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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의 마음가짐] 관계의 삐걱거림을 넘어
분류더인디고 글쓴이보다센터 게시일2024-05-22 조회수14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나는 근육병이 중증으로 진행되어 전신의 힘이 거의 남지 않았다. 더욱이 20대 중반부터 스스로 숨 쉬는 일도 어려워져서 호흡기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척추측만이 심해서 주로 누워서 거치대의 모니터를 올려 보며 터치패드를 엄지손가락으로 조절해서 컴퓨터를 이용한다.

굳어진 몸을 통증이나 욕창을 피해 편하게 유지하려면 전력으로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에어매트리스에 의지하며 지내야 한다. 그로 인해 미열이 자주 생겨서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틈틈이 식혀준다. 최중증 장애로 살려면 의료와 기술, 그것을 작동하고 맞춰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그중에서 생명과 직결된 호흡기가 가장 중요하다. 의료기 임대회사에서 매달 간호사가 방문해 호흡 수치를 체크하고, 소모품을 교체한다. 의료진이 석 달마다 진료하여 기록된 상태를 확인하며, 매년 입원해 정밀하게 수면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설정값을 알맞게 조정한다. 또한 호흡기가 고장 나면 회사 긴급 연락망을 통해 기술자가 새 기계로 신속히 바꿔준다.

하지만 의료와 기술은 완벽하지 않고, 사람들도 불완전하다. 이십 년 넘는 시간 동안 호흡기를 여러 기종으로 바꿨는데, 갈수록 기기의 크기와 무게는 줄고, 성능과 배터리 용량이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오랜 적응에도 몸과 기계의 관계가 여전히 삐걱거린다. 공기가 원활히 공급되려면 마스크가 얼굴에 밀착돼야 해서 콧등과 볼 주변이 항상 짓무르고 상처가 생긴다.

호흡기는 세팅된 분당 호흡 횟수 외에 센서가 감지해 적절히 숨을 불어넣는데, 말하거나 먹을 때 갑자기 엇박자로 들어와서 덜컥 사레가 걸리는 일이 생긴다. 때로 공기의 일부가 식도로 넘어가면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정도로 가스가 차서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내장배터리가 길어야 네댓 시간 버텨서 어디 먼 장소로 외출하는 걸 피하게 된다.

에어매트리스는 욕창을 막아주는 데 효과적이지만, 모터의 소음과 매트의 진동, 발열이 심하게 발생해서 적응하는 데 유독 힘겨웠다. 지금은 이 제품 없이는 못 잘 만큼 안락해졌어도 한겨울 한파가 아니면 대체로 이불을 아주 얇고 가벼운 소재로 덮고, 모터가 조금이라도 덜 시끄럽게 하려고 놓는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보기도 한다.

컴퓨터를 하기 위해서는 거치대에 달린 모니터를 시야에 잘 들어오도록 여러 번 조정이 필요한데, 고개가 오른편으로 틀어져서 제대로 맞추기가 어렵다. 두 손 모두 엄지손가락만 움직이기에 왼손은 마우스로 클릭, 오른손은 터치패드로 커서를 움직이는데, 기기의 위치나 몸의 자세, 팔과 손목의 각도 같은 미세한 변화에도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컨디션이 크게 달라진다.

나 한 사람을 위해 각종 의료기와 보조기기가 동원된다. 개발회사의 엔지니어들과 수입회사의 직원들, 종합병원 호흡재활팀의 교수님들과 전공의들의 지식과 경험, 수고가 날 살리고 있다. 기약 없는 투병의 답답한 일상에서 무거운 고통을 안고서 외로워질 때면, 건강과 평안을 뒷받침해 주는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손길에서 위로받고, 그 감사함을 디딤돌 삼아 오늘의 행복과 내일의 희망에 기쁘게 가닿는다.

나는 이제 근육병이 완치되어 건강한 몸이 된다거나 장애를 극복하는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에 아무리 의료와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간병과 활동지원에 능숙한 사람을 만나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관계의 삐걱거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불완전한 현실 안에서 내가 추구하는 성숙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장애인의 삶을 다양한 차원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열린 관계를 통해 생존하고 공존하는 생의 조건으로 풀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합심해 이룩한 문명에서 모두가 의료와 기술의 혜택을 받고, 시민이자 이웃으로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나눌 때 취약한 존재들을 억압하는 차별이 무너질 것이다. 그 해방의 날을 함께 맞도록 좋은 편이 되어주시길.

출처

더인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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