 스스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 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언니도 소중한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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